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 300화 사냥감은 스티브 잡스 (2)
또라이.
성공한 또라이.
이제 얼마 뒤, 전 세계 사업가들의 롤모델이 되는, 정보통신 업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혁신적 인물.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이뤄졌다.
“준영 저쪽입니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의 차를 일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브 잡스, 그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쪽이요?”
“네. 애플 본사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 그곳에 그가 있을 겁니다.”
제리 양의 손짓에 따라 조금 걸어가자 보이는 모습. 그것은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와 살짝 늘어난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
검은색 터틀넥과 클래식한 느낌의 안경, 약간 벗겨진 회색머리가 인상적인 인상의 사내가 사람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테드! 너의 디자인은 정말이지 구제불능이야! 이대로 디자인을 했다간 우리 회사는 완전히 망하고 말거라고! 아니 우리 회사를 쓰레기 처리장으로 착각한 건가?”
“제이미! 이딴 식으로 인터페이스를 만들거면 당장 때려치고 IBM으로 꺼져! 이 X같은 인터페이스를 쓰다간 사람들이 죄다 심장마비를 일으킬 거야!”
“애니! 좀 제대로 해! 당신의 연봉이 아까워지려고 하고 있어! 뭐 너무한 말 아니냐고? 당신이 나에게 전달한 이 제품 보고서가 더 너무해!”
그가 바로 스티브 잡스(Steven Jobs).
만 21세의 나이에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 이후 25세의 나이에 기업공개를 통해 2억 5600만 달러의 자산을 손에 쥔 남자.
그리고 아이폰이라는 기기. 스마트폰의 시작이자 대표적인 산물 만들어 내며 오늘날의 모바일 시대를 만든 인물.
2020년 기준 시가총액 1,584조 7,000억 원의 거대 기업을 만들어낸,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비쿼터스 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었다.
“저 사람이….”
“네. 저 사람이 스티브, 바로 당신이 찾던 사汰訣?.”
뭐 그의 성격은 듣던 대로인 것 같지만.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그러자 쉴 새 없이 사람들을 향해 미치듯이 독설을 처붓고 있는 스티브 잡스,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모습이 일상적인가 봐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의 성격,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이 바닥에서도 유명하죠.”
“반발은 없나요? 미국에서 이런 일은 금기일 것 같은데?”
“웬걸요. 그 때문에 동업자에게 쫓겨나기도 했었는데 혹시 모르고 계십니까?”
설마 아무것도 모르냐는 듯한 제리 양의 모습, 그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1985년, 그가 자신의 손으로 스카웃한 펩시콜라의 부사장 존 스컬리의 손에 의해 매킨토시 팀장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나듯 애플을 떠났었다가 ‘넥스트 컴퓨터’를 창업, 이후 픽사의 회장 겸 CEO가 되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변함은 없는 거군요. 그런 경험을 했으면서도.”
“놀랍겠지만 저게 변한 거랍니다.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그 전에 스티브는 정말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물론입니다. 워즈니악. 과거 그의 친구였던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니 확실할 겁니다.”
제리 양,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스티브 잡스, 그에 대한 실리콘 밸리 사람들의 평판을 알 것 같았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날카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이 애플이라는 것,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이 스티브 잡스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명제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스티브 잡스, 아직 살아 있을 시절의 그, 한창 전설을 만들기 위해 열정적으? 움직이던 시기의 그라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제리 양과 이어진,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러자 등 뒤에서 당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준영? 어디로?”
“준영아! 너 또 설마?”
하지만 나는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당황을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한창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고 있는 남자 스티브 잡스, 그의 뒤로 다가갔다.
그런 뒤.
톡- 톡-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남자.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잡스. 스티븐 잡스 씨?”
“누구?”
나는 잔뜩 찡그린 얼굴, 타인에 대한 경계가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내밀었다.
“오라클의 김준영입니다.”
“오라클?”
“네. 당신의 미래를….”
나는 선언했다.
“‘예언’하러 온 사람이죠.”
*
예언(豫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거나 신탁(神託)을 받은 사람이 신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선지자, 혹은 예언가라는 이들의 직무다.
하지만 신비가 사라지고 이성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 이후 예언가란 사기꾼이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로 추락하게 되었다.
타인의 두려움을 통해 현재를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현실의 예언가들인 것이다.
그런 만큼 나를 마주한 스티브 잡스 그의 표정 또한 미묘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 사기꾼?”
그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나는 살짝 일그러진 스티브 잡스의 얼굴, 그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저는 그저 제가 본 당신의 미래를 말할 뿐입니다. 스티브 잡스 씨.”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스티브 잡스, 그의 시선이 ? 등 뒤로 향한다. 그리고는 곧 제리 양을 발견했는지 그가 피식- 미소를 머금는다.
“이제 보니 오늘 약속을 잡은 분이셨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마어마한 투자자가 있다고 해서 모셨는데 이제 보니 선지자셨어?”
“두 가지 직업 모두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두 직업 모두에서 저는 꽤나 유능하거든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뭐 나를 놀라게 하려는 거였다면 성공했소. 꽤나 훌륭한 퍼포먼스였으니까.”
“프레젠테이션에서 쓰신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물론 로열티를 주셔야 하겠지만요.”
순간, 스티브 잡스 그가 씨익 웃음을 보였다.
천생 사업가, 프레젠테이션의 귀재, 그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고여있었다.
“하하,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내가 당신의 프레젠테이션을 써 준다면 당신의 이름 또한 올라갈 테니까. 그러니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건 내가 아닌 당신이 되겠지.”
그의 말에선 그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 로열티란 저작권을 가진 자의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아 그런가?”
“네. 하지만 그 프레젠테이션이 저를 위한 것이라면 공짜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것?”
“제가 이곳에 왜 왔겠습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당신을 스카웃하기 위해서죠.”
“뭐?”
단도직입적인 나의 말, 그 말에 스티브 잡스 그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스티브 폴 잡스씨. 저와 저희 오라클과 함께 일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순간, 정적이 공간을 감싼다.
“…….”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애플의 본사,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이 일순 벙찐 표정을 짓는다.
다들 갑작스러운 상황,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것 같았다.
하긴 그?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였으니까.
“……그런 말을 하기엔 장소가 너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아뇨. 이보다 더 합당할 수 없습니다.”
“합당할 수 없다?”
“네. 이제 곧 우리는 한 가족이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제리 양의 뒤에 서 있는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화를 마친 이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오라클 미국 지사에서 보내온 메시지가 정리되어 있었다.
“2000년 4월 30일 오후 1시. 오늘까지 저희가 매집한 애플의 주식 비율은 14.35%. 아마 내일 쯤이면 20%를 넘길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간단히 말해 내일이면 이 회사가 저의 손에 들어올 거란 이야기죠.”
일순 사람들 사이에 파도가 지나간다.
“뭐라고!”
그 말이 가지는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자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 직원들 중 하나가 스티브 잡스에게 자료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일변한다. 그의 시선이 따갑게 나를 찔렀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또다시 노마드(Nomad)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사실 애플 그 자체를 인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0년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은 5조 원 정도. 과거 내가 기억하던 애플의 가치, 1500조 원을 넘어가던 것을 생각하면 그 돈은 상대적으로 작은 돈이었다.
게다가 현재는 나스닥 버블 붕괴 직후, 한창 주가가 떨어지고 주주들의 주머니에 돈이 마를 시기였다.
그런 만큼 주식을 매집하는 일은 손쉬운 일이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본만으로도 애플에 지배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그래서는 애플의 핵심, 애플이라는 기업의 심장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때문에 나는 애플을 찾았다.
심장.
그것을 찾기 위해서.
“…돈 많은 분이라서 그런지 아주 제멋대로군.”
“원하는 것이 있을 땐 물불 가리지 않죠.”
“뭐 좋아.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내가 당신 밑으로 들어갈 일은 없을 거야.”
스티븐 잡스 그가 찬 기운이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호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왜죠?”
“왜기는 남의 손에 넘어간 여자에게 구걸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제가 알기론 지금도 비슷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하지만 그들과 당신은 다른 게 있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누구도 내 앞에서 이런 말은 한 적은 없다는 게 다른 점이야.”
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안에는 비이성,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을 움직였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유감이군요.”
“유감이겠지. 당신의 섣부른 짓으로 끝내주는 CEO를 놓친 거니까.”
“아뇨. 이건 순전히 당신, 스티브 잡스 미래에 대한 유감입니다.”
“……이 마당에 예언자 놀이를 하자는 말인가?”
“뭐 예언자인가 예언자 놀이인가는 나중에 밝혀지겠죠. 그러니까 일단은….”
나는 천천히 스티브 잡스 그의 눈을 직시했다.
“병원부터 다녀오세요.”
일단은 그를 살린다.
그리고 그를 얻는다. 그것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