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278화 새로운 조류 (2)
문이 열린다.
수십 명이 넘는 이들의 발소리.
그 소리가 들려온 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준비 끝냈습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 두 눈을 빛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다 이번 프로젝트, 오라클-1의 런칭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눈을 맞춘 뒤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그러자 사람들, 그들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 다 이번 일, 오라클-1의 대한 기대가 묻어났다.
하긴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오라클-1의 개발과 런칭에 한몫을 하는 사람들, 그런 만큼 그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오라클-1의 성공이 곧 그들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돈이든 명예든 성공 이후에 따라오겠지.’
좋아, 그럼 일단 가장 먼저.
“김 사장님.”
이번 파티의 선두, 오라클-1의 생산을 맞고 있는 김상현에게 물었다.
“예. 회장님.”
“오라클-1의 예상 판매량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천천히 나를 바라본 김상현이 침착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첫 달에만 25만, 최대 100만까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100만 대라… 그럼 최대 매출을 5천억대로군요.”
“그렇습니다.”
“너무 적지 않나요?”
“저흰 이것도 많다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뇨. 너무 적어요. 적어도 200만 최대 250만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나는 김상현,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호히 입을 열었다.
“해외 판매량은 1천만 대를 목표로 생각해 주세요.”
그러자 살짝 움직이는 김상현의 눈동자,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1천만 대 말씀이십니까?”
“네. 1천만 대. 중국, 일본, 미국, 유럽 시장에서 1천만 대를 목표를 달성합니다. 그런 뒤에 이 시장,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이 시장의 지배권을 굳히는 거죠.”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첫걸음부터니까요.”
그러자 일순,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인 김상현,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목표를 빠르게 수정해야겠군요.”
평소 해외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해 온 만큼 이번 목표 또한 쉽게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네. 하지만 일단은 그대로 추진해도 될 겁니다. 추이를 봐 가며 추가해도 되는 사항이니까요. 그리고….”
“……?”
“…제품 출고 준비는 끝났습니까?”
김상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물론입니다. 현재 50만 패키지가 스탠바이 되어 있고 현재 매주 10만 이상 새로운 물량이 출고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 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겁니다. 제품이 남는 것은 모를까 제품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은 절대 피해야 할 거예요. 마케팅 측면에서도 초기 판매량은 중요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단언컨대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해 놨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생산 인력에도 여유를 두고 있고 또 수요 증가에 따른 증산 준비에도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얼마까지 가능하죠?”
“최소 20%. 좀 더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조정하면 30%까지 증산이 가능할 겁니다.”
그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그에 따른 소비재 수요 증가도 준비해 놨겠죠?”
“물론입니다. 1, 2차 밴더들 또한 모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자금은 얼마가 소요되어도 좋습니다. 완벽한 준비를 해 주세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김상현, 그를 일별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 다음 텔레콤의 사장, 최익현을 바라보았다.
“최 사장님.”
“네. 회장님.”
나는 약간 긴장 어린 눈을 하고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곧 회선 수요가 폭발할 겁니다. 이에 대한 준비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그가 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현재 예상 수요인 50만 회선까지는 넉넉하게 감당 가능합니다. 그리고 최대 100만까지 회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해 놓은 상태입니다. 증설 측면에서 보면 전자 쪽보다 저희 쪽에 더 여유가 있을 겁니다.”
“정부 쪽과의 이야기는?”
“이미 다 마쳐 놨습니다. 산자부, 정통부 쪽 인사들과 수차례 미팅을 진행해 놨습니다.”
그가 조금은 긴장이 해소된 표정, 조금은 편안한 안색으로 말했다.
“별말은 없던가요?”
“네. 일단 이번 정부 측 인사들과는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뭐죠?”
“각하께서도 관심이 크시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래?
약간 의외였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가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까지 관심을 드러낼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군요. 요즘 들어 대북관계 쪽에 관심을 집중하시고 계신 줄 알았는데.”
“원래 그쪽의 눈과 다리는 넓고 길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연락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하지만…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쪽 집이야 이기는 사람의 편일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그 뒤로 잠시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 모든 확인이 다 마친 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그런 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하도록 하죠.”
순간, 사람들의 시선, 불타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드디어 시작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드디어 전쟁, 대한민국의 미래를 점령할 전쟁을 시작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천년을 저희 손에 쥐는 거죠.”
*
1999년 9월.
KBS 2TV의 공개 코미디쇼 ‘개그콘서트’가 첫 전파를 타고 한국통신 무궁화 3호가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쿠루 기지에서 발사되던 그때, 대한민국 경제계에 큰일이 벌어졌다.
“어? 이게 무슨 광고야?”
“응? 무슨 광곤데?”
“아니 이거 봐 봐.”
그것은 바로 삼성전자와 오라클전자,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와 3위의 대기업들이 각자 ‘애니콜 미니폴더’와 ‘오라클-1’이라는 신제품을 런칭한다는 소식이었다.
[앞서가는 것만이 세상을 사로잡습니다. 애니콜 폴더가 또 한 번 작아졌다.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은 ‘애니콜’ 애니콜 미니폴더]
vs
[Oracle it’s diffirent]
그러자 그 전부터 두 회사에 신제품에 관심을 들이던 사람들, 그리고 마침 휴대폰을 필요로 하고 있던 사람들이 두 회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삼성 신제품 나온 거야?”
“그뿐만 아닌 것 같은데?”
재계서열 2위와 3위.
엇비슷한 규모의 휴대폰 제조사.
비슷한 시기에 나온 2G 환경의 휴대폰들을 향해 사람들이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거, 어떤 걸 사야 하는 거지?”
“글쎄….”
물론 평소였다면 아무런 사건 없이 제품 런칭이 이뤄졌다면, 삼성전자, 재계서열 2위의 대기업 삼성의 제품이 다소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었겠지만.
라스베가스 박람회에서의 성공, 그리고 퀄컴 인수라는 사건을 통해 오라클에 대한 관심도가 증폭되면서 승패는 혼돈을 향해 빠져들었다.
“……에이 그래도 한국 사람이면 삼성 제품 아니겠어? 믿고 보는 삼성 아니야?”
“무슨 소리야. 예전에 삼성이 금 모으기할 때 금 빼돌렸다는 소리 못 들었어? 그것보다는 오라클이지. 금 1톤 몰라 금 1톤?”
삼성과 오라클의 제품 판매량 모두 서로가 서로를 따르려 애쓰며 앞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콜 미니폴더 판매량 15,401]
vs
[오라클 오라클-1 판매량 16,038]
그러자 실제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물론 그리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 주식을 만지는 이들 모두가 갑론을박 삼성과 오라클의 우열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가격을 봐, 가격을. 아니 삼성 제품이 40만 원인데 오라클 제품은 60만 원이라고. 그런데도 오라클 제품을 사고 싶어?”
“무슨 소리야? 정확하게 말하면 49만 9천원이지. 그렇게 보면 65만원인 오라클-1이랑 15만원 차이밖에 안 난다고! 카메라도 없고 mp3 기능도 없고 디자인도 구린 제품을 사느니 차라리 돈 좀 더해서 오라클 사는 게 낫지!”
각자 자신이 원하는 쪽, 자신이 우세하다 생각하는 쪽의 뛰어남을 어필하려 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봤을 땐 오라클보다 삼성의 제품이 대중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더 커, 일단 오라클 같은 경우엔 뛰어난 신기술로 무장하긴 했지만 대중에게 그 기능이 어필할지 아닐진 아직 미지수니까. 그러니 삼성의 주식에 투자하는 게 맞지.”
“무슨 소리. 라스베가스 박람회에서 바이어들 반응 봤잖아. 그게 바로 어필이야. 이미 휴대폰은 전화의 한계를 넘어섰어. 이젠 다기능의 시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경력도 얼마 안 되는 게 어디서 큰 소리야!”
“뭐? 주식 판에 경력이 어디 있어! 따는 놈이 왕이지!”
하지만.
격화된 분위기와는 별개로 시간이 갈수록 휴대폰 제조사들의 희비는 엇갈려 나갔다.
제품 런칭 이후, 실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제품 간의 우열관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콜 미니폴더 판매량 75,401]
vs
[오라클 오라클-1 판매량 89,038]
바로 6 : 4 오라클의 우세로.
그러자 삼성전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회장님….”
“……나도 보고 있어.”
분명 판매량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오라클의 신제품 판매량에 밀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움직여. 돈을 풀던 아니면 광고를 하던 어떻게든 해! 왜 젊은 애들 그런 거 좋아하잖아. 그래. 광고. 드라마든 뭐든 간에 연락해서 노출하라고 해. 최대한!”
때문에 그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 자신들의 제품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본디 이미지란 부서지면 끝, 업계 1위라는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통신사 쪽과 협의해 지원금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무조건 지켜. 적어도 동률! 그건 절대로 무너져선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그러자 초반 주춤거리던 삼성의 판매량이 차츰 상승해 나갔다.
[애니콜 미니폴더 판매량 103,401]
vs
[오라클 오라클-1 판매량 110,038]
돈지랄, 총력전의 힘이었다.
“회장님! 기뻐하십시오! 오라클과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 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들의 만족도 잠시, 차츰 삼성 계열사들의 주가가 소폭 상승을 이루고 있던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어……?”
“왜?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인터넷상에 ‘오라클 TV’라는 비디오 채널이 런칭 되더니, 갑자기 판매량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 오늘은 현대 정영주 회장님과 함께 신제품 리뷰를 해 볼 겁니다.]
믿을 수 없는 콜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