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263화 일등 신랑감 (1)
1998년 후반부부터 시작된 오라클의 약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프라 모든 방면으로 불어닥친 오라클의 공격은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단 가장 먼저 오라클 텔레콤의 주가.
3만 원대가 깨지며 대한민국 주가에 혼란을 불러왔던 오라클 텔레콤의 주가가 12월 첫째 주를 지나며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1999년 1월, 드디어 5만 원대를 찍었다.
[오라클 텔레콤 50,920▲ 340]
한때 위험한 주식, 변동성이 큰 주식으로 생각되었던 주식이 황금주가 된 것이다.
“젠장, 믿고 있었다고!”
“세상에 하하 내 생전에 한일 텔레콤이 5만 원을 찍는 날을 보다니.”
“예끼 이 사람이 한일 텔레콤이라니. 이젠 엄연한 오라클 텔레콤이라고!”
“아, 미안 이거 내가 실수를 했구만. 허허, 허허허.”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2월 말, 오라클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오라클이라는 기업의 주가가 높아진 것은 물론, 그에 따라 대한민국의 풍경도 제법 많이 달라졌다.
“야 오늘 끝나고 스타 한판?”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이라 함은 첨단의 이기,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1988년, 그리고 1999년 지나가면서 그 이미지는 누구나 배우면 사용할 수 있는 기기, 첨단이긴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은 그런 이기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너만 다른 학교 다니냐? 우리 시험 기간 아니야?”
“하하, 야 그러니까 더 좋지. 시험 기간이라는 이야기는 더 일찍 게임방에 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어휴 안 돼.”
“왜?”
물론 그와 동시에 고통 받는 사람들도 더 늘어나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감수해야지.
“인강 들어야 돼. 엄마가 인강 들은 거 매일 확인한단 말이야.”
정보화 시대란 무분별한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 불쌍한 놈. 그럼 밤에 들어와 밤에라도 잠깐 하자. 오키?”
“……오키.”
아무튼 그렇게 1998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가 지나간 뒤, 대한민국은 제법 빠르고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인터넷이라 흐음… 이거 돈이 될 것 같은데….”
“창업 박람회?”
“정부에서 벤처 투자에 자금 지원을 한단 말이지?”
이제 완연히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나도 한번 해 보자.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3월, 1999년이 막 익숙해질 무렵, 나는 ‘국민들의 단결’을 강조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3.1절 특사를 듣고 있었다.
청와대에서 말이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진중한 목소리.
단정한 정장 차림의 대통령이 단상 위에 올라 기념사를 시작한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약간 어수선하던 주변이 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대통령을 향한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청와대, 김대중 대통령에 기념사를 맞아 귀빈으로 초대된 상태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98년 한해 동안 우리 모두는 파산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이것은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러분은 흔쾌히 참아내고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사를 맞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나와 같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 대한민국의 재계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가장 먼저 대통령에게서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한 남자, 정영주 회장.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그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 후일 현대자동차 그룹을 맞게 되는 인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가 바로 현재 정 회장, 현대그룹의 후계자인 것 같았다.
‘계속 보니까 누군지 기억나네 거참 젊었을 때엔 저렇게 생겼었구나.’
그리고 그 밖에도 제법 많은 인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그룹 사람들 옆,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주 회장이나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LG그룹의 구현모 회장.
그리고 SK, 신세?, 한진 그룹 등의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오고 그 옆으로 얼마 ? 금 모으기 운동 때문에 한 번영?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 눈에 들어왔다.
다들 재계 상위의 위치하는 사람들, 재계서열 1위부터 20위권 회사의 총수들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여기 있는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인다니… 참….’
그런데?
내가 천천히 시선을 돌리고 있던 도중,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김우중, 재계서열 3위의 대기업 대우의 회장,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 어디 갔지?’
그동안 인연 아닌 인연이 제법 있던 터라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궁금해졌다.
물론 신년사에 강제로 참석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면이 있는 만큼 총수가 없으면 그 후계자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 대신 행사에 참석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마따나 한성에서도 해외에 나가 있는 김귀란 대신 부회장인 김명석이 대신 나와 있는 판국이었으니까.
‘뭐 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있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이상한 일이었다.
재계서열 하위의 회사도 아니고 대우, 수십조 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의 총수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그 의문을 해소할 수는 없는 일, 나는 잠자코 자리를 견뎌냈다.
뭐 굳이 티를 내서 카메라에 잡힐 필요는 없었으니까.
‘필요한 순간이라면 몰라도 말이야.’
그리고 잠시 뒤.
[……저는 확실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과 같이 나아간다면, 20세기 끝을 향해 다가서는 1999년 이 해에 우리는 어두운 암흑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찬란한 희망의 21세기가 두 손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조가 그러했던 이 나라를 보다 강한 나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끝난 뒤 이어진 다과회에서 나는 나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요?”
“허허, 그렇다니까?”
정영주 회장, 그에게서 김우중과 김대중 대통령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
“그러니까 정말 완전히 틀어졌다는 말인가요?”
내가 묻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정영주 그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김우중이 저 양반이랑 김대중 대통령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모양이야.”
그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틀림없다는 의미. 여지는 없다는 듯한 말이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영주 그가 하는 말인 만큼 설득력은 확실했다.
아직까진 이 바닥에 그보다 정보가 빠삭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의외네요. 그 둘은 그래도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허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아니 사실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김우중이 그 사람한테 얼마나 의지했었나. 말마따나 저번에 있었던 일, 그래 금 모으기. 그것도 그 치가 하자고 해서 시작한 거니까. 그런데….”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하자고 해 놓고 아주 철저하게 이용하려 했었지.
거참 생각해 보면 진짜 어이가 없네.
아니 자기가 금 모으기를 하자고 해 놓고 뒷돈을 빼먹고 있다니.
일반인 같았으면 당장에 보복에 들어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그것 때문에 김 회장이 정부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뭐 아무래도 일벌백계는 필요한 법이니까. 쯧쯧 그러게 그 사람 욕심도 좀 정도껏 부리라니까. 왜 그렇게 버티지도 못한 욕심을 그렇게 부려서.”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래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 김우중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김우중 그는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 현재 대우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살을 파 먹는 일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내가 알기로 올해 대우는 무너진다. 그러니 그 이전부터 전조는 있었겠지. 그렇다면….’
때문에 그렇게 잠시 내가 김우중과 대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그때.
“……그런데 자네.”
정영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정영주 그가 흑백이 명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요즘 재미가 쏠쏠한가 보더구만.”
“무슨 말씀이시죠?”
“인터넷 사업 말이네. 인터넷 사업.”
그가 탁-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 서슬에 잠시 그의 앞에 놓인 물잔이 찰랑거렸다.
“아 그거요.”
“허허 서운해. 아니 그렇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래 귀띔이라도 주지 그랬나.”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약간은 서운하다는 듯한 그의 시선,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에이, 아무래도 회장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요. 소떼 몰고 평양 가시는 길에 신경쓰이게 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내가 약간 너스레를 떨며 말을 받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정영주,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여튼 말은. 그래. 그래서 대통령이랑 독대를 했나?”
“알고 계셨어요?”
“아직까지 내가 아는 게 좀 많지. 그래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 무슨 말을 했길래 대통령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해?”
그가 살짝 몸을 숙였다.
그의 눈에는 짙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간단해요.”
“간단해?”
“네. 간단하게 각하께 미래를 보여드렸죠.”
그러자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는 정영주, 그가 불편한 낯으로 나를 향했다.
“미래?”
“미래. 다음 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해藥횡楮?.”
“허허 그게 그리 쉽게 보이는 거란 말인가?”
그의 시선에 의심이 감돌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대꾸했다.
“보이죠. 명확하게.”
그런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한테는 말이죠.”
그러자 잠시 정영주 그의 입이 꾹 다물렸다.
“…….”
그리고는 잠시간의 침묵 뒤, 그의 얼굴이 풀어졌다.
“허허, 허허허.”
가볍게 튀어나온 그의 웃음, 그 웃음의 끝에 그가 청동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만?.”
“무슨 소문이요?”
“허허 이 사람 자기만 모르는구만.”
슬쩍 말을 흘린 그가 천천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 내 옆으로 다가와 귓가에 대고 입을 열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뭐가 보이나.”
뭐지?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주변으로 우리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네요.”
“정확하게.”
“정확하게… 대통령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또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자네를 쳐다보고 있지.”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직시라며 말했다.
“내가 옆에 붙어 있는데도 말이야.”
어?
순간, 나는 소름이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그때서야 인지가 된 것이다.
분명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정영주, 지난 수십 년간 이 나라의 왕이나 다름 없었던 자다.
그런데 그런 자를 앞에 두고 나를 향해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고?
옆을 바라보자 정영주가 끄덕끄덕 고요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제 보이나?”
“네. 아무래도….”
“허허 아까 무슨 소문이냐고 물어 봤었지?”
“…….”
“내 말해 주지.”
그리고는 잠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던 정영주, 그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요즘 이 바닥에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어.”
말을 마친 그가 하나하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한성그룹 막내, 아니 오라클의 기린아를 잡아라. 그럼….”
그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천하를 잡을 것이다.”
“그런….”
“그래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다들….”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를 잡으려는 사람들일세.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가 천천히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그러니 묻겠네.”
그리고는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향했다.
“자네, 다음 행보는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