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 308화 왕좌를 향하여 (2)
한성그룹에 이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
대기업 한성과 오라클이 합병한다는 소식이 대한민국 경제계에 퍼져나갔다.
‘증권가 찌라시 #52’
현재 한성그룹과 오라클 그룹의 전격적인 합병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 이미 그룹 수뇌부들 간의 조율은 끝난 상태며 실무진의 합병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임. 아마도 올해가 가기 전에 합병이 끝날 것으로 보이며 그 경우 자산총액 100조에 가까운 거대기업이 탄생할 것임.’
그러자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한성과 오라클.
두 기업의 핏줄은 하나. 그런 만큼 두 기업의 합병 가능성은 예전부터 알음알음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빠르고 간결하게 합병이 시작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
“아니 이게 무슨…….”
말마따나 금력(金力)이란 그리고 그로서 파생되는 권력이란 혈육 간에도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간에도 나누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이게 정말, 정말 사실인가?”
“그렇다니까! 이젠 오라클 쪽에서 숨기려고 하지도 않더구만.”
“허…….”
“게다가 이젠 이 일이 사실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것 때문에 양 사의 주가가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으니까.”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고? 아니 얼마나?”
“한성가 주요 계열사들 주가가 오늘만 벌써 4% 이상 뛰었어. 젠장, 좀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아야 했는데…….”
하지만 일은 이미 이뤄졌다.
일은 이미 진행되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미처 그 두 그룹의 관계에 대해 인식하고 시작하고 있던 그때, 이미 두 기업의 합병은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양 그룹의 오너, 실무진을 제외한 혈육들 그 누구도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아니 그런데 자네 아는 형님이 한성가 첫째 아들의 측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정말 몰랐단 말이야?”
“몰랐어. 빌어먹을 그 형님이랑 엊그제 통화했는데도 아무 말도 못 들었다고!”
“허, 그렇다는 말은…….”
“그래. 한성이 완전히 오라클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는 거지. 다른 자식들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
대한민국의 산재한 언론사, 증권사, 시민단체, 노조 모든 이들의 시선이 여의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성과 오라클이 결합.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
김준영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대 규모의 기업집단의 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빌어먹을 누구라도 좋으니까 기사 하나만 잡아 와! 뭐든 하나만 가져오라고!”
뭐 그 와중에 하나라도 건진다면 특종은 따놓은 당상일 테니까.
“뭐라고? 이걸 어떻게 해야만 하느냐고? 야! 뭐든 다 해 봐! 회사 안으로 들어가든 아니면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든 뭐든 다 해 보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합병이 이뤄지는지 알아내란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런 소식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 시각, 여의도 63빌딩 오라클 본사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따라 여의도에 차가 많네요.”
그는 바로 김준영, 오라클과 한성의 주인이 된 사람이었다.
*
“어떻게 됐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 이어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되다뇨?”
“폭탄을 터뜨리러 갔으니 그 반응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일, 평창동에서의 일을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뭐 별거 없었어요. 딱 예상했던 반응. 그 정도였죠.”
“그래?”
“네. 큰아버지들은 소리치고 고모는 울고불고 애들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죠.”
나는 아까 전 보았던 풍경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자 이어진, 그가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테니까.”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금세 정리됐어요.”
“아니 어떻게? 그 상황 수습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간단해요.”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선택지를 줬죠.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적응하지 않을 것인가.”
“뭐? 아니 정말?”
“네. 적응한다면 지금까지의 생활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정지시켜 버릴 거라는 이야기를 던졌죠. 그러니까… 다들 조용해지더라고요.”
그러자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로?”
“그럼요.”
“아니 너희 할머니가 있는 그 자리에서?”
“뭐 좋아하시던걸요?”
나는 피식 웃으며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귀란의 모습을 떠올렸다.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아니 그 와중에 양자택일을 걸었니. 아니 그 정도면 숫제 협박 아니야?”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그래도 선택지를 두 개나 줬잖아요.”
나는 가볍게 입을 열어 말했다.
사실 그렇게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꽤나 많은 고성이 터져 나오긴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들은 현실에 굴복했다.
현재의 안락한 현실을 어느 정도 유지시켜 준다는 미끼를 던지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를 통해 영원히 잃게 되었다.
한성이라는 이름을 달 기회를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만족할 거예요. 제 제안을 받아들인 이상 지금까지의 생활은 지켜 줄 테니까.”
“지금까지의 생활이라… 하긴 그 정도로도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삶이긴 하지.”
이어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가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생활의 수준을 알고 있는 만큼 그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복에 겨운 처사였다.
그들이 빼앗겼다 생각할 삶도 일반인들에게는 꿈에 그리는 삶일 테니까.
“그나저나 합병은 얼마나 진행됐어요?”
나는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러자 이어진을 슬쩍 내게 다가오며 자료 하나를 건넸다.
“거의 다 마쳐 가. 일단 (주)한성의 지분 17.5%를 오라클이 인수하기로 했고 그에 맞는 준비 또한 거의 마쳐 가고 있어.”
이어진이 내민 자료를 살펴보자 한성그룹의 중심, 지주회사 격인 (주)한성의 지분 17.5%를 주당 10만 원에 인수한다는 계약서와 그 밖에 계열사에 산재한 김귀란 소유의 지분들에 대한 양도 계약서가 차례대로 작성되어 있었다.
“리스크는 확실히 처리했겠죠?”
“물론 각 과정마다 2차 3차 확인하고 있어. 거기다 아무래도 양측 다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필요 자금은?”
“4조. 세금까지 더 하면 더 들어갈 거고.”
“주주들은요?”
“일단 우리 쪽에야 지배지분이 너니까 그리 큰 상관은 없어. 뭐 한성 측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주주들이야 주가가 올라가고 배당이 많아지만 만족求? 법이니까.
“할 수 있으면 이 기회에 지분 비율을 높여 놓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자금의 여유는 좀 있잖아요?”
“얼마나?”
“적어도 20%. 그 정도라면 안정적이지 않을까요?”
그러자 잠시 뭔가를 헤아리던 이어진, 그가 고개를 들었다.
“돈이 꽤나 많이 들어가겠는데? 세금까지 생각하면 5조 원은 넉넉히 들어갈 거야.”
5조라.
제법 많은 돈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여유가 있었다.
돈이란 쓸 수 있을 때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괜찮아요. 뭐 땅을 다지는 데 들어가는 자금이야 곧 제게로 돌아올 테니까요.”
“하, 그럼 너희 할머니와 딜을 해 봐야겠네.”
“할머니한테 그 정도의 지분이 있을까요?”
나의 질문에 이어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 할머니, 아주 고이다 못해 썩었어. 딱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을 정도의 지분만 우리에게 넘겼더라. 뒤이어 찾은 지분만 해도 꽤나 돼. 뭐 소개시켜 줄 사람도 충분하고.”
“그래요?”
“그래. 이곳저곳에 분산시켜둔 주식들 모두 다 합치면 꽤나 돼. 아마 모르긴 몰라도 너희 할머니 향후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현금이 제일 많은 사람이 될걸?”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표정은 방금 전 내가 친척들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했다는 말을 했을 때 지었던 표정과 닮아 있었다.
거참 그나저나 그 양반 내 앞에서는 일절 그런 소리가 없더니.
이제 보니 재테크치고는 꽤나 거창한 녀석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할머니한테 용돈 좀 받아야겠네요. 이거 돈이 팍팍 나가겠는데요?”
“기왕이면 1,000억 원 이상으로 좀 받아 줘. 그래야 세금이라도 내지. 어휴, 이거 세금만 해도 회사 몇 개는 더 차리겠다니까?”
“그 정도예요?”
“그렇다니까.
그가 앓는 소리를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기업들, 재벌들처럼 세금을 줄이려 편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뭐 세금이야 다 내야죠. 그게 법 아니겠어요.”
“그렇긴 한데… 사내 세무랑 법무팀이 너무 프리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뭐라고 하더라. 자기들 할 일이 없다면서.”
“걱정 마세요. 그분들한테는 딱 맞는 일이 있으니까.”
“딱 맞는 일?”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을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큰아버지들의 손 아래 한참이나 있던 물건이니만큼 잘 빨아서 써야 하지 않겠어요?”
순간,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설마…….”
아무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깨끗하게 두드려 주세요. 먼지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너희 큰아버지들 살려 주는 거 아니었어?”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이건 별개의 일이에요. 뭐 그게 싫었으면 착하게 살았으면 됐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 그들이 착복한 자금 또한 모두 다 게워내게 되겠지.
그들이 기대고 있는 주식 또한.
“……이쯤 되니까 너희 큰아버지들이 불쌍해지는데?”
“뭐 어쩔 수 없죠. 기왕 일을 할 거면 깨끗하게 처리하는 게 나은 법이니까요. 만약의 경우는 배제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다음 그에게 자료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계획대로 한성을 인수하면서 다른 타겟들도 움직여 주세요.”
“오케이. 그런데…….”
그가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넌 어쩌려고?”
그의 시선의 나의 거취에 대해 묻고 있었다.
“저는 일단 할 일이 있어요.”
“청와대에서 연락이 온 거야?”
“물론 거기서도 연락이 왔죠. 하지만 그 전에 갈 곳이 있어요.”
“갈 곳?”
“네.”
“어디 현대?”
이어진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머리 뒤로 팔짱을 꼈다.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면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자 피식 웃음을 보인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욕심쟁이니까. 그리고 그 길이 제일 빠른 길이니까.”
“그건 그렇죠.”
“그런데 준영아. 조심해야 될 거야. 지금까지는 빠르게 성공해오긴 했지만 현대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테니까.”
그가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의 걱정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룹 현대, 그 이름은 그리 가볍지 않으니까.
하지만.
“물론 알고 있죠.”
“그래?”
“네. 하지만 또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을 거예요.”
나는 알고 있었다.
거대한 성 현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재계서열 1위.
그 자리가 영원하지 않음을.
왜냐하면.
“세월 앞에선 강철 조차 무뎌지는 법이죠.”
내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