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대륙을 향한 칼 (5) >
약점을 알고 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이어진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약점이라···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약점이 꽤나 큰가 보네?”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의문, 그 복잡한 시선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 나의 손을 향하는 이어진의 시선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크죠. 하지만 조직으로 봤을 땐 작은 약점이죠. 아마 일반인들에게는 약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한 그런 부분이에요.”
“그리고 그걸 너는 발견했고 말이야.”
“물론이죠.”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 그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좋아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요?”
잠시 마주치는 시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약간 의외의 것이었다.
“네가 바라는 건··· 그들과의 전쟁이야?”
“전쟁이요?”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내가 묻자, 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점을 알고 있다. 금적금왕 머리를 친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전면전을 하겠다는 말 아니야?”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이 진지했다.
······아무래도 그는 내 말을 조금 오해한 것 같았다.
“···거참 무서운 이야기를 꽤나 가볍게 하시네요.”
때문에 내가 피식- 가볍게 말하자 이내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제가 원하는 건 전쟁이 아니에요.”
“그럼?”
“병합이지.”
순간,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병합?”
아무래도 내 말이 약간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았다.
“네.”
“아니 그게 무슨···.”
“아저씨.”
“그래.”
“혹시 꽌시(?系 gu?nxi)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어요?”
“꽌시?”
“네.”
그러자 일순 이어진의 표정이 변한다.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야, 나 한국대 나온 남자야.”
“있어요?”
“······당연히 들어본 적 있지! 중국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그거잖아!”
그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말에 자존심이 살짝 상한 것 같았다.
“맞아요. 꽌시. 아저씨 말대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중국 사람들의 삶의 동아줄. 그게 바로 꽌시죠.”
“그런데 그게 왜?”
“그거 가져오죠.”
“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어진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꽌시. 그걸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이야기에요.”
꽌시.
‘꽌(關)’자의 ‘닫다’와 ‘시(係)’자의 ‘이어 맺다’의 두 의미가 합쳐진 단어. 즉,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서로가 연결돼 일종의 ‘윈윈 관계’로 발전한 인적 네트워크를 뜻한다.
예를 들어, 친구의 부탁을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울 경우, 자신의 꽌시를 동원해서라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이 ‘인정’을 베품으로써 자신의 꽌시와 친구의 꽌시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 그것이 바로 중국의 꽌시 문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대륙 안에서 사업을 하려는 자. 일을 진행하려는 자는 꽌시를 구축하거나 혹은 견고한 꽌시망을 만든 자를 포섭해야만 한다.
사실 말이 좋아 꽌시가 상부상조하는 관계지 꽌시 문화는 꽤나 엄격한 배타주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신펑요우(新朋友) 경쟁자나 적이 될 수 있는 관계. 하오펑요우(好朋友) 친교를 주고받는 우호적인 관계. 라오펑요우(老朋友)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소개를 시키고 꽌시 관계를 맺게 하는 관계. 슝띠(兄弟), 형제. 그리고 쳰시옹디(干兄弟).”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가족을 맡길 수 있는 관계.”
“······준영아 너 혹시?”
이쯤 되자 이어진, 그 또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긴 그 또한 눈치라는 것이 있을 테니까.
“네. 맞아요. 아저씨의 말대로 중국은 여러모로 복잡한 나라예요. 그렇다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리도 그 복잡한 카드들 중 하나쯤은 쥐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만 대륙의 것들이 내 손으로 들어올 테니까.
*
며칠 뒤, 요령성(遼寧省) 단둥시(丹?市) 전싱구(振??)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건물.
지하 5층 지상 20층으로 이뤄진 요령성 최대의 호텔.
천하제일대성객잔(天下第一大星客棧). 그곳으로 수십 대의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원, 뭐 이리 차들이 많이 왔다갔다거려?”
“응? 무슨 소리야 차라고?”
“왜 저기 봐봐. 벌써 십수 대나 되는 차들이 대성객잔으로 몰려가고 있잖아.”
그러자 주변에 있는 호텔들은 물론 상점들, 관공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라 빠르게 문을 걸어 잠갔다.
“미, 미쳤어! 빨리 들어가자고! 빨리!”
“응? 아니 자네 갑자기 왜 그래?”
오늘 대성객잔(大星客棧)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몰라서 물어! 저 사람들 형제회 사람들이잖아!”
“뭐어? 아니 정말?”
“그렇다니까!”
“비, 빌어먹을 빨리 자리를 옮기자고.”
그리고 그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오가지 않는 곳을 가로질러 모인 사람들.
형제회(兄弟會).
요령, 길림, 흑룡에 산재한 25개의 도시, 3만 5천 명의 조직원들을 아우르는 25명의 대가(大家)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쿵-
둔탁한 소음. 그 소리에 몰리는 시선, 그 시선을 듣고 한 사람이 자리에 섰다.
“형제들.”
진중한 목소리.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오십대 장년인. 그가 뭇 중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이 나타났다.”
그가 바로 형제회(兄弟會)의 대형(大兄)이자 회주(會主) 여룡(驪龍) 정금석(??石)이었다.
“대형. 적이라시면···.”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남자. 괄괄한 성격으로 조직의 전위를 맡고 있는 쾌남, 호백(虎伯)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본 정금석이 사진 한 장을 던지며 말했다.
“황금평. 김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지.”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정금석이 던진 사진을 향했다.
사진 안에는 제법 잘생긴 청년 하나가 사진기 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황금평이라면 금번에 있었던 그 사업 말입니까?”
그때 호백의 옆에 있던 남자, 거대한 체구를 가진 진중한 분위기의 남자 거웅(巨熊)이 말했다.
“그래. 우리 형제들이 관리하고 있던 사업체들이 관계된 사업, 1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라 하시면···.”
“한국놈들이 오늘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던졌다. 황금평의 모든 물류. 그 땅으로 들어가는 모든 돈을 막았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야.”
일순 사람들의 사이에 탄식이 지나갔다.
“그런···.”
황금평이 막혔다는 이야기는 그쪽에서 자신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들로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말입니까?”
“그래 완전히.”
“여지는 없습니까?”
“없다. 이미 파견했던 형제들 모두가 쫓겨나듯 내몰렸다. 마치 개 떼처럼 말이지.”
“하지만 황금평의 일은 그저 조용히 처리하기로···.”
“거웅.”
“네. 대형.”
“이미 결과가 나왔다. 이젠 움직일 뿐이야. 그렇지 않나?”
정금석이 거웅을 일별하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마주한 사람들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형. 말씀대로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대형. 명을 내려 주십시오. 예전처럼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멱을 갈라 버리겠습니다!”
다들 번듯한 차림새들을 하고 있었지만 태생은 늑대들, 그런 만큼 그들의 태도는 뜨거웠다.
그때.
“그만.”
정금석 그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일순 고요, 모두의 시선이 정금석을 향했다.
“물론 징죄는 필요하다. 형제의 명예는 무엇보다 중한 법이니까.”
그의 선언, 그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열기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꽤나 많은 일이 있었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위험하지 않았던 적은 없어.”
“당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은 크다. 그러니 모든 것을 볼 순 없지.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허리까지야. 그리고 그 허리는 우리 손에 있지.”
정금석이 거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거웅 너도 그걸 알겠지.”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두려움이 없는 평화는 비굴일 뿐이니까.”
순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어렸다.
“······.”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정금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지금 묻겠다. 반대하는 자, 있는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사내를 불렀다.
“호백(虎伯).”
“예! 대형!”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는 호백, 그를 향해 정금석이 명령을 내렸다.
“선두를 맡아라. 타겟은 황금평. 가서 놈들의 땅에 두려움을 만들어라. 책임은 내가 진다.”
“알겠습니다, 대형.”
“그리고 거웅(巨熊).”
“예. 대형.”
그가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황금평을 짓눌러 버려라. 요령, 길림, 흑룡의 형제들과 당 간부들을 움직여, 호백이 만들어 낸 틈을 파고들어라. 그 건방진 놈이 두려움에 벌벌 떨 때, 그놈의 입에서 무조건 예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쥐흔들어.”
거웅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사상자가 있어도 무방합니까?”
간단하지만 무거운 말, 그 말에 정금석이 차가운 웃음을 머금었다.
“전쟁에 비명이 없겠나?”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형제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움직여. 책임은 내가 진다.”
“알겠습니다. 그럼 중앙은?”
“내가 맡는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마친 그가 천천히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들. 이곳은 우리 땅이다. 아니 그런가?”
조직원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대형.”
“그렇다면 우리 땅에 들어온 객은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의 법대로, 우리의 명예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그래. 그런 것이다.”
정금석,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움직이자 형제들.”
결국, 그렇게 결단을 내린 사람들, 그들이 불타는 낯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대형 정금석에게 인사를 올리며 하나 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호백, 거웅 등의 측근들과 남은 정금석,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그때.
“대형.”
이변이 벌어졌다.
“무슨 일이지?”
“그것이···.”
그들이 있는 대성객잔으로 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객(客)이 대형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당에서 나왔나?”
“아닙니다.”
“그럼···.”
그 사람은 바로···.
“안녕하세요?”
방금 전 사진 속에 자리해 있던 남자. 김준영이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