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화 검은 용을 쥐어라! (4) >
최가촌(崔家村).
요령성 구석에 자리한 마을.
본디 최 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
하지만 이제는 최 씨 성을 위장하고 있는 뻐꾸기들, 과거 붉은 완장을 차고 중국 대륙을 누비며 각종 사건들을 일으켰던, 이제는 과거의 잘못을 숨긴 채 원래 주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이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웠다.
“이봐! 다들 빨리 좀 움직여! 빨리 빨리!”
“저기 조선 글씨 지워진 것들 보이잖아. 다시 눈에 띄게 페인트 좀 칠 해!”
“음식, 음식 주문했어? 뭐? 김치가 없다고? 없으면 사 와 베이징이라도 가서 사 오라고!”
바로 오늘, 이곳에서 그들의 운명을 뒤바꿀 만한 커다란 사건이 벌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빨리 끝내야 돼. 오늘 1시. 오라클이 1시에 여기 도착한다고 했으니 이미 근처까지 왔을 거야! 그때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준비 끝내 놔야 해!”
“하하, 촌장님 걱정 마세요.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째인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지금 내가 걱정 안 하게 생겼나? 자칫 잘못하면 끝이야! 끝! 이런 기회는 더는 없을 거라고!”
“알겠어요. 알겠어. 거참, 나이도 있으신 양반이 괄괄하시기는···.”
촌장의 목소리에 맞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깃들었다.
분명 촌장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일이 피곤하긴 했지만 오늘 이후로 그들의 삶이 180도 달라질 것이란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다들 들었지? 촌장님 지시대로 움직인다! 오늘까지만 고생해 보자고! 한국 놈들 주머니를 팍팍 털어 버리는 거야!”
뭐 오늘이 지나면 그들의 손에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이 들려 있을 테니까.
“하하, 얼마나 털어야 할까요?”
“글쎄? 한 1억 위안쯤?”
“1억, 1억 위안? 아니 그렇게나 많이?”
“허어 이 사람. 사내로 태어나 1억 위안 쯤 손에 쥐어 봐야 하지 않겠어?”
“하, 맞습니다. 맞아요. 그 정도는 노려 봐야죠!”
마을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이 깃들었다.
사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구지책, 마오쩌둥의 실각 이후 쫓기듯 흘러든 곳,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과거 이념을 쫓으며 만들어진 과오들이 그들의 목숨을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봐 자네들 그 소문 들었어?’
갑작스레 들려온 소문. 그 소문이 그들의 욕망을 움직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오라클이라는 한국 회사,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는 기업이 이 지역의 땅들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간 묻혀 있던 그들의 욕심이 불쑥 대가리를 치켜세운 것이다.
‘무슨 소문?’
‘아니 글쎄, 오라클이라는 회사가 비싼 돈을 주고 땅을 사들인다는구만. 벌써 꽤나 많은 마을들이 땅을 판 모양이야.’
마치 겨울잠에서 깬 독사처럼.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자네들도 준비 좀 해 놔 봐. 혹시 아나 오라클이 자네들한테까지 올지?’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낸 사람들의 이름을 팔아 어마어마한 거래를 시도, 결국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촌장님. 오라클 쪽에서 진짜 1억 위안을 제시할까요?”
“왜 너무 많아 보여?”
“네. 아무리 그래도 1억 위안은 좀···.”
“하, 걱정하지 말게.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뭐 일반적인 경우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그놈들 우리가 지들 동포인 줄 깜짝 속고 있어. 그러니까 1억 위안은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할 거네.”
“그렇다면···.”
“그래. 우리는 부자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걱정 말고 준비들 하라고. 그때가 되면 다들 몇층 집을 사야할지 고민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오라클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준비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 무렵.
“촌장님!”
“왜? 무슨 일이야?”
드디어 그들이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오라클, 그들의 타겟이 그들의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벌써?”
“네. 지금 저쪽에서 차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순간, 마을 사람들, 오라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이때까지 준비한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멈춰 서더니 이내 짙은 미소를 입에 물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한 5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이제 잠시 뒤면 자신들의 손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쥐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그리고 준비해! 지금부터는 한 치의 실수도 위험하니까!”
“알겠습니다. 다들 준비하고 애들 집에 데려다 놔! 입단속들 확실하게 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다 촌장님한테 이야기하라고 하고!”
“그런데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기는. 잘못되려는 일은 바로잡아야 하겠지.”
최충현, 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거 촌장님 예전 버릇 못 버리셨네요.”
“하하, 남아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지 다만 기다릴 뿐이야.”
“좋습니다. 그럼 저희는 촌장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그렇게 그들이 곧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며 기대에 가득 차 있던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어? 촌장님 저거 어째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뭘 말하는 거야?”
점차 마을 가까이 다가오는 차량들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아니 저기 저 오는 차들 말입니다. 뭔가가 이상한데···.”
“뭐라고?”
순간, 마을 사람의 말을 들은 최충현, 그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차량들의 행렬을 바라보더니 이내 지팡이를 내던진 채 부리나케 마을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우당탕-
그러자 사람들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 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길래 그래?”
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자신하던 사람이 갑자기 도망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방금 촌장님이 저쪽으로 달려가시던데?”
“뭐? 아니 왜?”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저거···.”
“미친···.”
왜냐하면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차량, 그것들은 일반차량이 아닌···.
“······X됐다.”
붉은별.
수십 대에 달하는 정부기관의 차량이었기 때문이었다.
*
“난 죄가 없어요! 난 아무 죄도 없어요!”
“모두 다 저 사람, 저 사람이 시킨 겁니다!”
“우리는 죄 없습니다! 모두 다 저 사람 때문에 한 일이에요.”
미친 듯이 소리치는 사람들, 마치 엮인 굴비들처럼 주르륵 포승줄에 엮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나쳐 중국 정부 기관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기관 사람이 슬쩍 입을 열었다.
“모두 다 체포했습니다.”
모두 다 정금석을 통해 섭외한 사람들, 정금석의 꽌시를 통해 융통한 이들이었다.
“그런가요?”
“네. 최가촌에 호적을 올려놓은 325명 일체. 모두 다 체포했습니다. 도주를 시도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뭐 얼마 걸리지 않았죠.”
그가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주범은?”
“바이칭강(白 ?港)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기 저쪽에 따로 잡아 뒀습니다. 아무래도 가만히 뒀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요.”
슬쩍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최충현이 잔뜩 헝클어진 행색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도망가다가 꽤나 저항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바이칭강이라고? 최충현이 아니라?
“제가 아는 것과 이름이 조금 다르네요?”
때문에 내가 묻자 그가 피식-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물론 호적상은 그렇습니다만 간단히 대화를 나눠 보니 알아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섬서성 출신으로 각종 범죄에 연루된 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다른 이들도 그리 질이 좋지는 않습니다. 이미 죽은 자들도 있긴 하지만 나이가 제법 있는 이들은 대부분 하나둘씩 범죄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죠.”
그가 서류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서류 안에는 낯선 이국의 언어들로 이뤄진 이름들이 가득해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두 다 타지에서 흘러든 이들이었던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잠시 서류를 갈무리한 그가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여죄가 없는 자들은 일단 기존 호적지로 이송될 겁니다. 하지만 기존 범죄가 있는 이들은 그에 대한 합당한 조치가 취해지겠죠.”
“시일이 꽤나 지난 일인데도 말입니까?”
“물론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들도 있긴 합니다만··· 지난 몇 년 사이 이 주변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수가 꽤 됐죠. 아무래도 여죄를 판별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겁니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절대 용서가 없죠.”
그의 표정에선 권위주의 국가의 공무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자들이 점유하고 있던 토지 관련해서 계약을 하려 하셨다고?”
그가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힘들 겁니다. 사건이 제법 복잡한 일이라 꽤나 처리에 시일이 오래 걸릴 것 같거든요.”
그가 약간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래대로라면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와 정금석과 관련된 이상, 그 또한 나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처리가 오래 걸린단 말입니까?”
“네. 아무리 그래도 300명이면 꽤나 많은 이들입니다. 여죄를 밝혀내고 이들을 거취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꽤나 시일이 걸리는 일이죠.”
“중국 전체에 비하면 작은 토지입니다.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편의가 가능한 일 아닙니까?”
나는 슬쩍 꽌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관리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예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조금 힘든 일이죠.”
“그렇습니까?”
“네. 이 경우엔 저들이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토지가 문젭니다. 마을 공동 토지를 처리하는 건 저희 성의 문제인 만큼 그 안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국유토로 전환될 확률이 높은 만큼 처리에 조금 더 시일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이 없는 땅이니까요.”
그가 난감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그로서도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혹시 주인이 있다면 쉽게 처리될 일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로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요?”
“네.”
왜냐하면.
“주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발밑으로 검은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