377화 사냥감 (1)
독수리 사냥을 시작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오라클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뉴올리언스로부터 급전입니다!”
“급전?”
“네!”
거대한 짐승, 그 짐승을 잡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아니 시대가 어느 땐데 급전이야.”
“아 그게….”
“됐어. 무슨 명령인데?”
“그… 독수리 사냥을 시작한다는 명령입니다.”
“……진짜로?”
“그렇습니다.”
“잘못 들은 건 아니고?”
“이미 두 번이나 확인한 정봅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오라클이 진행하고 있던 사업들이 잠정 정지, 오라클의 임원들이 외부 활동을 미룬 채 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정말 실행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명령이니 따라야지. 서둘러 명령 전파하고 작계대로 움직여.”
시중에 나와 있던 오라클의 자금들이 갑자기 바짝 말라 버린 것이다.
“작계대로라면….”
“수도꼭지 틀어막아. 그리고 대기해. 이제 곧 다음 명령이 내려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 결과, 갑작스러운 오라클의 움직임에 각국의 경제 주체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지금껏 오라클이 이상 행보를 보일 때마다 각국 경제계에 커다란 사건이 벌어져 왔었기 때문이었다.
“오라클이 자금을 틀어 잠갔습니다.”
“오라클이?”
“네. 그리고 활동 인사들이 갑자기 회사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 지역? 한국? 아니면 미국?”
“전 세계 공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세계 사람들, 전세계 경제인들이 오라클의 행보를 주시하며 긴장하고 있던 그때. 한 척의 배가 뉴올리언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 배는….”
빠아아아앙-
커다란 기적 소리를 울리며 뉴올리언스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배. 그 배의 정체는… .
“…빨리 가서 회장님께 알려.”
“뭐라고…?”
USS 해리 S. 트루먼(CVN-75).
오라클의 사냥감이 타고 있는 배였다.
“…독수리가 도착했다고.”
*
점점 가까워 오는 함선의 모습.
마치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어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항공모함이라… 이거 부시 대통령이 꽤나 강수를 뒀는데?”
아무래도 꽤나 의외였던 것 같았다.
하긴 원래대로라면 에어포스 원을 타고 올 거라 생각했으니까.
“아마도 생각했겠죠. 친정이니만큼 퍼포먼스는 확실해야 한다고.”
“하긴 저것만큼 명확한 어필은 없지. 항공모함 미국의 상징이니까.”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항공모함(航空母艦).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힘들 중 하나.
대양을 지배하는 초강대국의 상징이다.
그런 만큼 조지 부시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이해는 갔다.
항공모함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직위, 그것이라면 지금까지의 이미지, 무능의 이미지를 덮어씌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저쪽에서 연락이 있었나요?”
내가 묻자 고개를 끄덕인 이어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있었지. 우리 쪽에 협조를 요청해 왔어.”
“뭐라고요?”
“우리 측에 접안하겠다고 그리고….”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시민들을 만나 위문하겠다고.”
“…그래요?”
“그래. 아주 당연한 듯이 말이야.”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이제와 시민들을 위문하겠다는 말은 우리가 지은 밥에 밥숟가락을 얹겠다는 말이나 진배없는 말이었으니까.
“숫제 해적이나 다 없군요.”
“누가 족보 없는 국가의 왕 아니랄까 봐 아주 경우가 없어.”
“뭐라고 했어요?”
“일단은 대기. 논의 후 결정하겠다고.”
나는 슬쩍 항공모함을 바라보았다.
10만 톤급 항공모함, 그 배는 전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것치곤 거침없이 다가오는데요?”
“그들이 거절했거든.”
“거절했다고요? 우리 측의 답변을?”
상식적이지 않은 대응, 대답은 간단했다.
“…명분은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어이가 없네요.”
“어떻게? 거절할까?”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인 이어진, 그가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그의 시선을 보니 내가 말만 하면 저쪽의 거절을 거절한 뒤 배를 돌릴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바라는 그림이 아니었으니까.
“…괜찮겠어?”
“대통령이 제 배의 갑판에 오르는 걸 묻는 거라면 예스, 괜찮아요. 항공모함이라 한 번쯤 구경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공이 저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어. 이미지란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는 거라고.”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맺힌 걱정이 꽤나 깊어 보였다.
“그리고 그걸 저쪽도 알고 있겠죠.”
“…그런데도 강행하겠다고?”
“물론이죠.”
“아니 굳이?”
“아저씨.”
나는 슬쩍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간단한 대답, 나는 슬쩍 앞으로 나아가며 배의 난간을 잡았다.
그러자 불어오는 멕시코만의 더운 바람이 슬쩍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하는 건 전쟁이 아니에요.”
“전쟁이 아니라고?”
“그렇죠. 이건 전쟁이 아니에요.”
나는 슬쩍 뒤로 돌며 말했다.
“사냥이지.”
“사냥?”
“네. 그리고 사냥을 할 때엔 가장 중요한 게 있죠.”
“…그게 뭔데?”
“사냥감이 자신이 사냥감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남자, 나의 첫번째 가신,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냥감이 자신이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너….”
“그러니까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성대하게 축하해 주세요.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승리감과 고양감에 도취되도록. 그 방심이….”
나는 말을 이었다.
“…곧 그들의 숨통을 조를 테니까.”
그랬다.
분명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명분과 위력, 두 가지 무기를 들고 쳐들어와 머리를 치는 방법. 금적금왕. 그런 만큼 그들의 방법은 제법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시민들을 위문하겠다는 생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본디 드러난 칼은 두렵지 않은 법.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면 그 방법은 그리 두려운 방법이 아니었다.
경계해야하는 것은 사냥터 밖의 위험이지 사냥터 안의 짐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냥터 안으로 들어온 짐승이란 아무리 강해도 짐승에 불과하니까.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꽤나 위험한 사냥이 될 거야.”
“지금껏 위험하지 않은 사냥이 있었나요?”
“하지만 지금처럼 커다란 사냥감은 처음이지. 위험성도 처음이고.”
“알아요. 하지만….”
나는 항공모함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꽈악 움켜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배, 미국이 가진 거대한 힘의 상징, 그것이 내 손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도 크겠죠.”
그리고 잠시 후 우리들의 앞에는 항공모함, 그 거대한 배가 자리해 있었다.
*
[친애하는 뉴올리언스 시민 여러분….]
거대한 함선.
그 위에 자리한 거대한 연단.
그 위에서 사람들을 향해 수천의 사람들을 향해 선언하는 남자. 그 사람의 목소리가 바다를 가른다.
[…지난 시간 우리는 크나큰 공포와 상처를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USS 해리 S. 트루먼 위를 가득 매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뉴올리언스의 시민들, 지난 세월 물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위대합니다. 여러분은 위대합니다. 그러니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슬퍼하지도 맙시다!]
그때, 저 멀리 수 대의 전투기들과 전폭기들이 기다란 비행운을 만들어 내며 이곳으로 날아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항공모함 주위에 있는 10척의 유람선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다들 놀란 것이다.
대부분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퍼포먼스가 처음일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놀란 사람들의 함성이 잦아든 그 순간.
[…여러분! 우리는! 우리 미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 그의 뒤쪽으로 커다란 폭죽이 터지며 그의 연설이 끝났다.
그러자 이내 방금 전 있었던 탄성의 수십, 수백 배의 탄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더니 이내 국가가 웅장하게 연주되기 시작했다.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와아-
장대한 퍼포먼스의 끝이었다.
거참 꽤나 많이 준비를 했네.
하긴 그동안의 무능을 감추고 흐리려면 이 정도의 퍼포먼스는 필요했겠지. 그들로서는 다소 무리를 해 가며 우리의 공을 가로채려는 상황, 애매한 퍼포먼스를 보인다면 그 위험을 감수한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뭐 그에 들어가는 돈은 생각지도 않은 것 같지만.’
하지만 그만큼 그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 상황, 이 순간만은 그동안 정부를 욕하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다 격한 흥분을 얼굴이 담은 채 소리 높여 국가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O'er the ramparts we watche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슬쩍 연단 쪽을 바라보자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각료들의 모습과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담고 있는 수십 대의 카메라들도.
그 광경만 보면 지난 동안 뉴올리언스를 감싸고 있던 재해의 흔적이 이 순간 마치 사라진 것 같은 분위기, 마치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그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시작할까?”
“시작하죠.”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는 이어진과의 대화를 마친 뒤 연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연설을 마친 뒤 손을 흔들며 연단 아래로 내려오는 조지 부시 대통령, 그를 향해 다가갔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아, 미스터 김.”
그러자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해 오는 조지 부시 대통령, 그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게 불만을 이야기할 거라면...”
아무래도 내가 온 이유를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럴 생각이 없다?”
“네.”
나는 나를 향해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부시 대통령,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일주일 뒤?”
“네. 정확하게 일주일 뒤.”
그리고 전달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말을.
“…미국의 경제는 붕괴할 겁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