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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99화   거대한 기회 (1)

동남아에서 시작한 거대한 경제 폭풍.

‘동남아 외환위기.’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들을 박살 내 놓은 폭풍이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땅, 동아시아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 금뗌㎟綏? 해외자본들이 전 세계에 뿌려 놓은 현찰들을 차근차근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종금사에 뿌려 놓은 단기자금을 회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 한국의 자금들을 모두 다 회수하도록 한다.”

“모두 다요?”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대상은 어떻게…?”

“대상은 30개 종금사 일체. 1년 내 단기 외채 전부. 예외는 없어.”

그러자 1달러당 900원대를 왔다갔다하던 원화 가치가 9월 중순을 기해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위태위태하게 이어져 오던 약점이 비로소 꿈틀거리더니 이내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달러(USD) / 원화(KRW) 915.00 ▲ 10.00]

[달러(USD) / 원화(KRW) 925.50 ▲ 10.50]

[달러(USD) / 원화(KRW) 930.20 ▲ 4.70]

“뭐야! 갑자기 왜 환율이 움직여!”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현재 외국계 금융사들에서 국내 종금사 30군데에 대해 단기 외채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뭐어?”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전체가 급격하게 변화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썩어도 준치는 준치라고 해외자본들이 대한민국의 단기 외채 만기 연장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돈 이후에도 태국과 같은 급격한 뱅크런, 한국 외환에 대한 매도 행렬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당시 대한민국은 1996년 기준 5,971억 달러의 덩치를 자랑하는 국가이자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의 회원국, 아시아의 네 마리 용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아직 만기 기간도 남았을 텐데 왜 벌써부터 환율이 올라가고 난리야!”

“그게… 아무래도 국내 금융사들이 외채를 사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아직까지는 국가의 통제도 제대로 먹히고 있는 데다 대외적인 신용도 또한 그럭저럭 양호해 보였으니까.

“다들 적당히들 하라고 해 적당히들! 그리고 환율은 무조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어해. 각하께 더 이상 심려 끼칠 일을 만들지 말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즉각 대응하라고 지시를 내려 놓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다면 단박에 휘청거릴 만한 정도이긴 했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선례를 지켜본 한국은행의 적극적 개입,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정보 통제가 지속되자, 9월 중 급격하게 슬쩍 올라가려 했던 환율이 멈칫하더니 이내 900선에서 위태롭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혼란 전 여명.

조정 기간이 도래한 것이다.

[달러(USD) / 원화(KRW) 915.00 ▲ 10.00]

[달러(USD) / 원화(KRW) 925.50 ▲ 10.50]

[달러(USD) / 원화(KRW) 930.20 ▲ 4.70]

그리고 그렇게 오르내리는 환율을 바라보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

고요한 공간.

평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수천만 달러의 돈을 만지던 곳.

[오라클 한국 본사]

그 안에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가만히 고개를 들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준비됐습니까?”

그러자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들.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처럼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준비 끝났습니다.”

“지시만 내려 주십시오.”

수십 명이 내는 한 가지 목적의 목소리.

그 소리가 제법 넓은 오라클 본사 공간 안에 울려 퍼지자 찌르르- 온몸이 떨렸다.

전율.

앞으로 다가올 기회와 그 기회를 통해 마주할 세계, 그것에 대한 감정이었다.

‘드디어.’

사실 그 동안 많은 고민을 했었다.

현재 병을 앓고 있는 국가.

대한민국.

앞으로 어마어마한 질병의 세례에 자신의 몸을 외국인 의사에 맡기게 되는 국가.

이 국가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움직여 이 국가를 살리는 데 몰두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이 기회를, 평생에 다시없을 이 기회를 이용할 것인가.

내 앞에 있는 이 국가의 미래가 미래인 만큼 나는 제법 깊은 고민을 지속했다.

내 결정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행동에 따라 이 국가의 미래, 수천만 국민의 인생이 바뀌게 되겠지.’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내가 이 흐름을 주도하기로.

현재의 흐름,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면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 이 흐름을 타기로.

말마따나 외국인의 손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 아닌가.

‘조금 가혹하더라도 IMF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나와 같은 시선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거친 숨소리.

잔뜩 격앙된 표정.

모두 다 오늘을 위해 지난 일 년간 바쁘게 달려온 만큼 그들의 얼굴에선 옅은 긴장과 그만큼의 기대가 엿보이는 모습들이었다.

‘이제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겠지.’

좋아 그렇다면.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이제는 나와 같은 사냥꾼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죠.”

그러자 그 순간, 본격적인 질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일이 시작되었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계획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우리는 이번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소로스를 위시한 금융 세력들의 작전 참여를 확인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한 자본들 상황 체크해 주세요!”

“현재 소로스 씨를 비롯해 타이거, 모건 쪽 자금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전갈입니다.”

“메가 어드바이저스와 골드만삭스는요?”

“12시에 시작할 2파부터 움직인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자금의 규모는 저번에 산정한 대로 풀어 주세요.”

그런 뒤 곧바로 이번 작전의 타겟인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측의 대응을 체크했다.

“레이첼? 한은 쪽 대응은요?”

한국은행의 방어태세에 따라 우리의 대응 또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아직도요?”

“네. 정확히 말하면 외환을 사들이고 있긴 하지만 정확히 체크는 하지 못한 것 같아요! 뭐  요즘 들어 이 정도 낙폭은 항상 있어 왔으니까요.”

다행이었다.

관리자가 움직임이 굼뜨다는 것은 그만큼 침입자가 움직일 공간이 크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일.

때문에 우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작전이 노출된 뒤에는 이런 노마크 상태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좋아요. 그럼 일단 현물 매도 들어가면서 동시에 선물 쪽도 들어가 주세요! 기본적인 방식은 태국과 비슷하게! 그러면서 주가상황도 확인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러자.

9월 중순부터 오락가락 흔들리기 시작하던 한국의 원화 환율이 조금씩 한쪽 축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달러(USD) / 원화(KRW) 940.00 ▲ 25.00]

[달러(USD) / 원화(KRW) 955.50 ▲ 15.50]

[달러(USD) / 원화(KRW) 965.20 ▲ 9.70]

그동안 경험이 경험인 만큼 다들 능숙하게 물량을 조절 빠르게 외환 비율을 조절한 덕분인 것 같았다.

“현재 환율은 얼마죠?”

“11시 30분 현재. 965원을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안에 1,000원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간, 나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1달러당 1,000원이라면 과거 몇 년간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었던 수치.

내가 기억하던 1997년의 시작점과 같은 수치였다.

만약 오늘 안에 우리가 1천 원에 도달한다면 지금은 관망세를 취하고 있는 뭇 사람들까지 움직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를 내 손에 쥘 수 있겠지.’

나는 빠르게 움직이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 1차 목표는 1천 원까지입니다. 오늘 안에 1천 원 도달하면 제가 오늘 한턱 단단히 쏠 테니 좀 더 빠르게 움직여주세요!”

그러자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그동안 나에게 받아온 것이 있는 만큼, 나의 한 턱이 예사롭지 않을 거라 예상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죠. 여러분의 기대 이상으로 쏠 테니 걱정 마세요!”

“하하 약속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때.

“……어?”

이변이 벌어졌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본들의 공세에 차츰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추가 어느 순간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USD) / 원화(KRW) 963.20 ▼ 2.00]

[달러(USD) / 원화(KRW) 960.50 ▼ 2.70]

[달러(USD) / 원화(KRW) 955.30 ▼ 5.20]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수치의 변화, 그 변화에 레이첼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보스! 한국은행 쪽에서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약간 낙관적인 분위기가 감돌던 사무실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게으르게 움직이던 관리자, 그들이 우리의 개입을 눈치챈 만큼 이제까지의 편안한 작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부터 그 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테니까.

“다들 집중! 호시절 끝났습니다! 이제 공격적으로 베팅 들어가세요! 소로스 씨 쪽에 연락해서 한은의 개입에 대해 알리고요!”

“이미 연락 중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개입을 알아챈 한은 측은 마치 도둑이 들어온 것을 파악한 집주인처럼 단호하게 우리의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은 쪽에서 500억 원 매수했습니다!”

“한은 총재 오피셜 떴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무제한적인 방어를 선언했습니다.”

“방송 통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신문지상에 기사화는 늦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공세 초기 우리의 공세를 진화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오피셜은 정식 발표입니까?”

“아닙니다! 시장 내부 정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세에 끈을 놓을 수는 없지.

나는 약간 흔들린 사람들의 멘탈을 다잡으로 가열차게 공세를 지속해 나갔다.

“보스! 어떻게 할까요? 조절할까요?”

“아니요! 지금은 승부를 걸 때입니다! 계획대로 매도 주문 넣으세요!”

그러자 작게 흔들거리던 환율 요동이 점점 그 진폭을 크게 만들었다

내리려는 자와 올리려는 자의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퀀텀 쪽에서 1천억 원 추가 매도했습니다.”

“한은 쪽에서 1천억 원 추가 매수했습니다.”

“타이거 측에서 1천억 원 매도했습니다! 아 100억 원 추가해서 1천 100억 원입니다!”

“한은 쪽에서 따라갑니다! 1천 50억 원입니다!”

“메가 어드바이저스, JP모건, 골드만삭스 각각 500억 원씩 매도 들어갔습니다!”

“한은 쪽에서도….”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심장이 떨렸다.

거대한 규모의 자금 싸움.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나의 미래.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바뀐다는 것이 실감났기 때문이었다.

“자금 조절 들어가세요! 단기 레이스가 아닌 장기 레이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차트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죽는다는 듯한 모습, 서로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달러(USD) / 원화(KRW) 955.10 ▲ 0.50]

[달러(USD) / 원화(KRW) 960.50 ▼ 5.40]

[달러(USD) / 원화(KRW) 957.30 ▲ 3.20]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그런 식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지금의 그들의 모습은 단지 겁에 질린 짐승의 마지막 발버둥일 뿐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믿고 있는 대상이 사실은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외환보유고 245억 달러]

밑바닥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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