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검은 용을 쥐어라! (3) >
[‘짝퉁’의 나라 중국, 올림픽에 이어 이번엔 소수민족 마을마저도 짝퉁? - 연X뉴스. 2010, 11. 12]
가짜 불꽃놀이, 어린이 축가 립싱크, 가짜 피아노 연주까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짜 소수민족 어린이들을 등장시켜 ‘짝퉁’ 올림픽이란 조롱을 받은 적이 있었던 중국에서 이번에는 가짜 소수민족 마을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대중국단파방송 ‘희망지성(SOH) 국제 방송’은 이번 중국 정부의 중국 전역 55개 소수민족 마을 일제 조사에서 약 25개에 달하는 ‘짝퉁 소수민족 마을’이 발견되었다고 밝혔으며, 이를 통해 약 4500여 명이 넘는 가짜 소수민족 인원들이 당국에 적발, 조치에 들어갔다고 알렸다.
이번 발표를 진행한 ‘희망지성(SOH)방송’의 위안지펭 편집장은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에 적발된 위장 소수민족은 대부분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개중에는 과거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문란해진 중국의 호적 제도를 이용, 과거 범죄 경력 세탁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정부
지원책 등을 목적으로 위장한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에서는 기존의 중국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이뤄진 지원책들의 상당수를 재검토하기로 했으며,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소수민족 탄압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며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하기도···.
*
“그러니까 저 사람들 모두가 다 가짜라고?”
살짝 놀란 눈으로 나와 레이첼을 바라보는 이어진, 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보기에는요.”
그러자 잠시 주변을 돌아보던 그가 이내 천천히 목소리를 죽였다.
“···증거는 있어?”
“증거요?”
“그래. 증거. 그게 있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단순한 감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진 않을 테니까.
“물론이죠.”
“그래?”
“네.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일단···.”
나와 레이첼의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시선을 확인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그 노인, 도포 자락이 너무 깨끗해요.”
“······도포 자락이 너무 깨끗하다고?”
“네. 그 흰옷에 때 하나 묻어 있지 않았죠. 마치 방금 전 준비했었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러자 잠시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고민하는 이어진, 그가 뭔가 생각하는 듯 기억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리고 그 오랜 기간 전통을 지켜왔다고 말한 사람치고는 입이 굉장히 짧더라고요. 대부분은 소채 종류에만 젓가락이 가고 장이나 김치류에는 손이 가지 않았어요.”
그때 레이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기다 지팡이를 짚은 손에 굳은살이 없었죠. 지팡이를 오래도록 짚고 다닌 사람이라면 으레 생겨 있을 자국이 하나도 없는 건 물론, 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에게 생기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나와는 조금 다른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순간, 나와 레이첼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애들이 없어요.”
“아이들의 소리가 안 들려요.”
그러자 이어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짙어진다.
“애들이 없다?”
“네. 아이들이 없어요. 최충현 노인의 말 속에서만 나왔죠.”
레이첼이 곧바로 말을 이어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큰 마을에 사람이 너무 없어요. 보이는 사람이라곤 최충현 노인과 그 며느리 그리고 주변 집에 있던 사람들 정도예요.”
이쯤 되자 이어진, 그 또한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나와 레이첼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 것 같아.”
“그래요?”
“그래. 어른의 입은 막을 수 있어도 애들의 입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가 나의 추측과 비슷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렇죠.”
“거참, 두 사람 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봤네. 난 영락없이 바보짓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한 후회가 묻어났다.
“뭐 아저씨가 잘 공감해 준 덕분에 관찰하긴 편했죠.”
“참나, 뭐 위로는 안 되는구만. 그런데 준영아.”
“네.”
“알고 있지? 그것만으로는 단정 짓기엔 좀 힘들다는 걸?”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래. 모든 일엔 그에 맞는 이유가 있어. 하지만 이번엔 그게 없잖아.”
“모든 범죄엔 동기가 존재한다.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이번에도 동기는 있어요.”
나의 말에 이어진, 그가 고개를 숙였다.
“동기가 있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네. 우리가 나타났으니까.”
“······혹시?”
“맞아요. 우리가 나타나고 우리가 돈을 뿌리기 시작했죠. 지난 몇 주 동안 뭐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달려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에요.”
“하지만 우리에게 파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데?”
“가진 것의 가치가 커질수록 그 가격이 더 많아지는 법이죠.”
그제야 그가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얻어 내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거라는 거야?”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그치만 이 마을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마을이야.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마을이 아니라고.”
“그렇죠. 그러니까 확인해 보려고요.”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선언했다.
“거짓말에는 언제나 빈틈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
그 길로 최가촌을 떠난 우리들, 어두운 밤을 달려 가까스로 요령의 성도 선양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지금부터 최가촌에 대한 조사를 시작합니다.”
“예? 최가촌이요?”
최가촌이라는 목표가 확실한 만큼 자금과 인력을 들여 찾는다면 최가촌의 정체와 그들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최가촌에 관련된 정보는 언제, 어떤 자료든 좋으니까 무조건 수집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범위는 어떻게···.”
“몇 년, 몇 십 년 전 자료라도 좋습니다. 원래 발견이란 사소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물론 최가촌, 그곳은 꽤나 외진 지역, 중국 국내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손꼽히는 동북 삼성에서도 독보적으로 깊은 곳에 자리한 곳이니 만큼 그곳에 관련된 자료를 찾는 일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찾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최가촌 또한 중국 정부의 관활 하에 존재하는 마을인 만큼 관련 정부기관에 해당 자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호적 관리 장부 그 이상의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네요. 그렇게 자료가 없나요?”
“그게··· 워낙 외진 지역이라··· 게다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눈에 띄는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은 곳이라 당국에서 만들어 놓은 자료를 제외하면 거의 자료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있는 게 인구조사 자룐데, 지금 있는 자료로는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주세요. 최소 1000억 달러가 걸린 사업이니까요. 아시겠죠?”
“아, 알겠습니다.”
역시 물량 앞에 장사 없는 법. 지속적인 자금 투여와 인력 투여를 계속하자 뿌연 안개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던 최가촌의 모습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장님. 찾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의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최가촌, 그곳의 실체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
“···그러니까 우리가 본 최가촌이 원래 최가촌이 아니라는 거죠?”
내가 묻자 벌컥벌컥 냉수를 마신 이어진. 그가 탕-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컵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니까. 원래 최가촌이란 마을이 있긴 했는데 예전에 다들 뿔뿔이 흩어졌대.”
그러고는 화가 난다는 듯 뜨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들은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요?”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약진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 시기를 지나면서.”
대약진운동(大????).
그것이라면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겠다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경제 성장 계획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대실패로 끝난 계획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권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마오쩌뚱이 시대에 역행하는 이념 전쟁을 개시, 대약진 운동과 함께 중국 전체의 문화적 수준과 경제적 수준을 20년 이상 퇴보시켰다고 평가받는 정치적 행보고.
그런데 그 와중에 모두 다 흩어져 버렸다고?
“설마 모두 다 죽었다거나 그런 건가요?”
때문에 내가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다들 살길을 찾아서 움직였지. 어떤 사람들은 길림으로 어떤 사람들은 흑룡강으로, 뭐 그 와중에 몇 집 남아 있긴 했지만 나중에 있었던 일 때문에 밀려난 모양이고.”
“나중에 있었던 일?”
“홍위병(紅衛兵).”
그가 말을 맺었다.
“홍위병이요?”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대약진으로 만들어진 유민들에 이후에 튀어나온 홍위병들. 뭐 대부분은 적당히 움직이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개중에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걸 숨기기 위해 ‘뻐꾸기’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 소수민족··· 그들이라면 혼란스러운 시기 별 문제없이 넘어갈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뭐, 실제로도 그랬고.”
“지금 최가촌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이야긴가요?”
“그래.”
그가 화가 난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꽤나 디테일한 이야긴데 도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그 마을 사람이었다는 사람을 하나 찾았어. 뻐꾸기들 말고 원래 살고 있던 사람인데 어렸을 때 부모님 다 잃고 쫓겨나듯 마을을 나왔었다고 하더라고.”
그가 슬쩍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서류 안에는 갖은 고생을 한 깡마른 모습의 장년의 남자 하나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확실한 거예요?”
“확실해. 우연인지 지금 황금평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중에 한 명이었는데 그동안 잊은 셈 치면서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가 슬쩍 자료의 뒷면을 열며 말했다.
그곳에는 그의 인적사항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최가촌 그 늙은이가 우리한테 했던 조상 어쩌고 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다?”
“개소리였던 거지.”
이어진, 그가 불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때나마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했었던 만큼 배신감이 더 큰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다뇨? 뻔한 거 아니에요?”
“뻔하다고?”
“네. 구라치다 걸렸으면···.”
나는 의아함으로 물든 이어진의 표정, 그것을 바라보며 열었다.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