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성수대교 (2)
성수대교 붕괴 사건.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경 서울 전역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성수대교의 제10, 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당시 해당 사고 부분을 달리고 있던 승용차 3대. 기아 베스타 1대와 기아 세피아 1대, 기아 프라이드 1대는 교각의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대우 르망 1대, 현대 엑셀 승용차 1대는 그대로 물속으로 곤두박질, 이후 학생, 직장인 등 승객 30명을 태운 시내버스는 한 대가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만 총 49명. 사망자 수만 무려 32명.
차후 복구공사에만 780억 원, 이후 총 공사비 1,300억 원이 소모된 대형사고!
그것이 바로 성수대교 붕괴 사고였다.
교량 붕괴의 원인은 최초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설계, 용접, 오차검사 등 전방위 걸친 부실공사와 해당 교각의 교량 보수 및 관리 기관인 서울특별시의 관리 소홀이었으며, 이로 인해 사고 당일 도의적 책임을 물어 이종원 서울시장이 경질되고 개원 중이던 국회 일정이 잠시 중단, 10월 24일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와중에도 건설사인 동아건설은 성수대교 시공 후 5년 간 하자보수를 성실히 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연일 계속되는 비판과 시민들의 분노에 결국 항복,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다리가 하루아침에 뚝 부러졌는데 면피를 하는 게 말이나 되나?
뭐 나중에는 나름 잘못했다고 1,500억 원을 들여 성수대교를 재건설하겠다느니 한강교량 보수관리 비용 100억 원을 서울시에 이를 기부하겠다느니 말을 한 모양이었지만,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은 동아건설의 면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성수대교의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교량의 시공 감리,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특별시 공무원 8명과 함께 사법부의 심판을 받은 뒤,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인 찍힌 채, 1998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확정, 2001년 그룹이 해체되며 대한민국 건설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뭐 그래도 총수 일가는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리고 정영주가 개입함으로써 그 역사는 이제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일단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대교의 붕괴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성수대교의 붕괴로 만들어진 안타까운 죽음들, 32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명은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사상자 0명! 전문가들 ‘기적과 같은 일’ - 경X일보. 1994. 10. 22]
[성수대교의 일 평균 이용 차량 수 약 16만대. 대형사고 될 수 있었다 - 중X일보. 1994. 10. 22]
그 덕분에 마치 늪에 빠진 것마냥 점점 떨어지고 있던 김영삼 대통령의 주가 또한 폭등. 김영삼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던 루머나 은근한 비판은 하루아침에 꼬리를 감추고, 그 자리를 김영삼 대통령에 결단에 대한 칭찬과 과거 업적에 대한 재조명들이 대신했다.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 대형 인명피해 막았다! - 조선일보. 1994. 10. 22]
어제 오전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두고 대통령의 결단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오전, 성수대교의 안전 문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날 오후 곧 바로 성수대교의 교통을 통제, 어제 오전 일어날 수도 있었던 대형 인명피해를 막은···(중략) 이 같은 결정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단호한 결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그러고 보면 김영삼이 그 양반이 정치 하나는 참 남자답게 잘 해. 아니 봐봐 그 조선총독부 철거도 그랬잖아. 일본 놈들이 돈 싸들고 와서 가져가겠다고 하는 걸 본때를 보여 준다면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린 거. 아니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했겠냐구!”
“맞아. 그러고 보면 이번 일도 그렇지. 솔직한 말로 김영삼이가 무슨 죄가 있어. 다 전 정부 놈들이 해쳐먹어서 이번에 다리가 무너진 거지. 솔직한 말로 김영삼이가 안 막았으면 그거 사람들도 죽고 그랬을 거 아니야. 안 그래?”
“허허, 맞지 맞아. 거 참. 사람이 젊을 때부터 정치를 해서 그런가 아주 뚝심이 있어. 대통령 하나 정말 잘 뽑았다니까.”
그리고 그 결과, 김영삼 대통령과 현대그룹 정영주 회장과의 극적인 화해가 이뤄졌다.
[정부, 성수대교의 재건설 사업자로 현대건설 지정. 동아건설에게는 ‘철저한 책임’ 묻겠다 선언 - 동X일보. 1994. 10. 30]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분명 의심은 가지만 그 의심을 씹어 먹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정보를 준 정영주에 대한 김영삼의 결정이었다.
‘만약 인명 피해가 났으면 어마어마한 부담이 됐을 테니까.’
물론 성수대교 붕괴 참사를 막은 것은 김영삼, 그리고 정영주 회장에게만 이득이 아니었다.
[동아건설 29300 ▼1603]
[남광토건 13400 ▼730]
[삼풍건설산업 9800 ▼310]
[현대건설 27,302 ▲1,300]
[한성건설 18,540 ▲1100]
최근 경기 확장 국면에 힘입어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던 건설주들 전반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라는 대형 악재로 하락했지만, 내가 투자한 현대건설이나 한성건설 같은, 김영삼 대통령의 명령으로 재건설을 시행하게 된 건설사들은 반대로 주가가 급등, 주식시장의 새로운 기린아로 거듭나면서 내 주머니를 빵빵하게 채워 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저씨 잘 올라가고 있어요?”
“대박이야. 이거 진짜 쭉쭉 올라가고 있어.”
“그래요?”
“어. 아무래도 이번에 김영삼 대통령 측에서 현대건설이랑 한성을 재건축 사업자로 지정한 게 큰 것 같아. 다른 건설사들은 죄다 떨어지고 있거든.”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이어진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희게 웃을 수 있었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러면 일단 최대한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보죠. 아무래도 사태가 그렇게 빨리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알았어. 하 참, 너랑 같이 다니다 보니 정말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아니 김일성이 죽은 다음에는 성수대교냐.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그런데?
내가 주식 투자를 마친 뒤, 정영주와의 약속을 위해 현대그룹 산하의 호텔에 도착, 정영주와 김영삼이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이 박힌 신문을 보고 있던 그때.
“아까부터 뭘 그리 재미있게 보고 있는 보고 있나?”
갑자기 신문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신문을 접자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내가 보고 있던 기사의 주인공, 정영주가 자리해 있었다.
“회장님?”
“허허 그래. 오랜만이구만 작은 선생.”
약속시간이 되려면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그의 갑작스런 등장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 나는 담담히 신문을 내린 뒤 정 회장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평안하셨어요, 회장님?”
그러자 정 회장이 짙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누구 덕분에 요즘 정말 평안하다네. 그래.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고 있었나?”
그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수행원들을 물리며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슬쩍 시선을 내려 내가 내려놓은 신문을 살펴보더니 이내 짙은 미소를 입에 물었다.
“이거 내 이야기구먼. 작은 선생 나이대에 보기엔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닐 텐데··· 평소에도 신문을 자주 보나?”
가벼운 안부.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깊고 단정했다.
나는 자세를 바로한 채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작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신문사마다 논조가 다르기도 하고 또 가끔 재미있는 칼럼도 있어서 볼 만하더라고요.”
“그래? 흐음, 그럼 동X일보 하나만 본다는 게 아니라는 말인데. 내 생각이 맞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원래는 국내 신문 두세 가지쯤 보다가 요즘엔 영어 때문에 워X턴포스트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자 말없이 내 모습을 내려다보는 정 회장.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욕심이 자리해 있었다.
“허허. 나이대에 비해서 제법 많은 양이구만. 그래. 배움에는 때가 있는 법이지. 혹시나 보고 싶은 신문이 있으면 말하게. 내 일본이든 미국이든 구해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말씀드릴 게요.”
“하하 그래. 기왕이면 손녀사위는 똑똑한 녀석이 좋을 테니까.”
“네?”
“농담이네 농담이야.”
그렇게 잠시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나와 정 회장. 그 둘 사이의 대화에 약간의 빈 공간이 생겼다.
그러자 잠시 주문한 차를 마시던 정 회장이 불쑥 나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작은 선생.”
“네. 회장님.”
“오늘 내가 여기 자네를 왜 부른지 알겠나?”
정 회장이 묵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었다. 분명 아직 성수대교의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타이밍, 그가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 때였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시기에 굳이 왜 내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연락을 받은 뒤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니 그가 이 타이밍에 나를 보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혹시··· 값을 치르고 싶으신 것 아닌가요?”
내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답하자 정 회장이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맞아. 정확하게는 자네가 뭘 원하는지 보고 싶은 거지.”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 몫의 찻잔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에 자네 덕분에 김영삼이 그 양반이랑 라인이 열렸어. 조만간 북쪽이랑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확답도 받았고 말이야. 그러니까··· 이젠 슬슬 말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떤가? 자네가 원하는 것 말이야.”
아무래도 그동안 내심 궁금했던 것 같다.
하긴 저번에 있었던 김일성의 죽음, 그리고 첫사랑의 생존과 위치 그리고 이번 성수대교까지 그에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 그로서는 궁금할 만도 했다.
기브 앤 테이크.
전에 그도 말했다시피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이쯤에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정 회장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밝혀도 될 것 같았다.
“회장님.”
“그래. 작은 선생.”
묵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영주. 나는 정 영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집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게 뭐지?”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맺었다.
“회장님 퇴직금. 저한테 투자하세요.”
정영주가 고요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