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계명구도(鷄鳴狗盜) (2) >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어진의 말,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젓가락을 놀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늦은 저녁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던 차였다.
“어떻게 되긴요. 당연히 처음엔 안 믿었죠.”
“그래?”
“네. 갑자기 그 사람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물건일 테니까요.”
그러고는 내 앞에 놓인 김치를 들어 입에 넣었다.
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김치의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러자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이어진이 이내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갑자기 자기 딸을 살릴 수 있다니 믿지 않겠지. 그 상황에서라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을 테니까.”
“뭐 그렇죠. 그런데 그리 오래가진 않았어요. 뭐 조금 강압적이긴 했지만 곧 그를 설득할 수 있었거든요.”
“아니 어떻게?”
의아한 듯 묻는 이어진, 그를 향해 나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완벽(完璧)의 고사를 이용했죠.”
“완벽의 고사?”
“네.”
그러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준영아, 너 설마?”
아무래도 내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깨달은 것 같았다.
“네. 맞아요.”
완벽의 고사.
그것은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무가지보인 화씨지벽(和氏之璧)에 관련된 고사.
춘추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가 조나라에 화씨지벽을 내놓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 협박할 때,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가 되려 화씨지벽을 깨뜨리겠다 협박해 진왕의 마음을 돌린 것을 의미하는 이야기다.
때문에 나는 이번 일을 진행할 때 그 일화의 내용을 약간 이용했다.
아무렴 두 가지 모두 다 보물이라는 건 진배없었으니까.
“···너 설마 그거 깨 버린다고 한 거야?”
“물론이죠. 뭐 제가 아니면 그걸 얻을 수 있는 곳은 없을 테니까요.”
“아니 그러다가 진짜 깼으면 그래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그럴 리 없어요.”
“아니 왜?”
나는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는 이어진,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옵션이 그에게 불리할 테니까요.”
“불리하다고?”
“네. 사실 간단한 문제예요. 만약 제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한 번 속은 것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때서야 그가 퍼뜩 뭔가를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딸의 목숨이 사라지는 거겠지.”
“그렇죠. 현시점에서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의 치료제. 삼진 바이오에피스의 작품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테니까.”
“아니, 그런데 흑사회 인간이 딸을 그렇게 소중히 여긴단 말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자기 사람은, 가족은 끔찍한 법이죠. 실제 조사한 결과로도 그랬고요. 오죽했으면 거의 매일 북경에 있는 병원까지 오가겠어요.”
“그래?”
“네. 아마 몇 년 전 아내가 죽은 이후 그의 집착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들리는 소문에 딸이 아마 아내를 닮았다는 것 같거든요.”
말을 마친 나는 그에게 자료 하나를 건넸다.
그 자료 안에는 우리가 수집한 자료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게 얻은 자료들, 정금석의 가족에 대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는 자료들이었다.
그러자 잠시 컵라면을 내려놓은 이어진, 그가 빠르게 자료들을 확인하더니 절레절레 혀를 내둘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료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금석의 자료와는 조금 다른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허, 참. 의외네. 아니 생긴 거는 가족이고 뭐고 싹 다 쓸데없다 생각할 사람일 것 같은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죠. 남에게는 차가운 괴물도 자기 자식에게는 그 누구보다 더 선량할 수 있으니까요.”
“하긴 맹수도 제 새끼한테는 부드러운 법이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준비해 주세요.”
이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준비?”
“네.”
나는 컵라면 그릇에 남은 마지막 국물을 마셨다.
그런 다음 이어진, 그를 향해 말했다.
“이제 곧 괴물이, 제 자식을 살리고픈 괴물이 이곳으로 올 테니까요.”
*
다음날 황금평.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대지. 그곳의 외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어? 어어? 저기 중국 쪽에서 차들이 들어오는데?”
“뭐어? 아니, 어디?”
그것은 바로 오늘, 그동안 막혀 있던 중국 쪽에서 황금평을 향해 일단의 차량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저기 봐봐 단둥 쪽에서 차들이 오고 있잖아.”
“젠장, 진짜네. 혹시 오늘 들어오기로 한 차 있어?”
“없어!”
그러자 중국과 황금평의 경계를 맡고 있던 사람들,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차단막 설치하고 위쪽에 연락해! 뭔가 심상치 않다고!”
“알겠어!”
그동안 중국과의 물류가 막혀 있던 만큼 중국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지, 정지, 정지! 시동 꺼! 라이트 꺼! 하차!”
그리고 잠시 뒤. 몰려든 차량들을 막아 선 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잠시 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 남자, 그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계가 삼엄하군.”
그의 이름은 바로 정금석. 수만 명의 조직원을 자랑하는 흑사회 조직, 형제회의 거두이자 동북의 여룡(驪龍)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
달칵-
문을 연다.
그러자 응접실. 한국 풍으로 제법 화려하게 꾸며 놓은 공간에서 나는 한 사람을 마주쳤다.
“······.”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꽤나 자신만만했던 시선.
꽤나 야수적인 시선을 보내던, 하지만 오늘 왠지 모를 짙은 떨림이 깃들어 있는 시선의 남자. 정금석.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순간, 스윽-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정금석이 이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그러고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그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 버렸다.
쿵-
순간,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불식간에 나와 내 앞을 가린 경호원들과 내 옆에 있던 이어진 모두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니 이게 무슨···.”
“도대체···.”
모두 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정금석, 그는 중국 동북성에서 만큼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남자.
총 조직원 수 3만 5천 명. 관계를 맺고 있는 인원의 수만 무려 30만을 헤아리는 거대 조직의 회주이자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지역과 특구 지역, 각 성의 대도시들의 인적, 물적 물류를 지배하는 조직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다니. 아무리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만 제법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간의 사업을 해 오며 이 일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무슨 짓이죠?”
그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그러자 잠시 고요한 시선, 다 식어 버린 희나리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정금석. 그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쿵- 바닥에 머리를 내려찍었다.
쿵-
쿵-
쿵-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누구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모습으로 머리를 찍던 그, 그가 곧 주르륵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오. 내 면목이 없소.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그대를 통해 나의 욕심을 차리고자 했으니 부디 나를 용서해 주시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표정. 불타오르고 있는 듯한 시선. 그의 모습은 나를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꽤나 짧고 강렬하게.
그러고는 이내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고개를 숙인 그가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묵을 드러냈다.
마치 인상여(藺相如)의 처분을 바라는 염파(廉頗)처럼.
그 모습을 보니 그가 어제 보았던 남자, 패기롭게 나에게 말을 걸던 그 남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 그 전에 그와, 내 눈앞에 있는 그는 제법 많은 곳에서 차이가 나는 인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거 참···.
옆을 보자 이어진의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약빨이 더 잘 든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품속에서 손수건을 내밀었다.
“효과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 정금석, 그가 이내 내가 내민 손수건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당신이 준 그 주사약. 그걸 맞고 기적이 일어났소. 지난 5년간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을 하곤 하던 딸애가 비로소 편히 잠들었지.”
꽤나 낮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일단의 기대를 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물론이오. 하지만···.”
기적을 보았다는 듯 격정에 차올랐던 그의 눈빛, 그 눈빛이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더군. 아침에 깨어난 딸애가 또다시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지.”
그러고는 짙은 후회, 짙은 분노, 짙은 기대를 가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부탁이오. 그 약, 그 약을 좀 더, 팔아 주시오. 그러면 내 천금이라도 쥐여 주겠소.”
기대가 깃든 목소리.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업가. 단가만 맞다면 못 팔 이유가 없죠.”
그러자 그의 얼굴에 짙은 기대가 감돌았다.
“정말 그럴 수 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이미 임상 1, 2차가 마무리된 상황, 게다가 조금 더 데이터가 쌓이면 보다 진보된 제제를 손에 쥘 수도 있을 겁니다.”
“진보된 제제라 하면?”
“완치죠.”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자리해 있었던 후회와 분노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그전보다 훨씬 더 선명해진 기대였다.
“완치라. 내 완치만 될 수 있다면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소. 그래 얼마나 필요하···.”
“100억 달러.”
순간, 그의 얼굴이 청동처럼 굳었다.
100억 달러.
그 돈이라면 그가 노렸던 자금의 두 배에 달하는 자금, 그가 방금 말한 자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자금이었다.
“100억 달러?”
“네. 100억 달러. 최소 금액입니다. 혹시 불가능하십니까?”
“아니 그건···.”
이쯤 되자 정금석 그 또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무리 그가 동북성의 자금을 끌어당기는 존재라 할지라도 100억 달러라는 자금은 쉽게 입에 올릴 자금이 아니다.
물론 2020년대쯤의 중국 부호들, 지하자금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들의 경우 10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비자금으로 형성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왔지만 지금은 2000년대 초반, 20년 후와 자본의 규모가 다른 것이다.
그러자 희망으로 부풀었던 정금석의 얼굴, 그의 얼굴이 나락으로 치달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힘드십니까?”
“지금 당장은.”
“뭐,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일순, 그의 눈에 광명이 돌아왔다.
“다른 방법?”
“네. 언제나 사업엔 옵션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실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치료제를 만들어 드리죠.”
“···그게 뭐지?”
나는 나를 바라보는 정금석,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당신, 그리고 당신의 형제들 전체의···”
그것은 동북지역의 미래를 담고 있었다.
“···믿음. 그걸 주시죠.”
정금석의 눈이 크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