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수확의 계절 (1)
1996년.
한국의 마지막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상징하는 해이자,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등으로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대거 하락, 문민정부의 레임덕의 가속화된 해.
그리고 경제면에선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로 200억 달러 돌파한 해이자 외채가 1천억 달러를 넘는 등 대한민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한 해.
그 해의 4번째 되는 달, 나는 대한민국에서 6,775 마일, 109,034 킬로미터 떨어진 곳, 뉴욕 맨하탄에 있었다.
왜냐하면 오늘 이곳.
[4 Times Square, Nasdaq, New York NY 10036]
전미 증권업 협회 주식시세 자동 통보 체계(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
일명 나스닥(NASDAQ).
2020년 기준 상장기업 수 3300개, 1평균 거래량 15억 주, 1일 평균 거래 대금 5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2위의 증권거래소인 이곳에서 한 가지 커다란 이벤트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YAHOO!
1994년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전자공학과 대학원생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로가 창업한 벤처 기업.
대중에게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말을 널리 각인 시킨, 2000년 시가총액 1,250억 달러, 한화 125조 원이 넘는 가치를 달성한 기업.
그리고 내가 500만 달러를 투자, 대주주로 자리매김한 기업의 주식공개(企業公開).
IPO(Initial Public Offering)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축제에 온 것 같네. 안 그래?”
이어진의 말에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말대로 나스닥 본사에 자리한 거대한 홀, 그 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꿈틀거리는 열기와 활기를 피워 내며 오늘 있을 이벤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다들 오늘의 메인 메뉴, 야후의 상장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렇네요. 저기 보니까 왠지 낯익은 사람들도 보이는 데요?”
“어 보니까 골드만삭스나 블랙뱅크에서도 와있더라. 저쪽에는 UBS쪽 사람도 있고.”
내가 이어진의 말에 대답하자 그가 슬쩍 눈을 돌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 대부분은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의 사람들, 그리고 맨하탄의 큰손들이었다.
보아하니 다들 야후라는 대어의 시장 데뷔에 눈을 번뜩이고 있는 모양새였다.
“의외네요.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이라 이런 데선 못 볼 줄 알았는데.”
“하하 그만큼 야후에 가지는 기대가치가 크다는 거겠지.”
하긴 야후 정도의 블루칩.
‘제리와 데이비드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 때부터 지금까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기업.
창업 1년 만에 누적 이용자 수 1억 명을 돌파한,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대부분을 끌어들인 검색엔진, 그런 기업의 IPO에 관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바닥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면, 야후 같은 성공이 확실한 기업에 투자를 하고 싶어 몸이 달아 있을 테니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고 말이야.’
하지만 나의 떨림, 나의 감흥은 그들의 것과는 약간 다른 층위의 것이었다.
그들이야 그동안 투자를 하고 싶어도 투자를 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이제서야 투자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나는 그들의 투자, 그들의 돈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00만 달러!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대주주.
야후의 가치를 깨닫고 초기에 투자한 세콰이어 캐피탈이나 소프트뱅크의 모든 주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는 지배적 주주 그것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 오늘의 기업 공개,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한 파티나 다름없었다.
그들, 그리고 그들에 휩쓸린 자들이 야후에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내던지고 있을 때, 나는 그들의 돈을 갈퀴로 쓸어 모을 테니까.
“그나저나 아저씨. 준비해 놓으라고 했어요?”
“물론,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오늘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될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던 그때.
“준영!”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이티브가 분명한 확실한 한국어 발음에 내가 이어진을 바라보자 그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응? 아저씨 저 부르셨어요?”
“아니 안 불렀는데?”
그래? 그럼 누구지?
나는 빠르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홀의 가장 안쪽, 기업공개가 이뤄지는 단상 위에 있던 한 남자가 우리가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의 정체는 제리 양(Jerry Yang).
오늘 있을 기업 공개의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자 앞으로 전 세계적인 검색엔진으로 자리매김할 기업, 야후의 두 창업주 중 하나였다.
“준영! 오랜만이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다 떨쳐낸 채 우리 앞으로 달려온 제리가 허억허억 숨을 내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이 상황에 대한 흥분과 나에 대한 반가움, 앞날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 지금 여기 와도 되는 거야?
걱정되는 마음에 슬쩍 고개를 돌려 단상을 바라보자 약간 벙찐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야후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저 멀리서 나와 이어진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이쪽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거 참.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하지만 뭐 아직 시간이 남기도 했으니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야후의 기업 공개는 개장 시간에 맞춰 이뤄질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제리 양, 나의 대전사(代戰事).
나를 대신해 시장이라는 전장에 나가 싸울 나의 파이터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제리. 그런데 살이 많이 빠졌네요?”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뭐야? 도대체 저 꼬마가 누구길래?”
“그러게? 혹시 제리 양 아들인가?”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아들이랑 악수를 해?”
아무래도 제리 양과 나의 모습에 약간 의구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하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해 보이는 그림이긴 하지. 다 큰 어른이 어린 아이에게, 그것도 먼저 악수를 청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나도 이어진도 제리 양도 이런 상황이라면 제법 익숙했으니까.
“하하. 뭐 이것저것 신경 쓸 것들이 많아서. 그런데 많이 티 나?”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보기는 더 좋은 걸요?”
“그래? 다행이네. 우리 어머니는 매일 볼 때마다 밥 좀 잘 먹고 다니라고 하시는데.”
“아, 하하 어머니들은 거의 다 그렇죠. 저희 어머니도 매일 그러세요.”
일순 나에게 밥, 밥, 밥, 밥, 이야기 하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제리 양 그가 가벼운 미소를 입에 물었다.
“하하 그렇지. 그런데 준영 그런데 바로 올라오지 그랬어. 준영 너랑 어진 씨 자리도 만들어 놨었는데.”
“아 그게…….”
순간, 나와 이어진의 눈이 마주쳤다.
사실 우린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저 개장 이후 야후의 역사적인 IPO장면을 지켜본 뒤 바로 회사로 갈 생각이었다.
사냥감에 눈이 멀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짐승들, 자신이 사냥꾼이라 착각하는 투자자들의 돈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거 간다고 하면 엄청나게 서운해 하겠는데?’
때문에 나는 이어진만 볼 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리 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 잠깐만 있다가 가는 거라면 그리 큰 차질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아, 그게 하하 이제 막 올라가려고 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많아서 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랬구만. 스텝들한테 이야기 했으면 됐을 텐데. 자 그럼 올라가자고. 다들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그런데 데이빗은 어디 갔어요?”
“하하 그 녀석? 아까부터 10번째 화장실만 들락날락거리고 있어. 아무래도 긴장했나 봐.”
“뭐 긴장할 만하긴 하죠. 아무래도 사람들의 기대가 크잖아요.”
“그렇지”
그렇게 우리는 제리 양을 따라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동안 안면을 익힌 사람들, 화장실에서 돌아온, 왠지 핼쓴한 안색의 데이비드 필로, 티모시 쿠글 그리고 다른 야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1분, 2분, IPO시간이 가까워 오자 갑자기 한 사람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제리. 이 좋은 날에.”
바로 제리양.
방금 전까지 나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내던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 것이다.
그러자 잠시 멈칫하던 제리 양,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한차례 가리더니 이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하하, 닥치니까 걱정이 되네.”
“무슨 걱정이요?”
“그게… 혹시나 주가가 생각만큼 안 올라가면 어쩌나 해서… 13달러라면 액면가의 10배가 넘는 돈이니까.”
이 양반이.
아무래도 막상 상장 시간이 다가오자 나름 긴장이 된 것 같다.
하긴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와 데이비드 필로는 평범한 대학원생에 불과했었으니까.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나는 그의 걱정을 일축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우리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 불타는 눈으로 야후의 상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모두가 증인이 될 테니까.”
그러자 잠시 묵묵한 표정을 짓던 제리 양, 그가 무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의?”
의문 어린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당신의 회사가 오늘 이후로 정확히 30배쯤 커질 거라는 것을요.”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손을 엄지와 검지를 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더 많은 돈을 만들어 주겠죠.”
순간, 제리 양의 표정이 멍하게 풀어졌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되겠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야후가 끌어들인 자본금의 액수는 대략 2천 5백만 달러정도다.
하지만 오늘 이후 그 자금은 어마어마한 액수로 변모한다.
무려 8억 5천만 달러.
단 하루 만에 기본 자본금대비 약 30배가 넘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회사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나로 인해, 이 시간을 기다리며 줄곧 스탠바이 하고 있는 나의 사람들에 의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의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杞憂), 금덩이를 쥔 자의 걱정에 불과했다.
‘뭐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런 걱정은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잠시 뒤.
나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5.
4.
3.
2.
1.
카운트다운 이후.
나스닥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야후’의 주가.
13달러로 시작한 벤처 기업의 주식이 말 그대로 하늘을 꿰뚫듯 올라가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