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236화 목을 치다 (2)
김준영과 쌍호자동차 임원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그 시각, 오라클 사람들에 의해 쌍호자동차 본사 건물 내부 곳곳에 공고문 하나가 내걸렸다.
“자 다들 숙지하세요! 회장님 특별 명령입니다!”
“특별 명령이요? 아니 갑자기 무슨 명령이….”
“쌍호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특별명령니다. 공고문이 붙은 그 시각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명령이니까 다들 숙지하시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저희한테 문의해 주세요.”
물론 쌍호자동차 내부에 공고문이 붙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공고문은 제법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 공고의 내용이라는 게 꽤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공 고1>
1998년 1월 5일 이전까지 아래와 같은 행위를 자행한 인원에 대한 특별 감사, 징계를 실시할 예정임, 본 공고는 공고문이 게시된 시점부터 효력을 발휘함.
첫째. 회사(쌍호자동차)의 기밀 또는 회사의 실정을 왜곡하여 외부로 누설한 경우.
둘째. 직위, 직급을 이용해 회사의 재정을 부정하게 사용한 경우.
셋째. 허용되지 않은 사조직을 회사 내에 결성한 경우.
넷째. 동료 직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폭언을 가하거나 업무를 방해한 경우.
다섯째. 회사 간의 우열관계를 이용 협력사를 대상으로 부당한 이익 수취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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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내용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그러자 공고를 확인한 사람들, 쌍호자동차의 직원들 대부분이 놀란 눈으로 공고문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니 이게 정말이야?”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공고의 내용 그것 자체는 그리 심박한 내용들이 아니었지만 그 징계 층위가 꽤나 높았기 때문이었다.
“보자… 회사의 기밀 또는 회사의 실정을 왜곡해서 외부에 유출하면 해고한다고? 아니 이건 너무 빡센데?”
“그것뿐만 아니야. 사조직만 만들어도 해고라니 아니 그럼 뭐 고향 선후배 사이도 만나지 말란 말인가?”
“허 참 해고야 그렇다 쳐. 뭐 대부분 원래 내규에 있는 내용들이니까. 중요한 건 감봉이라고.”
“감봉?”
“그래 봐봐. 2항에 보면 불법적인 근로수당 수취의 경우 미리 신고하지 않으면 1년간 감봉 50%을 때린다는데?”
“뭐? 아니 그게 말이나 돼? 아니 그럼 야근 수당 조금 더 받은 것도 다 걸린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잠시 뒤.
공고문을 보던 사람들 대부분이 냉소를 지으며 공고문을 일별했다.
“거 참 이번 분은 꽤나 의욕 넘치시는구만. 안 그래?”
“뭐 얼마나 가겠어? 아마 초반에만 반짝하다가 똑같아지겠지.”
다들 생각한 것이다.
이 또한 쇼에 불과하다고.
그저 인수 초반 길들이기에 불과하다고.
대부분 그 공고 내용이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래 왔었으니까.
“에휴, 그나저나 당분간 좀 피곤해지겠구만. 아무리 그래도 공고까지 걸었으니 한동안은 바짝 쫄 테니까.”
“그렇지. 우리 같은 아랫놈들이나 쥐어짜지는 거지. 빌어먹을 개 같은 짓은 위엣 놈들이 다 해 쳐먹고 맨날 우리 탓이야.”
“어쩌겠어! 꼬우면 진급을 하든가 아니면 빽이 있든가.”
“어휴 속 터져.”
그러나 다음날.
“아니 무슨 일들이야? 뭔 일인데 다들 모여 있어?”
그들이 여느 때와 같이 쌍호자동차에 출근했을 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은, 너도 빨리 와서 봐 봐. 난리 났어.”
어제의 공고문. 그러니까 김준영의 선언이 결코 엄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공 고2>
아래 인원들을 징계에 처함.
[재경본부. 김진태 부장. 회사 재정의 부정 사용 및 5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기업전략실. 김대흠 부장. 부하직원에 대한 폭행 및 4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국내영업본부. 차진철 과장. 협력사 대상 부당 이익 수취 및 6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국내영업본부. 진재영 대리. 협력사 대상 부당 이익 수취 및 2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회사에 출근한 그들의 눈앞에 그 증거들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순간, 출근을 하던 사람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공고문 주위에 몰려들었다.
불과 하루 만에, 단 하루 만에 그동안 쌍호자동차를 지배하고 있던 자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것을 무기로 쌍호자동차라는 거대한 공룡의 피를 빨아먹던 해충들, 그들이 단 한 순간, 단 하루 만에 쓸려나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긴 뭐겠어. 이제 이 회사. 이 썩어 빠진 회사가 좀 바뀔 거라는 거지.”
“아니 진짜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다고?”
“아무래도 이번 분은 말만 번지르르한 분이 아닌가 보구만.”
그러자 사람들이 두려움과 기대가 깃든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들 깨달은 것이다.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고.
이번에는 정말 쌍호자동차가 쇄신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도 있다고.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진짜로 자리에 다들 자리에 없네? 아니 책상까지 다 뺐어?”
“그렇다는데? 들어보니까 죄가 큰 사람들은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그래?”
“어. 들어보니까. 정말 가차 없이 한다는데?”
“뭐가 바뀌기는 정말 바뀌려나 보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들, 경력이 제법 되는 사람들 가운데엔 젊은 사원들의 기대가 쓸모없는 것이라며 그들을 타박하는 이도 있었다.
“쯧,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
“네? 아니 과장님….”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윗선에서 책임을 질 사람들을 처리하고 입을 닦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다들 돌아가란 말 안 들려? 큰일 나기 싫으면 괜히 나서서 이상한 소리들 하지 말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세요 과장님? 공고를 보면 분명….”
“쯧쯧, 보면 몰라? 그냥 초장 기 잡기 하는 거야. 탁 보면 척이라니까.”
그들이 경험한 대기업의 생활, 그것이 녹녹치 않았으니까.
“참나, 다들 멍청하기는 아니 윗대가리가 그렇게 쉽게 바뀌겠어?”
“그러게나 말이야. 역시 젊어서 그런지 생각들이 짧아. 아니 딱 봐도 보이는 걸 몰라.”
“쯧쯧,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나 얼마 뒤.
“새 공고입니다. 다들 확인해 주세요.”
또 다른 공고가 붙은 그 순간, 그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또?”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하늘, 그것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공 고3>
아래 인원들을 회장 특별 명령으로 징계에 처함.
[1. 김정우]
허용되지 않은 사조직 결성 및 회사 재정 불법 유용, 부정한 정보 유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폭언/욕설, 이성 간 성추행 등 25개 항목의 부정행위 적발.
<징계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진행>
[2. 양필모]
허용되지 않은 사조직 결성 및 회사 재정 불법 유용, 부정한 정보 유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폭언/욕설, 동성 간 성추행 등 18개 항목의 부정행위 적발.
<징계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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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쌍호 자동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
[오라클, 쌍호자동차에 강도 높은 감사 착수! 쌍호차 내 부정행위자 150여 명 일괄 정리한 것으로 밝혀져 ― 한성일보. 1998. 01. 10]
지난 달 쌍호자동차를 인수한 기업 오라클이 쌍호자동차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 행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달 초부터 시작된 오라클의 쌍호자동차 감사는 쌍호자동차의 일반 사원을 비롯 최고 임원들까지 모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지난 2주간 벌어진 자체 감사를 통해 약 500여명에 달하는 부정행위자를 적발, 이중 15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일괄 해고하였으며 나머지 인원들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징계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소식에 전문가들은 쌍호자동차의 정상화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가는 소식이 알려진 1월 9일, 전일보다 약 5%가량의 주가 상승이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 그것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 쌍호자동차.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삐걱거리던, 하지만 이제 새로운 활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회사의 모습이었다.
“과장님! 임대두 과장님 어디 계셔요?”
“응? 과장님이요? 방금 전에 회의 들어가셨는데 왜요?”
“아, 그게 이번에 1차 밴더들이랑 협상하러 가는데 과장님이 경험이 많다고 하셔서….”
“임대두 과장님!”
“…임 과장님 아까 영업부 회의 끌려가셨는데…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시죠?”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외부 바이어가….”
“임 과장!”
“아! 또 왜요?”
“아니 그게… 담배 한 대 피려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짙은 웃음을 흘렸다.
며칠 전만 해도 음울한 모습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괄목할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임 과장 꽤나 바쁘네.’
그런데 그때.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그가 제법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들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무실을 하나를 빌려 업무를 보고 있던 참이라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쏠렸다.
“회사 사람들이요.”
“회사 사람들?”
“네. 이제 제 회사 사람들이니까요.”
그러자 잠시 가벼운 웃음을 보인 이어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서류철을 내밀었다.
“하하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서류에 싸인을 해야 그렇게 될걸?”
“이게 뭐죠?”
“살생부.”
살생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는 목을 친 자들의 명단이지.”
아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그동안 처리한 자들에 관련된 서류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잘 처리됐어요?”
“물론, 모두 다 깔끔하게 정리됐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며칠 전, 나는 쌍호자동차 내에 있던 사람들, 쌍호차를 좀먹고 있던 자들을 일거에 척결해 버렸다.
‘김 전무님. 그리고 양 상무님. 제 발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끌려 나가시겠습니까?’
지난 세월 쌍호자동차에 빌붙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이뤄져야 할 일이 이뤄지는 것뿐입니다. 솔직한 말로 그동안 꿀 좀 빨았잖아. 안 그래?’
물론 그들 또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
그런 이들인 만큼 그들 또한 가만히 내 철퇴를 맞으려 하지는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힘도 명분도 모두 다 내 손에 있었다.
‘……인정할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는 건 그동안 당신들이 한 짓이지. 정보 유출에 공금횡령, 주가 조작에 폭행, 폭언… 이건 뭐 저지르지 않은 게 더 없구만.’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책임을 회피, 물귀신이 되어 쌍호차를 탈출하려 했다.
‘내가, 내가 이대로 쓰러질 것 같아?’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이 바닥에서만 20년이야. 절대 혼자 못 죽어.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기자회견을 하든 쉽게 떨어져 나가진 않을 거야.’
하지만.
‘해 봐.’
‘뭐?’
어림도 없지.
나는 그동안 준비했었던 모든 정보들을 푸는 한편, 법률인력들을 동원 그들 하나하나를 탈탈 털어 버렸다.
‘마음대로들 해 보라고. 당신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은… 대한민국의 모든 유명 로펌들이 당신들을 물어뜯을 거란 말이지.’
분명 꽤나 돈이 들어가는 일이긴 했지만 보다 더 큰 것을 위해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뭐, 뭐라고?’
‘해봐. 기자회견을 하든 정부에 진정을 넣든 뭐든 해 봐. 결국엔 이기는 건 나일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불과 일주일 만에 쌍호자동차 내에 있는 불순분자들을 모조리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저희 한성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회장님께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깨끗한 상태의 쌍호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1. 김정우. 총 25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진행. 법무법인 한성을 통해 소송진행 중]
[2. 양필모. 총 18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진행. 법무법인 한성을 통해 소송진행 중]
[3. 김태훈. 총 10개 항목 위반. 징계 : 해고 및 민형사상 소송 진행. 법무법인 한성을 통해 소송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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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내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뇨?”
“아니 일단 눈에 보이는 장애물들은 처리했잖아. 그러니까 다음은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해서.”
아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그는 다음 스텝이 궁금한 것 같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대를 비웠으니 뭘 해야겠어요?”
“그거야….”
나는 이어진을 향해 가볍게 입을 열었다.
“네. 새 술을 채워야겠죠.”
그런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은 파격적인 술을 말이에요.”
그러자 내 눈앞으로 분주히 오가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