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늑대와 함께 춤을 (3)
무리에서 쫓겨난 알파. 우두머리 늑대의 말로는 뻔한 것이었다.
“다, 당신은….”
“우 회장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요.”
일단 가장 먼저 무리의 알파를 바꾼 늑대들, 그들은 자신들의 옛 우두머리를 물어뜯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꽤나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쪽에 계신 구 회장님께서 초대를 해 주셔서 말입니다. 그렇지요 구 회장님?”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들의 모가지마저 날아갈 것이라는 두려움, 그것이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아니 저희가 김 회장님을 초대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본디 인간이란 이기적인 동물이었으니까.
“우 회장님.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모든 것을 밝히시죠.”
“……밝힌다고? 무엇을?”
“우 회장님께서 획책하신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
그러자 업계 1위, 한때 나의 목을 노렸던 남자, 우정인 회장은 만신창이가 되어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다들 이 말에 합의한 거요?”
“그렇습니다. 다들 합의한 사항입니다. 우 회장님이 책임을 인정하다면 김준영 회장님께서도 적정한 선에서 멈춰 주시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 회장님. 우리 조용히 넘어갑시다.”
뿌린 대로 거둔다.
그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정말 빌어먹을 일이로군. 내가 선택하고 자시고 할 것이 있나? 이미 다들 결말을 정해 놓은 것 같은데?”
“물론. 우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롭니다. 하지만… 당신의 태도에 따라 SL에너지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겠죠.”
“처우가 달라진다?”
“저희가 알고 있는 자료만 가지고도 SL에너지를 해체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협의하시죠. 그렇게 된다면 노후만은 보장해 드리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이들, 한때 우정인 회장을 알파로 모인 이들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끝났습니까?”
“네. 끝났습니다. 우 회장이 모든 것을 시인했습니다.”
원래 늑대를 길들일 땐 목줄이 필수.
때문에 나는 그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목을 내밀 것을 요구했다.
“좋습니다. 그럼 우 회장님 일은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다음으론 다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하지만 회장님. 일전에 분명….”
앞으로 국내에 가져올 원유가를 국제 유가보다 싸게 판매하는 대신, 할인 비율과 똑같은 비율로 그들의 지분 매각을 촉구한 것이다.
“제가 말씀 드린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여러분들을 살려 드린다는 것. 그런 만큼 여러분의 회사, 여러분의 사회적인 목숨은 한동안 저의 것입니다. 거절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보여 드리죠. 아마 제법 실력이 좋을 겁니다.”
그러자 처음엔 난색을 금치 못하던 그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던 그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해 버렸다.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현재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나인 것을.
“잘들 생각하셨습니다. 이렇게 전향적으로 협조해 주신 만큼 그래도 섭섭지 않게 대해 드리도록 하죠. 여러분의 경영권은 지켜 드리겠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처음 ‘국부펀드’에 대한 기사가 나온 지 1주 만에 나는 대한민국 정유사들의 지분 상당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SL에너지, LG칼텍스, K오일 그리고 경남정유를 비롯한 13개 사의 지분 30%. 맞습니까?”
“마, 맞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빅4 정유사 중 3곳, 그리고 중소 정유사들 중 10곳.
1만 5천여 개에 달하는 영업소와 10만이 넘는 사원, 130곳이 넘는 정유시설이라는 목줄이 내 손에 걸린 것이다.
“그나저나 SL에너지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승계된 겁니까?”
“그게… 우 회장의 동생인 우경수 부회장이 일단 일을 맡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우경수 부회장이라… 그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 그렇지 않습니다. 우경수 회장 같은 경우엔 한동안 경영권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무난히 부회장직도 내려놨을 인사라고….”
“그래요?”
“그렇습니다. 꽤나 수더분한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마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향한 이를 드러내던 늑대들이 순한 양이 되어 내 손 안에 잡힌 그 순간.
“좋습니다. 그럼 구 회장님을 믿고 이번 일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나는 그동안 미뤄 왔던 일을 전격적으로 처리해 버렸다.
“아저씨.”
“대기하고 있었어.”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축제.
이제 얼마 뒤 4강 신화라는 거대한 기적을 이뤄 낼 파도, 그것을 노려.
국부펀드.
앞으로 이 나라 이 국가를 바꿀 거대한 칼을 손에 쥔 것이다.
[파격! 정부 대한민국형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 설립에 파격적인 출자금 마련! 총 10억 달러! - 한국일보. 2002. 05. 30]
곧 1조 달러. 대한민국의 목숨 줄이 될 무기를 말이다.
*
“앞으로 1년, 1년 안에 국부펀드를 100억 달러 규모로 키울 거예요.”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내 앞에서 치킨을 뜯고 있던 남자, 이어진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현재 우리는 2002년 한 일 월드컵을 맞아 벌어진 경기. 대한민국의 예선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고개를 들자 가게 한쪽에 자리한 스크린을 바라보는 사람들,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달간 정말 밤낮없이 바쁘게 일한 직원들을 위해 내가 시내에 있는 몇 개의 호프집들을 빌려 놓은 상태였다.
“들으신 그대로예요. 올해 안에 현재 10억 달러 규모인 펀드 규모를 100억 달러까지 키울 거예요. 그리고 그 이후엔… 1조 달러 규모까지 키워 나갈 예정이고요.”
“정말?”
“네.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를 바꾸는 거죠.”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이내 치킨을 내리며 말했다.
“…아니, 그런 말을 무슨 치킨집에서 해?”
아무래도 때와 장소가 이상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 장소가 중요한가요?”
“야! 중요하지. 거 참 갑자기 그런 무거운 말을 하면 치킨이 안 넘어간다고.”
그러고는 탁탁- 손을 털어 낸 그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손을 털어 낸 그의 눈은 어느새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참 뭐 좋아. 어차피 이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니까. 그런데… 자신은 있는 거야?”
그의 시선은 말하고 있었다.
자신 있느냐.
10억 달러 대의 자산을 이제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100억 달러로 불릴 수 있느냐라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저 모르세요? 자신이 없으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신중해야 해. 이건 역린이야. 우리가 날아오를 땐 그 무엇보다 더 힘을 발휘할 물건이지만 그렇지 못 한다면….”
나는 그의 말을 받아 대신 말을 이었다.
“독이 되겠죠.”
“그래. 누군가 찌르면 그곳이 너무나 깊게 패이겠지.”
그가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의 말엔 약간의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국부펀드.
국가의 재산을 운용해 국가의 내일을 대비하는 것. 피치 못할 사태에 대비한 보험격 자금이 바로 국부펀드였다.
그런 만큼 쉽게 그 자금을 운용할 수는 없었다.
비록 현재 내가 국부 펀드의 운용에 대한 권한을 어느 정도 부여받긴 했지만 만약 손실이 만들어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다가올 테니까.
“알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확실해?”
“네. 국부펀드. 분명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돈이긴 하지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자금이죠. 하지만….”
나는 말을 다졌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기회이기도 해요.”
“기회?”
“네.”
그런 다음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없었던 것. 제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니까.”
그랬다.
분명 국부펀드는 위험한 자금이었다.
국민의 혈세.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것이 바로 그 자금이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부펀드는 꽤나 흥미로운 자금이기도 했다.
일단 국민의 혈세로 운용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이 국가에서,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것은 곧 힘으로 치환될 수 있는 자금이죠. 다른 사람의 돈으로 위세를 부리는 거예요.”
내가 가진 힘 이외의 힘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 힘이 더 커질수록 나에게는 좋았다.
조력자.
깍두기.
그것이 온전히 나의 힘으로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하지만 준영아. 넌 이미 힘을 가지고 있어.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알아요. 오라클. 오라클의 재산. 중국에 만들어 놓은 인프라. 석유. 구글이나 애플을 비롯한 블루칩들. 그 모든 게 저의 것이죠.”
내 말에 이어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진 것들. 그것들은 그 또한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요.”
“부족하다고?”
“네. 저는 아직 배가 고프거든요.”
나는 슬쩍 가게 한쪽 축구 경기가 나오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은 현재 경기를 뛰고 있는 축구팀의 감독, 후일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신화를 만들어 내, 명예 한국인이 되는 남자가 한 말이었다.
“……그래서. 방법은 있어?”
“방법이야 간단하죠.”
나는 내 몫의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투자를 해야죠.”
“투자?”
“네. 앞으로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기업, 근 미래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기업. 그런 기업에 투자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긴 한데. 정말 그런 회사가 있어?”
“물론이죠.”
“어디?”
“어디긴요.”
나는 손가락을 세워 나를 가리켰다.
“바로 여기 있잖아요.”
그러자 일순, 입을 딱 벌리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너 설마 처음부터…?”
아무래도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네. 맞아요. 우리 회사에 투자하면 되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제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녔겠어요.”
“그런….”
나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 그를 향해 말했다.
“네. 그러니까 우린 바쁘게 움직여야만 해요. 그래야만 이 나라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 말은 들은 이어진이 스케일도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유로존을 먼저 건드려 볼까? 아니면 위안화가 절상되기 전에? 그도 아니면….’
미래가 내 편이기 때문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르지만 그걸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뭐 아니라면 그렇게 되게 만들면 될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