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232화 단두대 (2)
쌍호자동차.
재계 서열 6위의 대기업 쌍호의 핵심 계열사였던 회사.
하지만 무리한 투자와 확장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오라클이라는 신생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간 회사.
그 회사에 가장 깊은 곳, 김석원이 있을 때 소위 아방궁이라 불리던 곳에선 지금 일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봐들! 여기 먼지가 보이잖아!”
“화분, 여기 화분 하나 가져다 놔!”
“염병, 빨리들 못 움직여?”
그것은 바로 오늘, 쌍호자동차의 운명을 결정지을 사람?, 오라클의 인수위원회 인원들이 쌍호자동차를 찾아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현수막. 현수막은 어떻게 됐어?”
“그게… 아직….”
“빌어먹을 舅? 그따위로밖에 못해? 빨리 처리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반 직원들, 그들이 고위직들의 닦달이 시달리고 있던 그때, 그들이 있는 곳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분명 못 보던 얼굴.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인수위원회 인원이 한 사람 일리 없으니 그저 평범한 신입사원이라 생각한 것이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글쎄? 우리 팀은 아닌데? 인사팀인가?”
“우리 쪽도 아닌데요?”
그런데 그때.
“어이 거기.”
나이가 제법 든 과장급 한 명이 그를 호출했다.
그러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이내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시죠?”
“이거 일손이 좀 부족해서 그러는데 이것 좀 가져다줘.”
“오늘 무슨 일 있나 보죠?”
“몰랐어? 오늘 인수위원인지 뭔지가 온다잖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과장의 말, 그 말에 남자가 짙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그래. 이제 얼마 안 남았을 테니까. 빨리 준비해야 해.”
“그래요? 이거 어쩌죠 이렇게까지 준비할 거 없었는데?”
그 말에, 과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조심스레 묻는 과장, 그의 말에 남자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순간, 과장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혹시?”
인수위원회가 오는 날 처음 보이는 얼굴에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젊은 남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오라클 인수위원회장 이어진이라고 합니다.”
순간, 공간이 일순 정지. 다들 얼어붙었다.
“오, 오라클 인수위원회장님?”
“네. 맞습니다.”
그가 꺼내든 서류를 보자마자 직원들 모두가 혼비백산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 있던 과장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납작 엎드렸다.
오라클이라면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 이제 그들의 모회사가 된, 쉽게 말해 저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빠, 빨리 임원분들 모셔와!”
“아, 이. 이쪽으로 오시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이어진, 그가 쌍호차의 가장 깊은 곳 그곳으로 들어가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을 바라보는 임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일단 가장 먼저 차나 한 잔 할까요?”
임원들의 얼굴이 어색하게 변했다.
*
임대두.
쌍호자동차에서 지난 10년간 둥지를 틀고 있는 남자.
그는 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사장실 안에서 들려오? 웃음소리를 들으며 속이 쓰림을 느끼고 있었다.
[하하하하. 쌍호차 인수 때 저희 오라클을 응원했다는 말입니까?]
[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우 김우중이 그 강퍅한 인간보다는 아무래도 오라클이…]
그동안 망해 가는 회사의 모습. 인수 이후 더 망해 가는 회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달리질 건 없겠구만.’
사실 그는 약간의 기대? 가지고 있었다.
쌍호자동차가 무너側? 오라클에 인수될 때에도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김석원의 치하에서의 쌍호자동차, 그 회사는 희망이 없었다.
회장 개인의 욕심과 애호로 돈을 처붓는다고 회사가 운영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4조를 쏟아부으면 뭐해. 확실한 전망도 계획도 없었는데.’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들이 걱정을 하며 쌍호자동차의 오라클 인수, 그것을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도 그 변화?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오라클이라는 기업이 미국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만큼 보다 더 합리적인 경영, 그리고 그를 통한 쌍호자동차의 쇄신, 기업의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한번 싹 갈리고 나면 된다. 싹 갈리고 나서 새로 시작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업계 4위, 아니 3위도 꿈은 아니지.‘
하지만.
그 생각도 오늘로써 끝이었다.
‘자 그럼 일단 가장 먼저 차나 한 잔 할까요?’
인수위원장이라는 양반의 말,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임원들과의 담소. 그것들을 들으면서 그는 그 모든 기대를 접은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머리를 쳤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어.’
자리에 앉은 그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희망, 오라클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이상, 이제 쭉정이만 남은 회사, 분명 규모는 크지만 그에 맞는 알맹이가 없는 이 회사, 쌍호의 미래가 암울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회사는 천천히 말라갈 것이다. 그리고… 산채로 썩어 가겠지.’
물론 마음만 같아서는 이 회사,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부조리가 가득한 회사를 박차고 나가 버리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부하직원들을 부하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었다.
‘후… 요즘 같은 때 나가서 먹고 살 길도 막막하고.’
때문에 그는 속 안에 들어찬 실망을 곱씹으며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세상이야 빌어먹을 세상.”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면서.
그런데 그때.
[…아니 그렇게 좋은 곳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인수위원장님도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말씀하시면 제가 대접하도록 하지요.]
그의 귀전으로 일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임원들의 목소리, 회사를 좀먹는 데 일조하고 있는 임원들과 인수위원장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소리였다.
[좋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양 상무님의 안내를 받아 보도록 하죠.]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역시 젊은 분이라 유도리가…]
그러자 그 순간.
“이봐 나 잠시만.”
임대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석원의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보니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어디로?”
“그냥 잠깐만.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렇게 부하직원의 걱정 어린 눈빛을 뒤로한 임대두. 그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개피 남은 담배 하나를 뺴들?라이터를 당겼다.
빠르게 한 대 피고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려 한 것이다.
‘한 번에 켜지면 남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러나.
픽-
라이터에선 어울리지 않게 작은 소리 만에 나올 뿐이었다.
슬쩍 라이터를 바라보자 바닥난 기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 빌어먹을.”
그런데 그때.
불쑥-
라이터를 쥔 손 하나가 그의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탁- 불길이 올라왔다.
“뭐….”
슬쩍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잘생긴 남자.
약간은 작은 키에 조금은 앳된 기색이 역력한, 거짓말 조금 보태 장국영과 정우성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외모의 사원 하나가 서 있었다.
“여기 이거 쓰세요.”
사원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담배를 물고 있던 임대두가 뭐에 홀린 듯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신입?”
“아 네. 이번에 새로 들어왔어요.”
“신입? 요즘 같은 때에도 신입을 뽑았나?”
“낙하산이거든요.”
청년의 말에 임대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낙하산, 그들과는 시작점이 다른 이들. 그런 이들이라면 조심해야만 했다.
그들 대부분은 임대두 그와 태생이 다른 자들. 이 회사를 지배, 좀먹는 자들의 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것들 이 상황에 낙하산을 꽂아 넣어?’
하지만 뭐 그렇다고 그걸 티를 낼 수는 없는 일, 그는 슬쩍 담배 한 모금을 빨며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쓰구만.’
그런데 그때.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이세요?”
청년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천진한 그 모습을 본 순간 임대두의 가슴에 욱하는 것이 튀어 올랐다.
“…낙하산한테 말할 말한 이유는 아닌데?”
“하하 그런가요?”
“그래. 그런데… 그나저나 누구 라인이야?”
잠시 말을 아끼던 임대두가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 라인이라뇨?”
“낙하산이면 떨어뜨린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누구야. 김 전무야? 아니면 양 상무?”
“그런 걸 이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되나요?”
“뭐 어때. 어차피 쌍호 차 내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장이야 회사 팔릴 때 딸려 나갔으니 김 전무 아니면 양 상무겠지. 누구야?”
임대두가 천천히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이미 이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은 만큼 두려움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자 잠시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임대두를 바라보던 청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외로 성미가 급하시네요. 듣던 바에는 침착하다 하던데?”
“응? 듣던 바라니. 그게 무슨….”
그때.
“임대두 씨.”
청년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임대두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똑같은 사람,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였지만 뭔가 달라 보였다.
“뭐…….”
“임대두. 쌍호자동차 10년차 만년 과장. 직무평가 우수. 사원들 평가 우수. 업무능력에서는 문제가 없음. 하지만 지나치게 완고한 태도와 결벽적인 성격으로 인해 상사와 잦은 트러블. 그리고 그로 인해 어느 라인에서도 받아 주지 않음.”
말을 마친 청년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닙니까?”
임대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른 이에게서 받는 평가. 자신의 평가에 일순 분노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 것이다.
“…….”
그러자 그 모습을 청년이 가벼운 미소를 입에 물었다.
“임대두 씨. 아까 저한테 물으셨죠? 제가 누구의 라인이냐고?”
그 물음에 임대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저는 누구의 라인도 아니에요. 아, 뭐 굳이 따지자면 라인이 있긴 하겠네요.”
말을 마친 청년이 임대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제 이름은 김준영. 이번에 이 회사를 인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빠르게 말을 맺었다.
“당신이 이제 곧 타게 될 라인이죠.”
순간, 임대두의 얼굴이 멍하게 풀어졌다.
아니 회장이 여기 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