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222화 최종입찰 (1)
며칠 뒤.
쌍호 자동차의 입찰 일정이 공고되었다.
[쌍호자동차 인수위원회 공고 : 쌍호자동차 최종입찰 일시. 1997년 12월 13일]
드디어 본격적인 입찰, 쌍호자동차를 둘러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속전속결! 쌍호차 인수 위원회. 쌍호자동차 입찰 일정 공개! 오는 13일 최종 입찰일! - 조X일보. 1997. 12. 10]
[초미의 관심사! 완성차 업계 5위 쌍호자동차 인수의 승자는? - 중X일보. 1997. 12. 10]
[대우와 오라클의 이파전, 쌍호자동차 인수에 사람들의 관심 폭증! - 동X일보. 1997. 12. 10]
그러자 쌍호자동차를 지켜보던 사람들, 쌍호차의 미래에 베팅을 하려는 도박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바삐 움직여야 이번 사태로 인한 콩고물을 더 많이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대우와 오라클이라… 어느 쪽에 걸어야 하지?”
“글쎄 일단은….”
일단 가장 먼저 언론.
조X, 동X, 중X 등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들은 물론, KBX, SBX, MBX 등의 지상파 방송.
그리고 라디오 방송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 대부분이 각자의 정보망을 총동원 각각의 예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논란의 쌍호자동차 인수! 전문가들 유력후보자로 대우자동차 점찍어! - 조X일보. 1997. 12. 10]
[대우자동차 쌍호자동차 인수를 위해 3조원 가량의 자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 매X경제. 1997. 12. 11]
[쌍호자동차 노동자들, 조사결과 오라클보다는 대우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다! - 경X일보. 1997. 12. 11]
그러자 자본을 움직이는 자들.
돈을 가진 자들이 그 움직임에 편승 곧 주식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올해 말 IMF사태로 인해 370포인트, 42%나 떨어진 주식시장의 주가가 무려 10포인트나 상승했다.
[KOSPI ▼ 370]
↓
[KOSPI ▲ 375]
[KOSPI ▲ 380]
쌍호 자동차 인수로 인한 파급효과, 대우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그쪽을 향해 돈을 쏟아 부은 것이다.
[대우자동차 11,050 ▲ 540]
[대우자동차판매 8,505 ▲ 240]
[대우기전공업 11,430 ▲ 305]
[대우중공업 10,928 ▲ 340]
물론 그렇다고 아직까지 확실한 승패, 확실한 등락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었다.
이번 사건의 승자, 쌍호자동차를 손에 쥐는 것은 대우 자동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오라클은 이번 사건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지난 20년간 대우가 쌓아왔던 이미지와 언론사가 만들어 낸 여론, 그리고 곧 오라클이 정부의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찌라시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뭐 정부 주도의 경제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정부의 제재란 곧 사신을 만난다는 것과 진배없었으니까.
“…그 소식 들었어?”
“어떤 소식?”
“아니 오라클 있잖아. 그 회사에 정부 쪽에서 압력을 가할 거라는 데?”
“…뭐? 아니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아무래도 대우 쪽에서 움직였다는 소문이 있어. 그러니까….”
“젠장, 빨리 발을 빼야겠지.”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소문은 없다고 얼마 뒤, 이변이 벌어졌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는 달리 정부가 오라클을 제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측에서 오라클을 비롯한 현대, 한성 등 주요 기업들과의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증권가 찌라시 #20’
[…근래 김영삼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의 접촉이 잦아지고 있음. 아무래도 현재의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됨. 그중에서도 유독 접촉이 잦은 기업으로는 현대, 한성, 오라클 등이…]
그러자 대우 측에 베팅한 사람들, 오라클의 패배에 돈을 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만약 오라클이 승리하기라도 하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오라클이 쌍호를 쥐게 된다면, 지금껏 대우를 물고 빨아왔던 그들은 그 역풍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정부쪽 칼이 오라클을 찌를 거라며!”
“나도 몰라! 젠장, 아니 대우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다시 오라클 쪽에 선을 대 보자고.”
“그, 그래. 지금이라도 빨리 가 보자.”
물론 모두 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네? 아니 왜?”
“저희 오라클은 여러분과 같은 분들을 신뢰하지 않아서요.”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 대우 쪽에 줄을 댄 사람들이 일대의 혼란에 빠져 있던 그때.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1997년 12월 13일.
마침내 쌍호자동차의 주인을 결정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
수십 명의 시선.
그리고 수십 명의 숨소리.
나는 그 시선과 소리를 마주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드륵-
그러자 바로 내 앞에 있는 남자.
쌍호자동차 인수위원회, 쌍호자동차 채권단의 임시 의장직을 맡고 있는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확인하겠습니다. 오라클의 김준영 회장님. 맞으십니까?”
분명 나를 알고 있는 인물, 나와 식사까지 한 인물이었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의 태도는 진중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무게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쌍호자동차 공개 입찰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현재 입찰 결과는 상호 합의 하에 빠르게 결정을 내기로 한 바, 오라클과 대우의 입찰 결과는 투명한 입찰 과정을 위해 입찰 경쟁이 끝난 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찰 가액의 공개에 동의하십니까?”
아무래도 정부 쪽의 압력이 있었던 듯, 꽤나 투명성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은 나에게도 긍정적이었으니까.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에 놓인 서류에 오라클의 쌍호자동차 인수가액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 나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오라클의 사람들과 쌍호자동차의 채권단, 쌍호자동차의 인원들 그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앞에 놓인 서류, 그 안에 적힐 숫자에 따라 쌍호자동차의 운명과 수만 명의 쌍호자동차 관련 노동자들의 운명 그리고 이 나라 대한민국의 상황이 변화하리라는 것을.
때문에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만 할까?
과연 얼마만큼의 자금을 적어 내는 것이 좋을 것인가.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이라면 쌍호자동차를 인수하는 것 정도는 여반장(如反掌)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무분별한 액수를 적어 낼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의 규모가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 없이 큰 금액을 적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투자자. 쓸모없는 것을 비싼 값에 사는 수집가가 아니라 씨앗을 발아시켜 키우는 자였으니까.
게다가.
‘대우가 있지.’
대우.
현 상황의 유일한 경쟁자.
내가 아니었다면 헐값에 쌍호를 손에 쥐었을 회사. 그러나 오너의 욕심으로 인해 결국 몇 년 뒤 분해되고 마는 회사. 그 회사가 있는 한 너무 적절한 금액은 필수였다. 너무 돈을 아끼다 손 위에 올려둔 보물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밟으며 펜을 들었다.
탁-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펜.
순간, 내 손 끝에서 제법 많은 수의 숫자들이 종이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슥-
그리고 잠시 뒤, 내가 써낸 입찰가가 의장에 손에 닿았다.
그 순간, 의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 회장님. 정말 이 금액이 귀측의 쌍호차 입찰 금액 맞는 겁니까?”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람들의 시선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
그 시각, 쌍호그룹 본사의 대회의실.
그곳에서 수십 명의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젠장, 다들 언제쯤 나오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아니 들어간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그까짓 거 좀 후딱후딱 쓰고 나오지 참.”
갑자기 대회의장의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기 나온다!”
“저쪽에도 나온다!”
그들은 바로 김준영과 김우중, 이번 싸움의 맞수이자 거대기업 쌍호자동차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었다.
“김우중 회장. 저 양반 아직도 안 늙었네.”
“저 꼬맹이가 김준영인가? 얼굴은 완전 어린앤데?”
그러자 그들을 바라본 기자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관계자들과 다른 기업들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대우와 오라클의 일척도건곤(一擲賭乾坤).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결이 끝나고 나면 누가 이기든 이 나라의 세력구도가 크게 바뀔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참, 아무리 봐도 저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니 믿기지 않는구만.”
“그치. 들어보니까 나이 차이만 거의 50에서 60살 차이던데….”
“그나저나 저 꼬맹이가 얼마나 적었을까? 2조? 아니면 3조?”
“글쎄? 아마 3조 언저리쯤 넣지 않았을까? 쌍호차 부채가 3조 5천억 정도라니까 아마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는 넣었겠지. 보아하니… 둘 다 칼을 간 것 같으니까.”
“에이 설마, 그렇게 하면 쇼당이 안 붙지! 아니 삼성이랑 있을 때까지만 해도 2조 후반대까지 말이 나왔었잖아?”
“모르는 소리. 원래 3파전보다 2파전이 더 격렬한 거 몰라? 아마 먼저 선점하고 채권단이랑 딜을 해서 쇼부를 보겠지. 안 그래?”
“하긴…….”
그런데 그때.
대화를 나누고 있던 기자들 중 한 사람이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도 좀 걸까?”
“…뭔 소리야?”
“아니 누가 이길까 내기나 해 보자는 거지. 어차피 시간도 남잖아 어때?”
약간은 장난스러운 기자의 말,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하더니 이내 한 기자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오케이 난 대우가 이긴다에 만 원 건다.”
순간,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당시 만 원이면 꽤나 큰돈. 식사로 따졌을 때 7끼에서 10끼 정도가 가능한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만 원이나?”
“그래. 쫄리면 뒈지시던가. 어때?”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빠르게 변했다.
“빌어먹을 나도 만 원 건다! 나는 오라클에 건다.”
흥미로운 내기, 그것에 빠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대우!”
“나는 오라클!”
“대우!”
“…10달러도 받아 줘?”
“아니 이 시국에 어디서 양키 돈을 가져와! 꺼져!”
“아니 이거 환율 올라서 만오천 원인데?”
“만 오천 원? 뭐하고 있어! 빨리 걸어!”
그리고 잠시 뒤, 장내에 있는 기자들 대부분이 돈을 걸었을 즈음, 드디어 채권단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숨죽인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잠시 후면 쌍호자동차의 운명, 그리고 쌓인 돈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빨리 해라! 빨리!”
“얼마나 모인 거야?”
“글쎄? 한 100만 원 정도?”
그리고 그렇게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채권단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타라라라라라라락-
채권단 측이 준비한 전광판, 그 안에서 첫 번째 숫자가 나온 그 순간, 갑자기 대우 쪽에 베팅을 한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대형 전광판에 나오기 시작한 숫자, 그 숫자를 그것을 본 사람들 모두가 낙승을 예상한 것이다.
[대 우 : 3,500,00…]
[오라클 : 2,500,00…]
“대우다! 대우가 떴다!”
“대박! 대박!”
“3조 대 2조 하하 게임 끝났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잠시 뒤, 대우에 돈을 건 기자들의 소리가 빠르게 꺼져 갔다.
“와아아아아…. 어?”
왜냐하면.
[대 우 : 3,500,000,000,000 \]
명확하게 인식이 가능한 대우의 입찰금과는 달리 오라클의 입찰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라클 : 2,500,000,000 $]
2,500,000,000 달러.
현재 환율인 1500원으로 계산했을 때 3,750,000,000,000원에 달하는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