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223화 최종입찰 (2)
내가 막 입찰을 끝내고 이어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휴, 아저씨. 이제 끝났네요.”
“그러게 거참 길긴 길다. 진짜 수고 많았어.”
“수고는요 무슨. 그런데 대우측 사람들요?”
“그게…….”
갑자기 소란스럽던 주변이 일순 조용해지더니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홀로 들어섰다.
“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바로 대우, 나와 함께 쌍호를 노리는 자가 있는 곳이었다.
“…김 회장네 사람들인가 보네.”
“지금 도착했나 보네요?”
아무래도 내 다음으로 입찰을 위해 올라온 것 같았다.
채권단 사람들에게 듣기로 나에 이어 곧바로 다음 입찰자의 입찰이 있다고 했었으니까.
“뭐 순서대로 진행한다고 했으니 이때쯤 도착할 때도 됐죠.”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때, 입찰을 향해 회의실로 향하던 사람들 사이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찌릿-
작은 몸집에 제법 단단해 보이는 체구를 가진 남자, 김우중, 그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뭐야 김회장이 이쪽을 보는데?”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순간, 입찰을 위해 입찰장으로 향하던 그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저 사람들?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그러게요.”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김우중에게 향했다.
아무래도 곧 벌어질 사건, 이벤트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뭐야? 오라클이랑 대우랑 한판 붙는 거야?”
“이야. 이거 시작부터 흥미진진한데?”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다가온 김우중, 그가 내 앞에 섰다.
“…….”
“…….”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다음.
“오랜만이로구만.”
김우중, 그가 묵묵한 표정으로 내게 악수를 청해 왔다.
내밀어진 손,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손을 마주 잡았다.
“오랜만이네요 회장님.”
그러자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본 그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 거참, 아무래도 자네가 먼저 베팅을 한 모양이로구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뭐 좋아. 그런데 참 의외야 도망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법 깡이 있어.”
김우중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에는 나에 대한 감정, 내려다보는 자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도망갈 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애초에 그런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하, 그렇구만. 그래 이야기는 들었네. 김영삼이 그 양반을 구워삶았더군.”
“제법 이야기가 잘 통하는 분이시더라고요. 칼국수는 좀 매웠지만 말이죠.”
“칼국수는 금방 물리지. 자네도 돈을 물리게 될 것이고.”
그의 시선이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너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너의 결말 또한 이라고.
하지만.
“제가 잘 안 물리는 편이라서요. 누굴 물면 물었지.”
뭐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때문에 내가 가볍게 그의 위협에 대답하자 김우중, 그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뭐 간단히 이 싸움 제가 이길 거라는 말이죠.”
“…안타깝구만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생겼어.”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향했다.
그의 시선에는 나에 대한 비웃음과 자신의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주변을 돌아보자 기자들로 보이는 자들, 그리고 채권단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에 재미있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의 자신감을 부숴버릴 만한 생각이.
좋아 그렇다면?
나는 몸을 돌린 채 입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김우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회장님.”
그러자 잠시 몸을 돌렸던 그,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회장님도 자신이 이길 거라 예상하고 있으니 저희 둘이 내기 하나 하죠.”
“……우습구만.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나?”
“그래서 안 하실 건가요?”
그러자 잠시 고민을 하던 김우중, 그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종목은?”
역시.
그 또한 나이가 들었다 해도 승부사, 이런 승부를 마다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승패.”
“대가는?”
“깔끔하게 한 가지로 하죠.”
“깔끔하게 한 가지라... 그게 뭐지?”
“간단해요.”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뭐?”
“그것도 조중동을 비롯한 주요 일간지 전부에.”
말을 마친 나는 김우중을 바라보았다.
“어떠세요?”
순간, 김우중의 얼굴이 청동처럼 굳었다.
*
잠시 뒤.
입찰장 안으로 들어온 김우중, 그가 굳은 얼굴로 의자에 착석했다.
“빨리 시작하지.”
그러자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채권단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김우중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만큼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하려던 것이다.
“확인하겠습니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님. 맞으십니까?”
“그렇소.”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쌍호자동차 공개 입찰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재 입찰 결과를 상호 합의 하에 빠르게 결정을 내기로….”
그때.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김우중. 그가 쿵- 발을 굴렀다.
“다 동의할 테니까 빨리 진행하지.”
몹시도 광오한 태도. 평소 김우중이 자신만만하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채권단 사람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 주인공은 엄연히 그, 때문에 채권단 사람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앞에 놓인 서류에 대우그룹의 쌍호자동차 인수가액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그러자 빠르게 펜을 잡은 김우중, 그가 금방이라도 인수가액을 적을 듯 종이에 펜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
마치 덫에 걸린 듯,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불안.
그것이 그의 손을 잡아챈 것이다.
그러자 잠시 그를 바라보던 인수위원장, 그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회장님?”
“잠시만, 잠시만 생각을 좀 하게 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김우중의 표정이 깊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 처음부터 그가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처음 쌍호 자동차의 입찰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낙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삼성이 탈락한 이상 오라클 정도야 손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일단 쌍호 자동차의 부채 수중을 파악해 봤을 때 적정 인수금액은 3조 원 정도다. 자금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기간을 10년으로 하고 최대한 늦추면 돼.’
하지만.
오라클과 대우, 그 둘의 이파전이 시작된 이후, 그는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만들어 왔던 그의 인맥, 그의 사람, 그의 제국이 요즘 들어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데다, 방금 전 그가 보았던 꼬맹이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설혹 그가 이번 베팅에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타이틀 또한 산산이 부서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꼬맹이에게 진 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후,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삼성이 더 손쉬워 보이는구만.’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고민을 한다고 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
‘후... 좋아 그렇다면?’
때문에 그는 애초에 생각했던 자금, 그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자금. 그 선까지 모든 자금을 쏟아부었다.
무려 3조 5천억원, 쌍호자동차의 부채와 같은 자금을.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설마하니 오라클 측에서 그와 비슷한 자금을 쏟아 부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많아도 3조 언저리겠지. 설마 미친놈이 아닌 이상 그 이상을 쓰겠어?’
물론 3조 5천억원이라는 돈, 그 돈이 그에게도 부담이 되는 자금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는 믿었다.
쌍호자동차, 그것을 자신의 손에 쥐기만 한다면 그 이상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니 말마따나 공장의 볼트하나 너트 하나까지 탈탈탈탈 털면 그가 투자한 자금쯤은 너끈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회사는 망가지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입찰을 끝낸 뒤 채권단의 발표가 시작되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돈의 규모가.
[대 우 : 3,500,0...]
[오라클 : 2,500,0...]
‘됐다!’
순간, 김우중 그는 찌르르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꼈다.
숫자 2와 5. 그것은 오라클이 베팅한 자금이 2조 언저리라는 말, 자신이 생각한 자금보다 현저하게 작은 금액이라는 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3조만 쓸 것을.’
하지만 그는 후회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자금은 모두 다 쌍호에게서 뜯어낼 것이니까.
때문에 그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오라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그에게 건방을 떨던 꼬맹이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이거 어쩌지 내가 이긴 것 같구만.”
그런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어째 꼬맹이의 대응이 좀 이상했다.
벌어진 상황에 울상을 지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꼬맹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던 것이다.
“승복하지 못하는 건가?”
때문에 그가 묻자, 꼬맹이, 김준영이 밝은 미소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승복이라뇨?”
“...지금 이 상황 말일세.”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다시 한 번 잘 보시죠.”
김준영이 슬쩍 손을 들어 김우중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러자 잠시 얼굴을 찌푸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무슨...’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 우 : 3,500,000,000,000 \]
[오라클 : 2,500,000,000 $]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쌍호 자동차 최종 인수대상 : 오라클]
순간, 김우중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
[완성차 업계 5위의 대기업 쌍호자동차 결국 오라클에게로! - 한X일보. 1997. 12. 14]
…초미의 관심사였던 쌍호자동차의 인수, 그 승자가 결정되었다. 지난 12월 13일 있었던 쌍호자동차 인수사업에서 당초 유력한 후보자로 대우그룹의 경우 약 3조 5천억 원이라는 예상외의 자금을 입찰에 적어 냈지만, 신흥강자 오라클이 25억 달러, 우리 돈 3조 7천 5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적어내면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자동차 업계 5위 쌍호자동차는 오라클의 손에…
쌍호자동차의 공개입찰이 끝난 순간, 말 그대로 난리가 나 버렸다.
“미친! 아니 대우가 졌다고?”
“그렇다니까! 그것도 완전히 졌어!”
쌍호자동차.
재계서열 6위의 거대 기업 쌍호의 기둥, 그 기업이 삼성도 대우도 오라클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린 것이다.
[충격! 국내 완성차 브랜드 쌍호자동차 결국 오라클의 손으로 ? 매X경제. 1997. 12. 14]
[쌍호자동차 한화 3조 7천 5백억 원에 낙찰! 재계 인사들 오라클들 자금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 한X일보. 1997. 12. 14]
물론 그렇다고 쌍호차의 일, 일반적인 사람들까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입찰이 끝난 지 얼마 뒤.
조X, 중X, 동X.
우리나라의 대표 일간지 세 군데에 한 가지 기사가 실리면서 말 그대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버렸다.
[대우 김우중 회장, 오라클의 승리 인정! 축하한다! - 조X일보. 1997. 12. 14]
[김우중 회장 오라클의 쌍호자동차 인수 ‘아쉽지만 인정’ - 중X일보. 1997. 12. 14]
[의외의 축하, 오라클의 쌍호자동차 인수에 대해 김우중 ‘패배선언’ - 동X일보. 1997. 12. 14]
샐러리맨의 신화.
김우중이 자신의 손으로 오라클의 승리를 공포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
당초 대우의 우세를 점치며 은연 중에 오라클을 깎아내리던 자들이 얼굴을 바꿔 빠르게 오라클을 향해 달려들었다.
새로운 강자.
달러를 쥔, 도대체 자금이 얼마나 될지 전혀 예상되지 않은 신흥강자에게 꼬리를 흔들기 위해서였다.
“…김우중이가 졌어?”
“그렇다니까. 빌어먹을 그렇게 펜대를 굴려 줬는데도 지다니 그 양반도 이미 늙었어.”
“하긴 그렇긴 하지. 아니 속도 좋아. 어떻게 져놓고 저런 기사를….”
“젠장,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떻게 해서든 오라클의 선을 대 보자고.”
그 결과, 언론사들에 의해 오라클의 대중적인 인지도,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오라클의 인지도 또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라클은 순수 국내 기업, 미국에서의 대규모 투자로 수익 거둬 ? 조X일보. 1997. 12. 15]
[해외 투자자들 ‘오라클은 마이더스의 손’ 극찬 일색 ? 중X일보. 1997. 12. 15]
[전문가들 오라클의 쌍호차 인수로 인해 쌍호차의 ‘가치상승’ 기대 ? 동X일보. 1997. 12. 15]
오라클(Oracle)이라는 이름의 기업. 이름조차 생소한 기업의 이름이 빠르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릿속에 박혀나가더니, 기존의 자본가들, 권력자들에게서 오라클에 대한 러브콜이 쏟아지기에 이른 것이다.
“오라클? 오라클이 어디여?”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주식을 만져? 왜 그 있잖아. 이번에 쌍호차 인수한 회사.”
“아, 그 회사. 그런데 그 회사가 왜 계속 신문에 나오는 거여?”
“왜기는, 이제 대세가 그쪽으로 기울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빨리 총알 쟁여 놔. 머지않아 큰 일이 벌어질 테니.”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김우중의 패배가 무얼 의미하는지.
오라클의 쌍호차 인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바로 그것은 바로 수백 조 규모의 자동차 회사 시장, 그 시장에 터무니없는 포식자 하나가 나타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저씨.”
“그래 준영아.”
“이제부터 본격적인 쇼핑 시작이에요.”
우리나라 기업들을 쓸어 먹을 큰 손이 등장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