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269화 공포가 도래하다 (2)
분식회계(粉飾會計).
영어로는 코스메틱 어카운팅(Cosmetic accounting).
가루 분(粉)에 꾸밀 식(飾)을 사용하는 말로, 마치 화장을 한 듯 회계장부에 조작을 가해 회사 재무제표에 자기재산(순자산)은 부풀리고 부채는 실제보다 줄여서 꾸미는 행위를 의미한다.
때문에 대우 그룹이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왜냐하면.
[재계서열 3위, 초우량 기업 ‘대우’에서 대규모 분식회계 정황 포착! 최소 25조 원대 규모! - 한성일보. 1999. 03. 25]
그 규모, 대우그룹 분식회계의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본 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우 그룹의 분식획계 규모는 최소 25조 원, 최대 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본지가 입수한 대우 12개 계열사의 재무 상태를 보면 장부상 자산은 약 75조 8000억 원, 부채는 61조 7000억 원으로 자산이 부채보다 14조 1000억 원 많은 우량기업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 지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대우 그룹의 총 자산은 50조 3000억 원, 부채는 70조 8000억 원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25조 5000억 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한 ㈜대우의 자산 부족액은 약 15조 원가량으로 가량으로 판단되며, 그 뒤를 이어 대우자동차(5조 700억 원), 대우전자(2조 6800억 원) 순으로…]
“아니 뭐? 25조 원? 25억이 아니라 25조 원? 아니 저게 참 말이야?”
“이런 미친 25조 원이면 거의 40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이잖아! 뭐? 100억 수출 흑자? 허 참 어이가 없어서.”
사실 대우그룹, 그들이 분식 회계에 선을 댄 것은 제법 오래전부터였다.
대우 계열사들은 세계경영에 드는 돈을 대부분 금융차입에 의존하면서 재무구조가 부실해졌고, 때문에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거짓 회계장부가 대우그룹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처럼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대우그룹 지주 회사 역할을 한 ㈜대우의 무역부문은 홍콩현지법인을 통해 페이퍼컴퍼니인 ‘이스테빌리쉬 프렌드’를 만든 뒤 수출계약서나 선하증권 등 수출관련 서류를 가짜로 만들어 국내 은행에서 수출어음(DA)을 할인받는 방식으로 가공매출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우 건설 부문의 경우 인도 자동차공장 건설공사 등 10개 국가에서 건설공사를 한 사실이 없는데도 각 국가별로 거짓 재무제표를 만들어, 98년 회계년도의 손익계산서상 당기순이익을 5296억 원이나 거짓으로 늘렸고, 대우차는 계열사인 대우차판매에 98년 10월 차량 1만 3천 대를 판 것처럼 꾸며 1056억 원의 거짓 매출채권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재고자산 부풀리기, 회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매출채권을 우량채권으로 탈바꿈시키기, 관계회사 투자자금 손실 감추기 등 온갖 분식회계 수법들을 다 동원해 대우는 자신의 강성함을 외부에 내보였다.
마치 나만 믿으라는 듯이.
하지만 이 발표, 대우그룹의 실적발표와 실제 실적이 전혀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발표되면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그럼 그 동안의 성과가 모두 다 구라였다는 거구만.”
“하… 25조 원이 최소 금액이라니… 이제 대우는 끝났군.”
다들 분노한 것이다.
이날 이때껏 자신의 전설을 호도하던 영웅의 본모습이 본래는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일 모두를 총괄했던 남자, 암흑의 핵심, 김우중이었다.
*
“큰일 났습니다! 저희 회사 계열사 주가가 모두 동반 하락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25%가량 주가가 빠졌습니다!”
“채권시장에서도 저희 회사 채권이 순매도세로 돌아섰습니다! 이전과는, 이전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주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일부 대주주들 같은 경우 불심임 카드를 꺼내들겠다는 말을….”
빗발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마치 지옥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들이 들려오는 곳, 그곳에 한복판에 앉은 남자, 김우중,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의 사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도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사실 처음 그는 이 사태를 낙관하고 있었다.
분식회계, 분명 그가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그 내용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위기가 있어 왔지만 그때마다 전설처럼 그 위기를 헤쳐 나왔던 만큼 이번에도 그렇게 위기를 벗어나리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또 과거처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인맥과 자신의 돈, 자신의 역사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분명… 거의 성공했던 일이다. 검찰이니 뭐니 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잘 숨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이런 상황이 도래할 줄이야.’
그 모든 계획, 그 모든 생각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바로 단 하나의 기사, 한성일보에서 나온 기사 때문에.
“후우…….”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그 녀석, 그 핏덩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제 할머니의 등 뒤에 숨어 고요한 시선을 보내던 어린 아이.
하지만 그 다음에 보았을 때에는 어느새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적이 되어 버린 남자.
김준영.
그의 얼굴을 생각하자 속이 쓰린 것을 느꼈다.
‘분명 이번 일도 그 녀석 작품이겠지.’
물론 그렇지 않은 가능성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그의 직감, 그것이 그에게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성일보, 한성, 오라클, 그 셋의 관계는 꽤나 선명했으니까.
‘하긴 숨기지도 않았군, 애초에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이야.’
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자신의 치부, 자신의 죄악의 결과를 그렇게 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진실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김우중, 그와 김준영 사이의 간극은 꽤나 깊었으니까.
‘분명 배신자는 없다. 그만큼 이중 삼중으로 공을 들였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어떻게 알았던 거지? 도대체 어떻게?’
때문에 그가 벌어질 리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때.
“회장님! 임원진 일동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대우 임직원들과 김우중, 그들의 최후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
“알았어. 걱정 말라니까.”
커피는 한 모금도 줄지 않은 채 차갑게 식었고, 담배는 이미 재가 되어 날아갔다.
김우중의 최측근 임원 중 하나인 마경수는 옥상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내의 전화다.
“아이, 여보. 대우 대기업이야. 절대 안 무너져. 뉴스에서 그러는 거 한두 번인가.”
라고 말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겁다.
아직 자택융자도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자식들 과외는 어쩔 것인가.
그를 홀로 키운 어머니는 당뇨라고 했다.
아직 초기라서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의사의 말에 하필 최신형 그랜저도 한 달 전에 뽑아 버렸다.
진짜 바보 같은 일이다.
“…암튼 걱정 마. 대우 안 무너져.”
그렇게 아내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던 와중, 그의 뒤로 말단 직원 하나가 나타났다.
“들어오시랍니다. 다른 임원들도 다 모였다고 합니다.”
“어어, 알았어. 여보 나 이따가 전화할게.”
그리고 그는 전화를 끊고 넥타이를 고쳐 맸다.
“크흠.”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대우는 절대 안 망해. 그치. 대우가 어딘데. 대우는 절대로, 절대로 망해선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대우를 살릴 방법. 그 유일한 구멍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며.
*
5시간 넘게 계속된 회의, 대우를 살리기 위한 회의는 그러나 한참 동안 도돌이표를 돌고 있었다.
“현재로선 한성일보를 압박해 기사를 내리고 언론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제해? 이미 볼 사람은 다 봐 버린 상황에?”
현재의 상황, 그 상황이 그만큼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네. 일단 새로운 파도는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연후에...”
“연후는 무슨! 우리가 다 죽은 다음에 연후 찾을 샘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론을 막니 뭐니 하는 피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우리 대우를 나락에서 건져낼 방법이야! 방법!”
그리고 그렇게 끝이 나지 않던 회의가 계속되던 중.
쿵-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이내 그곳에서 사색이 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뭐야?”
그러자 일순, 우르르 들어오는 구두 소리로 회장실이 요란해졌다.
“회장님!”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큰일? 여기서 더 큰일 날 것이 있나?”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김우중, 그의 말에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심상치 않은 직원의 표정, 그 모습에 김우중의 표정이 굳었다.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지?”
김우중의 말을 들은 직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와대의 최후통첩이 떨어졌습니다.”
순간, 회의실 안으로 묵직한 공포가 내려앉았다.
청와대.
그곳에서 통첩이 내려왔다는 말에 당황한 것이다.
“서, 설마….”
“하… 결국….”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소란, 웅성거림을 잠재운 김우중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최후통첩?”
“네.”
“무슨 말이 나왔지?”
어렵게 말을 꺼낸 직원, 그가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내일, 그러니까 내일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검찰 출두를 각오하시라고….”
김우중, 그는 자신의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라고?”
검찰 출두. 대기업 회장으로서 최악의 상황,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호랑이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고요해졌던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뭐? 검찰 출두?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회장님이 왜?!”
“빌어먹을 DJ 그 양반도 정말 너무하는구만, 아니 빠져나갈 구멍은 두고 몰아야 할 것 아니야? 이건 숫제 죽으라는 말이잖아!”
“회장님. 저희가, 저희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다들 이 사태가 만들어 낼 종말을 생각한 것이다.
“……내일까지 말인가?”
“네. 내일까지 구체적인 해결안을 만들어 오라는 지시입니다.”
“해결안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말하는 거지?”
“대우의 재무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알아서 단두대로 올라가라는 거군.”
김우중,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 상황에 대우의 재무를 정상화 시키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 그냥 죽을 수는 없겠지. 내 위엔 올라가 있는 것이 많으니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의 역사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그의 역사 마저 끝나 버릴 테니까.
“좋아 그럼 돈을 빌릴 곳을 찾아야겠군. 급한 돈이 얼마나 되지?”
“……적어도 5조에서 7조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하… 꽤나 규모가 크구?.”
“아무래도 규모가 毒蹄? 보니….”
“은행은?”
“힘들 겁니다. 이전에도 이번 纓쨌? 기존에 있었? 채무에 대한 독촉 또한 심해진 상태라….”
“채권은 이미 매도세인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GM 쪽에서 컨택 온 것 있지?”
“설마? 자동차를 파시려는 겁니까?”
“그래. 그게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
김우중,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사람들, 대우맨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회장님! 자동차는!”
“맞습니다! 자동차만은….”
대우 자동차, 그것이 대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만.”
김우중 그의 의중은 확고했다.
뭐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나도 넘기고 싶지 않지 하지만 지금 넘기지 않으면 회사가 쓰러지게 생겼어. 도저히 방법이 없단 말이지.”
그러자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그것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
회의실 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때.
“회장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하나, 마경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러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
“어차피 지금 GM과 컨택을 한다고 해도 빠르게 큰 자금을 융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급한 건 그들이 아니니까요.”
“그럼?”
마경수가 손가락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다른 회사들에게 손을 내미는 겁니다.”
“……다른 회사들?”
“네. 차라리 국내 회사들과 딜을 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굳이 자동차를 내어주지 않아도 상처를 틀어막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가능할까?”
“가능할 겁니다.”
마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대우지 않습니까.”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던 김우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대우, 그 힘을,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좋아 그럼 어디가 좋을까? 현대?”
“현대, 그쪽은 지금 대북사업으로 정신이 없을 겁니다. 기아차 인수는 물론 대북 경협으로 기존에 있었던 자금을 모두 다 쏟아 붓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럼 삼성?”
“삼성은… 솔직히 미지숩니다. 일단 연락은 해 볼 수 있겠지만 그쪽 집안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곳이라.”
“그럼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가!”
약간은 짜증이 섞인 김우중의 말, 그 말에 마경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군데가 있지 않습니까? 현금 동원력으로 유명한 곳이.”
그러자 주변이 침묵으로 접어들었다.
“자네 설마…?”
“네. 맞습니다. 회장님.”
마경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로 대우는 절대로 망해서는 안 됐다.
그러니…
“오라클이 남았지 않습니까.”
잡을 수 있는 끈은 모두 다 잡아야 했다.
순간, 김우중 그의 얼굴이 청동처럼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