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 318화 팔아 드립니다 (2)
판다.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권을 판다는 나의 말이 나온 그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뭐, 아니 그 무슨….”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어떻게….”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때.
“그만.”
정영주 회장 그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이 잠잠해졌다.
“그래서. 판다? 못 먹는 고기를?”
방금 전 그의 얼굴에 떠돌던 회한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짙은 흥미가 감돌고 있었다.
“네. 팔면 됩니다. 우리가 고깃덩이를 인수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그 말에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정영주 그가 슬쩍 입을 열었다.
“하지만 푸줏간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어. 집주인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의 말은 타당했다.
분명 그 물건은 쉽게 팔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거야 푸줏간 주인과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이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을 때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것 또한 그 두 사람이 진심일 때의 일이었다.
그러자 일순 그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
아무래도 내 말에 약간은 당황한 것 같았다.
“아까 말했듯 그의 진심은 평화에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적절한 공포가 효과적이죠. 그만큼 그는 개의치 않을 겁니다. 돈만 된다면. 자신이 하사한 고깃덩어리를 남측이 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자 잠시 멈칫하는 그, 그가 이내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가능할까?”
고요한 눈, 그 안엔 작은 열망이 담겨있었다.
“가능합니다. 뭐 핑계야 만들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를 보며 나는 조금 소리를 높였다.
뭐 내가 말한 대로 핑계는 많았다. 어차피 그 둘의 입장이 다른 이상 명목상의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좋아. 그런데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뭐 국민 정서도 문제가 되긴 하지만… 어차피 국민들에게 중요한 건 누군가가 진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진행되느냡니다. 주체는 중요하지 않겠죠.”
“하지만 집주인은 싫어할 텐데? 손이 많이 간다 생각할 테니까.”
“뭐 그런 문제가 있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네. 어차피 몇 개월만 버티면 됩니다. DJ 그 사람이야 어차피 곧 집을 팔고 떠날 사람 아닙니까.”
그러자 그 순간, 정영주 그의 얼굴에 일순 쓴웃음이 맺혔다.
그리고는 이내 허허, 가벼운 웃음이 지나갔다.
“자네… 아직 스물도 안 된 거 맞나?”
“그렇습니다만.”
“아니 그런 사람이 떨리지도 않아? 무려 노벨상이야 노벨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사람들은 통일이 될 거라 소리치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아무런 떨림이 없는 건가?”
그가 약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차, 이거 너무 감흥이 없었던 건가?
하지만 뭐 앞으로 남북 분위기가 경색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DJ가 받은 노벨 평화상의 가치 또한 한계를 드러낸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일반적인 어린 아이의 모습은 불가능했다.
“물론 떨리죠.”
“떨린다고?”
“네.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테니까요.”
순간,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거참, 어째 나이가 드니 더 능글맞아진 것 같아. 그래도 예전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던 정영주, 그가 이내 탁- 테이블을 두드렸다.
“뭐 좋아. 자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고.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이내 천천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 고깃덩이는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놈에게 팔 생각이지?”
번뜩이는 눈동자, 나는 그 시선을 마주보며 말했다.
“골라 보시죠.”
“골라?”
“네. 누가 제일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 말은?”
나는 슬쩍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리가 타겟을 고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골라 보시죠. 기왕이면….”
나는 말을 맺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잠시 뒤.
“이러기 위해서였군.”
정몽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영주 회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자리에 남은 사람은 나와 정몽진 둘뿐이었다.
“놀라셨습니까?”
“조금은. 하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네. 아버지 같은 사람 밑에 있다 보면 이런 일엔 면역이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는 슬쩍 나를 향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행은. 익숙할 뿐이니 놀라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네. 충분히 놀랐으니까.”
그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처음 나를 찾아 왔을 때 여기까지 본 건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아니. 절대로.”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입을 열진 않겠습니다.”
“이 사람….”
그렇게 잠시 내려앉은 침묵.
그 사이를 정몽진의 말이 끼어들었다.
“자네… 자네와 나는 가족이지?”
그의 시선에서는 일단의 우려가 깃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행동, 나의 말에 대해 약간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가족이 될 겁니다. 큰일이 없는 한 말이죠.”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정몽진, 그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큰일이 없도록 해야겠구만.”
그리고는 슬쩍 정 회장이 사라진 2층을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향했다.
“일단 아버지의 허락은 떨어졌네. 건설은 자네의 손에 담겼고. 나 또한 최대한 돕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타겟은 고르셨습니까?”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겟.
썩은 고깃덩이, 하지만 아직 외관은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 그것을 먹을 대상. 배탈이 날 대상이다.
“맞춰 볼까요?”
그와 나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한 회사의 이름이 입에 걸렸다.
“삼성.”
“삼성.”
나와 그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야심 있는 사람이란 언제나 밟고 싶은 법이지.”
“간단한 비즈니스일 뿐이죠.”
“그런데 그들이 받아들일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으로 한동안 북한 사업은 호조로 보일 테니까. 거기다 일등이 하던 일입니다. 그 아래 있는 이들로서는 하기 싫어도 하고 싶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조금은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데?”
아무래도 약간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럴 만했다.
아무리 우리가 팔기 위해 노력한다손 치더라도 그쪽에서 사지 않으면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방법이 있는 건가?”
“만약 대북사업이 실패한다면 왜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거야… 아까 자네가 말한 대로 불안정한 정세 때문이겠지. 만약 위쪽에서 일이 생기면 사업 자체가 스탑될 테니까.”
“그렇죠. 그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라는 시장을 버려야 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천천히 그와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안전장치?”
“네. 안전장치. 북한 지도자들의 목에 목줄을 건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살짝 커진 눈 그의 눈에 기대가 어린다.
“그렇다면….”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우리는 전설이 될 겁니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0년의 막바지.
대한민국에서 7,961km 떨어진 북해의 진주, 노르웨이 오슬로에선 한가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왕 폐하, 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바로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자 민주화운동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로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자리에 오른 것이다.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 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 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약간 불편한 모습, 지팡이를 짚은 채 연단에 선 그가 천천히 수상소감을 발표한 그 순간, 대한민국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Y2K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딸기공듀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nayo241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어진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어진 님이 ‘달풍선 100,000,000개’를 뿌리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그의 노벨상평화상 수상, 그것은 곧 김대중 대통령 그가 레흐 바웬사,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넬슨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도자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그의 정책, 지난 몇 년간 대북기조였던 햇볕 정책의 성과가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nayo241 : 아니ㅋㅋㅋㅋㅋ 달풍선 갯수 뭔데?]
[레고때렸어 : 그러게ㅋㅋㅋㅋㅋ 저게 노벨상 상금보다 더 많겠는데?]
[땃쥐 : 미친 ㅋㅋㅋㅋ]
[오라클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라클 님이 ‘달풍선 10,000,000,000개’를 뿌리셨습니다]
[Y2K : 헐]
[딸기공듀 : 헐]
[nayo241 : 헐]
그러자 대한민국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 - 한X일보]
[노벨 평화상 수상식, 김 대통령 ‘이 영광을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 조X일보]
[각국 정상들 일제히 축하 메시지 전달, 김 대통령의 수상은 ‘민주’의 승리 ? 중X일보]
일단 가장 먼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구더니 이내, 관련주가 또한 상승일로를 걸었다.
[현대엘리베이터 45,000▲500]
[현대건설 67300▲1100]
[현대엔지니어링 25700▲700]
얼마 전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본궤도에 오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전력사업,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임진강 댐, 금강산수자원 개발 등 수십조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7대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사람들의 기대가 몰려들면서 대북 사업의 첨병 역할을 해왔던 현대그룹, 그들의 주가 또한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한성, 오라클 주식들 위주로 사 들여!”
“아니 오라클은 또 왜?”
“그치가 현대그룹 회장으로 들어갔다며! 그러니까 뭔가 액션이 있을 거 아니야!”
아니 말마따나 근 50년간 지금처럼 남북 간의 관계가 좋았던 적은 또 없었으니까.
“빌어먹을 얼마나 사야 하지?”
“총알이 있는 대로 모두 다. 지금 샀다 어깨에 팔아도 이득이야!”
그러자 처음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비웃던 사람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냉소를 보내던 기업들 또한 슬금슬금 움직여 나갔다.
‘뭔가 이뤄지고 있다’
‘뭔가 이뤄지려 하고 있다’
‘이러다가 혹시?’
라는 생각에 그들 또한 꼬리를 잡으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재영아 이거, 심상치 않지?”
“네. 회장님. 뭔가 이뤄지려는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숟가락이나 얹을 걸 그랬어. 아니 정영주 그 영감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줄 알았느냐 말이야.”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늦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연계를 해 대북 사업에 참여를 한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대북사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고 위험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와서 꼬리나 잡고 들어가자고?”
“그래도 지금이라면….”
“됐어. 차라리 다른 사업에 집중하는 게 더 나아. 지금 들어가는 건 하수다. 하수. 넌 있는 사업체 관리나 잘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가지 소문이 돌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것은 바로….
[오라클, 현대그룹과 함께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개발사업 협상 착수! 무려 10조 원대의 사업에 중국 또한 고무적인 반응! - 한성일보. 2000. 11. 30]
오라클이 대북사업에 참전한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