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폭풍의 시작 (2)
위기는 비정상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상적인 현상이다.
-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위기의 경제학> 中
*
1993년 있었던 시장 개방 이후 태국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자금, 그러니까 외국계 투자 자금을 정말 마르지 않는 물처럼 가져다 썼다.
그리고 선진국 은행들은 그들에게 마음껏 돈을 빌려 줬다.
벌써 몇 년째 경제 성장률이 8%를 기록하며 신화를 창출하는 나라, 게다가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나라에 돈을 붓지 않는 은행은 바보나 다름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셉, 요즘 좋은 투자처 좀 없나?”
“투자처? 흐음… 한군데 있기는 해.”
“그래? 그게 어딘데?”
“동남아. 그중에서도 태국 쪽이 요즘 제법 수익률이 괜찮아.”
하지만 본디 맛좋은 음식이 몸에 나쁜 법.
태국 금융기관의 대출 관행이나 기업의 거래관행이 서구식 합리성과 투명성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일명 불량식품.
자극적이고 혀에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 바로 태국이라는 시장이었던 것이다.
[동남아 투자 붐, 기회인가 위기인가? 전문가들 ‘우려의 시선’ - 월스트리트 저널. 1995. 10. 11]
[‘일본은행’의 모험 성공, 작년 한해 태국에서 200% 수익률 거둬들여 - 시카고 트리뷴. 1996. 01. 12]
[노무라 기업,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등 동남아 3국에 대한 투자 확대할 것 - 니혼게이자이. 1996. 10. 11]
그러자 태국 정부는 물론 태국의 기업들 모두가 갑작스레 흘러들어온 자금, 달러를 정말 미친 듯이 써대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은 외국돈을 빌려와 국내 기업에 빌려주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한편, 태국 은행들은 외국에서 저리의 돈을 끌어들여 기업들에게 돈을 물씬 빌려주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은 태국 전역에 고층빌딩을 짖고, 호화아파트를 짓는데 달러를 소모했다.
국내 사채시장 금리는 18%의 고금리였는데 비해 달러 이자는 겨우 7~8%에 불과했고, 엔화 이자는 그보다 쌌기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부동산 투자처 방콕, 1년 만에 150%의 수익률 거둬 - 데일리 뉴스(TH). 1994. 10. 11]
물론 그 와중에 무분별한 외부자금 유입으로 인한 반향, 1996년 태국의 경제 성장률이 6.7%로 95년의 8%보다 다소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태국인들은 그것을 수년간의 고도성장에 대한 일종의 조정 과정으로 여겼다.
태국이 망하는 일은 없다고, 태국의 경제성장은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국민 여러분! 우리 태국은 굳건합니다. 현재의 불경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곧 경상수지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를 향한 외부 세력의 음해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파티는 없다고 1996년 말부터 선진국 은행들 사이에서 태국이 과연 해외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을지 걱정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태국의 앞날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자에 만족하던 빚쟁이들이 원금상환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골드만삭스. 태국 정부의 외채 상환 능력에 대한 의문 제기 - 이코노미스트. 1997. 2. 15]
[태국을 떠나는 자본들, JP모건 시티 등 태국 경제에 대한 불신 드러내 - 월스트리트 저널. 1997. 03. 11]
[태국 정부, 자국의 경제 상황은 문제없다 주장, 현재의 경상 적자는 일시적인 것 - 니혼게이자이. 1997. 04. 12]
그리고 그 타이밍이 바로, 나를 비롯한 미국의 헤지펀드들, 그들의 공격 타이밍이었다.
*
[준비됐나?]
고요한 목소리.
수화기 너머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숨을 몰아 내쉬었다.
드디어 5월 14일.
운명적인 날.
동남아를 시작으로 동아시아 전역, 나아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 날의 첫날이 도래한 것이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오늘, 오늘이 지나면 이제 세계는 더 이상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세계는 어마어마한 변화 의 한가운데로 접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구는 울고 또 누구는 웃고 또 누구는 몸부림칠지도 모른다.
내가 그 과정과 결과를 봤었으니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출 생각 따윈 없었다.
분명 내 행동, 내 행위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도, 또 원망하는 사람도 생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행동을 멈추지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할 테니까.’
좋아 그렇다면.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뒤, 수화기 너머의 남자. 조지 소로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시작하시죠.”
그러자 잠시 수화기 너머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네. 시작하지.]
그리고 그 순간, 예정대로 작전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먼저 이번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
퀀텀 펀트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듀케인 캐피탈의 스탠리 드러큰 밀러.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메가 어드바이저스의 레온 쿠퍼맨 등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과 JP 모건, 씨티은행, 골드만삭스 등 월가 금융 기관들이 태국 중앙은행에 대규모의 바트화 매도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타이거 펀드. 26억 바트 매도주문]
[메가 어드바이저스. 26억 바트 매도주문]
[JP모건 26억. 바트 매도주문]
[골드만삭스. 26억 바트 매도주문]
작년 말부터 둔화되고 있는 태국의 경제 성장률과 과도한 부동산 담보로 곤경에 처해 있는 태국 금융기관들의 상황.
그리고 미국 금리 문제로 인해 커진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미뤄 볼 때 우리가 물꼬를 터 주기만 하면 외환보유고를 태워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바트화 가치, 페그제로 고정되어 있는 통화 가치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절하되어 우리 호주머니 속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저씨. 다들 매도 주문 넣고 있어요?”
“어.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있어.”
“지금은 얼마예요?”
“지금은… 보자 1달러당 26달러. 아직은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야.”
거기다 우리의 공격에 맞춰 터져나간 뉴스들.
소로스의 이름을 넣은 자극적인 제목의 정보들이 시장에 나오자 휴지 상태였던 동남아 금융시장이 격렬하게 분출하기 시작했다.
[속보! 14일 오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자금으로 바트화 가치 폭락! - 뉴데이뉴스. 1997. 04. 14 ]
동남아 금융시장에 머물러 있던 큰손들이 돈 냄새를 맡고 우리의 뒤에 따라붙은 것이다.
[카이펑 뱅크. 35억 바트 매도주문]
[제일은행. 10억 바트 매도주문]
[아메리칸 머셔너리. 30억 바트 매도주문]
“좋아! 준영아. 손님들이 달라붙었다.”
“벌써요?”
“그래. 다들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그러자.
자국의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고수, 극히 제한된 폭에서 바트화 환율 변동을 조절하던 태국 중앙은행이 일순 당황하기 시작했다.
순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환율이 우르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러(USD) / 바트화(THB) 25.70 ▲ 0.25]
↓
[달러(USD) / 바트화(THB) 26.50 ▲ 0.80]
↓
[달러(USD) / 바트화(THB) 27.20 ▲ 0.70]
하지만 그렇다고 바트화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4일의 절반이 지나자 우리로 시작된 외국 자본들의 대규모 투매, 그 전방위적 공격에 혼란스런 모습을 감추지 못하던 태국 중앙은행이 다음날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더니, 이내 외환 보유고를 풀어 환율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국 정부, 외환 보유고를 통한 환율 방어 착수! 방어 가능 예상! - 조X일보. 1997. 04. 15]
물론 외환 보유고를 소모해 환율을 방어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현재처럼 바트화 가치가 의도적 흐름에 의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만약 14일 일어난 투매가 15일에 이어 16일까지 계속된다면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준영아! 소로스 씨 쪽에서 소식 들어왔어! 우리 쪽에서도 공통적으로 들어온 소식이고.”
“무슨 소식인데요?”
“태국 정부가 외환 보유고를 완전 개방한대.”
“정말요? 완전 개방한다고요?”
“그렇다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공격을 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나 봐.”
그러자 15일이 끝나기 전, 한때 27달러의 문턱을 넘으려던 바트화 환율이 점점 회복되기 시작하더니 15일 장을 마감하기 전 종전의 26바트 선을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달러(USD) / 바트화(THB) 27.20 ▼ 0.50]
↓
[달러(USD) / 바트화(THB) 26.50 ▼ 0.70]
↓
[달러(USD) / 바트화(THB) 25.10 ▼ 0.90]
14일 우리가 처음 바트화를 공격했을 때의 환율을 뛰어넘은 것이다.
[태국 중앙 은행 ‘우리가 승리했다!’ 선언! 바트화 환율은 14일 공격 전 보다 상승 - 니혼게이자이. 1997. 04. 15]
“거참 미친 듯이 쏟아 붓는구만.”
“지금까지 얼마나 쏟아 부었죠?”
“카운트 된 것만 해도 30억 달러. 그런데 끝이 안 나네.”
“그래요?”
“어. 바트화 가치가 내려가기는커녕 오히려 10% 정도 가치가 더 올랐어. 아무래도 방어가 좀 끈질긴 것 같은데… 이거 큰일 나는 건 아니겠지?”
순간, 환율을 확인한 이어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초조한 듯 찌푸려진 그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공격의 실패하는 것인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이번 일에 들어간 우리 세력의 자금이 벌써 30억 달러 정도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만약 이대로 바트화가 절상 된다면 그동안 바트화 투매에 돈을 쏟아 부은 만큼 손해를 보게 될 테니까.
하지만.
.
“그럴 리가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분명 현재의 공격, 약 30억 달러 규모로 이루어진 외환 공격이 태국 정부의 적극적인 방어에 의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저씨.”
“어 왜?”
현재의 공격, 태국 정부가 막아낸 파도는 태국 정부의 대응을 보기 위한 맛보기에 불과했었기 때문이었다.
“소로스 씨한테 연락하세요.”
“이제 슬슬 전선을 확대하자고.”
첫 번째 전선은 현물 그리고 다음 전선은 바로… 선물환 시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파도가 태국 정부를 엄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