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237화 빈 부대를 채우다 (1)
쌍호자동차의 대한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다.
그동안 쌍호자동차의 터줏대감이라 으스대며 자신들의 권력을 무한정 휘두르던 이들.
쌍호자동차의 인적, 물적 재산을 마치 자신의 것인냥 사용하던 자들이 완전히 갈려 나갔다는 소문에 경제계 인사들이 모일 때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 소식 들었어? 쌍호자동차에서 피바람이 불었다는데?”
“피바람?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이 사람 이렇게 소식이 깜깜해서야. 이번에 그 있잖아. 오라클이라고 그 회사 회장이 쌍호차 대가리들을 아주 무 자르듯이 잘라 버린 모양이야.”
그러자 처음엔 오라클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오라클의 쌍호차 인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오라클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허허 거 참 신기한 일이구만. 아니 그쪽에서 순순히 잘려 줬대?”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오라클이 시도한 방법.
단박에 상처를 후벼 파 병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도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그 방법을 성공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이 바닥엔 무죄인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흔들다가 단번에 잘라 버린 모양이야. 왜 삼국지에도 그런 방법 나오잖아 동쪽 성벽을 치는 척하다가 서쪽 성벽을 넘는 거. 아, 그 뭐라고 하지?”
“성동격서. 그런데 정말 그 방법을 썼다고?”
“그렇지 듣기로는 뭐 인수위원회다 뭐다 정신 못 차리게 하고 정보를 모았더라고 그리고 그대로 후려쳐 버린 거지. 허 참 아무튼 대단해. 대부분 생각은 해도 실행에 옮기지 못 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 모든 이들이 오라클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오라클의 쌍호차 물갈이가 꽤 대단한 일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의 기업들, 그 기업의 기업가들은 오라클의 선택, 김준영의 선택을 비웃었다.
김준영의 방법이 쌍호차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결단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 사람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판단한 것이다.
“뭐? 구국의 결단? 임원들을 잘라서 회사를 정상화시킨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게나 말이야. 아니 말마따나 대가리를 잘라 놓고 회사가 잘 돌아가기를 바랄 수가 있나. 그저 제 식구 자리 몇 개 만든다고 쳐 버린 거지. 멍청하게 말이야.”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 있게 말했다.
이것은 오라클의 욕심이다.
이번 일은 오라클의 ‘구국의 결단’이 아니라 오라클이라는 모회사 사람들을 자회사에 꽂아 넣기 위한 ‘자리 만들기’에 불과하다.
이제 오라클 쪽에서 자신의 사람들을 꽂아 넣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면 끝.
어느 정도 남은 이들을 위무하며 기업이 망가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입맛에 맞게 회사를 세팅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분명 그렇게만 생각했다.
얼마 뒤, 오라클 김준영 회장의 인터뷰가 뉴스를 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오라클 김준영 회장 ‘쌍호차 내부에서 쌍호차 인사를 진행할 것. 충분한 능력만 있으면 경쩔? 관계없이 각 직책에 임명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퇴직자들 가운데서도 인재를 찾겠다.’]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선언이었다.
*
인사발표.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
쌍호자동차의 인사발표 소식에 회사가 전체가 들썩거렸다.
“이번엔 올라갈까? 이번엔 올라가겠지?”
“아, 진짜 난 대리만 5년차라고 이번엔 진짜 올라가야 해.”
“언제 뜨는 거야! 좀 빨리 떴으면.”
기존에 있었던 똥차들이 대규모 물갈이 된데다가 이번에 있었던 김준영의 인터뷰, 빈자리를 회사 내 인원들로 채우겠다는 선언에 잔뜩 고무된 것이다.
“아,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엔 무조건 된다! 무조건!”
“하느님 아버지 알라님 부처님 제발 진급 좀 하게 해 주세요!”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 홀로 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이서문.
25년차 만년 차장으로 쌍호자동차가 아직 쌍호차의 간판을 달기 전부터 이 회사에 머물러 있던 사람이자 지난 25년간 쌍호자동차의 이곳저곳, 전국 방방곡곡,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쌍호자동차의 성장 최일선에 서 있던 남자.
이른바 고인물, 닳고 닳은 쌍호맨이었다.
“후…….”
그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시각, 이 시점에 나온 인사발표 소식에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들떠 있구나…….’
사실 일반적인 차장들의 경우 지금쯤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맞았다.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했을 진급도 이번에는 가능. 일반적이라면 차일피일 미뤄졌을 진급도 이번에 우수수 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별 의미 없지.’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기대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기대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의 진급이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었으니까.
왜냐하면 그의 나이 50살.
이미 일반적인 차장의 진급평균을 한참이나 넘긴 상황, 웬만한 부장급들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이니만큼 자신이 오너라도 올해로 50세를 맞은 25년차 만년 차장을 부장으로 승진시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지.’
만약 그가 진급자 명단에 있다손 치더라도 기껏해야 부장, 뭐 정년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좀 남았지만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잘리지 않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상황인 것이다.
그런 만큼 그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웃을 수 없었다.
현시각 인사결과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사실 나가라는 말이나 진배없기 때문이었다.
“후… 갑갑하구만.”
그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한평생 회사를 위해 살아온 삶, 회사의 소방수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 삶이었다.
그와 같이 이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 중 그보다 업무에 뛰어난 성과를 보인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보다 진급이 늦은 사람도 또 없었다.
그동안 아부 잘하는 놈에게 밀리고, 라인 잘 타는 놈에게 치이고, 집안에 돈이 많아 뒷돈 잘 찌르는 이에게 찔리는 일이 비일비재.
태생적으로 술 한 잔 못 먹는 몸이라 그 흔한 술상무도 못하는 처지에 그 흔한 룸싸롱 단골 마담 한 명 없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그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일하면, 온 힘을 다해 이 세상을 살면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떳떳한 삶.
화려하진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 그런 삶이 맞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사람. 이쯤 되니 후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5년, 회사에 충성을 하며 몸 곯아 가며 만들어 낸 것이라곤 차장이라는 딱지.
만년 차장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
그리고 아직도 절반이나 대출이 남은, 요즘 들어 시세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1억짜리 아파트 한 채와 낡은 코란도 한 대. 그리고 낡은 몸뚱아리 하나. 그것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멍청이처럼 살았구나.‘
그런데 그때.
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드디어 인사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인사결과라는 소식에 저절로 몸이 일으켜진 것이다.
그러나.
‘……소용없겠지.’
그는 멈춰 섰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려는 다리를 잡아 멈췄다.
순간적으로 저 안에 내 이름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기껏 갔다가 현실을 목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더러운 꼴이나 보게 되겠지. 후… 더 이상은 무리야.’
모든 것이 소모된 인간, 그것이 바로 현재의 이서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든 이서문, 그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거 이제 그만 끝내기로. 이렇게 된 거 이제 그만 여기서 물러서기로. 지난 20년의 회사 생활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뭐 그래도 인복은 있어 그 동안 사람들에게 욕은 안 먹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후배들 위를 가로막는 똥차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겠지.’
결국, 발길을 돌린 그. 그렇게 그는 천천히 일어났던 루트 그대로를 밟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 떨어져 있는 휴지를 보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 보였다.
‘너도 쓰레기통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구나.’
그는 발길에 채이는 휴지를 집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종이백에 자신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치 쓰레기통 속에 휴지를 집어넣듯이.
‘그래. 이게 자연스러운 거겠지.’
등 뒤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기쁨에 겨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유달리 아팠다.
그때.
그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손이 멈춘 곳에는 그의 가족사진이 자리해 있었다.
그의 근속 20년을 축하하며 찍은 사진.
그 사진 속의 그는 제법 젊은 모습, 그의 옆에서 그와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아내도, 그의 앞에 있는 그의 아들도, 정정해 보이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아스라해 보였다.
‘말순이 저 가방… 저때도 가지고 있었네. 그렇게 새 가방 하나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
‘아 진호 저 녀석 저땐 어렸었구나. 녀석 군대에서 많이 추울 텐데…’
‘후, 아버지 어머니도 저땐 정정하셨네. 그땐 참 좋았는데.’
‘어머니 우리 어매. 이 불효 자식 때문에 고생만 하시고 요즘엔 아들 얼굴도 기억 못하시니… 후, 아무래도 퇴직금이 나오면 제대로 된 병원이라도 알아봐야겠어.’
일순 생각을 이어 가던 이서문, 그의 눈에 핑- 눈물이 돌았다.
눈이 흐려 눈앞의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나이 오십 세. 이미 늙어 버린 남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막 쏟아지려 했다.
그런데 그때.
“형님! 아니 이 차장님! 아니아니 이제 차장님이라고도 하면 안 되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임대두, 산적 같은 생김새가 인상적인 사내가 짙은 웃음을 보이며 서 있었다.
이서문이 빠르게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왜 인마.”
“뭐요. 형님 울었어요?”
“형님은 인마 너보다 열 몇 살은 더 많은 사람한테.”
“에이, 형님 왜 그러세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임대두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 모습에 이서문의 입가에 작은 미소라 맺혔다.
처음 녀석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제법 챙긴다고 챙겨 줬었더니 이젠 솔찮게 형님 소리를 해 주는 동생이었다.
그런데 나를 차장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 아… 내가 부장으로 오르긴 했나 보네.’
의외였긴 했지만 이서문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미 의욕이 다 상실된 상태였기 때문이었??.
“같이 늙어가기는. 아무튼 넌 늙지 마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넌 이 형 닮지 말란 말이야. 이제 형은 간다.”
그런데?
“네? 아 그래요 가야죠. 나 참 그렇게 감동스러웠나.”
임대두의 대응이 좀 이상하다?
“……무슨 소리야 인마.”
때문에 이서문이 조금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묻자, 임대두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회장님이 부르신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아니 회장이 왜 날 불러?”
“몰랐어요?”
“뭘?”
“아니 부사장 급 이상은 모이라고 하셨잖아요. 설마 공고 안 보셨어요?”
순간, 이서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뭐?”
그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 예기치 않을 것을 보았을 때의 표정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임대두, 그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 모르셨나 보네? 빨리 가 봐요! 형님 진급했어!”
그리고 그렇게 임대두에게 붙들려 공고문 앞으로 간 이서문, 그는 확인할 수 있었다.
[승진대상자 - 부사장 : 이서문]
그의 세계가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