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화 거대한 기회 (3)
“골드만삭스! 100억 원 추가 매도했습니다!”
“한국은행 70억 원! 방어했습니다!”
“타이거 150억 더 들어갑니다!”
“한은 쪽에서 100억 원 따라갑니다!”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환율.
지난 일주일간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던 환율이 1달러당 1,000원대를 넘는 순간, 그야말로 난리, 난리가 나 버렸다.
“드디어! 드디어! 1,000원! 원화 환율이 1달러당 1,000원대 넘었습니다.”
“뭐 정말이요?”
“그렇다니까요! 현재 달러당 1,005원입니다!”
불과 일주일이 조금 넘는 기간, 주말을 빼면 얼마 되지 않는 그 기간 안에 한국은행의 1차 방어선을 넘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달러(USD) / 원화(KRW) 999.50 ▲ 1.20]
↓
[달러(USD) / 원화(KRW) 998.10 ▼ 1.40]
↓
[달러(USD) / 원화(KRW) 1001.00▲ 2.90]
“해냈습니다! 우리가 방어선을 뚫었어요.”
“소로스씨 쪽에서도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환율 유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타이거 펀드 쪽에서도 연락 왔습니다!”
“골드만삭스 쪽에서도요!”
물론 내가 보기엔 이제 1,000원 선, 이제야 비로소 한 고비를 넘은 것에 불과했지만 미래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 커다란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들로서는 한 국가, 동남아 국가도 아닌 OECD국가 중 하나 대한민국의 1차 방어선을 뚫고 공략의 요지를 선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보스! 들으셨어요?”
“뭐가요 레이첼? 설마 환율이 1,000원대 넘은 거요?”
“네! 정말 축하드려요 보스! 세상에 일주일 만에 1,000원이라니 적어도 한 달은 족히 걸릴 줄알았는데….”
때문에 나도 그에 발맞추어 사람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한 국가, 내가 살아온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에 이렇듯 즐거움을 표한다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잘 달리는 말의 다리를 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약속했던대로 10만 달러씩을 성공보수로 돌리도록 하죠.”
“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 제안은 분명 첫날….”
“뭐 시간이 아주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상관없어요. 어차피 목표 자체가 중요했던 약속이었으니까요.”
“…진심이십니까?”
“물론 진심이죠. 하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니 다들 조금 진정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본격적인 경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한층 더 열의를 가지고 이번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라지 않은가.
“보스. 당신은 정말이지….”
“하하,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이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뤄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공략에 무조건적인 승리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원화 환율이 1,000원 선에 다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정확하게는 1,000원 선에 다다른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타이밍.
1,000원 선이라는 심리적 방어선이 붕괴된 것에 화들짝 놀란 한은 측에서 대규모의 자금을 풀어 1,000원 선까지 올라간 환율을 강제로 끌어내려 버린 것이다.
[한국은행 500억 원 매수 주문]
[한국은행 700억 원 매수 주문]
[한국은행 1,000억 원 매수 주문]
그러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환율의 벽을 넘은 것에 축배를 들고 있던 만큼 다들 현재의 상황에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젠장! 큰일 났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은행 쪽에서 칼을 뽑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 벌써 1,000선 무너졌어요!”
“아… 안 돼! 원화 환율 990원대로 내려갑니다!”
“이대로라면 곧 980원 대로 추락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스! 지시를!”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애써 넘은 성벽이 또다시 세워지는 느낌을 테니까.
“젠장, 하필 이때.”
“후… 일주일 동안 정말 간신히 올려놓은 거였는데….”
하지만 나는 그저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1,000원이라는 선.
심리적, 경제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이상 이제 원화, 대한민국 화폐의 추락은 막을 수 없는 일, 불 보듯 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네? 아니 보스 하지만 환율이….”
“걱정 마세요. 1천 원 선이 무너진 이상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네? 정말요?”
어차피 이제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눈치를 보고 있던 짐승들이 움직일 테니까 말이다.
“네. 정말이고 말고요. 어차피 우리가 아니어도 이제 대한민국에 눈독을 들일 사람들은 많을 거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의 일 또한 내 예상과 같았다.
원화 환율 1,000원 선이 붕괴된 지 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돈 냄새를 맡은 짐승들.
조지 소로스를 따라 대만을 습격했던 메뚜기떼들이 이내 슬쩍 진로를 바꿔 한국으로 달려들더니, 이내 외환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카이펑 뱅크. 500억 원 매도주문]
[신도 은행. 300억 원 매도주문]
[아메리칸 머셔너리. 400억 원 매도주문]
원래 돈을 만지는 이들의 후각은 예민한 편이었으니까.
“어때요? 걱정할 것 없죠?”
“그, 그렇네요?”
물론 그렇다고 소로스의 공격을 따라 주공인 대만을 공격하던 이들이 모두 다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격은 제법 거셌다.
말마따나 시종일간 두드려도 흔들릴 기색이 보이지 않는 대만보다는 슬쩍슬쩍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한국이 더 만만하다 생각한 이들이 많은 것이다.
뭐 이 당시 대만의 외환 보유고는 850억 달러 정도,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는 250억 남짓한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대부분 눈치 챘겠지. 중앙 은행의 대응 속도는 물론 환율의 변동폭까지 모든 것이 차이가 났을 테니 말이야.’
모두 다 배후가 든든하지 못한 국가의 한계였다.
“보스. 그런데 이번엔 그거 안 보내는 건가요?”
“뭘요 레이첼?”
“그… 있잖아요. 오라클의 이름으로 보내는 그거….”
“아, 메시지요?”
“네. 보내지 않으실 건가요?”
“네. 지금은 보내지 않을 거예요. 이번 일엔 시나리오가 따로 있으니까요.”
그 결과.
10월.
12월로 예정된 제15대 대선.
기호 1번 이회창.
기호 2번 김대중.
기호 3번 이인제.
기호 4번 허경영.
대선 주자들이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칼날을 곧게 세우며 서로를 향해 견제를 지속하던 그때, 또다시 환율이 마지노선을 넘었다.
1달러당 1,000원.
상징적인 숫자.
한차례 월담을 했던 그 숫자로 드디어 환율이 넘어가더니 이내 로켓이 솟아오르듯 환율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보스! 넘었습니다!”
“1,000원이요?”
“네!”
[달러(USD) / 원화(KRW) 999.50 ▲ 1.20]
↓
[달러(USD) / 원화(KRW) 1001.00▲ 1.00]
↓
[달러(USD) / 원화(KRW) 1003.10▲ 2.10]
‘해외 금융기관들의 단기 채권 만기 연장 거절에 우리의 공격,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경제 전망까지. 아마 골치 꽤나 아프겠네.’
그리고 그 추락은 고스란히 나의 이익으로 치환되었다.
“레이첼, 현재 환율이 얼마죠?”
환율의 마법.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버는 시기가 도래가 도래한 것이다.
“현재 1100원 대를 넘었어요! 정확하게는 1105원이요!”
순간, 나는 손가락 끝이 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원화 환율 1100원.
며칠 전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무려 200원이나 올라간 금액.
본디 900원 대에서 미적거리던 환율이 1100원대로 올라갔다는 말은 곧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외환의 가치가 200원만큼 올라갔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 불과 며칠 사이 앉은 자리에서 수천억의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말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앞으로 벌어질 일.
환율 붕괴.
그것이 이뤄진다면…
‘내가 들고 있는 돈으로 나라를 살 수도 있겠지.’
그러자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는지 아니면 이제야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는지 나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그들이 나에게 계약의 조정 여부를 문의해 왔다.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다시 계약을 물러달라는 제안을 들고서.
“김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계약 해지의 위약금으로 저희가 빌려드린 자금의 5%를 드릴 테니 어떻게 좀….”
“김 회장님. 저희 쪽에서는 10%까지….”
“김 회장님. 저희 쪽에선….”
하지만.
나는 나에게 들어온 제안들.
나와 그들의 계약을 없던 일로 하자는 그들의 제안들을 단박에 거절해버렸다.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뭐 그들이 제안한 위약금의 비율이 제법 크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 하지만 회장님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 귀측에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10%의 위약금이라면 솔직한 말로 1천억 원에 가까운 자금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제 얼마 뒷면 내가 쥐고 있는 달러는 금덩이가 되고 그들이 쥐고 있는 원화는 휴지조각이 될 테니까.
“다시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머저리가 아니거든요.”
“그런…….”
“그럼 살펴 가십시오. 기회가 된다면 3개월 뒤에 다시 뵙도록 하죠.”
뭐 그때까지 그들이 남아 있다면 말이지.
“…….”
아무튼 그렇게 떨어지는 환율, 그리고 환율과 반대로 점점 차오르는 주머니를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보스!”
누군가 대한민국 오라클 본사로 나를 찾아왔다.
“네. 레이첼 무슨 일이죠?”
“그게… 보스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손님이요? 흐음 오늘 약속이 있었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누구죠?”
일순 레이첼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보스 할머니가….”
응? 누구? 내 할머니?
김귀란 지금 여길 찾아왔다고?
그동안 여러 번 나에게 찾아오라는 언질은 몇 번 주었지만 그때마다 바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었기에 지난 몇 달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아니 말마따나 한두 푼이 움직이는 상황이었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녀가 찾아오거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이후로는.
왜냐하면….
‘그 사람은 부리는 자니까.’
그런데 그런 양반이 지금 나를 찾아왔다고? 오라클로 직접? 아니 그 자존심 강한 양반이?
흐음, 그렇다는 말은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본디 사람이란 잘 변하지 않는 존재니까.
“왜 왔는지 이유는 이야기하던가요?”
“아뇨 다만….”
“다만?”
“…제 추측으로는 외환을 빌리려고 오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래도 요즘 한국 내 자금 사정이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순간, 내 입가에 짙은 미소가 맺혔다.
왜냐하면.
“이자가 제법 비쌀 텐데요?”
준영론은 절대로 저렴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