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수확의 계절 (3)
4월.
나의 대전사, 야후의 상장은 2명의 억만 장자와 30명이 넘는 백만장자를 탄생시켰다.
제리 양, 그리고 데이비드 필로와 그의 친구들.
작년까지만 해도 모험적인 창업자들, 이제 갓 대학의 담장을 넘어 자신들의 꿈을 펼치려던 주니어들이 불과 하루 만에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부호, 사람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 셀럽이 된 것이다.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 야후, 상장 첫날 발행가 3배 달성! - 월스트리트 저널. 1996. 04. 12]
[충격! 자본금 대비 39배의 주가! 주인공은 야후! - 뉴욕 타임즈. 1996. 04. 12]
[나스닥 상장기업 야후의 창업자들, 단 하루 만에 억만장자!? 매일경제. 1994. 04. 12]
물론 나도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지만, 뭐 나야 원래부터 억만장자였으니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덜했다.
[야후의 기적 같은 수익률! 세콰이어 캐피탈,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의 투자사들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판단 - 이코노미스트. 1996. 04. 12]
어디까지나 나는 투자자, 드러난 주인공은 그들이었으니까.
‘원래 얼굴마담은 피곤한 법이지.’ 하지만 첫날의 호조, 첫날의 기적은 시작에 불과했다.
야후의 IPO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개장된 다음날 증시, 그날 아침부터 왠지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시끌시끌하더니. 장이 개장을 하자마자 어제의 데뷔한 루키, 야후의 주가가 어제에 이어 오늘 또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야후(Yahoo!) 40.30▲ 1.30]
↓
[야후(Yahoo!) 44.00▲ 3.60]
↓
[야후(Yahoo!) 45.50▲ 1.50]
“아니 또 뭔 일이야?”
“뭔 일은, 어제 일이 끝이 아니라는 거지.”
물론 첫 날 만큼의 상승세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눈에 띄는 상승세였다.
수많은 주가가 요동치는 나스닥 시장에서도 야후의 상승은 독보적이었으니까.
아마 다들 직감한 것 같았다.
어제의 호조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인터넷(Internet).
검색엔진(Search Engine).
이 두 가지 문물의 시너지 효과.
그것이 가져올 세상을, 그리고 그 가장 선두에 야후가 있을 것이라고.
때문에 그러한 안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중 돈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몰려들어 야후와 그 주변을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야지. 인터넷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선점 효과는 지속될 테니까.”
“젠장, 좋아. 그럼 얼마나 사야 하는 거야?”
“가지고 있는 돈 전부, 나는 올해 운을 모두 다 걸겠어.”
소문난 맛집.
우리 동네에 들어온 미슐랭 쓰리스타 급의 맛집에 저마다 족적을 남기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조, 좋아. 나도 사지.”
“하하 잘 생각했어. 그럼 일단 가볍게 100만 달러로 시작해 볼까?”
그리고 나는 그들의 총질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들이 총알을 많이 쏠수록, 그들이 야후의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 믿을수록 나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니까.
“…아저씨. 사람들 좀 움직여야겠는데요?”
“무슨 사람들?”
“왜 저번에 패션 브랜드 런칭할 때 썼던 사람들이요.”
“뭐…? 너 설마?”
“네. 조용하게 여론 좀 만들어 주세요. 큰 효과는 없어도 좋아요. 지금으로선 어떻게든 손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물론 허망한 주가. 야후가 부풀어 오른 풍선에 불과했다면 위험한 일이었겠지만, 내가 아는 야후라면 2000년도 초반까지 상승, 무조건 상승이다.
지금 스탠퍼드 대학에서 자신의 황금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 두 사람,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 두 사람이 그들의 회사, 구글(Google)을 만들어 내기 전까진인터넷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야후였으니까.
‘그 전까지는 땅 짚고 헤엄치기지.’
그러니 지금은 마음 놓고 올라가는 주식을 감상해도 좋았다.
지금 야후로 들어오고 있는 돈, 야후를 향해 쏟아지는 각계의 돈들 모두가 미래의 내 돈이 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나저나 다른 종목들은 어때요?”
“다른 종목들이라면 나스닥 종목들?”
“네. 델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주식이요.”
“잠깐만… 하하 이거 장난 아닌데? 금전보다 상승폭이 더 늘었어. 보합세를 보이고 있던 종목도 상승으로 돌아섰고.”
나는 이어진의 말에 가벼운 미소를 물었다.
그의 말대로 야후의 주가 호조에 힘입어 나스닥에 산재한 다른 주식들, 그 주식들의 주가 상승도 가일층 이뤄지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15.10▲ 3.25]
[델(Dell) 55.03▲ 3.10]
[인텔(Intel) 14.90▲ 2.20]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 11,51▲ 2.10]
[어도비(Adobe) 10.50▲ 1.02]
[아메리카온라인(AOL) 19.00▲ 2.10]
.
.
나스닥 시장에 새로운 맛집이 들어서자 외부의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 잠깐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시장이 들끓기 시작하기 이른 것이다.
“장난 아니네요. 지금 빼더라도 몇 억 달러 대의 수익이 나오겠는데요?”
“물론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우리가 투자 시작했을 때완 주가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야후의 주식 매수 경쟁이 치열한 만큼, 꿩 대신 닭, 다른 종목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듣기로는 자산규모 세계 1위의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2018년 자산규모 1585조 원)와 미국 연방퇴직저축(FRT. 2018년 기준 자산규모 417조 원)이 나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를 대거 늘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환장하고 달려들 수밖에.
원래 사람들이란 맛집의 맛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맛집을 찾는 사람들을 보고 찾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나에게는 좋은 영향이지.’
이쯤 되자 세금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작년 한 해 벌어들은 돈은 약 3억 달러. 그리고 올해 벌써 야후로만 2억, 다른 주식들로도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수익이 예상되어 있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세금에 대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
자칫 잘못하면 IRS(Internal Revenue Service).
미국의 국세청(國稅廳).
한때 음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알 카포네를 잡아넣은 어마무시한 기관에서 전차를 끌고 우리 회사를 습격할지도 모르니까.
‘정말 기부재단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는데?’
뭐 지금 당장에 만드는 건 무리겠지만, 지금부터 찬찬히 준비해 가면 곧 재단도 하나 운영할 수 있겠지.
‘재단 운영이라면 이미지 문제도 해결될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야후의 상장과 그로 인한 후반 작업, 나스닥 종목들의 운용을 끝낸 뒤 나는 미 동부로 날아갔다.
“준비 다 끝냈죠?”
“어. 회사 자산 운용 계획은 이미 짜 놨고, 세부적인 사항은 위성 전화로 하면 될 테니까. 바로 가면 돼.”
4월.
[아마존(Amazon) IPO 4월 20일]
또 다른 IPO를 기다리는 회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
대한민국 서울 평창동의 모 저택, 그 저택의 심처에서 거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이 밥버러지들! 그까짓 정보 하나 캐내지 못해서 내가 신문에서 그 정보를 보게 해!”
바로, 작년 재계서열 11위에서 9위로 껑충 뛰어오른 대기업 ‘한성’의 회장.
지난 삼십 년간 한성을 이끌어 온 여걸, 김귀란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일순 심처에 모인 사람들.
장남 김명석과 차남 김명현을 비롯한 그룹 내 주요 인물들의 목이 자라목처럼 쑥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 섣불리 다른 말을 꺼냈다간 김귀란의 치도곤이 자신에게 떨어지리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김귀란, 그녀가 솟아오르는 울화를 참으며 사장들 앞으로 신문 한 부를 휙 던졌다.
[한국판 나스닥(NASDAQ) 7월 중 개장 예정!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 급증! - 매일경제. 1996. 04. 20]
그것은 불과 3개월 뒤, 한국판 협회 주식시세 자동 통보 체계(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
일명 코스닥(KOSDAQ)이라는, 벤처기업을 위한 주식시장인 신시장(New Market)이 열린다는 기사였다.
“다들 눈이 있으면 이걸 봐. 이게 무슨 말인 것 같아?”
“그게…….”
“니들이 일을 안 한다는 거야. 밥버러지들처럼.”
격한 그녀의 말,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회장, 김명현이 그녀에게 말했다.
“회장님 좀 고정하시고….”
아무래도 나름 이 자리에서 위치를 차지해 보겠다는 듯 제법 강경한 어조였다.
하지만.
“뭐 고정?”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을 뿐이었다.
“부 회장.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어?”
더욱더 차가워진 그녀의 시선, 그 시선에 부 회장이 치켜들었던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흔이 넘는 나이. 아직도 어머니 앞에 서면 작아지는 자신. 그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김귀란 그녀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나스닥에서 2,500만 달러로 10억 달러를 번 회사가 있었지. 다들 거기가 어딘지 알아?”
뜻 모를 그녀의 말에 잠시 말을 아끼던 사람들, 그들 중 한성전자의 사장인 김명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야후입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그럼 우리 한성이 시총 8억에서 10억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도 알고 있겠지?”
“그건…….”
“무려 5년이야 5년. 우리가 5년 걸릴 일이 물 건너에선 단 하루 만에 벌어진다는 말이야. 그런데 다들 주변에서 뭐가 생기는지 신경들도 안 쓰고. 후….”
말을 마친 김귀란이 서늘한 눈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나가 봐. 다음 주까지 관련 동향이랑 전략 전부 다 만들어 오고. 제대로 해, 제대로! 알겠어? 다들 머리통 간수들 단단히 하란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김귀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난 2년간 한성그룹, 시가총액 8조 원 정도였던 그룹의 규모를 10조 원 단위로 키우는 것은 물론 재계 서열 또한 11위에서 9위로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껍데기일 뿐이지.’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김귀란의 판단이었다.
때문에 요즘 들어 후계자들,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급한 것은 마음뿐, 그녀의 자식들은 그녀의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둘째 치고 요즘 들어 점점 대가리를 들이미는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능력조차 모르는 놈들. 그런 꼴에 욕심만 많은 놈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물러날 낌새라도 보이면 사방에서 그룹을 물어뜯어 부서 버릴 놈들이었다.
‘그렇게도 인물이 없단 말인가….’
그런데 그때.
불현듯, 한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가만 그 녀석이라면….’
그 사람의 이름은 김준영.
올해로 12살을 맞은 그의 손자, 지금은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의 자손이었다.
일순,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감돌았다.
녀석이라면, 그래 녀석이라면 어쩌면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
“진호.”
“네. 회장님.”
그녀는 전진호에게 김준영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 녀석 요즘 뭐하고 있나?”
갑작스러운 김귀란의 말에 잠시 멈칫한 전진호,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준영 도련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녀석.”
김귀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물어보면서도 크게 기대를 가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녀석의 나이 이제 12살.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다 어쩐다 하는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공부만 잘 하고 있다고 해도 대단한 거지.’
그러나.
“…요즘 들어 회사 하나를 운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진호의 대답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순간, 그의 대답을 들은 김귀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죄송합니다. 그동안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이시기도 했고 또 미국이다 보니 보고가 늦었습니다.”
“…아니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그놈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그것도 미국에서?”
“네. 그렇습니다.”
일순 그녀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감돌았다.
12살, 가만히 학교에서 공부만을 하기에도 벅찬 나이, 그 나이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피는 못 속이는 법이지.’
그녀는 솟아오르려는 입술을 다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런 재미난 짓을 벌이고 있었구만. 그래 어떤 회사지?”
“그게… 오라클이라는 투자회삽니다.”
“그래? 어느 회사에 투자했는데?”
그러자 잠시 멈칫한 전진호, 그가 곧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직 그것까진… 한번 정확하게 알아볼까요?”
“됐어. 뭐 그것까지 알아볼 필요는 없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할 일도 많은 사람일 텐데.”
하지만 얼마 뒤, 그녀는 그녀 자신의 말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라클, 야후에 이어 아마존에서까지, 예상 수익만 무려 10억 달러! - 월스트리트 저널. 1996. 04. 25]
그녀의 눈앞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