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1)
1990년대,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도널드 트럼프. 그의 암흑기였다.
일단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부동산 시장 위축과 그로 인한 사업 불안정.
야심차게 준비했었던 사업들의 연이은 실패.
그리고 부인과의 불화까지.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그를 엄습, 그의 사업과 인생을 위협한 것이다.
[이카루스의 추락, 도널드 트럼프 수억 달러 규모의 적자 - 뉴욕 타임즈. 1993. 05. 12]
[도널드 트럼프 1982년 이후 처음으로 포브스 선정 400대 부자 순위에서 밀려나 - 뉴욕 해럴드. 1994. 12. 10]
[트럼프 기업, 재적 적자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 시행 - LA타임즈. 1995. 12. 20]
물론 사업을 하다 보면 이 정도의 위기야 누구나 다 겪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의 사업 스타일.
다른 사람들 모두가 가능성이 없다고 말릴 만한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 그 이슈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그의 사업 스타일이 이 시기에 쥐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타지마할의 부채 못 갚아, 지분 50% 이상 포기 - 데일리 뉴욕. 1994. 10. 11]
말마따나 다른 사람이라면 감기로 끝날 피해가 폐렴으로까지 번졌으니까.
[압박받는 도널드 트럼프, 과연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치욕적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 월스트리트 저널. 1996. 04. 10]
게다가 그의 공격적인 성격.
자신을 향한 타인들을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그의 성격상,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적이 많았다.
평소 그의 성공에 의해 숨겨져 있던 악의가 그의 연이은 실패, 그의 휘청거림에 시시각각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 그 인간 그럴 줄 알았지. 아니 뭐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죄다 질투 때문에 그런 거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패배자에 불과하다고? 허 참 그 인간 얼굴 한 번 보고 싶구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나 좀 보게.’ 덕분에 그의 이미지.
성공한 사업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결국 가능하게 만드는 열정적인 야심가라는 그의 이미지는 빠르게 빛이 바래 버렸다.
그동안 성공을 통해 유지되고 있던 그라는 네임밸류가 성공이라는 날개를 잃자마자 급전직하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게나 말이야. 아니 애초부터 너무 모험적인 투자이긴 했어. 말이 좋아 초특급 카지노지 10억 달러나 들여서 만든 카지노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실패한 사업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한물간 기업가라는 조롱을 반전시킬 만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법이 뭐냐고?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이슈메이커 도널드 트럼프 2번째 결혼 실패! 이번에도 이유는 외도 탓? - 선데이 뉴욕. 1997. 10. 11]
[영화배우 도널드 트럼프 <플레이보이 프린스>, <내니>, <나 홀로 집에 2> 이후 벌써 10번째 영화 출연 - 뉴욕 타임즈. 1998. 07. 10]
[도널트 드럼프 이번에는 레슬링? ‘억만장자들의 전쟁(The Battle Of Billionaire)’ 도널드 트럼프 WWF에서 빈스 맥맨과 한판승부! - LA타임즈. 2007. 08. 11]
[도널드 트럼프! 이번에는 정치? 민주당 후보 존 클리게인의 경제 정책 비판 ‘아마추어적’이다! - 뉴욕 해럴드. 2008. 10. 10]
어그로(aggro).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찍어 놓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실패한 사업가라는 오명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 내는 것, 그것이었다.
뭐 매체를 이용해 이미지를 심는 방법이야 일반적인 사업가들도 사용하는 방법이었지만.
그들과 트럼프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악명이라도 서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본디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일단 유명해지기만 하면,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결국에는 이득이 되는 법이니까.
‘내게는 악명 또한 이득으로 보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결국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기억하게 되죠. 때문에 나는 가끔씩 악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악명을 떨쳐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엔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잊어버리고 이름만 남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트럼프 씨. 당신의 말에 의해, 당신의 사업 운용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에 의해 쌓인 악명 또한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원래 사업이란 사람들의 욕과 피를 밟고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나는 MOU 체결 이후 나에게 들어온 트럼프의 저녁식사 초대, 그 초대에 응해 트럼프의 저택으로 향했다.
트럼프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오명, 실패한 사업가, 재신(財神)의 복이 떠난 야망가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매스컴을 이용하기로 한 만큼, 그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그와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도와준다면 과거보다 더 빠르게 이미지를 세탁할 수 있겠지.’
그런데?
“Junyoung Let's eat this too. It will be very delicious(준영 이것도 한 번 먹어봐요. 아주 맛있을 거예요)”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트럼프의 저택에 들어온 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내 옆에는 앳된 기색이 역력한 금발의 소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큰 키의 늘씬한, 몇 년 뒤면 완연한 숙녀가 될 것이 분명한 소녀 한 명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나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권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 사실 이거 제가 만들었거든요.”
계속되는 그녀의 어필, 그녀의 압박수비에 내가 슬쩍 시선을 돌리자,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 사이, 나를 바라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는 이어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럽다 부러워. 아주 청춘이야.”
…이 인간이.
물론 마음만 같아서는 괜찮다고, 내가 먹을 수 있다고 소녀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내가 사양하려는 기색만 보이면 이 소녀, 트럼프가의 장녀 이바나 마리 트럼프, 흔히 이방카라 불리는 소녀가 조금은 쌜죽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왜요? 맛이 없을까 봐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한번 먹어 보세요. 이거 한국에는 없는 식재료로 만든 거니까.”
…무슨 점순이냐.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권하는 것을 사양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때문에 나는 결국 그녀, 이방카 트럼프가 내게 권한 음식들, 그러니까 노릇한 향기가 굼실거리는 사슴고기 스테이크나 새콤달콤한 드레싱이 올라간 샐러드 같은 것들을 꼬박꼬박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뭐 맛은 있네.
그러자 이방카 트럼프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준영 씨는 아버지를 도와주신 분이니까요.”
밝은 웃음, 건강한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가 나중에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녀가 나오는 방송만 보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때.
“하하.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 안 그러냐 이비?”
도널드 트럼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잠시 내 옆에서 미소 짓고 있던 이방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버지!”
몹시 당황한 표정,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트럼프가 씨익 짙은 웃음을 보였다.
“준영, 우리 이비가 자네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고 있었는지 모를걸세. 하하 내가 그동안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많이 해 놨었거든.”
…아무래도 이 상황이 내심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이 양반 야료 부리는 거 보소.’
아무튼 그렇게 잠시 뒤.
“자 그럼 식사도 다 끝난 것 같으니 우리는 좀 더 이야기를 하도록 할까?”
다사다난했던 트럼프 일가와의 식사가 끝났다.
“그러시죠.”
그러자 나를 자신의 서재로 초대한 트럼프, 그와 나의 독대가 이뤄졌다.
달칵-
“자 들지. 내가 비록 커피는 즐기지 않지만 들어오는 커피는 나름 고급이거든.”
“감사합니다. 이거 트럼프 씨가 내린 커피도 마셔 보고 호강을 하는군요.”
“하하 자네라면 내 언제든 커피를 내려 주지.”
그렇게 잠시 환담을 나누던 나와 트럼프,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트럼프 씨.”
그러자 잠시 자신 몫의 콜라를 마시던 도널드 트럼프, 그가 약간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준영?”
“트럼프 씨도 아시다시피 현재 트럼프 씨의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 당신을 믿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단도직입적인 나의 말, 그 말에 순간 트럼프 표정이 굳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대놓고 그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이미지라. 뭐 알고는 있지. 하지만 단기간에 이미지를 바꾸기는 어렵지 않겠나?”
그가 콜라잔을 내리며 말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다고?”
“네.”
“흐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살짝 굳은 그의 얼굴, 그 얼굴을 향해 나는 생각하고 있던 방법, 과거, 그가 사용했던 방법을 살짝 입에 올렸다.
“매스컴,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매스컴?”
“그렇습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데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러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탁- 탁- 테이블을 두드리던 드럼프,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매스컴이라… 뭐 나도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야. 하지만 아마도 단기간엔 힘들지 않을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시간이요?”
“그래. 사실 나도 자네가 말했던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야. 나름 영화에도 출연해 봤고 또… 그래 자랑은 아니지만 전 와이프와의 이야기도 의도적으로 매스컴에 퍼뜨리기도 했었으니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네. 그때엔 없고 지금은 있는 것이 있거든요.”
“그게 뭐지?”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로 접니다.”
“뭐?”
“트럼프 씨가 매스컴을 이용하던 시절, 그땐 제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 그의 입에 일순 미소가 감돌았다.
“하하. 하하하. 좋아. 어차피 정공법으로 지금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자네의 말에 따르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준비하세요”
“준비?”
“네, 쇼핑할 게 제법 많거든요.”
왜냐하면 이번 작전엔 제법 필요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
방송사.
신문사.
영화사는 있으니 안 사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