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숨겨진 칼 (1)
1995년 1월부터 시작된 조지 소로스의 일본침공, 그러니까 소로스와 그 일파들 국제적 환율 공격은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멕시코의 국가 도산 위기와 ‘제2의 관동대지진’이라 일컬어지는 한신-이와이 대지진이라는 복병을 만나 좌초했다.
미국의 앞마당인 멕시코의 국가도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 정부가 기존의 고금리 정책에서 저금리 정책으로 금융 정책을 선회하면서 달러화 약세를 방어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1월 17일 발생한 한신-이와이 대지진으로 인해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던 재팬머니가 ‘복구’라는 키워드를 기치로 일본 본토로 환류하면서, 소로스 일파가 예상했던 판, 달러화 강세와 엔화 폭락이라는 그림이 완전히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미국, 고금리 정책에서 저금리 정책으로 선회, 흔들리는 멕시코 경제 해결의 길 보이나? - 이코노미스트. 1995. 02. 5]
[1월 17일 대지진, 복구를 위한 손길 급증!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일본 - 마이니치. 1995. 02. 7]
그러자 조지 소로스와 그 일파의 달러화 사재기, 일본 엔화 공격을 알고 있던 세계 금융계에서는 이번 일로 소로스 일파가 크게 당했을 것이라며 고소를 머금고, 공격의 대상이었던 일본에서는 자국의 환율 방어 정책의 우수성을 어필함과 동시에 조지 소로스 일파로 대표되는 헤지펀드 세력에 대한 비판을 연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엔-달러 환율 102선 유지, 전문가들 근 시일 내에 ‘95엔’ 회복 가능 시사 - 니혼게이자이. 1995. 02. 10]
[무라야마 도이이치 총리. 재무성 관계자들을 불러 치하 ‘환율방어 성공적’이라 평가한 듯 - 마이니치. 1995. 02. 12]
[일본 중앙은행. 조지 소로스의 엔화 공격에 대해 ‘별것 아니었다’며 강한 자신감 내비춰 - 요미우리. 1995. 02. 14]
자신감.
198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좌절 일색이던 일본 금융계가 승리에 고취된 것이다.
물론 소로스 일파의 공격이 성공했었다면, 조지 소로스가 설계했었던 데로 엔저 상태가 도래했었다면, 이러한 비판은커녕 1992년 영국 중앙은행이 그랬듯 조지 소로스에게 설설 기며 선처를 구해야 했겠지만, 어찌 됐든 승리는 승리였다.
비록 멕시코 경제 위기와 한신-이와이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통해 이뤄진 상처뿐인 승리이긴 했지만, 대영제국. ‘그 영국’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일본이 해냈다는 것 자체에 그들은 집중한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의 마이클 켄 기자입니다. 차관님께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재무성 발표에 따르면 조지 소로스의 일본 엔화 공격이 원래부터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자 그대롭니다. 조지 소로스의 일본 침공은 시작부터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조지 소로스가 1992년 영국 은행의 항복을 받아내긴 했지만 우리 일본 은행은 그때의 영국은행보다 더 견실한 재무구조와 선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그는 무모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겠지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제법 위험한 상태까지 다다랐고, 일본 정부의 대응은 주먹구구식에 불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 엔-달러화 회복도 한신-이와이 대지진이라는 비극을 통한 우연적 회복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립니다. 우리 일본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같은 헤지펀드의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엔-달러 환율이 회복됐다는 비문명인들의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아마 조지 소로스 측에서 퍼뜨린 소문이겠지요.”
그러자 자연 조지 소로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증대되었다.
이번 공격에만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은 것으로 판명되는 조지 소로스와 그 일파, 벼랑 끝 위기에 몰린 그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한 것이다.
“소로스가 이대로 포기할까? 아니 벌써 수십억 달러를 손해 봤잖아?”
“글쎄? 내 생각인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 뭐 그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돈 모두가 증발해 버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럴까? 그런데 내가 듣기론 이번에 운용한 자금들 상당수를 날려서 투자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리도 있던데?”
“그래?”
“어 들리는 소문엔 그의 개인 자산까지도 이번 작전에 투자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지금 파산 위기라고.”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소로스 재산이 얼만데.”
물론 그 의견들 모두 실체 없는 추측들, 증거 없는 가능성들에 불과했지만 단 한 가지,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이번 일로 인해 조지 소로스의 힘과 위명이 상당히 그 빛이 바랬다는 것, 이유야 어찌됐건 소로스라는 거대한 해일, 경제적 자연재해로 여겨지던 그의 위엄이 일정 부분 이상 떨어져나갔다는 것이었다.
뭐 당사자인 조지 소로스,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얼마까지 올라왔지?”
조지 소로스.
이번 사건의 장본인.
워렌버핏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들 중 한 사람이자 한때 30조 원에 달하는 개인 자산을 자랑했던 인물. 2020년 기준 약 35조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악한 구세주’.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있는 사람들, 그가 운영하는 헤지펀드 ‘퀀텀’의 운용주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오늘로서 달러당 97엔 선까지 올라왔습니다.”
“97엔이라… 우리가 처음 이번 투자를 시작할 때의 수치로 돌아왔다는 말이로군. 뭐 좋아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입은 손실은?”
“펀드 자금만 따졌을 때 약 10억 달러 정돕니다. 총 투자금 대비 10%를 조금 더 넘긴 금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난리를 치겠군. 다른 이들도 약이 바짝 올랐을 테고 말이야. 그래 일본 중앙은행의 반응은 어떤가?”
“생각보다 더 기고만장해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공격을 그만 뒀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 소로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좋아 이제 그럼 슬슬 시작할 때로군.”
얼마 전 멕시코의 금융위기와 일본의 한신-이와이 대지진이 동시에 터져 나왔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원래 예정했던 작전이 엉망진창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에 대한 보험을 들어 놨었기 때문이었다.
보험의 이름은 ‘녹아웃 옵션’
옵션료를 일반 옵션 상품보다 낮게 받는 대신, 엔고가 달러당 94엔 선을 깰 정도로 급격히 진행되면 매입자의 권리가 소멸, 엄청난 환차익을 운영 주체인 자신이 모두 다 챙기는, 상품명 그대로 어느 한쪽이든 버는 쪽은 왕창 벌고 지는 쪽은 녹아웃 될 정도로 깨지는 옵션 상품이었다.
거의 도박. 링 위에 올라간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는 배틀로얄. 이긴 자가 진 자의 모든 것을 얻는 검투.
영혼의 맞다이.
그것이 바로 그의 히든카드, 녹아웃 옵션의 정체였다.
물론 상품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위험한 상품이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엔 생각보다 더 이성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돈을 배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편적이며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그 반대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옵션을 판매한 결과 그의 예상대로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옵션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주로 국뽕을 치사량으로 들이킨 일본 수출업자나 일본 정부 지배하의 금융기관들, 그리고 금융 투자를 무슨 게임처럼 여기고 있는 갑부들이나 엔고가 아무리 급격하게 진행되어도 94엔선을 돌파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돈 많고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뭐 그래도 아직 일본 엔화가 고점을 찍은 것은 아니니만큼 일본 정부와 일본 중앙은행이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공격 타이밍을 한 번쯤 망설여 볼만도 했지만, 작은 승리, 우연에 기댄 승리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일본 중앙은행 정도라면 충분히 요리 가능했다.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상처를 만드는 일. 일본이라는 거대한 고래의 배에 이빨을 박아 상어들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으니까.
‘상어들 또한 먼저 있던 사건으로 독이 바짝 올라 있을 테니 내가 길을 열어 주면 미친 듯이 물어뜯겠지.’
돈을 잃은 도박사보다 더 맹목적인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좋아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한 조지 소로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휘하의 제장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 무서운 입을 열었다.
“작전 시작하도록 해.”
그러자 그의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넉다운 된 줄 알았던 소로스의 반격. 일본과 거대 자본 간의 피 튀기는 2차전이 시작되었다.
조지 소로스가 퀀텀펀드의 무궁한 자금력을 기본으로 달러화 매각에 따른 단기 손실을 무릅쓰고 달러화를 무더기로 되팔고 그 대신 엔화를 무더기로 사들임으로써, 달러화 폭락을 부채질했던 것이다.
그러자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던 일본 중앙은행은 혼비백산, 또다시 환율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게… 뭐지?”
분명 조지 소로스, 그가 원했던 것은 엔고. 일본 정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엔화가치를 올려 녹다운 옵션을 현실화 시키는 것은 물론, 그를 통해 일본 중앙은행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한데 문제는 그의 예상보다 그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옆에서 같이 뛰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세게 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본디 상어들이란 피 냄새가 풍긴 이후에나 먹잇감에 달려드는 존재. 이렇게 능동적으로 자신과 발을 맞춰 움직일 정도의 발 빠른 존재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냥 단순한 상어의 공격. 다른 개체들보다 눈치가 빠른 상어의 습격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감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고.
결국, 그는 자신의 감. 나치 치하 헝가리에서부터 소련 치하 부다페스트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명과 부를 지켜 준 감각을 믿기로 했다.
“이거 조사해 봐.”
“조사 말입니까?”
“그래. 분명 누가 우리랑 같이 움직이고 있어. 그러니까 알아봐 변수는 최대한 배제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인가?”
“네.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5억 달러라. 동양에서 온 자금치곤 규모가 제법 크군.”
“그게… 아무래도 맨하탄 쪽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라클 펀드.
자신이 듣도 보도 못한 헤지펀드의 이름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