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봉이 김선달 (3)
쿵-
미쓰비시UFJ 투자의 미 동부지역 책임자 소우타 히로시(颯太宏). 그가 온 힘을 다해 테이블을 내려쳤다.
얼마 전 있었던 넷스케이프 사태. 넷스케이프 폭락사태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다들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거야! 어!”
그러자 그의 앞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 몸을 들썩이더니 이내 푹- 참수당하는 무사들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의 실수로 어마어마한 돈을 잃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그들은 미국 나스닥 시장의 이변을 감지했다.
그들이 감지한 이변이란 바로 넷스케이프의 IPO로 촉발된 나스닥 시장의 이례적인 주가 상승, 미래에 닷컴버블이라 불릴 투자 열풍이었다.
[델(Dell) 45.03▲ 6.01]
[인텔(Intel) 8.99▲ 2.20]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 5,51▲ 1.70]
[어도비(Adobe) 5.60▲ 1.02]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Applied Materials) 3.10▲ 1.00]
[램리서치(RAM Research) 5.03▲ 1.20]
.
.
그 순간, 그들은 깨달았다.
이 기회, 살려야 한다.
떡도 먹어 본 놈이 잘 안다고 버블도 겪어 본 놈이 잘 알았다.
그 결과 미쓰비시UFJ 투자는 나스닥 시장의 호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 판단, 전격적으로 나스닥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자금 투입하도록 해.’
‘얼마나 투입합니까?’
‘가용자금 전부.’
모험적인 투자였다.
하지만 만약 성공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제법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대표님! 수익이 어마어마합니다!’
‘얼마나 나왔지?’
‘넷스케이프로만 5천만 달러. 다른 주식들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합치면 1억 달러 정도는 충분히….’
버블 초기의 선점효과를 확실히 누린 것이다.
‘하하 그래?’
‘네. 모든 것이 대표님의 용단 덕분입니다. 존경합니다.’
때문에 소우타 히로시, 그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쌓아 온 성과, 그리고 이번에 얻은 수익.
그 모든 것들을 더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코쟁이들의 나라를 떠나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는 본토로 영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하 내가 한 게 뭐 있겠나. 다 자네들이 힘써 준 덕분이지.’
‘아닙니다! 저희야 대표님의 혜안에 살짝 손을 거든 것뿐 아니겠습니까.’
‘원 사람 참. 좋아. 기대하게 내 본토로 가면 곧 자네들을 부를 테니까 말이야.’
‘앗! 정말이십니까? 하하 대표님! 견마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가 본토로의 영전을 꿈꾸고 있던 때쯤 갑자기 이변이 벌어졌다.
‘실례합니다. 혹시 미쓰비시UFJ 투자 맞습니까?’
그들이 그동안 얻은 수익을 정리하며 본토에 보고하려던 찰나, 어떤 이들이 자신들에게 주식을 빌려달라고 나타난 것이다.
‘…뭐라고요?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넷스케이프의 주식을 빌리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귀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빌려 주신다면 1달에 5%대 수수료, 그 금액을 저희 오라클에서 보장하겠습니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놈들, 자신들의 정체를 오라클이라 밟힌 이들, 넷스케이프의 주가 하락에 배팅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상으로 미쓰비시UFJ 투자를 선택했다는 것을.
주가가 하늘을 향해 솟고 있는 버블의 초창기 자신보다 더 한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놈들. 한국 놈들이 이래서 문제라니까. 지들이 똑똑한 줄 알지만 시장을 못 읽어요.’
결국, 그는 웃으면서 그들과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조사해 본 결과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얼마 뒤면 피눈물을 흘리면서 질질 짜겠지.’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오라클과 거래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넷스케이프 68.00▼ 1.50]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아무래도 이번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신제품에 자체 인터넷 브라우저가 탑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뭐어?’
순간, 그는 깨달았다.
오라클 그놈들이 기다렸던 것이 무엇인지를.
때문에 그는 뒤늦게 휘하의 직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앉은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자금을 잃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지금 당장 조치 취해!’
‘하… 하지만 이미 주식 대부분을 빌려 준 상태라…….’
‘빌어먹을! 그래서 그냥 앉아만 있겠다는 거야? 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계약은 신성한 것. 이미 버스는 떠난 간 후요, 던져진 주사위였다.
때문에 그들, 미쓰비스 투자 사람들은 급전직하 떨어지는 넷스케이프의 주가를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넷스케이프 67.50▼]
↓
[넷스케이프 58.20▼]
↓
[넷스케이프 47.00▼]
그리고 그 결과.
‘그동안 잘 썼어요.’
‘…….’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무려 1억 달러.
그 짧은 기간 무려 100억 엔이 넘는 돈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그런 만큼 투자의 총 책임자 소우타 히로시의 스트레스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쿵-
“다들 왜 말이 없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라면 그가 아무리 회장의 일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면책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안 돼!’
결국, 그는 희생양을 선택하기로 했다.
타겟은 바로… 겐조. 그의 오른팔로 오라클과의 거래에 실무를 맡았던 사람이었다.
“겐조.”
“네, 넷! 대표님.”
“오라클이랑 계약을 진행한 게 자네였지?”
순간, 겐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 타이밍에 자신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 그 의도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설마?’
그가 서둘러 고개를 들어 변명을 내뱉었다.
“하, 하지만… 계약을 진행한 건 분명….”
“하지만이고 지랄이고. 방법을 찾아. 책임을 지란 말이야!”
겐조가 사색이 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무고함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
자리에 앉은 다른 직원들 모두 자신의 시선을 피할 뿐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을 위해 나서 주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 또한 도매금으로 엮이기 싫다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우타 히로시, 그가 입을 열었다.
“방법을 찾아. 시일은 한 달. 한 달 안에 방법을 찾으며 내 없던 일로 해 주지.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꿀꺽-
겐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미쓰비시(三菱).
미쓰비시는 국가다(三菱は?家なり)라는 사훈으로 유명한 그룹.
그런 그룹인 만큼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의 몸이야 이곳 미국에 있었지만, 그의 일가친척들 모두가 일본 본토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희생양인 겐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 알겠습니다. 대표. 선처 부탁드립니다.”
순순히 목을 들이민다면 아주 약간의 살길은 열어 줄 것이라 생각하면서.
“좋아.”
그리고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소우타 히로시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겐조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면책을 면키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라클이라… 빌어먹을 놈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 시각, 그들과 같은 일본계 투자 회사들 여러 곳에서 그들과 같은 회의를 하고 있음을.
***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 나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배 좀 아프겠죠?”
그러자 내 옆자리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이어진,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프다뿐이겠어? 아마 울화통이 터지겠지.”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타격을 받은 사람들의 분노가 더 심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지난 한 달 새 그들이 잃은 돈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있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95 발매, 그리고 그로 인한 넷스케이프의 주가하락에서 나는 꽤나 성공적인 수익을 거두었다.
‘얼마라고요?’
‘오늘까지 순이익만 1억 달럽니다.’
모두 다 공매도(空賣渡).
하락장에서 유독 힘을 드러내는 검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요?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요?’
‘그만큼 넷스케이프 주식이 떨어졌으니까요.’
물론 공매도란 위험한 무기. 자칫 잘못하면 무고한 이들을 위협하는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었지만, 뭐 타겟들 상태가 상태인 만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칼을 휘둘러 버렸다.
미쓰비시(三菱).
가와사키(川崎).
코마츠(小松).
닛산(日産).
마쓰시타(松下).
.
.
뭐 그렇다고 내가 평소 애국심이 투철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왜 있잖은가. 일본에겐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기왕이면 넷스케이프에 투자한 기업들 중 일본 기업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전범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 위주로 공매도에 사용할 주식을 빌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국수주의는 배격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2020년까지 살면서 보았던 일본 정부의 행실이 괘씸하기도 하고.’
하지만 처음부터 그들이 우리에게 주식을 빌려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갑작스러운 우리의 접근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이들도 존재했던 것이다.
‘주식을 빌린다라. 아무래도 하락장에 배팅을 하려는 모양인데. 뭐 그런 무모한 일에 우리가 굳이 끼어들 필요가 있나 싶군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주가가 하락한다면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한 달 5% 어떠세요?’
거절하기엔 너무나 많은 수수료.
5%에 달하는 수수료를 대가로 제시하자 우리가 접촉한 기업들 중 대다수가 우리에게 주식을 넘기겠다는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5%요?’
‘네. 그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흠흠, 뭐 그, 그 정도라면 생각해 볼 만하군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상승장, 그 중에서도 ‘핫한’ 주식에 속하는 넷스케이프의 주가가 떨어질 일은 없다 생각했을 테니까.
‘아마 우리를 실컷 비웃었겠지. 장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이라고 말이야.’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 넷스케이프. 그 회사의 주식이 황금주, 블루칩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상승 또한 이제 곧 꺾이리라는 것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폭군의 등장에 인터넷 시장이 출렁거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야 치트키를 치고 스타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 결과, 윈도우즈95의 발표 이후 넷스케이프의 주가가 떨어질 때, 나는 마음껏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럼 오늘까지 얼마나 벌어들인 거죠?”
내가 묻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천천히 자료를 확인했다.
“오늘까지? 글쎄 보자… 흐음 미쓰비시에서 1억. 가와사키에서 5천… 총 해서 3억 달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래요?”
“어. 아무래도 하락폭이 제법 컸으니까.”
이어진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에 물었다.
불과 몇 주 사이 전범기업들이 나스닥에서 거둬들인 돈을 아주 바나나우유 마시듯 쪽쪽 빨아 마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넷스케이프.
나스닥 시장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시가총액 18억 달러를 달성한 기업, 전성기 때엔 시가총액 80억 달러에 다다랐던 벤처기업의 신화.
그 기업에 투자했던 기업 또한 많았을 테니 이정도의 수익은 사실 당연한 것일지 몰랐다.
‘뭐 주가가 하락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넷스케이프에만 천착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넷스케이프의 주가 하락에 많은 기대를 한 것은 맞았지만 그 와중에도 나스닥 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단기적으로야 넷스케이프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버블은 이제 시작, 그 외에도 제법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주식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6.10▲ 10.25]
[델(Dell) 50.03▲ 6.10]
[인텔(Intel) 10.90▲ 2.20]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 9,51▲ 3.10]
[어도비(Adobe) 9.50▲ 1.02]
[아메리카온라인(AOL) 17.00▲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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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럼 이제부터는… 존버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