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다알리아 (1)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대지.
고통 받는 도시 뉴올리언스. 그곳에 이변이 벌어졌다.
“시민 여러분! 저희는 오라클 구호팀입니다! 현재 긴급 구호가 필요하신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즉시 창문을 열고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오라클(Oracle).
이번 재해, 이번 사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사람들에게 경고했던 기업, 그 기업의 로고를 단 사람들이 일제히 재해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정, 정말 구호팀입니까?”
“그렇습니다. 성함이?”
“버디 윈튼 주니어. 37번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만 보자, 버디 윈튼 주니어 씨. 나이 34세. 건강상태는… 양호 하시고. 혹시 보급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시길 바라십니까?”
그러자 사람들, 뉴올리언스에 고립된 채 정부의 손길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이 있습니까?”
“시외로 나가면 저희 회사가 마련한 구호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면 의료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들 믿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도 지지부진 이뤄지지 않는 일이 일개 기업의 힘으로 이뤄진다는 것에.
그것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할 스케일로 이뤄진다는 것에.
하지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구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보급을 원하십니까?”
그것이 현실이었다.
일개 기업에 불과한 오라클이 정말로 그들의 구호를, 뉴올리언스에 고립된 30만 명의 시민들에 대한 구호를 시작한 것이다.
“나, 나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좋습니다. 여기 보트에 타시죠. 집결지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아니 이 보트를 타고 가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굉장히 큰 스케일로.
“이동은 헬기로 하게 될 겁니다.”
“헤, 헬기요?”
“네. 아까 보신 헬기들 보셨죠. 거기에 타서 구호 센터로 이송되실 겁니다.”
“하지만 저까지 차례가 올까요?”
“걱정 마십시오. 이미 500여 대에 달하는 헬기들이 여러분을 구조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뉴올리언스. 그 도시에서 사람들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500여 대라니 대단하군요.”
“위에서 들리는 말론 더 늘어날 거라고 하니 염려 놓으셔도 될 겁니다.”
“…위라면?”
재해와 정부의 무능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하워드 김. 오라클의 회장님이시죠.”
“아….”
그리고 그렇게 뉴올리언스를 벗어난 사람들이 향한 곳, 그곳은 바로… .
“그런데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딥니까? 설마 배턴루지?”
“아닙니다. 배턴루지도 허리케인에 피해를 입어 여력이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뉴올리언스 앞바다.
엘리게이터 밴드 앞쪽에 만들어진 거대 함선들, 호화여객선들과 대형 유조선들의 섬이었다.
“환영합니다. 이곳이 바로 오라클의 이동 구호센터 ‘소도(蘇塗. Sodo)’입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손을 잡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남자, 얼굴 가득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서른 중반의 흑인 남성, 그의 등을 두드리며 입을 연다.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일순 그네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린다.
“크흐흑….”
벌써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 만큼 내 말에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오른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들어보니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마시지 못했다고 하니.
그렇게 나는 그의 손을 한번 꽈악 잡아 준 뒤 그에게 구호 물자를 나눠 주었다.
“여기 이것 받으세요.”
“…이건?”
“구호 물품들입니다. 일단 객실에서 쉬시면서 몸을 추스르셔야죠.”
그러자 그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크흐흑….”
아무래도 또다시 감정이 올라왔나 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계속 보니 하버드에 다닐 때 동기였던 다니엘을 조금 닮은 것 같다.
요즘 어플리케이션 사업으로 뛰어들었다는, 꽤나 흥이 넘치던 나의 오래된 친구. 나는 내 앞에 있는 남자의 신원을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면 나중에 노래 하나 불러 주시죠? 음악가라고 들었는데.”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 그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무조건 불러드리겠습니다. 무조건.”
그리고는 열의에 찬 눈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뭐 이 정도면 됐겠지.
아무튼 그렇게 내 앞에 있는 남자, 그를 다독인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내 옆에서 우리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어진, 그를 향해 물었다.
“상황은 어때요?”
그러자 나와 남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어진, 그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야.”
계획대로. 그의 짧은 말에서 나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요?”
나는 천천히 객실 밖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
“그래. 이제 어느 정도 구조 활동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어. 15시 현재까지 뉴올리언스에 고립된 인원 30만 명 중 1만 5천 명의 구조가 끝났고 5만 명분의 보급이 완료됐으니까.”
“구조 1만 5천에 5만명분 보급이라… 그렇다면 일단 6만 5천명인가요?”
내가 묻자 배의 사람들을 살핀 이어진,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렇지. 일단 배턴루지시의 피해가 크지 않아서 뉴올리언스에 올인 했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1차 계획은 성공이라는 거지.”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뉴올리언스 그 도시의 고립된 인원이 30만 명이 넘는다지만 그 모두가 긴급 구호를 요청할 만큼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현재 우리가 한 구호만으로도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었다.
뭐 아직까지 남은 이들이 있긴 했지만.
“…정부는?”
“목소리만 크지.”
“불만이라는 소리군요.”
“자신들의 입지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불만이요? 이런 상황까지 일을 끌어 놓고?”
나의 말에 이어진 그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염치가 있었다면 우리에게 자신들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겠지.”
그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처음 구호를 시작했을 때 정부 측 인사의 말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
“여론은 어떻죠?”
“간단해. 놀람. 환희. 경악. 정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야.”
“…놀람과 경악은 같은 단어 아닌가요?”
“아니지. 처음 우리가 들어왔을 때 다소 놀라던 사람들이 우리 스케일을 보고 경악하고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다른 의미야.”
“그래요?”
“그래. 지금 인터넷이든 뉴스든 난리가 났어. 그동안 날선 어조로 정부를 까던 뉴스들이 죄다 우리쪽 뉴스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가 슬쩍 내게 태블릿을 건넸다.
그곳에선 그가 말한 대로 우리의 구호 활동을 촬영한 영상들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동안 주야장천 정부의 늦장 대응을 까던 언론들이 이젠 우리와 정부를 비교하면서 까고 있었다.
“어필은 확실히 됐나 보네요.”
“아무래도. 스케일도 그렇고, 스타일도 다르니까. 뭐 호화여객선과 유조선을 이용한 구조가 평범하진 않잖아?”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의 말대로 초호화 여객선 10척을 가져와 구호를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수용 여력이 부족하진 않나요?”
“현재까진.”
“앞으로는요.”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일단 긴급 의료와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 위주로 접촉한 상태라 앞으로 물이 빠지면 직접구호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테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왕할 거 확실하게 해야 해요. 사람이란게 원래 그렇잖아요. 아무리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도 대우가 좋지 않으면 금세 변하는 거니까요.”
“물론이야.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잖아. 호화 유람선으로. 유람선에서 머물면서 불만을 표시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물론 그 덕에 돈이 제법 들긴 했지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죠.”
슬쩍 창밖을 보니 카리브해의 인접한 해양석호인 보르 네(borgne)호의 모습과 그 위에 떠 있는 함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말대로 이번 일을 위해 섭외한 배들, 그 배들을 섭외하고 끌어 오는 것만 해도 제법 많은 돈, 제법 많은 시간이 들었다.
거기다 구호를 위해 비축한 물품들과 유통망까지.
부시 행정부의 구호대책, 지지부진한 구호대책과는 전혀 다른 층위의 자유로운 구호대책을 위해 나는 제법 많은 것을 던졌다.
그런 만큼 확실히 해야만 했다. 잘못하면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테니까.
“그나저나 저번에 말씀 드린 그거 어떻게 됐죠?”
“어디? 병원?”
“네. 중앙 병원 아무래도 전력이 간당간당했을 텐데요?”
“네 말대로 간당간당했지. 하지만 제시간에 들어가긴 했어. 뭐 한두 시간만 더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지.”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뉴올리언스 중앙 병원, 과거 전력 부족으로 사상자들이 꽤나 많이 나온 곳이었다.
그런 만큼 이곳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또다른 무기가 될 테니까.
“병원 내 모든 정보는 챙겼나요?”
“물론.”
“좋아요. 그럼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기왕하는 거 정부 쪽에서 맡고 있는 서쪽부까지 우리가 관할합니다.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이 지역을 오라클이 통제하죠.”
“하지만 정부 쪽에서 불만이 많을 텐데?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어. 지금도 정부 쪽에서 강제로 해산시키겠다고….”
걱정 어린 그의 모습, 그의 시선은 보 르네 호수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미국의 연안경비함을 향하고 있었다.
미 정부의 권고를 씹고 구호활동을 진행하는 만큼 이 이상의 월권은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미국에서 우리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죠.”
나는 다시 걸어가며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가장 큰 인질들을 잡고 있거든요.”
미국이라는 국가. 분명 이 국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국가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국가는 전혀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 국가는 영웅을 원하죠. 언제나.”
이 국가의 이상이 그 대척점에 있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더 개인주의를 표방하지만 누구보다 더 영웅,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을 꿈꾸는 나라. 그것이 바로 이 국가였다.
그때, 배에 탄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내게 달려왔다.
곱게 땋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자아이.
나는 앞을 가로 막는 경호원들을 뒤로 물린 뒤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살짝 겁에 질린 눈동자, 살짝 두려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꼬마아이가 이내 수줍한 모습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에 손에 들린 것은 종이로 만든 다알리아(Dahlia).
이 지역에서 꽤나 많이 피는 꽃으로 ‘감사’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