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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화 사람의 기억 (3)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일어섰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사람들의 표정은 굳었으며,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한 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람은 웃고 있었다.

얇은 유리 안쪽에 멈춰선 사내. 짙은 백발이 가득한 모습으로 남은 사내.

정영주.

그 사내는 멈춰선 채 나에게 익숙한 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찾아와 줘서 고맙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영정 사진 안에 있는 남자, 정영주와 꼭 닮은 남자가 내 앞에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자 그와 닮은 사람들, 그의 혈육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일찍 왔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네. 자네가 이렇게 와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아버지도… 그래 좋아하시겠지.”

정몽진, 그가 내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 큰 어른, 그의 얼굴엔 얼마간의 씁쓸함과 얼마간의 슬픔, 또 얼마간의 허탈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지막은…?”

“웃고 계셨네. 내 손을 꼬옥 잡으셨지. 자네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

“말씀하셨다면 찾아왔을 텐데….”

“아버님께서 원치 않으셨지. 사내에겐 때가 있다고.”

정몽진,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정영주의 젊은 시절 같았다.

“인사… 드려야지?”

“그래야죠.”

그렇게 대화를 마친 나는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밖에서 보았던 정영주의 영정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영정 사진.

짙은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사진 속 정영주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사진 밖으로 튀어나와 하하-하고 큰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겠지.’

그러고 보면 그와는 제법 오랜 시간을 마주했었다.

지난 십 년, 그와 나는 거래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사업을 경주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웃었으면 때로는 찡그렸고 또 때로는 화를 냈다.

나와 그는 다른 곳,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종국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와 나의 시간의 길이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 어찌 보면 나는 그의 삶을 벤치마킹한 것일지도 몰랐다.

김귀란에게는 수단과 두려움을 그에게서는 전진과 삶의 스타일을 배웠다. 그 당시 나에게는 기억, 그것만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밧줄, 배울 수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정영주였지.’

그렇게 봤을 때 그는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나이 많은 친구.

사업 파트너.

그리고 나중에는… 장난끼 많은 할아버지가 된 남자. 그가 바로 정영주였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정영주,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을 마친 채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뭇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편히 가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정영주, 나의 친구.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일배.

이배.

반절.

인사를 마치고 올려다본 정영주의 모습은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

“암이었다더구나.”

“암이요?”

“그래. 4기. 제법 긴 시간이었다지. 현대 쪽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 김귀란, 그녀가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작아져 있었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사람들에게. 뭐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잖아요.”

“고집불통 늙은이. 마지막 가는 길 속 시원히 이야기라도 하지. 하여간 끝까지 제 좋은 대로 살다 가는구만.”

그녀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녀의 모습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 허탈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아쉬우신가요?”

“아쉽다라… 내가 말이냐?”

“아닌가요?”

“하,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참이나 잘못 본 거다. 오히려 속이 더 시원하지. 이젠 내가 그 늙은이보다 더 나이가 많아질 테니까.”

그녀가 짐짓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굳은 얼굴, 그것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그나저나 정 회장이 그래도 마지막 선물은 주고 가는군.”

“무슨 말씀이세요?”

“잘린 손발들이 억지로나마 묶였다는 말이다.”

김귀란이 슬쩍 턱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현대가의 사람들, 그동안 찢어졌던 손가락들. 그들이 모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동안 왕래조차 끊어졌던 이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에서조차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빌어먹을 녀석들, 그러게 살아생전 싸워대더니 이제야 아쉬운가 보구만.”

“떠나간 사람의 자리는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 그게 얼마나 갈까. 제 아비의 기억이 잊히면 자연 또 으르렁대겠지.”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젓던 김귀란 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허망하구나.”

“약한 모습이시네요.”

“저 모습을 보니 그렇구나. 이제 사람들은 잊게 되겠지. 정영주. 그래 그 늙은이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그녀의 말은 낮고 거칠었다.

그리고 타당했다.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는 법.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뇨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다르다?”

“네.”

이번만은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정영주. 그라는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가 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걸.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김귀란, 그녀가 피식 웃음을 보였다.

“뭐 그 늙은이를 네가 기억한다 뭐 이런 거냐?”

“아뇨 그럴 리가.”

“그럼?”

“저는 현재가 아니면 믿지 않아요. 그러니 현재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거죠.”

“…현재에 효과적인 방법?”

“네. 예를 들어….”

나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연 과시랄까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조금은 한적해진 장례식장 안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저, 저 사람들은….”

“아니, 왜 저 사람이 여기?”

도널드 트럼프.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등 조금은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쯤 되자 김귀란, 그녀 또한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너 이 녀석….”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김귀란,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맺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그리 쉽게 잊힐 만한 기억은 아니겠죠?”

“하, 참 어이가 없구나 어이가 없어.”

그리고 그렇게 무척이나 화려하게 정영주, 그의 장례식이 끝났다.

향년 88세.

과거보다 무려 3년이나 더 긴 생애였다.

*

정영주 회장의 장례식, 그 사건은 꽤나 큰 이슈가 되었다.

[‘정영주 회장 별세’ 향년 88세, 현대 아산 병원으로 조문 행렬 이어져… - 한X일보. 2004. 05. 10]

[北, 정 회장의 별세 소식에 특별 위문단 파견, 청와대 측 기꺼이 허가할 듯 - 조X일보. 2004. 05. 11]

[도널드 트럼프,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등 해외 유명 경제인들 정 회장 장례식에 참석! 생전 친분 이유인 듯… - 인X일보. 2004. 05. 11]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인.

대한민국 경제계를 견인해 온 존재.

정영주. 그라는 사람 자체만으로도 제법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물론 그의 장례식장 찾은 사람들의 면면 또한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KM플레이어 : 와 조문 클라스 봐라… 뭐 트럼프에 조지 소로스에 워렌 버핏이 와?]

[그렌라간 : ㅋㅋㅋㅋㅋ 그뿐만 아님 들어보니까 뭐 스티브 잡스나 마소 회장도 왔다는데?]

[nayo241 : 뭐? ㅋㅋㅋㅋ 빌 게이츠?]

[그렌라간 : 어 ㅋㅋㅋ 거기다 야후 회장이랑 아마존 회장 같은 사람들도 왔다던데?]

[인천고양이 : 미친 ㅋㅋㅋㅋ 아니 무슨 장례식장에 그런 사람들이 와? 아니 애초에 그 사람들 친분이 있었나?]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테니까.

[기간토마키아 : 듣기로는 김준영 회장이랑 친분이 있었다고 하던데?]

[국어학개설 : 억 ㅋㅋㅋ 또 김 회장이야?]

덕분에 정영주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살아생전보다 이후가 더 커져 버렸다.

그의 삶과 그의 성공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 드라마들이 연이어 매스컴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정영주 회장의 자서전 ‘이봐 해봤어?’ 100만부 판매 돌파! - 한X일보. 2004. 07. 10]

[정 회장의 삶을 모티프로 한 드라마 ‘성공시대’ 방영 시작! - 조X일보. 2004. 08. 11]

[재계의 ‘왕 회장’ 정영주 회장,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사람들 감동… - 중X일보. 2004. 08. 15]

뭐 그만큼 그의 삶은, 그의 언어는 드라마틱한 구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사람들이 더 오래 그를 기억하겠지. 이번 생에선 전생에 그의 말년에 있었던 현대가의 해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정영주 회장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정리하며 현대가와 오라클의 주가와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던 그때, 조금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회장님.”

“네. 레이첼?”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정희주 씨가 찾아오셨습니다.”

“희주 씨가요?”

“네.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찾아온 그녀, 정희주와의 만남에서 나는 의외의 물건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네요 회장님. 저번 할아버지 때 이후로 처음이죠?”

정희주, 그녀가 수줍은 얼굴을 한 채 내게 상자 하나를 내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아, 제 정신 좀 봐. 사실 할아버지께서 회장님께 남기신 물건이 있어서….”

“이 상자요?”

“네.”

그렇게 정희주에게서 상자를 받아든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죠?”

그녀가 내게 내민 상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글쎄요. 저도 할아버지께 전해드리라는 말씀만 들었던 거라….”

때문에 나는 천천히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정 회장이 남긴 거라면 가치를 지닌 물건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한번 열어 볼까요?”

“…네에….”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놀란 눈으로 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커다란 상자, 그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바로….

“……희주 씨 이게 정말 정 회장님께서 남기신 물건인가요?”

“네, 네네. 정말이에요.”

정영주(鄭永周)라는 이름이 선명히 음각되어 있는 단장(短杖) 하나와 작은 편지봉투, 아니 정확하게는….

[작은 선생에게….]

나와 정희주의 이름이 박힌 ‘청첩장’이었다.

[…식장은 잡아 놨네. 자네는 몸만 오면 돼.]

순간, 나는 정영주, 그가 말했던 마지막 사업, 일생일대의 사업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하하, 이거 참 한 방 먹었네요.”

이 사람, 끝까지 사업을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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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회귀 재벌 - 1993 회귀 재벌-3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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