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폭풍이 불어오다 (1)
백악관 측의 제안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백악관 측에서 또 연락이 왔어.”
“또요?”
마치 네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겠다는 듯 그들은 내게 지속적인 제안을 전해 온 것이다.
“그래. 아무래도 꽤나 너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 꽤나 끈질기네요. 이번이 몇 번째죠?”
“스탠키 씨를 포함한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서 5번, 그리고 백악관 채널을 통해서만 3번, 총 8번이지.”
“그래요?”
“그래.”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제안 모두를 정중히 거절했다.
“…거참 그 사람 진짜 끈질기네요. 아니 젊었을 때 인기 없었겠는데요?”
“글쎄. 어떻게 이번에 한번 만나보기라도 할까?”
“음… 다른 제안은 없었나요?”
“전혀, 일단 우리 쪽에서 제안을 받아들이는 걸 전제로 하고 있어.”
“그럼 됐어요. 모두 다 거절이에요.”
“정말?
굳이 나서서 부시 행정부와 엮이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에요. 집착이 심한 남자와 엮이면 손해를 보는 법이죠.”
“…하지만 후폭풍이 거셀 수도 있어. 집착이 심할수록 그 반향 또한 클 테니까.”
“그렇다고 들어갈 수도 없는 법이죠. 주홍글씨란 오랫동안 피부에 남는 법이잖아요.”
뭐 대통령이 직접 면전에서 이야기한 것도 거절했는데 다른 것들은 더 쉬운 법이기도 하고.
“…후회하지 않겠어?”
“아시잖아요. 그런 건 키우지 않는 거.”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대한 반응, 백악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반향이 나를 찾아왔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내가 백악관의 요청의 거절한 지 채 몇 주가 지나기도 전에 미국 국세청(IRS), 자체 무장 병력을 동원해 납세를 실체화하는 이들, 그들이 오라클을 습격한 것이다.
“무슨 일이죠?”
“IRS에서 사람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IRS?”
“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오라클의 민낯을 탈탈탈탈 털겠다는 듯 오라클 본사를 털기 시작했다.
“미스터 김. IRS의 스티븐 맥퀸입니다. 협조 요청 부탁드립니다.”
“협조요청이라… 제 의사가 관계가 있나요?”
“요청을 거절하시면 일이 시끄러워진다는 차이점이 있겠죠?”
거참, 백악관에 불러 우수 납세자 표창을 한다 어쩐다 한 게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남의 집에선 냉장고를 열어 보지 않는다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나는 그런 일엔 철저히 준비했었으니까.
“마음대로 해 보세요.”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죠. 국가의 기관이 협조를 요청해 왔으니 받아들이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철저하게 수색하도록 하죠.”
그러자 처음엔 의기양양,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압박하던 IRS 또한 우리를 터는 것을 포기,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떠나가야만 했다.
“이 회사, 오라클 더 카리브라는 회사로 상당량의 자금이 유출되었습니다. 혹시 탈세를 획책하기 위한 페이퍼 컴퍼니 아닙니까?”
“카리브 해 인근 국가에 후원을 하기 위한 후원 기구입니다만?”
“…1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 모두가 말입니까?”
“물론이죠.”
“좋습니다. 그럼 여기 있는 오라클 더 텍사스는…?”
“텍사스 지구에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후원재단입니다.”
“그럼 혹시 이 알라스카 법인도?”
“어떨 거라 생각하세요?”
없는 탈세 자료를 어떻게 찾겠어?
뭐 보아하니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모양새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위세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할 테니까.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오셔도 무방합니다. 뭐 IRS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으니까. 다음엔 오실 땐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기대하도록 하죠.”
그리고 그렇게 8월, 미 동부에 계속된 이상기온으로 사람들이 무더위에 허덕이던 그때.
“갔어?”
“네. 뭐 걸릴 게 있어야죠.”
“하긴 저쪽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런데 아마 다음에는 만만치 않을 거야. 저쪽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겠지.”
“하하, 괜찮아요.”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북대서양, 카리프 해에서 제12호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기지개를 켠 것이다.
“…그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요.”
*
폭풍.
허리케인(Hurricane).
미국이라는 땅에 도래하는 열대성 저기압들 중 하나로 한 해에도 몇 번씩 미국 본토를 습격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때문에 미국인들, 특히나 열대성 저기압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남동부와 남서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여름이면 이러한 폭풍들에 대비해 준비를 한다.
집을 정비하고 수로를 청소하고 식료품을 사들여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하지만 이번 제12호 허리케인, 열대성저기압 카트리나는 종래의 다른 폭풍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폭풍으로 미국이라는 폭탄에 불이 붙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 폭풍을 대비해 만들어 내는 테스크포스,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다 이번 일을 위해 내가 준비한 사람들, 내가 준비한 기기들이었다.
“폭풍의 위치는?”
내가 입을 열자 일순 정지하는 사람들,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사람, 이번 일의 치프 역할을 맡은 직원, 미국 해양대기청의 헤드 출신 앤드류 데이비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현재 북대서양 바하마섬 인근에서 플로리다 주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로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허리케인의 직경은 약 1150km, 중심기압은 902hPa, 풍속은 77m/s으로 위험반경은 플로리다 남부 전역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그가 눈앞에 있는 대형스크린, 그것에 기상도를 띄우며 말했다.
기상도 위에는 거대한 규모의 허리케인, 폭풍의 눈을 여실히 드러낸 괴물이 하얀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플로리다 상륙 이후의 예상 이동 위치는 어딥니까?”
“플로리다 주 상륙 이후 이동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그 이후… 테네시, 켄터키, 오하이오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가 시뮬레이터를 가동하며 말했다.
화면 위로 앞으로 허리케인이 이동할 경로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한 자료입니까?”
“…오라클이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를 통한 예측입니다. 리버모어 연구소에 있는 블루진 보다는 약간 떨어지지만 해양대기청이 보유하고 있는 36테라플롭 사양의 지구 시뮬레이터(Earth Simulator)보다는 연산 능력이 뛰어납니다.”
“정부의 대응은?”
“일반적인 대응 전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일단 상륙이 예상되는 지역, 그중에서도 플로리다 지역에 주지사 명령으로 대피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가 플로리다 주정부의 발표를 띄우며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미국의 허리케인 대처는 한국과 확연히 다르다.
태풍이 오면 보통 대비를 한 후 집안에 꼼짝없이 지내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허리케인이 온다 싶으면, 아니 조금 가깝다 싶으면 대규모로 피난을 떠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동일한 규모의 태풍과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비교했을 때 허리케인이 동급의 태풍보다 약 4배 가량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테고리 4 이상의 허리케인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도 간단하게 전손시킬 수 있을 정도. 이런 파괴력 앞에서 어지간한 대부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뭐 문제가 있다면….
“다른 지역의 피난령은 떨어지지 않은 겁니까?”
그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는 거지.
내가 묻자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짓는 데이비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현재 플로리다 주만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경로 예측이 틀린 거겠죠.”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또한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미 정부가 사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데이터 분석의 미비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데이터는 올라가고 있겠죠. 하지만… 데이터를 주무르는 사람들의 선택은 그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관료주의.
그 단어는 어느 사회, 어느 민족에서도 나타나는 폐해였다.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이 감수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결과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물론 폭풍의 규모가 제법 거세긴 하지만 이 정도는 늘상 있어 왔던 일이니까요.”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니 다른 이들이 이번 폭풍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긴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주 일어나는 일, 연례행사처럼 지나가는 일의 위험성을 과대해석하진 않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큰일이군요.”
“네?”
“데이빗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더 할 테니까요.”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아무렇지 않음이, 그 익숙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지 말이다.
그러자 일순, 데이빗의 얼굴의 의아함이 지나갔다.
“…혹시 무슨 다른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혹시나 하는 표정,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데이빗.”
“네. 보스.”
“만약 이번 폭풍, 이번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지나고 나서도 세력을 잃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력을 잃지 않는다고요?”
의아한 표정,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이번 세력을 잃지도 아니 오히려 세력이 더 강화된다면, 그래서 멕시코만 연안을 폭격한다면 그땐 어떤 사태가 발생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러자 잠시 고민을 하던 데이빗, 그의 표정이 일변했다.
불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데이빗, 아무래도 내가 한 말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멕시코만 연안의 도시들은 허리케인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구축된 상탭니다.”
“그렇겠죠. 그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하지만 요즘 이 나라의 재정 상황은 그리 좋지 않죠. 아마 재정자립도가 낮은 주의 도시들은 이미 삐걱거리고 있을 겁니다. 원래 사회가 고장날 땐 가장 아랫쪽부터 망가지는 법이니까.”
나는 데이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데이빗. 만약 바다의 수위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 바다의 흐름을 제방으로 막아 사회를 유지하는 해안 도시, 그 도시의 수위를 도시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로 인한 변화들이 그의 머리를 친 것 같았다.
“네. 아마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아마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죠. 이건… 그 정도의 사건이니까.”
앞으로 며칠 뒤 미국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그로 인해 인구 60만의 대도시, 흑백갈등과 계층 갈등으로 유명한 도시, 그 도시의 모든 행정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무법천지가 도래한다.
미국 한복판에 국가 권력이 미치지 않는 대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미국의 모든 정치 권력은 일대의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 권력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대응을 보이면서 시민들의 여론이 폭풍처럼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때를 기다린다면 그때다.
원래 변혁이란 많은 것을 수반하는 법이었으니까.
“…혹시 어떤 도시가 위험할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추측은 가능하죠.”
“추측이라면?”
“일단 도시 전체가 바다보다 낮아 침수의 위협이 상존하는 도시. 하지만 대규모의 인구가 살고 있어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도시. 그런 도시를 찾으면 되겠죠?”
“…설마?”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북상하고 있는 폭풍과 그 타겟이 된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며칠 뒤 미 국가 권력의 일대 변혁을 가져올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지형을 가지고 있는 도시, 그 도시의 이름은…….
뉴올리언스(New Orleans).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