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264화 일등 신랑감 (2)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이어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가 가볍게 턱짓을 하며 내게 말했다.
“아니 정 회장이 물어봤다면서? 다음에 뭘 할 거냐고.”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3.1절 기념행사,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아 그거요?”
“그래. 뭐라고 했어? 그 정도면 제법 기대했을 텐데?”
“뭐 그렇긴 했죠. 그런데 그냥 간단하게 대답했어요.”
“뭐라고?”
“그야….”
나는 나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고요.”
순간, 이어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과장 조금 보태 ‘너 제정신이니?’하는 표정이었다.
“뭐어?”
“하하, 뭐 그렇게 놀라요.”
“……너라면 안 놀라겠어? 아니 정 회장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네.”
“아니 진짜?”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영주 회장, 그의 위명이 있는 만큼 약간 걱정되는 것 같았다.
뭐 그의 위명, 그의 전설을 생각하면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 당시 정영주 회장의 일화를 들어보지 못한 자는 거의 없珦릿歐?.
‘다른 사람이었다면 믿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아저씨.”
“……왜?”
그렇다고 뭐 굳이 걱정할 건 없었다.
왜냐하면 걱정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예전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
“가진 놈이 왕이다.”
“뭐?
나는 나를 바라보며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이어진,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어나갔다.
“가진 놈이 왕이다. 가진 놈 앞에선 어떤 위세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가지려고 애써라. 그것이 돈이든 물건이든 가진 자 앞에선… 다들 작아지는 법이니까.”
말을 마친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어때요?”
“……너희 할머니다운 말이네.”
“그렇죠. 그러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나는 천천히 앞에 놓인 커피잔을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은 제가 가진 놈이니까요.”
그러자 잠시 말이 없는 이어진, 그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 참, 상황이 변할 거라는 생각은 없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막을 거예요. 저와 아저씨가 말이죠.”
내가 이어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을 가리킨 내 손가락을 본 이어진의 얼굴이 여러 번 바뀌더니 이내 쓴 웃음으로 변했다.
“……그렇다면야. 뭐 좋아. 그럼 그날 다른 말은 없었던 거야?”
이쯤 되자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하긴 뭐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이었어야지.
나는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아무 말도 없으시진 않았죠.”
“……뭐라고 했는데?”
“사위 자리.”
“뭐?”
“사위 자리를 만들어 놓으시겠대요.”
그러자 잠시 움찔한 이어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번부터 그런 이야기는 계속….”
“지참금으로는 현대전자를 이야기하시던데요?”
일순, 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꽤나 충격인 것 같았다.
“뭐어어어?”
하긴 현대전자라면 약 5조 원 규모의 기업, 현재 내 손에 있는 한성전자의 두 배가량의 규모의 대기업이었다.
단일 기업만으로도 재계서열 15위권은 너끈히 가능한 것이 현대전자라는 말이다.
“저, 정말로? 정말로 사위가 되는 것만으로 현대전자를 주겠다고 했다고?”
“네. 정확하게는 손녀사위지만 말이에요.”
“아니 그걸 먼저 이야기해야지! 아니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설마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그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나보다 그가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
“아니 왜!”
“글쎄요…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물건을 굳이 싼 값에 팔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수의계약보다는 경쟁입찰이 훨씬 더 나을 테니까요.”
이쯤 되자 짙은 기대로 치달았던 이어진이 바람빠진 풍선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 너는 진짜….”
아무래도 그 배짱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아니 정 회장이 뭐라고 안 해?”
“오히려 껄껄 웃으시던걸요? 마음에 든다면서요.”
“허, 그래?”
“네. 그래서 뭐 그래도 현대건설을 얹어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죠.”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아니 재벌이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한동안 이곳저곳에서 연락들이 많이 올 거예요. 정 회장님 말고도 말을 걸어오신 분들이 제법 많았거든요.”
“너, 이러다가 진짜 결혼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하하 당연하죠.”
나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잠시 이어진과의 한담을 마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지금 상황은 어때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이내 안색을 굳힌 채 나를 바라보았다.
“오라클? 아니면 오라클 텔레콤?”
방금 전의 소란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 모습이었다.
“둘 다요.”
“일단은 전자 쪽 사업은 꽤나 성공적이야. 일단 PC판매량 같은 경우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어. 아무래도 저번에 런칭한 콘텐츠들이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야.”
그가 천천히 브리핑용 컴퓨터를 조작해 나에게 차트를 보였다.
차트 상에는 첫 달 1만 대에서 시작한 PC판매량이 어느새 100만 대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곧 100만 대 찍겠네요.”
“뭐 그렇지. 그리고 오라클 텔레콤 같은 경우엔….”
“경우엔?”
잠시 침묵, 이어진이 슬쩍 나를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대박이 났지.”
그가 짙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 얼마나요?”
“200만.”
“아니 벌써요?”
“그래. 아무래도 다들 바꾸는 추세니까 아마 연말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거야. 아무래도 모뎀과는 차이가 크니까.”
그가 오라클 텔레콤의 차트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았던 오라클 전자의 제품 판매량도 제법 선명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오라클 텔레콤의 상승률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완전한 직선, 완연한 대각선, 그것이 오라클 텔레콤의 성장세였으니까.
‘좀만 더하면 수직선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돼요. 한국통신이 가진 인프라가 이는 만큼 잘못했다간 금세 따라잡힐 테니까.”
방금은 금물이었다.
정보화 사회, 그 시대는 나태함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미 차기 기술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야.”
“기술 개발이라면 저번에 말했던 그 기술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저번에 니가 말했던 기술, VDSL. 그걸 상용화 준비하고 있어.”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VDSL(Very high-data rate Digital Subscriber Line).
초고속 디지털 가입자회선. ADSL과 마찬가지로 전화선을 이용하는 인터넷 기술이며, ADSL에 비해서 서비스 속도가 높은 기술이다.
아마 전에 내가 이야기해 놓은 것을 허투로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가능할 것 같아요?”
“충분히. 이미 관련 기술은 개발되어 있는 상태니까. 상용화가 문제지.”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1년 안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 거 같은데?”
“자금이라든가 부족한 부분은요?”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다지. 일단 기술 개발비용으로 매출 대비 7%에서 10%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 우리나라 대기업 평균 R&D 비율이 딱 그 정도니까.”
아무래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요즘과 같은 시기 이 정도의 준비라면 충분하겠지.
일반적인 기업들의 경우 R&D는 커녕 생존에 급급하고 있을 때니까.
하지만.
“아뇨. 그걸로는 부족해요.”
나는 알고 있었다.
“부족하다고?”
그것으로는 시대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시대를 선도할 수는 없다는 것을.
10%.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때문에 나는….
“네. 대기업 평균 R&D 자금비율이 10% 정도라면 우린 거기에 묻고 더블로 갑니다.”
아주 간단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이어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하지만 그러면 수익이….”
“아저씨.”
“어.”
“1999년이에요. 1999년. 그 말인즉슨 이제 곧 한 세기가 이제 곧 끝난다는 말이죠.”
“아니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아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밀레니엄이라는 건 단순히 날짜가 바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니까.”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어진의 약간의 당황이 깃든 이어진의 눈을 직시했다.
“시대는 변화할 겁니다. 지금의 세상이 일 년, 한 달, 일주일 단위로 변화한다고 치면 앞으로의 세상은 하루, 한 시간, 일 초 단위로 변화할 거예요. 오늘은 맞았던 것이 오늘은 맞지 않고, 어제는 잘 팔리던 게 오늘은 하나도 팔리지 않는 세상이 올 거예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
찬란하지만 아직은 위태로운 그 빛이 눈에 들어왔다.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던 나라가 부상을 하고 절대 강자는 무너질 거예요. 아주 작은 스타트업, 아니 벤처기업이 한 나라의 예산보다 더 많은 예산을 굴리는 사회가 오고 국가보다 더 한 힘을 휘두르겠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끝없이 움직이고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바뀌어야 해요. 정보화 시대에서 만족이란 도태와 다를 바 없는 말이니까.”
말이 끝나자 잠시간의 침묵이 우리 안에 감돌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이어진, 그가 묵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태라… 그거 참 무서운 말이네.”
그의 묵직한 말, 그 말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죠. 하지만 동시에 그것보다 더 가슴 떨리는 말도 없어요.”
“그래?”
의아함이 감도는 이어진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네. 도태가 있다는 말은 곧 우리가 그것들을 먹어 치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아…….”
“그러니까. 이제 움직이죠.”
“움직이자니?”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슬쩍 웃어 보였다.
“도태되는 것들을 먹어치울 수 있다고요.”
“뭐? 너 설마?”
“네. 맞아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이제 곧 도태될 먹잇감. 우린 그걸 노릴 겁니다.”
저 멀리 서울의 불빛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대우라는 이름의 먹잇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