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207화 국가부도의 날 (3)
내가 말을 마친 순간, 이어진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쌍, 쌍호 자동차라고?”
아무래도 내 입에서 나온 타겟, 이번 작전의 목표가 예상외의 정체였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가 생각했던 것은 그저 이름 좀 있는 중소기업, 아니면 그저 그런 대기업 계열사 중 하나였을 테니까.
나는 당황으로 가득 찬 이어진의 얼굴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이번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쌍호자동차(雙虎自動車).
1954년 서울??갹? 마포구에서 문을 연 자동차 회사로 1966년 대한민국 최초로 베트남과 보르네오에 버스를 수출, 당시로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던 토요타 버스(DB102LC)를 위탁생산해 규모를 키운 뒤, 1975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한 쌍호그룹 계열의 자동차 전? 기업이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국내 최초의 SUV로 널리 알려진 ‘코란도 지프’와 13년간 대한민국에서면 25만 대의 판매고를 올린 명품 SUV 차량 ‘무쏘’.
痔永? 승합차? 전설로 여保測? ‘이스타나??? 한때 사장님 회若纛? 마차로 불리?, 1997년 당시 堧? 모㉯甄? 다이너스티와 엔터프라이즈를 압도하는 고급스러움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었던 ‘체어맨’ 등이 있다.
그러니 내 말을 들은 이어진,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당시 쌍호자동차는 1997년 당시 재계서열 6위, 시가耭? 17조 원, 계열사 수 25개의 재벌 기업 쌍호의 대표기업이었으니까.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어진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가 자신 몫의 커피를 꿀꺽꿀꺽 냉수 마시듯 마시더니 이내 약간 진정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아무래도 방금전 내가 한 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는 여상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이미 입에서 그 이름을 뱉은 이상 번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진심이고 말고요. 제가 언제 흰소리 하는 거 보셨어요?”
“아니 분명 아니지. 하지만… 준영아. 이런 일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이어진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의 표정, 그의 목소리 모든 것이에 이번 일에 대한 긴장이 묻어났다.
하긴, 그가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꺼낸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쌍호자동자.
우리나라 5대 메이커 중 한 곳이자 역사와 전통의 강호.
수천 명의 직원들과 수십 개의 회사들, 그 회사들과 연결된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곳.
그런 곳이니만큼 그곳을 내 것으로 하는 것은 단순히 중소기업 몇 개, 허랑한 계열사 몇 개를 인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제조업, 그것도 자동차 산업이란 국가에서 직접 관리를 하는 분야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옛말, 달도 차면 기운다고 쌍호차의 영광은 이미 스러진 지 오래였다.
왜냐하면…
“걱정 마세요.”
“아니 걱정 말라고?”
“네. 지금의 쌍호는 저문 해니까요.”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랬다.
1988년 11월 21일에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 1993년에 '이노베이션 원년'을 선포하며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로 SUV 무쏘를 출시하고 1996년에는 뉴코란도를 출시한 쌍호차는 국내 4WD 차량을 대표하는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자동차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막대한 적자로 인해 쌍호차는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쌓인 3조 4천억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갑작스레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콜라보, 쌍호차의 모기업이었던 쌍호그룹을 뒤흔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쌍호차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국가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현재 다른 기업들의 상태가 좋았다면 굳이 나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는 않았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또다른 인수자가 될 기업들 또한 제 집에 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하나하나 내 손에 쥐어 가야겠지.’
좋아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 이어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러니 우리는 기다리고 준비하면 될 거예요.”
“…후회할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나는 손을 꽈악 움켜 쥐었다.
“이제 시대가 변화할 테니까요.”
그리고 얼마 뒤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
1997년 11월 22일.
대한민국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한 다음 날, 김영삼 대통령 구제금융 신청에 관한 대국민 특별 담화문 발표되었다.
담화의 주요 내용은 주로 1997년 11월 21을 기해 정부 측에서 IMF에 구제 금융을 공식적으로 신청했다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 여러분에게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며, 대한민국의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의 고통이 최소화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것.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사는 국민들 모두가 뼈를 깎는 마음으로 고통을 분담해야만 한다는, 대통령으로서는 마차 말하기 힘든 내용의 담화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 김영삼은 오늘…]
그러자 안 그래도 혼란스럽던 대한민국의 상황.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대한민국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더이상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충격! 대한민국 결국 침몰하다! 정부 IMF에 구제 금융 신청! - 조X일보. 1997. 11. 22]
[정부의 항복 선언! IMF의 실무협의단 1진이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 ? 조X일보. 1997. 11. 23]
[IMF 실사단 공식활동개시, 국무회의 예금자 보호법 등 4개 법안 새행령 개정안 채결 ? 중X일보. 1997. 11. 25]
IMF 구제금융신청 그리고 그로 인한 대통령의 담화.
그것은 곧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나 이제 망했으니 답이 없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IMF라니! 대한민국은 건재하다며!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높이 날기 위한 연착륙에 불과하다며!”
“빌어먹을! 뻔하지 지들 살겠다고 구라친 거 아니겠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겠지! 지금처럼 말이야!”
그러자 1,100원선을 넘어가고 있던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을 시작, 곧 1,200원, 1,300원이 우습다는 듯 천장을 모르고 치솟아 올렸다.
[달러(USD) / 원화(KRW) 1105.00 ▲]
↓
[달러(USD) / 원화(KRW) 1230.50 ▲]
↓
[달러(USD) / 원화(KRW) 1310.20 ▲]
과거, 그러니까 1997년 10월 28일 미국 투자기관 모건스탠리가 ‘아시아를 떠나라’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믿고 있던 사람들.
1997년 11월 5일 있었던 블룸버그의 ‘한국 가용 외환 보유고 20억 달러’ 보도를 단순한 유언비어라 치부.
미셸 캉드쉬 IMF 총재의 ‘한국 금융시장은 동남아 국가와 같은 위기상황 아니다’라는 언급을 신뢰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뒤늦게 대한민국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당장 돈 빼야지 돈!”
“아, 그,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가자고!”
그리고 그에 따라 21일 35억 달러였던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가 미친 듯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외환의 변동에 발맞추어 명목상이나마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추락, 대한민국 증시의 종합주가지수 또한 종래의 400선을 넘어 300선까지 붕괴해 버렸다.
IMF의 구제금융 신청을 하면 일단 위기는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대한민국 정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부총리님! S&P에서 대한민국의 신용평가를 하향 조정한다고 합니다.”
“아니 얼마나!”
“단기는 장기는 A- 단기는 A2까지 조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상황에 따라 B+, 정크본드까지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정보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위기를 바라볼 수는 없는 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의사가 오기 전에 병의 진도를 늦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아니 의사를 불렀는데 병이 빨라 죽어 버리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었으니까.
“빌어먹을! 다들 잡아먹으려고 안달이 났구만!”
“어떻게 할까요?”
“불이 났으니 어쩌겠어! 이웃에게 알리고 도와달라고 해야지!”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활로를 찾아 나섰다.
먼저 정부는 1997년 11월 26일, IMF 휴버트 나이스 대표단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금융시장 안정 및 기관투자가 주식매입 기반 조사하는 것에 발맞춰 임창렬 부총리를 일본으로 파견, 미쓰즈카 대장상과 원조회담에 들어갔다.
“급합니다. 미쓰즈카 상도 아시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풍전등화의 상황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한국과의 투자가 큰 일본이라면 어떻게든 IMF가 오기 전에 버틸 수 있는 돈을 수혈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부디 달러를… 통화스왑이든 뭐든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 일본에게서 급전을 빌린다는 정부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 버렸다.
임창렬 부총리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은 임총리를 푸대접.
차후엔 아예 회담자체를 거절해 버리더니 이내 ‘독도영유권’을 주면 자금지원을 고려해 보겠다라며 바터무역, 물물교환을 제시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독도 문제. 이번에 확실하게 결착을 맺도록 하지요.”
“…아니 미쓰즈카상. 독도문제는 엄연히 영토에 관련된 문제 아닙니까.”
“싫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우리 일본은 한국에 대해 단 1달러의 돈도 지원할 수 없습니다. 뭐 물론 IMF 지원금이라면 두둑히 내어드리겠지만 말이죠.”
그리고는 협상을 포기한 한국 측에 보복이라도 하듯, 약 7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일순 빼 가 버리며 대한민국을 모라토리엄 직전의 상황에까지 몰아넣어 버렸다.
“부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이번엔 또 뭔데!”
“일본측 자금들이 본토로 회유하고 있습니다. 그 자금의 액수가 무려 70억 달럽니다!”
이순신 장군의 금토패문(禁討牌文)이 절로 생각나는 사건이었다.
“뭐어! 70억 달러? 아니 이 상황에?”
“네. 아무래도 이 기회에 우위를 확실하게 정하려는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곧 죽어도 지들이 위라 이 말이지?”
그러자.
대한민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악화된 상황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기업들이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 휘청거린다! 국내 1위 여행사 ‘온누리’ 부도! - 조X일보. 1997. 11. 27]
[증권가도 안전지역이 아니다 전문가들 ‘고려증권’ 부도 가능성 높아! ? 1997. 11. 28]
[국내 대기업들의 자금 상황 심각! 한화, 동원도 위험하다! - 1997. 11. 28]
그리고 그중에는 재계서열 6위의 대기업, 쌍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보셨어요 이거?”
내가 신문을 착 펼쳐 이어진의 코앞에 들이대자 그의 안색은 빳빳이 굳었다.
“제가 맞았죠?”
“그래도 이렇게 빨리…….”
“뭐요. 아무튼 제가 맞았잖아요. 아니에요?”
“……젠장 그래.”
이어진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코앞의 신문을 잡아채곤 나에게 키를 던졌다.
나는 그 키를 자연스럽게 낚아챘다.
“하하 잘 쓸게요. 그런데 이 보트 산 지 얼마 안 된 거 아니에요?”
“산 지 한 달도 안 됐어! 후, 다신 내가 너랑 내기하나 봐라!”
이번만큼은 자기가 이길 줄 알았나 보다.
하긴 나라도 이 정도 일했으면 하나쯤은 자기가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겠다.
재능도 있지, 이젠 경험도 있어.
하지만 이어진은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정보력. 회귀로 인해 갖춰진 그 정보력이 없으니 앞으로도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뭐, 회귀 전 이어진의 신화에 딱 하나 결점이 있다면 보트에 미쳐 투자에 등 돌리고 있던 한두 해 정도였으니 이걸로 그는 마지막 결점을 극복했다 볼 수 있다.
“그럼 약속대로 결혼할 때까지 보트 구입, 매매 중계, 공부, 관련 업계 투자는 모두 금지예요.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한 겁니다?”
“아 알았어! 아니…무슨 귀신이야?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 맞출 수가 있냐고……!”
이어진은 궁시렁 대며 내가 건네준 신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쌍호그룹, 쌍호자동차의 막대한 재정적자 해결할 길 보이지 않아… ? 1997. 11. 30]
“그래도 돈은 벌겠네…….”
“당연하죠.”
나는 기지개를 켜며 쇼파에 몸을 묻었다.
12월을 코앞에 두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