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최고(最高) (1)
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恃險).
이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면 대한민국의 아침은 조금 특별해진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 늦춰지는 출근 시간, 영어 듣기 평가에 맞춰 일제히 숨을 죽이는 항공기, 그리고 그밖에 소음을 낼 만한 모든 것들이 모두 정지하고 그 자리를 수험생과 수험생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신 차지한다.
예를 들어 100일 기도로 녹초가 된 할머니, 파리한 안색으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커피를 돌리며 응원하는 후배, 운동장 안으로 뛰어드는 경찰차 같은 것들.
수능이 벌어지는 단 하루, 그 날을 위해 대한민국 전체가 긴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1994년 11월 16일 7시 45분.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2차 수능이 시작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서울에 소재한 200여 개의 수능 시험장 중 한 곳에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수능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들 열심히들 산다 열심히들 살아.”
수능이 벌어지는 교실 안. 마지막까지 교과서를 펼친 채 쉴 새 없이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 막판 뒤집기를 노리며 한 글자라도 더 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보이고 있는 존재.
한성그룹의 부회장 김명석의 장자이자 그룹 총수인 김귀란의 장손. 만약 김준영이라는 이레귤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난하게 한성그룹을 계승했을 인물.
김홍래.
이미 있었던 8월 말 있었던 1차 수능에서 200점 만점에 총 180점이라는 높은 성적을 맞아 국내 최고 대학인 한국대학교의 입학이 결정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쯧쯧, 그러게 평소에 좀 열심히 하지. 지금 와서 공부한다고 되나?”
사실 이미 180점이라는 높은 점수, 그룹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1%의 점수를 맞은 이상 오늘 시험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목표로 한 대학교 한국대학교 가는 것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홍래야. 넌 무조건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무조건. 한성그룹은 나 그리고 너의 회사야. 그러니까 보여 주거라. 시커멓게 속이 썩은 놈들, 눈만 뜨면 앵알거리는 놈들한테 우리 부자가 감히 넘볼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란 말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고 있지?’
아버지의 바람. 그리고 한성 그룹의 손에 쥐려는 자신의 바람. 그 바람을 위해 오늘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들, 모자란 그의 친척들을 신경 쓰는 아버지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김귀란.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한성 그룹을 얻어 내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그도 얼마 안 남았지만 말이야.’
김홍래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맺혔다.
얼마 뒤 자신의 수능 점수가 나온 뒤 놀란 모습을 지을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그날로 사실상 한성이 내 손에 들어오는 거지.’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수능의 시작을 기다리며 몸을 풀고 있던 때, 갑자기 교실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사람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제 32 고사장이라··· 여기 맞나?”
이제 막 여남은 살이나 됐을까? 아직 앳된 기색이 역력한, 하지만 그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가 보일 수 없는 침착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 곧 능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시험 준비를 하는, 자신에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읽기 시작하는 아이.
김준영. 그의 친척 동생이 그가 있는 교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뭐야 저 녀석··· 설마 이 시험장에서 시험 보는 거였어?’
순간, 김홍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김준영. 이미 죽은 한성가 사남의 자식.
원래대로였다면 그가 신경을 쓰기는커녕 그의 자비만을 바라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요즘 들어 자꾸 주제 넘는 일을 일으키고 있어 그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놈을 배척할 수도 없었다.
녀석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그 강퍅하던 김귀란의 눈에 든 이상 되도록 친하게 지내야만 했다.
물론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그는 인내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미래, 한성가의 회장이 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뭐 머리는 제법 좋은 놈이니까. 어느 정도 챙겨 줘도 괜찮겠지.’
결국 마음을 굳힌 김홍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김준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제법 강하게 준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준영아.”
그러자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김준영. 살짝 찌푸려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홍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힘내”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11살 꼬맹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면서.
***
“네가 여기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힘내”
뭐야 갑자기?
김홍래의 말에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일제강점기, 문화 통치 시기 일제 순사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게 꼭 김홍래 닮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빠르게 교과서를 훑어 내렸다. 교과서 사진 속에 나온 일본 순사의 모습이 김홍래의 모습과 정말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 나는 마지막 정리를 끝낸 뒤 교과서를 덮었다.
그리고는 가방에 교과서를 집어넣은 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풍경.
차가운 가을 공기 아래 미친 듯이 책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과 불안한 듯 떨리는 사람들의 눈빛, 짐짓 고요한 안색을 하고 있지만 짙은 불안이 느껴지는 모습의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시험이 주는 압박감에 잡아먹힌 사람들, 시험장의 공기에 짓눌린 듯한 모습들이었다.
‘검정고시 때랑은 완전 다른 분위기네.’
하긴 오늘 보는 시험.
수능.
그 시험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저런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능이란 단순한 대입 시험이 아닌, 우리나라의 학연, 지연, 혈연 중 학연과 지연을 책임지고 있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의 지난 12년을 확인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 또한 긴장할 수밖에.
오늘 보는 시험의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계단을 딛고 올라서고, 또 누군가는 그 모습을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시험을 보는 모두가, 오늘 시험을 치르는 70만 명의 수험생들 모두 다 알고 있을 테니까.
‘···한번 들어서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힘든 굴레지.’
나 또한 과거,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긴장을 한 채 수능을 보고, 또 계단 아래서 계단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더 그 비참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현실, 그 지독한 것의 무게에 눌러 수능을 보는 것 자체를 죄스럽게 생각하며 처참했던 수능의 결과를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시험 성적은 그럭저럭 잘 나왔지만··· 등록금이 없었지.’
하지만 이젠 다르다.
이젠 과거와 같이 현실에 짓눌려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를 죄스럽게 생각하던 내가 아니다.
1994년 현재의 나에게 수능이란, 미래의 나를 위한 발돋움판.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할 때 밟는 트랙에 불과했다.
그러니 나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보다 나이도 적고 수능을 준비한 기간 또한 현저히 짧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밀도, 그리고 퀄리티였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국내 최고 수준의 몸값을 자랑하는, 시간당 9급 공무원 한 달 급여가 넘는 금액을 가져가는 강사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강도 높은 수업과 산처럼 쌓인 과제, 집과 사업체를 오가는 시간에도 이어지는 자습.
주마다 계속되는 레벨 테스트와 서릿발 같은 강사진의 지적까지.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오늘의 시험을 위해 정말 미친 듯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앉아 있는 것 자체는 자신 있었으니까.’
게다가 기존의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에서 사고력 위주의 수능으로 시험의 체계가 바뀌면서 시험이 내게 유리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지난 12년간 준비해 오던 시험의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과거 준비했던 시험, 좋든 싫든 12년 동안 공부했던 시험 체계를 다시금 공부하며 그 방법을 떠올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고 바뀐 시험 체계, 그러니까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준비하고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바뀐 체계를 추측, 공부하기 시작한 것과 12년간 수능이라는 체계에 완전히 몰두해 봤던 것의 차이는 컸다.
솔직히 한성의 힘으로 불러온 1타 강사들, 강남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뭐 그런 사람들은 진즉에 갈아치웠지만 말이야.’
거기다 수능은 기본적으로 사고와 이해. 남들보다 더 깊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험체계였다.
그러니 지난 37년의 삶, 그 삶을 기억하고 또 삶을 곱씹는 것을 취미로 하던 나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아무리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청소년들이라 할지라도 경험에서 우러나는 사고의 깊이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암기까지 팽팽 잘 되기 시작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그러니 할 만하다.
아니 단순히 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 오늘 시험. 올해 수능은 사실 나를 위한 판이나 진배없었다.
물론 세상에 예외란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법. 어디까지나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그만큼이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오늘을 끝으로 나는 과거의 처참했던 기억을 잊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완벽하게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8시 30분, 내가 미래를 바꿀 준비가 끝낸 뒤, 고요한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딩동댕동-
[지금부터 1995학년도 대입수학능력평가시험 2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실내에 계신 수험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즉시···]
종이 울리고 드디어 수능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라락- 시험장 안이 시험지 넘어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들.
“후우···.”
“하아··· 젠장···.”
고통의 겨운 사람들의 소리들.
나는 그 소리들을 맞으며 천천히 시험지를 폈다.
그리고 얼마 뒤, 내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