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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목숨줄 (1)

잠시 뒤.

김준영이 떠난 회장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던 김귀란이 별안간 대소(大笑)를 터뜨렸다.

“파하하하. 녀석 재미있구만. 재미있어.”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김귀란의 호위무사, 전진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 김귀란이 얼마나 웃음에 인색한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의 핏줄에 얼마나 가혹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아니··· 분명 방금 전에··· 도련님이 회장님께 무례를···.”

그러자 김귀란이 짐짓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새삼 방금 전 김준영의 모습이 떠오른 듯 했다.

“무례? 하긴 그놈이 무례하긴 했지. 건방진 녀석. 감히 이 할미가 있는데 뭐? 정영주 그 늙은이를 소개해 달라고? 허허 못 쓸 놈.”

하지만 날카로운 말과는 반대로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전진호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자식들에게조차 웃음 한번 쉬이 보여 주지 않는 사람. 자식에게 따뜻한 손길보다는 차가운 회초리를 드는 것에 더욱 익숙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김귀란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11살짜리 손자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것도 방금 전 자신을 중개인 취급한 그런 무례하고 건방진 손자를?

전진호의 눈이 떨렸다.

‘변하셨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김준영을 대하는 김귀란의 태도가 변했다.

그것도 아주 가깝고 또 긍정적으로.

그러고 보면 아까 처음 김준영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약간 이상하긴 했다.

아까 전 김준영이 회장실에 들어오면서 입에 올렸던 호칭.

할머니.

평소라면 분명 질색은 물론 팔색을 했을 그 호칭에도 그녀가 별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꺼워하시는 모습이었지.’

물론 웬만한 사람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주 사소한 변화였지만, 지난 10년간 김귀란을 밀착 마크해 온 그는 알 수 있었다.

김준영이 다시 회장님이라 호칭을 고쳤을 때 그녀의 눈이 찌푸려졌음을.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는 분명 ‘서운함’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었음을.

“······.”

하지만 그는 전진호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웃고 있는 김귀란을 바라보며 그녀의 변화를 불러온 존재를 상기시킬 뿐이었다.

“감축드립니다. 회장님.”

그러자 잠시 그를 바라보던 김귀란이 이내 피식, 작은 웃음을 흘렸다.

감축. 이라는 두 글자에서 전진호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이다.

“허 참, 자네도 거 몹쓸 사람이구만. 아니 건방진 손자 놈이 나왔다면 자네가 나서서 회초리를 들 생각을 해야지 그걸 축하하고 있어?”

약간은 어색한, 하지만 기분 좋은 감정이 깃든 질책.

김귀란의 질책에 전진호가 가벼운 미소를 입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회초리를 드는 것보다 축하를 해 드리는 걸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못 말리겠다는 듯 김귀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는 자신의 생각을 들켰다는 약간의 자책이 담겨 있었다.

“쯧, 사람 참 어째 나이가 들수록 더 능글맞아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됐네 됐어. 원 사람 참.”

그런데 그렇게 잠시 전진호와 대화를 나누던 김귀란. 그녀의 얼굴에서 어느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진호.”

그러자 주인의 심경변화를 알아차린 전진호가 자세를 바로 했다.

“네. 회장님.”

“저 녀석 말 진짜일까?”

아무래도 아까 들었던 김준영의 말.

김일성의 죽음.

그것의 실현 여부가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김귀란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린 전진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래?”

“네. 분명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헛소리라고 생각했었겠지만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준영 도련님은 이미 이와 비슷한 일을 예측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예. 그러니까 이번에도 가능성은 열어 두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물론 양쪽 길을 갈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되 저희에겐 그럴 여력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전진호의 말에 김귀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의 말대로 힘이 부족하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이상 양쪽으로 모두 길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았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진 준비는 정보가 확실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 교토삼굴. 현명한 토끼는 굴을 여러 개 파 놓는 법이었다.

그러자 김귀란이 생각을 정리한 듯 테이블을 탁- 치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사장들 모이라고 해. 준영이 저놈이 폭탄을 던져 줬으니 터지기 전에 판을 깔아 봐야지.”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의 부탁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지···?”

“정 회장? 그거야···.”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전진호의 몸에서 요란한 기계음. 호출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갑작스런 소음에 김귀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죄송합니다 갑자기 긴급호출이···”

“긴급호출?”

“네”

전진호가 빠르게 호출기를 꺼내 호출 내용을 확인했다.

[505 01 7676]

그 숫자들의 조합이 그의 머릿속에서 이뤄진 순간, 전진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SOS. 미국. 착륙.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네. 아무래도 Best Buy 측 사람이 한국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순간, 김귀란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베스트 바이(Best Buy)’, 미국 최대의 가전 전문 판매 체인이자 유통업체.

1966년에 만들어진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을 전신으로 두고 있다.

한 해 매출 31억 달러.

종업원 수 1만 명.

미주 전역에 매장 수 191개 자랑하는 거대한 공룡이자 한성전자 미주지역 파트너.

하지만 그동안 사소한 트집으로 차일피일 공급계약의 성사를 미룬 미운 이웃.

그런데 그놈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확실해?”

“네. 긴급호출로 들어온 거니 확실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아봐야···.”

김귀란이 쿵-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오라고 해.”

“네?”

“그동안 강짜를 부리며 살살 약을 올리던 놈들이 갑자기 비행기를 탔다. 그럼 그 이유야 뻔한 거 아니야.”

김귀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 숨통을 콱 죄여 놨으니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내겠다는 이야기지.”

그 모습은 그 전까지 손자의 모습에 기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사자의 모습이었다.

***

한국에 도착한 Best Buy 측 인물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한성 측 인물들은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계약서를 읽어 내렸다.

“···그러니까 종래의 납품가격에서 20%를 일괄 하향 조정하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납품 가격의 인하.

원래 한성에서 Best Buy측에 납품하기로 한 가격에서 20% 다운된 가격을 일괄적으로 적용시키라는 것이었다.

미국 측의 바이어, 도미닉(Dominick)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남자.

그는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다른 직원들과 달리, 그는 통역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요구를 뚜렷하게 관철시키고 있었다.

“20%의 가격하향.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개발도상국인 한국, 그것도 재계 서열 12위의 약소한 그룹인 한성의 품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긴 했지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품질에 대한 이야기는 핑계일 뿐, 사실은 가격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Best Buy라는 거대한 곰이 한성이라는 물고기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하고 있다는 것을.

때문에 처음엔 한성 측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 Best Buy측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해 보기도 했다.

이대로 Best Buy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어 주었다가는 이득은커녕 손해를 보면서 납품을 해야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미닉의 강경한 태도에 한성 측 교섭단은 시종일관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이번 거래에 있어서는 갑과 을이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저희 측에서는 이미 귀사측에서 요구한 ROHS(유해물질제한지침) 인증, 미국 FCC 인증, 그리고 EU의 CE(통합규격인증마크) 인증까지 모두 다 마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전수조사까지 요구하다니요.”

“죄송합니다만 이 조건은 지극히 정상적인 조건입니다. 계약상의 편의를 위해 저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져버릴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소비자의 신뢰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제품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데서 이미 끝난 건 아닙니까?”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시군요. 귀사 측에서 인증 받은 ROHS, FCC, CE은 제품의 납품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 그것 자체로 납품 자체를 불러올 만한 요소는 아닙니다. 모든 계약의 최종 결정은 국제규격의 인증 유무가 하니라 저희 Best Buy측의 내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 인지해 주십시오.”

결국 한성 측과 Best Buy측의 회담은 지리한 줄다리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분명 그 전에 진행되던 계약에서는 품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시는 건···.”

“아직 계약이 이뤄지기 전이었으니까요. 원래 체결되기 이전의 계약이란 시장 상황의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

그때.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람.

김귀란.

그녀가 그 지리한 논쟁을 자르며 나타났다.

“그만.”

그러자 양측 모두 말을 멈추고 김귀란을 바라보았다.

“자질구레한 것은 다 떼어 놓고 이야기합시다. 어떻소?”

도미닉의 시선이 통역에게 닿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묻는 표정.

주저하던 통역이 김귀란의 말을 전하자.

“······.”

도미닉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그 또한 지리한 회담이 답답했던 모양. 그때부터 김귀란과 도미닉, 양자 간의 회담이 진행됐다.

“좋소. 간단하게 이야기하지. 귀사 측의 제안, 그러니까 납품가의 20%를 줄이라는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소. 현재의 납품가도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나온 금액이니까.”

“그렇다면 계약은 어렵···.”

“대신. 다른 제안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소.”

그러자 잠시 고민을 하던 도미닉. 그가 옆에 있던 Best Buy측 인사들과 얼마간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예외를 둘 수 있겠습니다.”

김귀란은 혀를 한번 쯧 찼다. 20%의 가격 하향보다 안 좋은 패가 나올 리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전수조사.”

도미닉은 김귀란의 시선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채 딱딱한 어떱? 제 할 말을 한다.

“저희 Best Buy에 납품할 한성의 제품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해 주십시오. 그? 20%의 가격 하향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원래 20% 정도 가격을 하향하려 했던 것도 제품의 신뢰도 문제에 대한 비용이었으니까요.”

“·ㄱㄱㄱ·??.?

穩尻塚?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도미닉의 말은 그야말로 조삼모사 그 자체, 납품가를 20% 하향하는 것이나 전수조사를 하는 것이나 한성 측에서 손해를 짊어진다는 것은 똑같다.

더군다나.

“대신 제품의 대한 전수조사는 저희 측, 그러니까 미국에서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다 한성 측에서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도미닉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끝맺었다.

“······흐음.”

김귀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턱을 쓴다.

한성 측 사람들은 피가 마른다는 얼굴로 그런 김귀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귀란의 침묵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한성 측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국 측 사람들까지 짓누른다.

오죽했으면 갑의 위치에 있는 도미닉의 무표정마저 식은땀으로 날 정도.

그때.

분위기를 깨는 이가 있었다.

김명현. 김귀란의 둘째아들이자 한성전자의 사장.

그는 초조하다는 표정으로 김귀란에게 다가가 귀뜸 했다.

“회장님.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인구 2억 6천만 명.

7309조 달러의 국내총생산의 현대판 엘도라도.

김명현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단기적인 손해로 보면 납품가 하향이 더 눈에 띄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전수조사 쪽이 더욱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수출에서는 적자를 좀 보겠지만 차후를 기대한다면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

하지만 김명현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쾅!

김귀란. 그녀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정은 김명현의 의견 따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었다.

“안 팔아.”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말.

굳이 통역이 없어도 여기 모인 모든 미국인들이 김귀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김귀란은 도미닉의 눈앞에서 계약서를 구겨 버렸다.

“내가 한강둑 옆에서 연 8평짜리 지물포를 8조 원짜리 회사로 키운 사람이야. 이런 개차반 같은 계약을 하느니 차라리 한국시장에 집중하는 게 나아.”

그녀의 말에는 맨손으로 시작해 왕국을 만든 자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엘리트 출신 CEO의 냉정함과는 전혀 다를 격정.

김귀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자네들이 이렇게 고압적으로 굴 수 있다지만··· 글쎄. 과연 나중에도 그럴 수 있을까?”

김귀란의 눈빛.

도미닉이 슬쩍 그 시선을 피하며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계약상의 문제일 뿐입니다. 한성 측에서 저희의 조건을 맞춰 주실 수 없다면 이번 거래는 이대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허, 그래. 좋아. 대신 내 오늘 일은 잊지 않음세.”

김귀란은 차게 식어 버린 찻잔을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짧게 대답했다.

“가게. 멀리 안 나가네.”

멀리 안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안 나가는 것이다만··· 미국 측은 딱히 그것에 대해 무어라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날 뿐.

“···냄새나는 코쟁이 놈들. 거래처가 제놈들뿐인 줄 아나.”

김귀란은 혀를 쯧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를 무거운 표정의 김명현 사장, 그리고 다른 임원들이 따른다.

“······쯧, 손주 놈 때문에 좋던 기분 다 잡쳤구먼.”

김귀란이 한 말에 김명현 사장은 고개를 갸웃한다.

손주라고 한다면 자기 아들이랑 딸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큰형네 아들?

뭐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닐 것 같았기에 김명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잡생각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저 앞에 걸어가는 김귀란을 따라가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하려는 순간···.

“Oh mon Dieu!”

저 멀리서 들려오는 프랑스어.

그리고 이내,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서둘러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Qu'est-ce que c'est?”

그는 아까 전 회의장을 나갔던 도미닉이었다.

도미닉은 인조인간 같던 지금까지의 표정을 싹 갈아엎은 채 잔뜩 흥분해 있었다.

찢어질 듯 커진 두 눈, 확장된 동공, 붉어진 안색.

그는 김귀란을 향해 호소하듯 묻는다.

“Quel est ce chef d'oeuvre?”

이 흥분한 프랑스계 미국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김귀란이 표정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이 코쟁이가.”

바로 그때.

도미닉의 빠른 걸음을 헐레벌떡 따라오는 이가 있었다.

매우 놀란 표정의 통역사다.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도미닉의 옆에 섰다.

그리고 빨리빨리 하라고 채근하는 듯한 도미닉의 시선을 받으며 그의 말을 통역했다.

“응접실에 걸려 있는 저 그림이······ 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림? 무슨 그림?

한성 임원들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거기에 뭔 그림이 있어?”

그리고 설사 있다 한들 그게 도미닉이 이렇게 흥분해서 발 벗고 뛰어 되돌아올 이유가 되나?

그 재수없는 프랑스인 바이어가?

김명현 역시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고개만 갸웃할 뿐이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응접실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그림을 직접 거기에 둔 사람.

“······.”

김귀란만은 표정이 다르다.

[김상교 <귀화>]

그것은 얼마 전 손자에게 받은 선물.

그리고 그녀가 그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손자가 그림을 건네며 했던 대사가 뇌리를 스친다.

‘···이 그림이 회장님을 도와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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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회귀 재벌 - 1993 회귀 재벌-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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