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정보의 가치 (2)
역배당(逆配當).
토토, 프로토, 소싸움, 경륜, 경마 같은 사행성 오락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로, 승리 확률이 낮은 쪽의 말에 돈을 걸어 정배당에서는 받을 수 없는 높은 배당률을 노리는 것을 말한다.
그야말로 일확천금.
일반적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꿈.
하지만 이뤄진다면 어마어마한, 정배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높은 수익을 얻는 방법.
그것이 바로 역배당이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배당 종목들.
토목이나 시설, 인프라 관련 종목들에게 가려 빛을 못보고 있는, 하지만 만약 남북정상회담이 취소된다면, 아니 불발로 끝나게 된다면 빛을 볼 종목들.
[풍산 12300▼524]
[협진단철공업사 1680▼120]
[대영전자공업 5110▼250]
[한일단조 1250 - 0]
[한화 11650▼235]
[한성유통 13050▲310 ]
방산, 화학, 비금속광물, 음식료품, 운수창고 같은 종목들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타이밍에 선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계획이었다.
내가 계획을 말하자 이어진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종목들에 투자하겠다고?”
“네. 지금부터 천천히 정확하게는 7월 초까지요.”
“아니 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만··· 왜 굳이? 너 설마 진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나가리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어진이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 사람.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거야?
“제가 계속 말하지 않았나요?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내가 슬쩍 눈을 흘기며 말하자 그가 뜨끔한 표정으로 내 눈을 피했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하지만 곧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허 참. 뭐 좋아. 그런데 이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 아니 저놈들 말 바꾸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종목투자는···.”
“단순히 엎어지기나 하면 다행이죠.”
“그럼?”
나는 이어진의 눈을 마주보며 또박또박 그 이유를 입에 올렸다.
“단순한 변심. 전문용어로 화전양면이라고 하나요? 어쨌든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날 거예요.”
그러자 순간, 이어진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순식간에 변화하는 그의 표정. 그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아마도 내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미친 듯이 생각하고 있겠지.
현상을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는 것, 그것은 주식꾼의 본능 같은 거니까.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미래. 내 앞으로 펼쳐질 사건은 아마도 그의 인식을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약간의 힌트 정도는 괜찮겠지.
“아저씨.”
“으응?”
“김일성의 올해 나이가 몇인지 아세요?”
그러자 잠시 뜬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이 기억을 더듬었다.
“김일성? 가만 보자··· 김일성이 호적상 나이가···.”
그리고 순간. 이어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찔린 짐승의 그것처럼.
“어··· 어어?”
그의 입이 딱 하니 벌어지고 눈가가 파를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너, 너 설마?”
얼어붙은 얼굴.
차마 끝맺지 못한 말의 꼬리.
아무래도 내가 왜 이 시점에 김일성의 나이를 물어봤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경악으로 굳어 버린 그를 바라보며 그가 채 맺지 못한 말의 꼬리를 찾아 주었다.
“네. 맞아요, 아저씨. 아마 아저씨 예상이 맞을 거예요.”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예상을 확인시켰다.
“김일성은 죽어요.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그러자 잠시간의 충격.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
사무실 밖에서의 소란이 일순 사라지고 나와 이어진만이 남는 느낌이 들었다.
“······.”
그렇게 찰나의 시간, 하지만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흐른 뒤.
“하··· 이제야 이해가 가네.”
그가 짙은 한숨을 푸욱 내쉰 뒤, 우묵하게 들어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김일성 그 혹부리가 죽으면··· 그래. 네가 한 선택 나쁘지 않아. 아니, 하··· 좋은 선택이야. 다들 공포에 질릴 테니까.”
“그렇죠.”
“그래. 그런데··· 진짜? 진짜로 혹부리가 죽어? 정말로?”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떨리는 그의 손.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제가 아는 한.”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이내 천장을 바라보며 파악-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 양반도 죽긴 죽는구만. 하긴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수술한다 어쩐다 하긴 했었어.”
그리고는 왜 하필 죽어도 이런 타이밍에 죽는냐고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지 않겠냐고 이 시대 한국인으로 당연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나저나 안 물어봐요?”
“뭐가?”
“어떻게 알았냐고.”
그러자 그가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어보면 알려 줄 거야?”
뭐 그건 아니지.
“아뇨.”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도련님은 비밀이 많은 분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그게 뭔데요?”
내가 묻자, 이어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비밀이 나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일성의 건강에 대한 비밀 정보를 얻은 바 있어요. 루트는 묻지 마시고.”
“진짜 확실한가 보네.”
“네.”
내가 단언하자 이어진은 얼굴에서 일말의 의심마저 싹 지워버렸다.
나는 이어진에게 신신당부했다.
“남들에게 말해 봐야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당분간은 함구해 주세요.”
“당연하지. 이런 정보를 왜 남한테 줘? 우리가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게다가 김일성이 죽는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봐야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들어? 이런 화해 무드에? 이럴 때는 그냥 준비하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야. 뭐 나처럼 믿어줄 사람이 있다면야 또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하긴···.,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시점에 김일성이 죽는다고 소리쳐 봐야 들을 괜히 초친다는 소리만 듣겠지. 원래 예언자란 죽임을 당한 뒤에야 가치를 인정받는 법이니까.
그러니 섣불리 이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은 금물이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제가 정리한 종목 위주로 슬슬 매입해 주세요. 나머지는 아저씨 생각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여 주시고요.”
그러자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이어진이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응? 뉘앙스가 좀 이상한데 왜 너 어디 가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방금 아저씨 입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아저씨처럼 믿어 줄 사람이 있다면 말해도 된다고”
“어? 그건 그런데··· 너 설마?”
이래서 눈치 좋은 사람이 편하다니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을 향해 슬쩍 웃어보였다.
“맞아요. 이 정보 비싸게 사 줄 사람이 있거든요.”
***
톡- 톡-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가락.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주 가느다란. 마디마디마다 굵게 패인 주름이 인상적인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든다.
모두가 어제 일어난 사건.
남북 정상 회담.
그 중차대한 사건의 후폭풍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때.
“그래. 보고해 봐.”
김귀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회의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 한성가 계열사 임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김명석 부회장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경우 부회장이 나서는 경우는 없지만 이런 중차대한 일의 경우 부회장이 나서서 회장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한성가의 룰이었다.
“예. 회장님. 일단 어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예비···.”
“간단히.”
“···네. 일단 회담이 성사되는 건 기정사실이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느 정도의 경협이 이뤄질지는 예상하지 못하는 만큼 안전하게 건설과 철강 쪽으로 집중한 뒤에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할 생각입니다.”
“만약에 엎어지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신도시 분양도 슬슬 완료된 시점이고 이번에 준농지법도 해제된 상황이니 건설과 철강 쪽에 투입된 인력이나 자본을 그쪽으로 돌리면 되리라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잠시 딱- 딱- 테이블을 두드리던 김귀란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듣기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는, 탈이 나지도 모가 나지도 않을 대응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큰집 쪽 소식은?”
순간,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김명석. 그가 곧바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게··· 아무래도 청와대 쪽에서 이번 회담 전에 오찬을 한번 열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전하길 회장님께서 직접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김귀란의 입이 비틀렸다.
이 타이밍에 오찬이라니 그 의도는 뻔했다.
“쯧, 뭐 올라가기 전에 선물 하나 가져가겠다는 생각이겠지. 하여간 총든 놈이나 그렇지 않은 놈이나 남의 걸로 생색내기는···.”
“아무래도 그게 그 사람들 특성 아니겠습니까.”
“하긴 뭐··· 좋아. 그 소식 누구 선으로 들어왔지?”
김귀란의 말에 김명석이 바로 대답했다.
“안주인입니다.”
안주인이라면 비서실장.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김귀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무원 나부랭이 주제에 꼴같잖은 모습을 보여 주는 이이긴 하지만 권력의 핵심. 그러니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
“비서실장이라··· 그래 밥은 두둑하게 먹였고?”
“네. 충분히 먹여 놨습니다. 가족들이랑 먹으라고 후식까지 챙겨 줬으니 별 말 없을 겁니다.”
김명석의 말에 김귀란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그동안 영 못 미더운 모습만 보여 주어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보니 그럭저럭 장사꾼 기질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잘 챙겨 줘. 배가 불러야 딴 생각 못하지 배고프면 이상한 짓하는 게 사람이니까 섭섭지 않게 평소에도 잘 챙기라고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잠시 김귀란를 허를 쭉 폈다.
“좋아. 그럼 청와대 만찬은 가겠다고 알리도록 하고. 다른 집 상황은 어때?”
그녀의 말에 잠시 말을 고른 김명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른 데야 뭐 평범합니다. 저희처럼 아무래도 그동안 데인 게 많으니 다들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현대 쪽이 좀···.”
그 말에 김귀란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김명석을 바라보았다.
현대그룹.
그 가문이라면 재계서열 1위. 1998년 기준 자산총액 88조 원의 압도적인 공룡이었다.
“거기가 왜?”
“그게 아무래도 그 집 왕 회장님이 이번 회담이 기대가 크신 모양입니다. 벌써부터 통일이 된것처럼 지시를 하시는 통에 영 집안이 시끄럽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북한에 지원자금이나 시멘트, 철강 같은 자원들 지원을 준비해 놓으라는 이야기를 하신답니다.”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김귀란이 김명석을 바라보았다.
“뭐? 그 늙은이가? 정말로?”
“네.”
“허허 그 늙은이가 노망이 났구만 노망이 났어. 아니 저번에 봤을 때만 하더라도 은퇴하고 낚시나 하겠다던 양반이 무슨 정력이 있어서 그런···,”
김귀란이 혀를 말했다.
평소 현대가의 왕회장, 정영주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큼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향이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김명석이 나름 해석을 내려 봤지만.
김귀란은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 차게 웃을 뿐이었다.
“고향은 개뿔. 이미 떠난 지 40년이 넘었는데. 으이그 그러고 보면 그 양반도 죽을 때가 되긴 했어. 괜히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거 보니.”
그리곤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왕회장, 정영주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그래도 고향이시니 저희도 조금이나마 준비를 할까요?”
김명석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김귀란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귀란이 찌릿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뭔 소리야?”
“아니 그게 회장님 고향도 북쪽이시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순간, 김귀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허허. 큰 아드님.”
“네. 회장님.”
“난 큰 아드님이 이렇게 효잔 줄 이제야 알았네.”
“······.”
“그런데 큰 아드님. 나는 다 늙은 어머니 고향 생각해 주는 아들보다 장사 잘하는 아들이 더 좋은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시나?”
말 속에 숨어 있는 가시에 김명석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계열사 사장단.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가신이 될 사람들 앞이었지만 그는 부끄럽지 않았다.
김귀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김귀란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움찔 시선을 피하는 사장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정신들 차려. 설마하니 통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괜히 안 된다 안 된다 방심하다가 뒤통수 맞지 말고 최대한 귀 열고 머리를 굴리란 말이야. 알아들어?”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사장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김귀란. 그녀의 말대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지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뒤, 사장단 회의가 끝난 직후.
김귀란을 제외하고 모두가 빠져나간 회장실로 들어온 한 인물 때문이다.
“저 왔어요 할머니.”
김준영.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