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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   306화 신세계의 신 (4)

“…한성그룹을 포기하세요. 그러면 아드님은 살려드리죠.”

나의 말이 끝난 순간, 앞에 있던 남자, 김명석 목소리가 천장을 꿰뚫었다.

“뭐라고!”

그것은 분노한 자의 목소리. 이성을 잃은 자의 목소리. 예기치 못한 적을 마주한 자의 목소리였다.

“너. 이 배은망덕한 놈! 네가 어찌 그런 말을!”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김명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멱살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 왔다.

하지만 그대로 잡힐 수는 없는 일, 내가 슬쩍 그의 손을 벗어나자 이내 그가 제 기세에 못 이겨 휘청거렸다.

“으억. 이놈이.”

그러자 그의 몸을 김홍래가 받아 들더니 이내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 자식.”

지금껏 참고 있던 것이 용할 정도의 시선, 김홍래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말 그 말에 그간의 분노가 소급해 분출된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 그동안 착한 척이란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이제 와서 이 X랄을 해?”

이윽고 그가 김명석을 의자에 앉히더니 네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멱살을 틀어쥐고 나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아. 다시 한번 말해 봐 뭐? 뭘 달라고?”

그의 눈빛이 파랗게 빛났다.

그의 분노 그것은 나름 이유가 있는 분노였다.

내가 입에 올린 것은 그동안 그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일 테니까.

‘누구도 주지 않았지만 말이야.’

주변을 바라보자 갑작스런 소란에 놀란 사용인들이 놀란 눈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막은 뒤, 고개를 돌려 김홍래 그를 마주 보았다.

“한성 포기하라고.”

“뭐?”

“형네 집안 사람들이 한성을 받으면 한성은 망해. 그 꼴 보고 싶어?”

그것은 사실, 과거의 현실에 의거한 말이었다.

그러자 잠시 김홍래,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더니 이내 다시 한번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 돌았어? 어? 그 잘난 돈 좀 있다고 뵈는 게 없는 거야?”

점점 강해지는 힘, 나의 목을 옥죄는 김홍래의 팔에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뿌리쳤다.

탁-

제법 세게 친 탓에 김홍래의 팔이 거칠게 떨어지고 그가 휘청거렸다.

나는 나를 향해 원독에 찬 눈을 보내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난 10년간 한성그룹은 제자리걸음을 걸어왔어. 물론 매출은 꾸준히 상승해 왔지만 동시기 재계에 존재했던 회사들에 비교하면 미약한 정도지.”

그런 뒤, 나는 구겨진 옷깃을 바로 하며 손을 매만졌다.

“하지만 지난 3년, 내가 한성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한성 주요 계열사의 매출은 25% 이상 상승했어. 특히나 내가 먹은 전자는 무려 45%나 상승했지.”

그러고는 천천히 김홍래에게 다가가 그의 옷깃을 펴 주었다.

“형. 형은 이게 뭘 말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순간, 그가 탁- 내 손을 쳐냈다. 그의 얼굴에는 분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게 네 덕분이라고?”

“아니라고 생각해?”

“웃기지 마! 그동안 네가 한 일이라곤 그 거지 같은 광대짓뿐이야. 지금이야 운이 좋아서 그렇게 거들먹거린다만 그 운이 다하면 너도 떨어지고 말걸?”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이 온다면 말이야.”

“뭐?”

“내가 생각하기에 그날이 오지 않을 것 같거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를 분기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 김홍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선택을 해. 이건 내가 주는 내 마지막 기회야. 아무렴 우리는… ‘가족’이잖아?”

아마 이번 일은 모두에게 다 퍼져 나갈 것이었다. 적어도 이 집안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그런 만큼 그들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었다. 현실에 적응을 할지 아니면 현실을 부정할지.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의 인생 또한 180도로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성이란 그런 곳이니까.

“너, 후회하게 될 거야.”

“글쎄 그럴 일이 있을까?”

“뭐?”

“내가 후회하기 전에 형이 먼저 그 말을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야! 거기 서!”

등 뒤에서 김홍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에게 허락된 관심은 거기서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계단 위로 올라선 나는 고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노파,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꽤나 요란한 등장이구나.”

김귀란, 그녀가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고요한 실내.

제법 익숙한 공간이지만 오늘만은 꽤나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 그곳에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청동 같은 표정, 마치 모래처럼 마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꽤나 요란한 소리가 나더구나.”

그 사람은 김귀란, 나의 할머니이자 한성그룹의 현 회장이었다.

“소란스럽게 할 의도는 없었어요.”

나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거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큰 소리가 들리던걸?”

아무래도 아까 있었던 일, 나와 김명석 부자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녀로서는 익숙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집은 일종의 성역, 이곳에서는 모두가 거동을 조심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더 이상 이 왕국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 집에서 큰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그녀밖에 없었지.’

하지만 오늘, 드디어 그 금기가 깨졌다.

그것도 나 때문에.

“그래 기분이 어떠냐?”

그녀가 나를 보며 물었다.

제법 깊은 그녀의 시선. 그녀의 눈빛에서는 꽤나 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기분이요?”

“그래, 이 녀석아. 큰아버지를 밟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드느냔 말이다.”

그녀가 조금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말은 방금 전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글쎄요….”

“설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거냐?”

“에이 제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럼?”

“그저… 약간 홀가분하네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홀가분한 기분, 오랜 더위가 가신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김귀란,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홀가분한 기분?”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그녀의 구미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네. 지금으로썬 딱 그 정도의 감정이에요.”

“……하, 홀가분한 기분이라 그래. 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러고는 뭔가를 내려놓은 표정을 지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미국에서 꽤나 큰 성과를 거두었다지?”

그녀의 말은 미국에서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이거 동네방네 소문이 나지 않은 곳이 없네요.”

“왜 보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해서?”

“방금 전 아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왔거든요.”

그 말에 잠시 혀를 찬 김귀란, 그녀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쯧, 복에 겨운 투정이다 녀석아. 이쯤 되면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이미지라는 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로도 중요한 것을.”

“뭐 잘 알고는 있죠.”

“그래. 얼마나 벌었느냐? 들리는 말로는 월가에 있는 돈을 갈퀴로 쓸어 모았다고 하던데.”

그녀가 슬쩍 나를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번 돈의 규모가 궁금한 것 같았다.

“뭐 생각하시는 것만큼은 벌었어요.”

“생각하는 거라… 그래 한 10조쯤 벌었느냐?”

“아뇨.”

나는 실망으로 바뀌려는 그녀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10배쯤 벌었죠.”

일순 그녀, 고요함이 감돌던 그녀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녀조차 내가 거둔 성과, 지난 몇 달간의 결과에 당황을 금치 못한 것이다.

“10배라면 100조? 아니 정말 네 손에 100조가 있단 말이냐?”

“네. 정확하게는 100조쯤 되죠.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에 이미 소비한 돈까지 포함하면요.”

그러자 실망으로 흐르던 김귀란의 시선이 딱 굳더니 이내 경탄이 맺혔다.

하긴 100조 원이라면 우리나라의 한 해 예산을 뛰어넘는 규모. 현재 우리나라 재계 서열 1위인 현대의 자산 총액을 뛰어넘는 자금이었으니까.

“하, 재신(財神)이 붙었구나 재신이 붙었어. 이놈의 빌어먹을 신이 왜 이놈에게 가 붙었을꼬. 붙으려면 나에게나 붙지.”

그렇게 잠시 고개를 젓던 김귀란, 그녀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좋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네가 들어온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그녀가 내게 말했다.

“이제 결정을 내린 게냐?”

그녀의 말은 나의 미래, 그리고 한성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손끝이 찌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 느낌은 마치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기분, 그녀와 나의 오랜 계약이 비로소 도장을 찍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가 결정을 내리길 바라시나요?”

“100조 원을 쥐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야?”

“다다익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준비는 두터울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의뭉스러운 녀석. 끝까지 이 할미를 떠보겠다는 게로구만.”

“그건 아니지만… 당사자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는 거죠.”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김귀란이 천천히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녀석.”

그녀의 시선, 그녀의 몸이 딱 멈추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전에….”

깊은 회한, 곧 그녀의 입에서 고요한 음색의 언어가 새어 나왔다.

“그래 예전에 이곳에서 쓰러진 일이 있었지.”

그녀의 눈빛이 단단하게 변하고 곧 먼 곳을 보듯 허공을 향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이 나이에 그런 일을 겪으면 영영 헤어나기 힘든 법이거든.”

그렇게 한참 동안 보이지 않는 곳을 보? 있던 그녀의 시선이 점점 내려오더니 이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눈을 떴지. 네 녀석 덕분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그때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눈을 떴을 때 네 녀석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나니까.”

그녀가 쿵-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져가거라. 이미 100조 원을 만져 본 녀석에겐 작은 것이지만. 그래도 네 핏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너의 아비 또한 이곳에 있지.”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뭐 내가 싫다고 해도 가져갈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녀의 눈이 전에 없이 깊게 휘었다.

“안 그러느냐?”

그녀의 눈에 깃든 믿음과 기대. 나는 그것에 타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저에 대해 잘 아시네요.”

“여우 같은 녀석. 그래도 약속은 확실히 확인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내 욕심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이제 곧 할머니는 보시게 될 거예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한성은 시작에 불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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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회귀 재벌 - 1993 회귀 재벌-3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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