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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화 다알리아 (3)

“오라클과 손을 잡는 겁니다.”

도널드 럼스펠드그의 말이 끝난 순간,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도널드.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현 행정부와 오라클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물론 처음에야 그리 나쁜 것 없는 관계였지만 오라클, 그들이 부시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어떤 관계로 변해 버렸는지.

그리고 현재 뉴올리언스 사태로 인해 어떤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지.

결코 달갑지 않은 존재. 아니 어쩌면 정치적 적대관계, 그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오라클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 오라클의 행태는 이를 드러낸 이리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러자 잠시 사람들을 바라보던 도널드 럼스펠드, 그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입니다.”

“정말입니까?”

“영원한 적은 없다. 다만 잠재적인 아군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버님이 했던 말 아닙니까?”

순간, 부시 대통령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말, 그 말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단순한 혈육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그 말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격언은 격언일 뿐 그가 생각하는 현실은 언제나 달랐으니까.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이미 우리와 척을 졌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요청을 그런 식으로 무참히 거절하진 않았겠죠.”

부시 대통령, 그가 조금은 격앙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도널드 럼스펠드,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명 현재의 오라클, 그들의 행태를 보면 손을 잡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럼스펠드, 그가 짙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죠.”

“변하지 않는 것?”

“네. 그렇습니다.”

럼스펠드 그가 손가락을 펴며 말을 이었다.

“그가 상인이라는 것.”

“상인?”

“그렇습니다. 그는 상인이죠. 그리고… 상인이란 이문을 쫓는 법입니다.”

그러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부시 대통령, 그가 불현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하워드 김, 그가 이문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말씀입니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엔 일단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현재 오라클의 행태는 정반대지 않습니까. 그들은 돈을 쓰고 있어요! 그것도 벌써 100억 달러가 넘게!”

“아시잖습니까. 본디 장사꾼의 투자란 그 반대의 입장에서 봤을 땐 어리석어 보이는 법이라는 걸,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그는 성공한 장사꾼입니다. 다들 감쪽같이 속고 있으니까.”

럼스펠드 그가 말을 이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시점을 바꿔 보십시오. 그가 우리와 대립해 얻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얻는 것?”

“그렇습니다. 다들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이미 대통령께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좋든 싫든 우리가 이 나라의 머리입니다. 그렇다면 하워드 김, 그 사람이 진정 원하게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옆에서 나왔다.

“더 많은 이득.”

국토부장관인 마이클 리토프가 입을 연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럼스펠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현재의 상황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오라클의 숍니다. 아주 스케일이 큰 쇼겠죠.”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을 팔기 위해 쇼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높은 확률로요.”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손에 이문을 쥐어주어야겠군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의아한 듯 고개를 든 마이클 리토프, 그의 말에 럼스펠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몰랐으면 모르되 이제 우린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만 확인시켜 줄 뿐이죠.”

부시 대통령,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엇을?”

묵직한 의문을 담고 있는 그의 말, 그 말에 럼스펠드 그가 대답했다.

“누가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지를.”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도래했다.

서로 마주치는 시선, 그 시선에 끝에는 결정이 자리해 있었다.

*

뉴올리언스의 상황은 빠르게 변화되어갔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탁한 물속에 가라앉은 도시 뉴올리언스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초 뉴올리언스 시 내에 고립된 시민의 수는 약 40만 명가량. 그중 10만 명가량의 시민들이 오라클의 구호에 의해 안전을 되찾은 것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오라클의 구조 인력들과 그와 비슷한 숫자의 구호 인원들, 그들이 밤낮없이 움직인 덕분이었다.

[…한편 오라클과 비교되는 정부의 늦장 대응이 시시각각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루이지애나 주 정부는 중앙 행정부 이외에 오라클과 직접 협의를 해나갈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바뀌어 가는 상황들이 인터넷에 업로드, 그것을 본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10만? 그것도 오라클이?”

“그렇다니까. 그래서 그런지 다들 빨리 자원봉사 가야 한다고 난리야. 좀만 더 늦으면 완전히 끝날 거라고.”

“아니 금방 끝나면 굳이 갈 것 없지 않아?”

“다들 갈 때 안 가고 싶어?”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텍사스 남자는 물러서지 않지. 빌어먹을 가 보자고!”

“하하, 잘 됐어! 가는 김에 자네 트레일러에 구호품을 좀 실어 가자고. 다른 친구들이 구호품을 마련해 주기로 했으니까.”

덕분에 한때 절망만이 가득했던 대지, 흙탕물과 역겨운 악취만이 가득했던 도시, 뉴올리언스는 회복되고 있었다.

“여기 자원봉사 하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자원봉사자는 앞쪽으로, 구호품 보급은 뒤쪽입니다. 어느 쪽이세요?”

“둘 다요.”

“……둘 다요?”

“네.”

“그, 그럼 일단 뒤쪽으로 가셔서 보급품 전달하시고 다시 이쪽으로 오세요. 일단 인적 사항을 체크해야 할 테니까요.”

물론 그 와중에 자원봉사자들에 대해 과중에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또한 금세 사그라들었다.

왜냐하면.

“아, 그리고 나중에 포상금 수령하셔야 할 테니까 이쪽에서 먼저 포상금 수령하실 은행과 계좌를 적어 주세요.”

“포상금이요?”

“네.”

그런 말을 꺼낼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아니 자원봉산데 돈을 줘요?”

“포상금이니까요.”

“포상금이라… 도대체 얼마나 주는 거죠?”

“제가 알기로….”

“알기로?”

“최저시급의 세 배 정도로 알고 있어요.”

“……네?”

아니 말마따나 미국 평균시급보다 훨씬 많은 돈이 나오는데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어?

“세, 세 배요?”

“네. 들어보니 하워드 김의 개인 자산에서 나오는 돈이라고 하더라고요.”

“하… 그건….”

덕분에 뉴올리언스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거 들으니까 의욕이 새삼 샘솟는데?”

“그러게? 하하, 이거 영락없이 빈털터리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구만.”

모두 다 한 사람의 계획 덕분이었다.

*

“버드와이저 사에서 저희 쪽에 식수를 공급하고 싶다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저희 쪽 활동에 참여가 가능한지 묻고 있습니다.”

“미주 한인들이 기부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직접적으로 기부의사를 표하는 기업들이 꽤나 많습니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상황, 그것에 맞춰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버드와이저라면 맥주 회사 아닌가요?”

“네. 그런데 맥주 생산을 잠시 중단하고 식수 캔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100만 개 정도를 만들어 놨다고 저희 쪽에 알려왔습니다.”

갑자기 쿵- 테이블 위에 커다란 꽃바구니가 놓였다.

“이게 무슨…?”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건강하게 탄 얼굴을 한 남자, 이어진이 엷은 미소를 보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니 갑자기 뭐예요?”

그러자 이어진 그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팬클럽이 너한테 보내는 선물. 뭐 겸사겸사 칙칙한 분위기를 바꿔 볼까 하고.”

“팬클럽이요?”

내가 바구니를 만지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서요?”

“이번엔 피닉스. 뭐 LA, 세크라멘토 버전도 있긴 하지만.”

그가 슬쩍 꽃바구니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꽃바구니 안에는 붉게 타오르는 듯 꽃을 피운 다알리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제법 많나 봐요? 이런 꽃이?”

“꽃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명품에 편지에, 개중에는 반지도 있더라.”

“…반지요?”

“그래. 뭐 청혼하고 싶다나? 어휴, 이거 참 팬클럽 없는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안 그래들?”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푸스스-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거봐는 무슨. 그러지 말고 빨리 와서 일이나 도와줘요. 요즘 일손 부족하니까.”

나는 슬쩍 다알리아 꽃바구니를 한쪽으로 밀며 말했다.

그러자 이어진, 그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자원봉사자들은 충분하잖아? 뭐 들어보니 지금도 지 순간에 일손들이 계속 도착하고 있는 것 같던데?”

“물론 일반적인 인력들은 꽤 많죠. 하지만 그걸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요. 사람들의 수가 수니까.”

나는 슬쩍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가 혀를 차며 옆에 있던 직원에게 자료를 받았다.

“정부 쪽은? 여전히 불통이야?”

“여전히 똑같죠.”

“아니 아직도?”

“네. 전혀 생각이 없나 봐요. 아직도 우리 쪽으로 들어오든가 아니면 포기하라고 하고 있어요. 그나마 주정부 쪽이랑은 이야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러자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양반들 고집 한번 참 쌔네. 아니 사람이 먼저 아니야?”

“아마 자신 있다는 거겠죠. 그들은 경선을 통해서 뽑힌 대통령이니까.”

“하 참, 그놈의 대통령. 재해 하나 막지 못하는 정권이 무슨… 아니 전쟁에만 그리 골몰하더니 이제 감을 잃은 건가?”

그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전에 미 정부가 내게 던진 제안과 그 반응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그의 태도는 날카로웠다.

“전쟁이나 잘 하면 말이나 안 하죠. 그마저도 계속 끌어가고 있잖아요.”

“뭐 하긴. 요즘 전쟁하는 것 보니 그것도 시원치 않긴 하더라.”

그때. 그가 씨익 짙은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남았을걸?”

“…뭔가 들은 게 있어요?”

“그렇지.”

잠시 말을 멈춘 이어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이 이곳에 내려온다는 모양이야.”

그것은 조금은 무거운 정보였다.

“친정(親征)?”

“그렇지. 아무래도 휘하 장수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 생각하니까. 그리고 전선으로 내려온 왕은 반란군을 포섭하려 하겠지. 왕의 위엄으로.”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과 반란군, 그 둘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꽤나 명료했다.

“착각이 꽤나 거창하네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테니까. 이 전장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가 쓴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일시는?”

“단기간, 빠르면 내일 당장.”

“방법은?”

“에어포스원 아니면 조금은 색다른 퍼포먼스를 보일 수도 있고.”

“우리의 준비는?”

그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냥준비.”

그의 시선은 깊고 매서웠다.

순간,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우리의 말을 들은 직원들, 그들이 긴장 어린, 하지만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다 그동안 나와 손발을 같이 맞춰온 사이, 오라클의 핵심이었다.

“확실하게 준비들 해 놨나요?”

“물론 오늘을 위해 그동안의 시간이 있던 거니까.”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됩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당연하지.”

“좋습니다. 그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독수리 사냥을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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