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황금의 땅, 판교 (3)
[판교 토지 보상에 195억 ‘땅부자’ 탄생 ? 조X일보]
판교 신도시 개발지역에서 190억원이 넘는 막대한 보상금을 받은 토지주가 여럿 있는 것으로 열려져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액수는 195억원. 판교에 17대째 살아온 토박이 농부가 그 주인공으로, 토지 6680여 평과 창고 축사 등에 대한 보상으로 이 같은 막대한 액수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본인 명의로 등록된 토지에 대해 보상을 받은 사례 중 최고액으로 본인 이외에 부인이나 자식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토지주는 실제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았을 수도···
[무려 5,000배가 넘는 수익! 주인공은 판교의 한 목장주 ? 중X일보]
60년대 초 평당 300원씩 주고 땅을 샀던 80대 노인이 200억원대 보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토지 컨설팅 업체 한 관계자는 1962년 1만 3,000평 정도의 땅을 평당 300원에 구입한 노인이 토지 보상금을 받으면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한 자문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노인은 무려 5000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셈···
*
판교 신도시.
아무것도 없던 농투성이. 사료값을 걱정하던 목장주들을 하루아침에 그랜져 끄는 사장님들로 만들어 준 마법의 단어.
조상 대대로, 혹은 농사를 짓기 위해 산 땅들이 하루아침에 금덩어리가 되는 마법이 벌어진 땅이 바로 판교다.
때문에 나는 김귀란의 입에서 1만 평이라는 말이 나온 그 순간, 터져 나올 것 같은 숨을 정말 간신히,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1만, 1만이라고!?’
그 정도의 토지라면 신도시에 대한 소문이 돌 때쯤인 1997년에 70억~100억.
신도시 개발이 발표되는 2003년에는 350억.
나아가 회귀 전인 2020년에는 무려 2,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끈 떨어진 연 신세. 김귀란과 아버지의 관계에 기대 시도했던 일이 어마어마한 성공이 되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때? 가능한가?"
김귀란이 묻자 냉막한 인상의 남자, 전 실장이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래?"
"네. 이쪽 땅들 대부분이 농지로 잡혀 있는 상태라서 생각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매수할 수 있을 겁니다."
1993년 현재 판교의 대부분의 땅은 농지로 잡혀 있었다. 이것이 풀리는 것은 1994년. 1차 신도시 계획의 악재들이 터져 나오는 시기다.
김귀란이 턱을 문지르며 눈을 번뜩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럼 평균 시세가 얼마나 하나?"
전 실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었다.
"지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넉넉 잡아도 평당 10에서 15만 원을 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평당 10에서 15만 원.
그렇다는 말은 김귀란이 말한 1만 평의 토지를 모두 매수하는 데 10억에서 15억 정도의 금액이 들어간단 말이었다.
국제 규격 축구장 5개 정도의 토지. 그 거대한 토지가 10억이라니. 그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지대가 제일 싼 편에 속하는 철원보다 더 싼 가격이다.
아쉬웠다.
만약 내게 1억 원만 더 있었다면, 아니 5천만 원만 더 있었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더 많은 땅을 살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모든 돈을 다 끌어들여 토지를 구매했을 텐데.
하지만 10억 원이라는 돈. 김귀란 같은 재벌들에게는 처음 보는 손자에게 줄 수 있는 돈조차 나와 나의 어머니 같은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다.
그렇다면···
‘물주를 좀 더 털어 보는 수밖에.’
나는 김귀란을 바라보았다.
1만 평의 토지 또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위험하더라도 조금 욕심을 내고 싶었다.
"저어··· 1만평이 어느 정도죠?"
내가 말에 전 실장이 슬쩍 웃으며 판교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보이는 산그늘에서 쇳곳천, 그러니까 우측으로 흐르는 강까지의 면적 정도 1만 평이라 보시면 됩니다."
전 실장이 가리킨 공간을 보자 축구장 5개 넓이, 제법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
실제로 가늠해 보니 엄청난 넓이의 토지였다.
하지만 이미 칼을 뽑은 이상 그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도적으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나에게 1만 평의 면적을 설명해 준 전 실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아··· 그게··· 생각보다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떨궜다.
그리곤 천천히 김귀란의 대응을 기다렸다.
과연 이 늙은 재벌은 과연 어떤 대응을 할까?
손자의 욕심에 즐거워할까?
아니면 욕심을 부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약속을 취소할까?
긴장되는 순간.
"파하하하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김귀란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봤었던 모습.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 또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그때.
뚝-
순식간에 웃음을 멈춘 김귀란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보다 더 욕심 많은 놈이었구나. 그래 그럼 얼마나 가지고 싶으냐?"
나는 빠르게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녀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순수한 질문이라는 듯 고요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게··· 적어도 두 배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고요히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바로 그녀 옆에 대기하고 있던 전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다. 전 실장. 기왕 사는 것 넉넉하게 더 사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전 실장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린 그녀가 천천히 판교 땅을 굽어 보며 말했다.
"10만."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10만?
1만도 2만도 아니고 바로 십마아아안?
갑작스러운 스케일 뻥튀기에 전 실장도 살짝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김귀란이 짓궂은 표정으로 전 실장을 바라보았다.
"왜? 힘들어?"
노인네. 악취미다.
김귀란의 표정을 본 전 실장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매수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세금 문제도 있고 해서 도련님이 모두 소화하시기는 힘들 겁니다."
전 실장이 단호히 말했다.
하긴 아무리 농지로 분류되어 세금이 싸다고 하더라도 한번에 10만 평 정도의 토지를 가지게 되면 그에 따른 세금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한성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알음알음 세금을 줄일 방법을 알고 있었겠지만.
1993년.
올해부터 시작된 김영삼 정부 반부패 기조를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절세 방법들은 자칫 큰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김귀란의 생각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누가 다 준다던가?"
"그럼···?"
전 실장이 조심스런 모습에 김귀란이 슬쩍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은 1만 줘. 일단 나머지는 내 이름으로 할 테니까 그리 알고."
뭐 아니 왜?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슬쩍 웃는다. 그리곤 허언은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 이름으로 말입니까?"
전 실장의 말에 김귀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보다 여기 지세가 마음에 들었거든."
그것은 먹이를 바라보는 맹수의 눈빛, 새로운 사냥터를 포착한 암사자의 자세였다.
뭐지? 설마 이 사람 신도시 개발을 눈치를 챈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은 1993년. 훗날 2차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는 당사자들조차 2차 신도시 계획을 생각하지 않던 시기다. 그런데 어떻게···?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 나의 친할아버지인 김정운이 한성광업을 설립해 폐광들을 불하받을 때 김귀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
김정운이 인수한 광산들 중 훗날 수익을 거둔 광산들 대부분이 김귀란이 제안한 매물이라는 소리였다.
그동안은 그저 김귀란의 이름에 붙은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 이야기가 진짜였던 것 같았다.
김귀란의 모습을 본 전진호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서울에 올라가는 대로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하는 김에 저 녀석 세금까지 처리해 줘. 기왕 해 주는 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예. 알겠습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성에서 세금까지 처리해 준다는 말이 나온 이상, 이제 곧 내 손 위에 1만 평이 넘는 신도시 부지가 손에 들어온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아니 아까웠다.
1만평.
1997년 기준으로 최대 100억, 회귀 전인 2020년 기준으로는 무려 2,300억.
17억짜리 강남 은마 아파트를 135채나 살 수 있는 금액.
처음 예상했던 땅보다 더 큰 규모의 땅이 이제 곧 내 손안에 들어올 것이었지만 10만 평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1만 평이라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였다.
아니 10만 평이면 1997년 기준으로··· 1,000억 원.
2020년 기준으로는 무려··· 2조 3천억이잖아!
물론 추정치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건···
안타까운 마음에 위장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10만평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를 말지... 이건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막 못먹는 감을 보며 끙끙 앓고 있을 때.
"왜 욕심이 나느냐?"
김귀란이 내게 물었다.
뭐지? 설마······.
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재미있는 생물을 본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한다면 10만 평 모두 너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 어차피 나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땅이니까."
"정말요?"
내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겨줄 수는 없지. 자격이 없는 놈한테 내걸 넘겨줄 정도로 좋은 성격은 아니니까."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그녀는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내가 묻자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단하다. 내가 너에게 내 것을 넘겨줘도 아깝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다오."
그리곤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대답해 주겠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어 나갔다.
"올해부터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1만 평씩 땅을 주마."
뭐지? 설마 다 퍼 주겠다는 건가?
그녀의 무조건적인 지원 약속에 내가 잠시 당황한 그때.
"대신."
그녀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매년, 매 학기, 매 시험,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매 학기 매 시험에서요?"
내가 묻자 그녀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1등을 놓치면 네가 받은 1만 평을 포함해 그동안 받은 땅 모두를 다 몰수할 거다."
뭐? 아니 이 양반이. 설마 지금 줬다 뺏겠단 말이야?
내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어찌하겠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하겠느냐. 그냥 1만 평을 받고 만족하겠느냐? 아니면 한번 시도해 보겠느냐?"
일반적인 어린아이였다면, 아니 오히려 영악한 꼬맹이일수록 혼란스러울 상황이었다.
김귀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면 손안에 들어왔던 것까지 모두 다 빠져나가 버릴 상황이었으니까.
‘뭐 그걸 노린 것도 있었겠지만.’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평범한 10살짜리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
비록 껍데기는 10살 꼬맹이의 그것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세상의 쓴맛을 한껏 맛본 37살의 김준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거운 눈빛으로 나를 압박하는 김귀란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그녀가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1등. 무조건 할게요."
공부만 열심히 하면 판교땅 10만 평이라니 이것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