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대륙을 향한 칼 (4) >
다음날 황금평.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4부두에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김철현 씨?”
“네. 제가 김철현입니다만··· 누구신지?”
소리 없이 4부두 공사 현장으로 들어온 그들은 곧바로 공사 현장의 책임자, 그리고 실무자들을 불러 모았다.
“오라클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현장을 통제합니다.”
“네? 아니 그 무슨?”
“신일건설 측과는 협의가 된 사항입니다. 그러니까 김철현 씨. 협조 부탁드립니다.”
“보, 본사에서 협의가 됐단 말입니까? 아니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사측에 연락해 보시죠.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지난 일주일간 벌어진 이변, 제4부두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공사 지연에 대한 정보들을 취합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일주간 제3 부두의 공사가 모종의 이유 때문에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 말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무근의 일입니다.”
“중국 현지 인력의 상당수가 지난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 도대체 누가!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공사 조금 늦어지고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개인사정이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현지 인력들 몇이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별 문제 없는 일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황금평 개발 현장에 떠돌기 시작한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보가 있었습니다. 현재 제4부두와 제5부두의 공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난공사 때문이 아니라는 정보가 말입니다.”
“아니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4부두 현장의 공사 속도가 늦어진 건 단순히 공사 난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말마따나 수심이 제일 깊은 곳이 바로 4부두 아닙니까!”
물론 그 또한 사람의 일, 때문에 자신이 엮일까 발뺌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 말씀 다른 곳에서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왜냐하면. 사건의 무게가 꽤나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을 회장님 앞에서도 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아니 그 무슨?”
“김철현 씨.”
“네.”
“현장 관리자로서의 당신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금 하는 모든 조사는 회장님의 지시를 통해 이뤄지는 겁니다. 그 이야기인 즉슨 김철현 씨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에 책임이 따른 다는 말이죠. 김철현 씨를 비롯한 신일건설 모두에게 말입니다.”
“그, 그런···.”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 저희가 들은 소문, 그 일이 사실무근의 일입니까?”
그 결과.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말은 인력수급에 차질이 있다는 겁니까?”
“네. 그, 그렇습니다. 후··· 말씀하신 대로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말이죠.”
뭐 책임이란 때론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나게 하는 법이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일단 지금부터 김철현 씨의 직무를 정지하겠습니다. 김철현 씨의 직무는 차석께서 맡아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김철현 씨?”
“네, 넷?”
“살고 싶으면, 더 이상 문제를 키우기 싫으면 해당 자료 빨리 정리해서 내놓으세요. 단 하나라도 빠지지 않게 조심해서. 알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취합된 정보들.
오라클 직원들의 손에 의해 정리된 정보들.
그 정보들이 모두 모여 한 사람의 손에 닿았다.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의 손에 말이다.
*
사락-
사락-
사락-
보고서를 넘기는 손길, 그 손길이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리고 그 손길에 끝엔 분노한 표정이 자리해 있었다.
“준영아 이건!”
이어진, 그가 나를 향해 눈을 부릅 뜬다.
업무차 잠시 한국에 다녀온 그, 그의 눈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분노와 자책이 공존하고 있었다.
“어때요?”
“아니 이제 정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우습게도 그래요. 지금 이 순간 황금평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죠.”
그러자 잠시 보고서를 바라보던 이어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 흑사회라니.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아무래도 방금 전 보고서에서 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나 또한 처음 보고서를 보았을 때 그와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끽해 봐야 태업 정도나 생각했지.’
무슨 홍콩 영화도 아니고.
하지만 엄연히 현재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흑사회(黑社會).
중국 내에 존재하는 뒷세계를 총칭하는 말로 ‘대규모 조직(幇)을 가진 범죄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흔히 흑방(黑幇), 방회(幇會), 방파(幇派)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로 2000년 초반인 현재 약 2500여 개의 조직들이 중국 전역에 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조직의 강령과 지방 활동 계획을 가지고 지방, 향촌, 기업의 당위원회 서기나 총장 등 지도급 인사들을 포섭, 그 지방의 정당 조직을 이끌거나 재무, 권력, 세금포탈 등과 관련한 범죄를 주동하며 중국의 음지에서 암약한다.
폭력과 권력의 결탁.
그것이 바로 현대 중국의 흑사회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어진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이해는 갔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80년대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전국구 조폭들이 쓸려가면서 권력 결탁형 폭력조직들의 계보가 사실상 끊긴 상태였으니까.
“아마 이해가 잘 안 가실 거예요. 사실 저도 그랬으니까.”
“하, 참 이게 뭐 쌍팔년도도 아니고 아니 밀레니엄 시대에 일개 조폭이 기업 등을 처먹으려고 한다고?”
“네. 방회의 이름은 형제회(兄弟會). 요령성 쪽에서 활동하는 조직으로 단둥을 근거지로 움직이고 있는 조직이에요.”
“꽤나 이름은 그럴 듯한데?”
“규모도 꽤나 그럴 듯한 곳이에요. 현재 요령성 내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죠.뭐 단순한 조폭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그러자 잠시 고개를 든 이어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래?”
아마도 이렇게 구체적인 조직일 줄은 몰랐다는 모습이었다.
“네. 이미 4, 5부두 말고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정황이 포착됐어요. 작게는 인력들의 충원부터 크게는 물류 납품에까지 꽤나 손을 뻗쳐 있더라고요.”
“물류라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 그리고 콘트리트 같은 단순 소모재들, 그런 것들에 그들이 손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까지야 일반적인 회사의 탈을 쓰고 영업을 해 오긴 했지만··· 이제 보니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나는 천천히 템포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이어진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그거야···.”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무실 벽 한쪽에 붙여놓은 황금평의 청사진으로 다가가 얼마 전 개항한 항만시설을 짚었다.
“···1, 2부두가 완공되면서 그쪽으로 국내 물량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니 그동안 쏠쏠했던 자금, 마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자금이 끊겨 버렸겠죠. 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볍게 되묻는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에겐 우리 돈이 자신들의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꽤나 많은 물자들을 중국 측에서 구매했다.
항구가 아직 개발되기 이전까지는 황금평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의 물자를 운송할 수단이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황금평을 중심에 둔 경제가 생성되었다.
중국 요령성, 북한과의 국경지대라는 특성을 제외하면 별 특색이 없던 지방이 황금평이라는 지구의 특수로 활황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금평의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항만시설이 확충됨에 따라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말마따나 품질이면 품질 물량이면 물량 한국에서 직접 가져와 컨트롤 하는 게 나았으니까.
문제는··· 그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는 거지.
“거참,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건 정부의 허가까지 받은 사업이라고. 그런 사업에 이런 조직이 끼어든단 말이야?”
“말씀드렸잖아요 여긴 중국이라고요. 이해가 되는 것보단 이해가 안 되는 게 더 많은 곳이죠.”
“중국 정부 쪽에 항의를 해 볼까?”
“땡.”
나는 이어진의 말에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이어진의 얼굴이 의문으로 물든다.
“왜?”
“그건 하책이에요.”
“하책이라고?”
“네.”
그러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왜? 분명 우린 중국 정부와 딜을 했어. 황금평을 개발하고 요령성 인근 지역과 경제 협력을 하기로.”
“그랬죠. 그런데 그건 다른 이야기예요.”
“다른 이야기라고?”
“네.”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중국 정부에 항의를 할 수는 있어요. 그러면 일단이야 정리되겠죠. 그쪽에서 약속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래서는 근원적인 치료는 되지 못해요.”
음지란 햇빛이 비출 때야 잠깐 사라진다. 하지만 햇빛이 사라지면 또다시 나타난다.
음지란 빛의 양면, 빛이 있는 곳엔 존재할 수 없지만 또 빛이 없는 곳엔 나타날 수 없다.
폭력 또한 그렇다.
비이성적 폭력 또한 빛을 따른다.
그 빛은 자본, 그리고 권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우린 언제나 생각해야 해요. 중국과 북한 두 지대의 접점에 있다는 말은 양쪽 어디에도 나갈 수 있다는 말,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쯤 되자 이어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어디에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말이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러니 기세를 빼앗기면 끝이에요. 우리 사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꽤나 많으니까. 그러니··· 이번 일은 신속하고 빠르게 끝내야만 해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방법이 있는 거야?”
“있죠.”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단 오늘부터 중국과의 모든 교류는 정지합니다. 황금평의 모든 인력과 모든 물산은 한국에서 들여올 거예요.”
일단은 당연한 처사. 이어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말했다.
“금적금왕(擒賊擒王). 머리를 칩니다.”
“머리를 친다고?”
“네. 아무리 소란스러운 물고기도 머리를 치면 고요해지는 법이죠.”
나는 천천히 보고서를 잡았다.
“뭐 약점이라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