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폭풍을 만드는 사람들 (2)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투자자들 모두가 신처럼 여기는 존재.
1969년 퀀텀이라는 헤지펀드 설립한 이래 지난 30년간 금융 일선에서 움직이며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을 차례차례 초토화시킨 무시무시한 전력의 소유자.
한번 가볍게 숨을 쉴 때마다 전 세계 증시를 뒤흔들고 한번 발을 내딛을 때마다 국가를 전복시킨다는 어마어마한 소문의 장본인.
사악한 구세주.
그가 대한민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계 사람들이 일대 혼란에 빠져 버렸다.
“수석님! 큰일 났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소로스. 조지 소로스가 지금 우리나라로 오고 있답니다.”
“아니 뭐어!?”
물론 조지 소로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나 혹은 국무장관 같은 눈에 보이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힘.
돈과 정보.
그리고 그를 통해 만들어 낸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말마따나 그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수백억, 아니 그의 이름을 쫓는 수많은 투자자들과 헤지 펀드들을 합하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 움직이곤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 인간이 왜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방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지금 당장 움직인다! 다들 소로스가 정확히 몇 시에 도착하는 지 시간 파악하고 의전 준비해. 그리고 방금 말한 대로 그가 뭐 때문에 한국에 왔는지 조사하고, 퀀텀이 움직이는지 확인해! 외환 시장 자금 동향도 마찬가지고!”
때문에 대한민국의 사람들, 대한민국을 움직인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또한 조지 소로스를 맞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지 소로스, 그가 과연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한국에 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의사에 따라, 그와의 대화에 따라 대한민국이 미래가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뭘 물어! 철저하게 통제해! 지금 같은 시기에 괜히 말 나올 건덕지를 만들지 말란 말이야! 각하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까. 준비 서둘러!”
그리고 그 결과.
조지 소로스가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기도 전, 대한민국 정부는 조지 소로스라는 대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준비 다 끝냈어?”
“네. 물론입니다. 일단 경제 관련 인사들 모두와 한국은행장, 그리고 외환 관련 부서의 인원들과 관계부처 인원들 까지 모두다 스탠바이 시켜뒀습니다.”
평소 늦장 대응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행정부의 행사치고는 꽤나 빠른 대응이었다.
“수고했어. 각하께서는?”
“깨어 계십니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올리라는 전갈이 계셨습니다.”
“좋아. 일단 대기한다. 그리고 조지 소로스 그 양반이 내리자마자 내가 직접 딜을 하지. 그 양반이 도대체 왜 이렇게 갑자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진 모르겠지만, 뭐 대통령이 보자는 데 별 수 있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 큰 일이 없는 한 조지 소로스 그가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장밋빛 전망은 잠시 뒤 처참하게 빗나가 버렸다.
“비행기가 도착했답니다!”
“좋아, 모두 다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 공항 측에 이야기해 뒀지?”
“네. 경특대까지 모두다 준비 마쳐 놨습니다.”
그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라 김포 공항에 도착한 조지 소로스.
그러나 그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다른 곳을 향해 떠나려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로스 씨. 오늘 다른 스케줄이 없으시다면 청와대로 가셔서 간단한 다과를 즐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환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 초대에는 응하지 못할 것 같군요.”
순간,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지금까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조지 소로스, 그가 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급한 일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제수석,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계의 대표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그는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내리 눌렀다.
갑작스런 상황인 만큼 이 정도의 일이야 예상했던 바였기 때문이었다.
“소로스 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 각하께서는 그 전부터 소로스 씨와의 만남에 정말 고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반복되는 경제수석의 제안, 그 제안에 소로스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의 만남, 다른 사람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었지만 그에겐 흔한 일, 다른 약속에 끼인 옵션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일의 경중을 생각하면 그의 선택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대통령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니 영광이군요.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약이 있어서요.”
단호한 그의 말, 그 말에 경제수석의 표정이 표정을 굳혔다.
“그 약속을 미룰 수는 없는 겁니까?”
“미룰 수도, 미룰 이유도 없는 약속입니다.”
이쯤 되자 경제수석, 그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대한민국. GDP 순위 11위의 경제대국. 피땀 흘린 경제성장 끝에 드디어 선진국의 조건이라는 OECD 가입을 이뤄 낸 국가. 그 국가의 수장이 건넨 손을 무참히 뿌리치는 소로스의 모습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내려진 명령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는 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뒤 소로스 향해 마지막 제안을 던졌다.
“…혹시 어떤 약속인지 알 수 있습니까? 만약 알려 주신다면 저희 측에서 당사자와 대신 조율을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소로스 씨는 물론, 약속의 당사자에게도 큰 이익이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희에겐 그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조지 소로스, 그의 입에 차가운 기운이 맺혔다.
자신의 앞에서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꼴같잖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묻죠.”
말을 마친 소로스 그가 천천히 경제 수석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100억 달러.”
“네?”
“최소한의 가치입니다. 귀측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의 만남이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직접 오늘의 약속을 미루고 청와대로 가도록 하죠.”
그러자 그의 말을 들은 경제수석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
“아니 그건….”
아무리 한 국가의 수장, 그와의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10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니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그건…….”
“아니라면 비켜 주시죠. 오늘 저의 약속은 10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약속입니다.”
말을 마친 소로스가 경제수석의 얼굴을 일별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곤 자신을 쫓는 수행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빠르게 공항 밖으로 벗어났다.
“어서 가지. 약속에 늦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 조지 소로스를 기다리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이들, 그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도대체 누구랑 약속을 한 거야?’
순간, 같은 의문이 그들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
얼마 전 이어진과의 대화를 마친 뒤, 나는 조지 소로스, 그에게 가벼운 미끼 하나를 던졌다.
‘아저씨 부탁이 하나 있어요.’
‘응? 무슨 부탁?’
미끼의 정체는 바로 ‘1997년 동남아 외환 시장 공격 사건’. 일명 엘도라도 프로젝트라 불리는 작전에 대한 간략한 정보였다.
‘저 대신 편지 하나만 보내 주세요.’
‘뭐? 편지? 아니 이메일 냅두고 왜?’
물론 다소 원색적인 다소 날것에 가까운 미끼였지만, 나는 자신했다.
이것이라면, 이 정보라면 조지 소로스, 얼마 뒤 동남아를 뒤흔들 그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메일로는 전할 수 없는 감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지 소로스, 그에게 간단한, 하지만 아주 무거운 가치를 지니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가지. 기다리게.’
순간, 나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가 한국으로 온다는 이야기는 곧 내가 보낸 미끼.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그에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좋아. 일단 첫 단추는 꿰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그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조지 소로스, 그를 끌어들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모든 정보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란 언제나 변하고 정보란 언제나 혼란해 보이는 법이지.’
때문에 나는…….
‘아저씨.’
‘응?’
‘사람들을 모아 주세요.’
조지 소로스에게 편지를 보낸 날 그날부터, 가변하는 상황, 혼돈으로 치닫는 정보를 내 손에 쥐기로 했다.
‘사람들을 모아 달라고?’
‘네. 이번 프로젝트를 대비하는 정보 팀을 만들 거예요.’
이익을 위해 과감히 투자를 하기로 한 것이다.
‘좋아. 얼마나?’
‘한 삼십 명 정도요?’
‘뭐? 아니, 삼십 명이나?’
‘네. 필요하면 더 뽑을 생각도 있어요. 적어도 3개의 팀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나만의 팀, 나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테스크 포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들 집중! 오늘까지 무조건 1차적인 정보 분석을 마쳐야 합니다. 리미트는 오후 6시. 그 전까지 미주 수출입 관련 경상수지 관련 흐름과 동남아 주가 환율 상황에 대한 연계자료. 앞으로 우리 프로젝트가 현실화 되었을 때 그 영향에 대한 보고서 마무리해 주세요.”
“6시까지 말입니까?”
“네. 6시입니다. 일단 그때까지 1차 분석 자료들을 올려 주세요. 상세자료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분석은 필요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정보를 취합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1팀뿐만 아니라 2팀과 3팀에서도 보고서 올려달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자료.
[엘도라도 프로젝트]
그 자료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스. 소로스씨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가 도착했다.
조지 소로스.
1997년 동남아에서 시작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내는 존재.
내가 던진 미끼를 물어 버린 물고기, 그가 바로 이곳, 나의 집에 도착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물고기를 요리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