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아메리칸 드림 (2)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헝가리 공산화의 서슬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한 유태인 청년이 있었다.
무일푼에 가까운 몸으로 영국으로 이주한 청년은 곧 영국 런던에 소재한 정경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이때 유명 철학자인 칼 포퍼의 밑에서 철학을 배우면서 빠르게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
하지만 철학이란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업, 곧 철학을 계속하기 위해선 경제적인 여유가 필수적이라 생각한 그는 철학에 전력투구하기 위한 자금으로 50만 달러를 설정, 그 돈을 벌기 위해 영구의 한 투자은행에 견습 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쇼로시 죄르지(Soros Gyorgy).
영어로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라 불리는 인물이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퍼핏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이자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존재.
경제버블의 생성과 붕괴를 다룬 ‘붐 앤 버스트’(boom and bust) 이론과 ‘재귀성’(Reflexivity) 이론을 기반으로 퀀텀펀드(Quantum Fund)를 설립, 고수익, 고위험 투자방식을 고수하여 10여 년간 무려 4200%의 수익률을 기록한 사람.
1992년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을 예측하고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파운드화를 공매도, 결국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영국 중앙은행의 백기투항을 받아내고 약 일주일 만에 약 11억 달, 우리 돈 1조 2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남자.
1997년 우리나라의 IMF 사태로 대표되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환투기'로 거액을 챙겨 나간.
그리고 1993년 소로스가 금광을 개발하는 미국의 광산업체의 주식을 매수했다는 소문만으로 전 세계 금값을 폭등시킨 괴물.
‘투자의 천재’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금융투기꾼’, ‘사기꾼’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는, 미국의 정치권을 등에 업고 영국이나 일본, 한국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까지 환투기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제3세계 국가의 빈민이나 민주화 운동가들을 돕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
이른바 ‘사악한 구세주’
그가 바로 조지 소로스다.
때문에 나는 처음 하버드 스퀘어의 허름한 신문 판매상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온몸이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을 이용한다면 단 시간, 불과 몇 주 아니 며칠 만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감돌았다.
물론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1997년 외환위기, 그 당시 그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그러했듯 우리나라에 환투기 공격을 가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당시 한국에서 IMF를 극복하기 위해 헐값에 내놓은 기업과 빌딩들을 사재기 해 수천억을 차익을 챙겼다는 것 정도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조지 소로스라는 존재, 이 사무치게 영리한 사냥개를 따라간 사냥꾼치고 손해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그를 따라 그가 노린 먹잇감의 몸과 다리를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단시간에 수십, 수백억 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하필 타겟이 일본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미국에 있는 회사들.
예를 들어 올해 윈도우 95를 발표하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아이폰에 대한 첫 구상이 나오기 시작한 애플. 올해 초 창업한 아마존이나 이베이 그리고 구글 같은 회사들을 쓸어 모으기 위해 소르스의 일본 침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를 통해 낚시에 필요한 미끼, 투자자금을 만들어 내기로 한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모조리 다 쓸어 모아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가질 수 있는 이익이 작아질 테니까.’
고개를 들자 내가 내민 신문을 훑어보던 이어진이 조심스레 신문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 살짝 놀란 기색이 감도는 그의 눈동자를 보니, 그 또한 내가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았다.
“너 설마. 이걸 노리는 거야?”
“이거라뇨?”
“시치미 뗄 거야? 조지 소르스 이거 노리는 거 맞잖아. 안 그래?”
빙고.
사장 자리 달더니 눈치가 좋아졌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맞아요. 정확하게는 조지 소로스의 일본 침공을 이용할 생각이에요.”
그러자 잠시 멈칫하는 이어진. 그가 뭔가를 생각하듯 입을 꾹 다물더니 묵묵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지 소로스라··· 조지 소로스··· 그래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충분하지.”
천천히 혼잣말을 해 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어진, 그의 모습을 보니 그 또한 조지 소로스의 위명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가 모르고 있는 게 더 이상하겠지.
그 또한 벌써 몇 년째 금융시장 밥을 먹어온 사람, 그것도 일반적인 증권사 직원이 아닌, 갈라파고스화된 우리나라의 금융 체계 하에서 어떻게든 선진 금융 기법들을 대입하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실무적인 부분, 그러니까 조지 소로스가 자금을 운용한 방법이나 그 방법의 복잡성 같은 실무적인 영역에 대한 지식은 아마 나보다 그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뭐 그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이어진이 이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 봐.”
“왜요?”
“보여 줄 게 있어.”
그리곤 빠르게 사무실 한쪽 캐비냇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 그가 캐비넷 안을 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제법 두꺼운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 여기 있다.”
“그게 뭐예요?”
내가 묻자 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조지 소로스. 그 사람 투자 기법 분석 자료.”
뭐?
나는 이어진이 내민 자료를 받아 살펴보았다.
그러자 조지 소로스가 지금까지 해 왔던 투자들, 그러니까 그가 퀀텀 펀드를 만든 뒤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투자들의 규모 그리고 그 투자가 가능했던 배경, 상세한 투자방식과 그 결과 같은 것들을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한 자료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건 또 언제 정리 해 놓은 거예요?”
“만사 불여튼튼 한국에 있을 때 혹시 몰라 준비했었지.”
거참,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나라에 을지로 천리안. 5,000만원이란 얼마 안 되는 자본금으로 10년 만에 5천억원을 벌어들인 사람다웠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내가 조지 소로스 이어진이 정리한 자료를 훑어보고 있을 때, 이어진이 슬쩍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준영이 너 혹시 너 소로스 펀드에 직접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응?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가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소로스의 퀀텀 펀드에 들어갈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수천만에서 달러는 필요하거든, 뭐 돈이 있어도 인맥이 없다면 불가능하고.”
아······.
그것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해지펀드(Hedge Fund). 그러니까 개인이 수익을 목적으로 모집하는 투자신탁은 일반적으로 100명 미만의 투자가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이뤄진다.
그런 만큼 소로스가 운영하는 헤지펀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로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도의 인지도와 영향력 그리고 자금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국가를 움직이는 자금.
한 국가의 중앙은행을 공격해 수익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공격적 투자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체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1992년 소로스가 영국 중앙은행을 공격할 때 운용했던 자금은 대략적으로 100억 달러. 그러니 거칠게 계산해도 한 사람당 1억 달러 정도 이상의 자금을 유용할 수 있는 큰손들이라는 이야기지.’
그러니 이어진의 말대로 아쉽지만 지금으로선 소로스의 일본 침공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뭐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가 노리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파이가 바로 소로스인 것이다.
물론 직접 노린다는 전제 하에.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소로스 펀드에 직접 투자할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슬쩍 자료를 넘기며 말하자, 그가 이채를 띤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 물론이죠. 애초에 손에 쥐지 못할 걸 바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흐음···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혹시 다른 펀드를 노리는 거야? 뭐 들어보니 소로스가 움직이면 그에 따라 움직이는 헤지펀드 수가 만만치 않다고 하긴 하던데?”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내 말에 이어진의 얼굴이 일순 묘하게 변한다.
잠시 고요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너 설마···?”
크게 떠진 눈동자, 혹시나 싶은 표정. 아무래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설마··· 너 직접 운용을 하려는 거야?”
거 참, 오늘 감 좋네.
아니면 그만큼 오래 붙어 있었다는 건가?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러자 이어진이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미국에서, 그것도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하겠다고?”
“물론이죠. 파이를 키우는 게 좋잖아요.”
“···정말로?”
“네. 정말로요.”
일순 이어진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처음에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모습.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이 어리더니 이내 천천히 표정이 풀렸다.
“···오늘부터 고생 좀 하겠네.”
아무래도 그 동안의 경험이 그를 강하게 만든 것 같았다.
“하하, 잘 생각하셨어요.”
“후, 잘 생각하기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깜깜하기만 하구만.”
그렇게 잠시 나를 흘겨보던 이어진이 이내 피식 웃으며 나를 마주보았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조지 소로스 따라서 엔저 쪽으로 배팅할까?”
그의 눈에는 일단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분명 내가 가져온 기사나 그 간의 엔화가치 변동 폭으로 봤을 때 현재 소로스가 노리는 것은 미국달러화의 강세, 엔화 가치의 하락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가 말한 대로 나 또한 소로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옳았다.
조지 소로스. 지난 30년간 불패의 신화, 투자의 신화를 이룩한 거인. 그의 발자국을 따라 간다면 손쉽게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어진 또한 그걸 기대하고 있는 거 같고 말이야.’
하지만.
“글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의 일순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과 다른 내 말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분명 상식적으로 보면 소로스의 뒤를 따르는 게 맞겠죠. 그런데······.”
“그런데?”
불편한 기색이 감도는 이어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조지 소로스의 예상이 틀렸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