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261화 다이나믹 코리아 (2)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미국 첨단산업, IT 산업과 벤처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자 1939년 HP가 처음 이곳에 둥지를 튼 이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명멸해 간 곳. 나스닥 시장의 활황 이후 어마어마한 활기를 띄기 시작한 곳. 이곳에 어느 날 한 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그것은 바科? 재신(財神). 실리콘밸리라는 대지에 어마어마한 자본을 가진 재신이 도래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아니 요즘 들어보니까 누가 돈을 물 쓰듯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아니 누가?”
“누군지는 모르지. 뭐 들어보니 동양에서 온 사람들이라던데… 거 참 스케일이 커. 벌써 제법 굵직한 회사들이 넘어간 모양이야.”
물론 실리콘 밸리, 나스닥의 세례를 받은 대지인 만큼 이곳에 자본의 폭격이 도래하는 경우는 왕왕 있어 왔다. 그동안 돈을 찾아 이곳에 도래한 재신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신은 좀 특이했다.
“흐음, 그래? 아니 어떤 회사들이야?”
“제법 많아. 밸브 콥, 시에라 스튜디오, 트라이온까지 전부 다 넘어갔다던데?”
“어? 그래? 아니 그런데 다들….”
이번 자본의 폭격은 게임사로 국한되었던 것이다.
“그래. 다들 게임사들이지.”
그러자 처음엔 별 반응이 없던 회사들, 실리콘 밸리 안에 있는 게임사들이 차츰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거 우리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하, 모르는 일이야 모르는 일. 그냥 뜬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자본의 힘, 그것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일이었으니까. .
“그렇지만 뜬소문이 아니라면 대박이잖아. 젠장, 요즘 가뜩이나 돈 없어 죽을 거 같았는데 이 기회에 한번 원 없이 게임 개발이나 해 봤으면. 제발….”
그리고 그 소문은 실리콘 밸리 한쪽 샌프란시스코 만 깊숙한 곳에 자리한 게임사.
‘워 크라이’, ‘스타 포트리스’ 등 게임계에 큰 획을 그은 게임을 여럿 개발해 제법 큰 이름을 얻고 있는 게임사인 화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에까지 다다랐다.
*
“빌어먹을.”
크리스 크라일러,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게임 개발사 ‘화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이자 CEO인 그는 오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오늘 아침 걸려온 전화, 자신들을 오라클이라 소개해 온 회사의 전화 때문이었다.
‘헬로? 크리스 크라일러 씨 맞으십니까?’
‘네. 제가 크리스 크라일러입니다만 누구신지?’
갑작스럽게 그에게 걸려온 전화, 그것은 자신의 회사 화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오라클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 이어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하의 회사를 인수하고 싶어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순간, 그가 탕- 운전대를 내려쳤다.
아침에 걸려온 전화를 생각하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내 회사를 사고 싶다고?”
그가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바람에 약간 운전대를 삐끗해 자칫하면 중앙선을 넘을 뻔했다.
“으앗 젠장!”
그렇게 다시 운전대를 바로잡은 크리스 타일러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휴우…….’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가 회사를 처음 창업하고 1994년 ‘워 크라이 : 오크와 인간’을 발표, 히트를 쳤을 때에도 이런 식의 전화들이 오고는 했었다.
‘워 크라이 : 오크와 인간’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본 자본가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에게 기업 인수를 제의해 온 것이다.
‘화이트스톰 전체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공모가에 더블로 쳐드리죠. 어떻습니까?’
‘크리스 크라일러 씨의 지속 기용을 보장하겠습니다. 저희에게 파시죠.’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그 제안을 거절해 왔었다.
게임에 G도 모르는 것들이 단지 돈을 쫓아 자신의 회사를 건드릴 때마다 본능적 혐오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왜…?’
‘제 회사를 아무에게나 팔고 싶지는 않아서요.’
물론 그렇다고 그가 돈, 자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게임을 모르는 자가 게임을 만들어선 안 된다. 그래서는 그리 오래 갈 수 없어. 게이머들이 그런 게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걸려온 그 전화, 자신을 오라클이라 밝힌 이들의 전화를 단박에 끊어 버렸다.
‘1억 달러! 그 이상이 아니면 팔 생각 없습니다! 그만 끊지요.’
이렇게 단칼에 거절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후.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크리스 크라일러 그가 회사에 도착, 곧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그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뭐지?’
그것은 바로 텅 비어 있는 개발실의 모습.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아니 내가 시간을 잘못 안 건가?’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게임의 런칭, 화이트스톰의 신작 ‘스타 포트리스’의 확장판이 ‘스타포트리스 : 브루드워’의 개발, 런칭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인 만큼 평소라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회사 전체가 소란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상한데?’
때문에 그는 개발 부서 책임자에게 전화를 거는 한편 개발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혹시나 개발실 인원들 전원이 게임을 하러 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다들 어디간 거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찾아서.
‘…이겨! 제임스 지면 안돼!’
‘…아니 이런 게임을 지면 그게 말이나 돼냐!’
‘이번 판도 지면 너희들 다 개발팀에서 아웃이야!’
그리고 잠시 뒤, 개발실 안쪽으로 들어간 그는 눈을 동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앞에 기함할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그것은 바로….
“세상에 저게. 저게 된다고?”
“말도 안 돼. 아니 저기서 저런 플레이가 나온단 말이야?”
“게임 디자인한 사람 누구야? 누가 해병한테 저런 기능 넣으래?”
“아니 유닛을 저렇게 겹치는 게 말이 된단 말이야?”
1 : 7.
마치 할리우드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처럼 생긴 동양인 소년 한 명이 숨 막히게 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개발팀 인원들을 박살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니 우린 저런 기능 넣은 적도 없다고!”
그것도 그들이 개발, 이제 얼마 뒤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게임 ‘스타 포트리스 : 브루드워’를 통해서 말이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리고 잠시 뒤.
“으아아아! 젠장 더 이상 무리야!”
7:1 상황에서 안긴힘을 쓰던 마지막 선수가 게임에서 패배를 선언했다.
그러자.
“끝!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를 끝낸 소년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크리스 크라일러, 그를 향해 다가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리스 크라일러 씨?”
“어, 어어 네. 그렇습니다만?”
“반갑습니다. 오라클의 김준영입니다. 당신의 회사를 사러 왔습니다.”
그리고는 가볍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1억 달러에 말이죠.”
순간, 크리스 크라일러의 얼굴이 청동처럼 굳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
“아니 너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이어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슬쩍 돌아보니 그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우리는 PC 게임의 명가 ‘화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의 인수 협약을 맺고 오는 길이었다.
“뭐가요?”
“아니 너 게임 말이야. 게임. 도대체 언제 그 게임을….”
그가 놀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 회사로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는 놀랄 만도 하지.
생전 게임이라곤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그것도 아직 런칭도 하지 않은 게임을 능숙하게 한다면 누구나 다 그런 표정을 지을 테니까.
하지만.
‘처음하는 것도 아닌데 뭐.’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저 게임을.
뭐 그렇다고 그 게임을 미친듯이 팠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를 살아온 만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저 게임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과거, 스타 포트리스를 할 줄 몰랐던 사람은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 정도였으니까.
‘예전 스타는 거의 윷놀이 급이었지. 내 나이 또래치고 스타 못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하긴 했다.
아니 수십 년 지난 후에도 그래 정말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스타는 대한민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뭐 그 게임 나온 지 좀 됐잖아요. 그래서 연습 좀 했죠.”
“아니 그게 좀 연습해서 되는 거란 말이야?”
“물론이죠.”
“……들어보니 개발자들도 듣도 보도 못한 모양이던데?”
“하하 개발자들이 의외로 게임을 못하더라고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게임을 좋아하고 또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이라고 게임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들 한국인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이었지.’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거 참. 이게 뭐 믿기지는 않지만 그게 사실이니….”
“하하, 그렇죠. 그런데….”
“왜?”
“여기가 이제 마지막인가요?”
내가 묻자 잠시 자신의 자료를 살피는 이어진, 그가 천천히 체크를 시작했다.
“가만 보자… 시에라 스튜디오는 다른 직원이 갔고. 밸브도 이미 처리했고.”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자료를 헤아리던 이어진, 그가 이내 탁- 자료를 덮었다.
“오케이 여기가 끝이야.”
그 소리에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여기가 끝이라는 말, 그 말에 곧 우리가 미국에서 해야 할 일이 이제 끝이 났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빨리 끝났네요?”
“뭐 누가 값을 후하게 쳐 줬으니까. 아마 그 사람들 지금쯤 복권 맞은 기분일걸?”
그가 약간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후한 값을 쳐 게임사들을 사들인 것이 걱정되는 것 같았다.
하긴 뭐 일반적인 인수합병의 규모보다 더 후한 값을 치르긴 했으니까.
하지만.
“글쎄요. 복권을 맞은 게 누구일까요?”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얼마 뒤면, 게임이라는 산업, 그 산업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분명 가치 절하 당하고 있는 게임산업 나중엔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마따나 내가 단 돈 1억 달러를 주고 사들인 화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 또한 얼마 뒤 457억달러가 넘는 가치를 지니게 될 테니까.
‘이른바 당첨이 확실한 긁지 않은 복권이지.’
그리고 그 복권이 터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한국으로 가죠.”
대한민국이라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