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 313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3)
“아니 그러니까 정몽진 그 사람을 청운동에 그냥 두고 나왔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로?”
“뭐 바로 나온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죠.”
그러자 잠시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은 그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그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었으니까요.”
“해결책이라?”
“네. 시작한 사람이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권력을 준 자가 끝내는 게 맞겠죠.”
그 말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정몽진 회장이 꽤나 당황했겠는데?”
그 또한 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파악한 모양이었다.
“뭐 그렇죠.”
사실 이번 사건, 이번 다툼의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정영주 회장의 패착, 장자상속의 원칙을 뒤엎고 5남인 정몽진을 후계자로 세웠으면서도 다른 아들들에게 권력을 나눠 주었다는 것, 그것이었다.
후계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아들들에게 권력을 남겨 놨다는 것은 곧 후계자들 간의 전쟁 또한 가능하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이번 사건의 마무리 또한 정 회장에 손에 달렸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이 쥐고 있는 권력들 또한 그에게서 비롯한 것인 만큼 언제든 그들의 손에서 회수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는 간단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바로 정몽진 회장, 그의 입으로 정 회장에게 현 상황을 설명케 한 것이다.
뭐 이 상황이라면 정 회장도 심각성을 알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요. 예상했던 대로죠. 정 회장님은 노발대발하시고 정몽진 회장은 무릎 꿇고 난리도 아니었죠.”
“무릎도 꿇었어?”
“네. 뭐 원래 문제가 생기면 후계자가 석고대죄를 하기 마련이잖아요.”
그 말에 이어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거참 단초는 그 양반이 제공했으면서.”
“뭐 이해해야죠. 원래 왕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 넌 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거지?”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에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이어진,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허, 참.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몽근 그 사람 간도 커. 아니 어떻게 정 회장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그런 일을 벌일 생각을 한 거야?”
상황을 파악한 만큼 일을 진행한 정몽근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는 모습이었다.
“뭐 뻔하죠.”
“뻔하다고?”
“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수족으로 일해 온 사람이에요. 금치산자에 가까운 장자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한 사람이란 말이죠. 그런데 후계자의 자리가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간다고 하니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에이, 설마 그런 간단한 생각일라고?”
나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였다.
“아버지 대신 감옥에도 다녀올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과 야심이 큰 사람이에요. 충분히 가능하죠. 뭐 정 회장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고요.”
그러자 그 말에 이어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정말 정 회장 건강이 안 좋아?”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아니 듣긴 했는데 그냥 단순한 루머라고 생각했지. 그 양반 맨날 백 살까지 살 거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겉만 봐선 정말로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얼굴이잖아.”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나 또한 직접 보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정 회장님이 약해지신 건 사실이에요. 보니까 이젠 지팡이가 없으면 거동이 힘드신 것 같더라고요.”
“정말?”
“네. 세월 앞에선 평등한 법이라잖아요. 그러니 그럴 만도 하죠.”
정영주의 나이 84세.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미 명부에 적을 두었다 여겨지던 나이인 것이다.
그러자 잠시 홀로 뭔가를 생각하던 이어진이 조금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뭐가요?”
“아니 자칫 잘못하다가 정영주 그 사람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아무래도 일반적인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아뇨 그럴 리 없어요.”
“그럴 리 없다고?”
“네. 이 쿠데타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욕심쟁이의 목을 조르겠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인이란 무뎌질지언정 쓰러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
현대가의 차남 정몽근의 쿠데타 시도.
아버지 정영주의 결정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그의 반역 시도는 꽤나 싱겁게 끝이 나 버렸다.
“아버지 몽근 형님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래? 어디쯤 도착했다더냐?”
“이제 막 정문을 넘었다고 합니다.”
정몽근이 채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정영주.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이제는 한발 물러나 상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 그가 정몽근 회장의 계략을 알아채 버렸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다 끝내 놨느냐?”
“……물론입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 형, 만만치 않은 놈이야. 알고 있지?”
“믿어 주십시오. 두 번 세 번 확인한 일입니다.”
“그렇게 철저한 녀석이 일을 이렇게 끌고 와?”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정영주와 정몽진,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정몽근을 들이쳤다.
“몽근이 이 빌어먹을 놈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상대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을 때 박살을 내 버리려 한 것이다.
“아, 아버지….”
순간, 정몽근 그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족 식사 자리. 아버지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 그때, 본능적으로 모든 것이 발각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라고도 하지 말아라 이놈! 아비의 명을 어기고 형제의 심장을 찌르려 했던 놈이 뭐 아비? 하 금수만도 못한 것이!”
그러자 그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려 하기 시작했다.
부지불식간의 사태. 어떻게 아버지가 자신의 계획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생각보다 더 그의 계획을 깊이 알고 있었다.
“아니기는! 네가 한정익, 최윤규와 짜고 손익치의 자리를 걷어차려 했다는 걸 내 이미 알고 있는데!”
순간, 정몽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하니 아버지가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 서슬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현대가의 자손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가족 간의 식사라는 허울이 벗겨져 버린 이상, 자칫 잘못하면 정영주의 칼날에 자신 또한 베일 것이란 것을 파악한 것이다.
“왜 말이 없느냐!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보란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아신 겁니까?”
“어리석은 놈! 그 이유가 중요하더냐! 멍청한 녀석.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해 뒤를 밟혀?”
“…….”
그리고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뒤, 정영주 회장이 쿵- 지팡이로 바닥을 찍으며 정몽진을 바라보았다.
“몽진.”
“네. 아버님.”
그런 뒤,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 임시경영자협의회 소집해. 내 직접 내일 그 자리에서 저놈 목을 쳐 버릴 테니까. 그리고 ?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저놈한테 알랑방귀 뀌던 놈들 싹 다 정리해.”
“……알겠습니다. 어디까지 정리할까요?”
“저놈과 관련된 놈들은 모두 다. 한정익, 최윤규, 김현수뿐만 아灸? 기아차 사장, 현대차 사장, 정공 사장까지 싹 다 갈아 치워 버려.”
“후임 인사는…….”
“일단은 싹 갈아 내. 타당한 인사는 내, 이후에 통보할 테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버렸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버님. 저, 일단 고정하시고….”
“고정?”
장남인 정몽우의 말을 들은 정영주의 시선이 불쾌하게 번뜩였다.
“이봐 장남. 지금 내가 화가 나서 이러는 거 같아?”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내가 평생을 바쳐 온 기업이다. 네놈들 아가리 속에 들어가는 쌀알도 네놈들 몸에 걸치고 있는 천 쪼가리도 모두 다 내가 만든 거지 그런데 뭐? 내가 살아 있는 이때, 내 앞에서 그걸 절단 내려고 해?”
그가 말을 이었다.
“이건 결과다. 감정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어.”
그 서슬에 정몽우의 입이 꾹 다물렸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 동생들에게 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러자 일순, 차가운 미소를 입에 문 정영주,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몽근이 저놈은 내 자식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주식 모두 다 반납하고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말아라.”
“아, 아버지!”
“만약 그게 싫으면….”
그가 눈을 번뜩였다.
“……내 보여 주마. 내가 진짜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될지. 어때 몽근아. 어디 한번 확인해 보겠느냐?”
순간, 사람들이 몸을 움츠렸다.
하나하나 정영주의 시선을 받은 이들 모두가 뱀 앞의 쥐처럼 몸을 굳혔다.
분명 노인, 그것도 살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인의 행색이었지만 그 무게는 무거웠다.
그리고 결국, 정몽근 또한 그의 모습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후, 아버님 말씀대로 하겠습니?.”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상왕과의 전쟁뿐일 테니까.
“좋다. 내 마지막 혈육의 정으로 숨은 붙여 주마.”
“……감사하다고 해야 합니까?”
“감사해야지. 덕분에 누리고 살 수 있을 테니까.”
“그건….”
“하지만 지금부터 너와 너희 가족들에게 허락되던 내 이름은 일체 거둬질 것이다. 이제부턴 그래. 너 혼자라는 말이다. 네 빌어먹을 욕심 때문에.”
정몽근의 표정이 전에 없이 일그러졌다.
“아버님 그건….”
정영주의 단호한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번복은 없다. 그게 싫으면 그 상황이 그리워질 상황을 만들어 주마.”
“…….”
“대답하거라.”
“……죄송합니다.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몽근, 한때 현대자동차의 주인이었던 자는 힘없이 저택을 떠나갔다.
현대그룹의 패권을 잡기는커녕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정몽근 그가 꿨던 꿈에 비하면 꽤나 초라한 퇴장이었다.
“다른 놈들도 잘 들어라. 내가 한 결정, 이 결정을 바꾸고 싶으면 어디 한번 시도해 보거라. 내 그 도전 반갑게 받아 주마.”
“며,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식사는 끝났다. 모두 다 가거라. 가서 조용히 오늘 일을 생각하거라. 몽현, 몽철이는 무슨 소린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을 만들어 낸 정영주, 그가 정몽진을 대동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일이 마무리된 만큼 그 후속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긴, 빚쟁이가 일을 마무리했으니 어디로 가겠느냐?”
그의 시선이 한강, 정확하게는 한강변에 자리한 너른 대지로 향했다.
“……빚을 갚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