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나락의 끝에서 (2)
당신이 10년 후에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다 털어서 땅을 사라.
그런 뒤 나폴리의 거지나 나병 환자마냥 누워 지내든가.
아니면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든가.
그도 아니면 구멍을 파고 땅속에 내려가든가.
당신이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데 단 한 푼어치의 보탬도 주지 않아도 약 10년이 지나면 당신은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中.
***
2004년, 미국의 NBC 방송에서 방영한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이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실제 취업을 하고자 하는 18명의 인턴 사원들을 약 1년간 경쟁시켜 성과에 따라 한 명 한 명 탈락, 최종 우승자를 정규직으로 회사에 입사시키는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리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미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거두게 되는데.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한때 매주 2,0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방송을 손꼽아 기다리며 꾸준히 시청할 정도였다.
[어프렌티스 1시즌 피날레, 슈퍼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 - 맨하탄 데일리. 2005. 02. 10]
물론 여기까지였다면 그저 흔하디흔한 프로그램,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다른 자극적인 프로그램에 잊혀졌을 프로그램에 불과했겠지만.
이 프로그램, 냉혈한 사회의 쓴맛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 이 프로그램은 조금 다른 이유로 유명해지게 된다.
훗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쌓아올린 인지도, 이미지로 미 대선에 출마, 전 대통령의 영부인 출신이라는 어마어마한 네임벨류의 라이벌을 거꾸러뜨리며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You're Fired(당신은 해고됐어!)”
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전 세계 부동산 개발과 호텔, 고급 콘도미니엄 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거대 부동산 그룹의 대표이사.
‘어프렌티스’를 비롯 여러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한 것은 물론 각종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그리고 프로레슬링, WWE의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남자.
2020년 추정 재산 37억 달러(5조 원)의 갑부(甲富).
바로… 도널드 존 트럼프(Donald John Trump).
그가 바로 이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 올려 미 대선에서 승리, 결국엔 초강대국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남자였다.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 워싱턴 포스트. 2016. 11. 9]
[트럼프 당선, ‘미국 대중의 합리적 선택’ - 뉴욕 타임즈. 2016. 11. 9]
[오바마,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충격’…힐러리 비난도 - 조X일보. 2016. 11. 9]
물론 다른 사람들이야 남의 나라 대통령이 방송에 나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 사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이 사람, 도널드 트럼프를 데리고 부동산 사업을 하겠다는 말이지?”
그가 바로 나의 다음 사업, 부동산(不動産) 사업의 대전사였으니까!
내가 말을 마치자 나를 바라보며 묻는 남자, 이어진의 말을 들은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들고 있던 ‘카프리선’ 봉지를 쭈욱 짜 먹은 뒤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아무래도 내가 갑자기 부동산을 시작한다니 다소 의아한 것 같았다.
“이상한가요?”
“아니 이상하고 말고 할 게 아니라. 분명 지금 사업들도 잘 돌아가고 있잖아. 그런데 갑자기 부동산이라니. 조금 당황스러워서.”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프리선 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의 말도 이해가 갔다.
분명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
그러니까 패션 브랜드나 기업투자, 그리고 주식 운영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자금이 들어오고 있는 만큼, 굳이 부동산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이익은 충분했다.
말마따나 수십, 수백만 달러가 술술 들어오고 있는 만큼 굳이 이 타이밍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돈 불어나는 모습을 보면 무서울 정도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현재의 나스닥 시장의 활황기조, 닷컴버블, 그것이 앞으로 4년간 미국과 전 세계를 뒤흔들 긴 하지만 그것의 채 4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 4년 뒤, 나스닥 시장의 주가가 올라간 만큼 더 큰 빙하기가 올 것이란 것을.
물론 그것만으로도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을 수 있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는 단순히 나스닥 시장에 투자를 하는 것보다 더 장기적인 사업이 필요했다.
본디 현명한 투자자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않고, 지혜로운 토끼는 굴을 여러 개 파두는 것이니까.
게다가.
‘돈 이외의 이유도 있고 말이야.’
나는 조심스레 아무 미래,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미래, 지금은 어려울지 모르는 그런 미래가 도래한다면 나의 투자는 어마어마한 이익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그가 만약, 만에 하나라도 과거와 같은 과정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나는 정말 엄청난 크기의 황금을 캐낸 것이 될 테니까.
‘…비단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업가로서 트럼프, 그는 충분히 유능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지금은 그저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이어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입에 올렸다.
“…그거야.”
“그거야?”
“부동산은 불패니까요.”
그러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이어진, 그가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건 그런데… 허 참….”
뭔가 이상하지만 너니까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 좀 더 상세한 이유를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뭐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어차피 일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될 테니까.
그러나 이어진과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어진이야 내 사람, 기본적으로 나를 믿고 있는 사람이니만큼 별다른 저항 없이 이번 일에 끌어 들일 수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차후 미국에 대통령이 되는 남자, 그는 만만치 않았다.
이미 그는 자신의 사업체를 이끌어 커다란 성공을 거둔 인물, 한창 잘 나갈 때엔 그 당시 워렌퍼핏이나 빌게이츠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거의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우리들과 같이 일을 하려고 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트럼프 정보면 굳이 우리랑 손을 잡지 않더라도 아니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 트럼프라면 이미 어느 정도 네임밸류가 있는 사업간데 굳이 우리랑 동업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아뇨. 저는 트럼프 그 사람이랑 단순히 동업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럼?”
“저는 트럼프, 그 사람의 구원자가 될 생각이에요.”
이 시기 트럼프는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였으니까.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10억 달러 대 슈퍼 카지노 ‘타지마할’ 오픈! - 시카고 트리뷴. 1990. 08.10]
[트럼프의 판단 실수, 카지노 타지마할 엄청난 ‘적자’ 트럼프기업, 어마어마한 구조조정 필요 - 뉴욕 데일리. 1992. 03. 10]
[도날드 트럼프, 타지마할의 지분 절반이상 포기, 플라자 호텔도 위험? - 월스트리트 저널. 1994. 10. 19]
[억만장자의 몰락, 도널드 트럼프 포브스 선정 400대 부자 순위에서 밀려나 - 선데이 맨하탄. 1996. 03. 12]
***
이어진과의 대담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 준비를 시작했다.
“아저씨. 그리고 레이첼.”
“어. 무슨 일이야?”
“네? 왜 그러시죠?”
대전사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을 놓을 수는 없는 법.
만사불여튼튼.
혹시 모를 일이 생기더라도 마땅히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준비를 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두 사람, 부동산 쪽에서 업체 하나 인수해 주세요.”
“업체를 인수하라고?”
“네. 기왕이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로요.”
“…저번에 말한 그것 때문이야?”
“네. 도널드 트럼프 그 사람과의 일 때문이에요.”
뭐 덕분에 꽤나 많은 자금이 소요되었지만, 그 덕분에 최대한 빠르게 부동산 회사의 구색을 맞출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 이 타이밍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간의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으니까.
“알았?. 중요한 건 시간이니까.”
“그렇죠. 믿고 맡길게요.”
“오케이.”
아무튼 그렇게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후, 나는 곧바로 나의 대전사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현재 제법 이름이 사업가, 아무리 그가 현재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은 처지라고 하더라도 제법 만나? 어려웠지만, 다행스럽鍍? 나에겐 그 어려움? 대신해 줄 사람湧? 있었?.
“그러니까 준영. 도널드 ??냘? 그와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말이지?”
미국 경제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클럽 카본의 사람들이라면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네. 에릭.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 모두 부동산 쪽에서 오랫동안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음… 그래? 뭐 어렵지는 않지. 그런데 실망할 텐데?”
어째 분위기가 묘하다?
내가 만난 카본 사람들 중 아버지 대 때부터 트럼프와 사업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람, 에릭 슈미트, 그가 트럼프의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젓기 시작한 것이다.
“네? 왜요?”
“아니 그 사람 요즘 들리는 소문이 그리 좋지 않거든.”
분명 트럼프, 그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람이 요즘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 그게 아마 안 좋은 상황 정도가 아닐 거야.”
그런데 그때.
“아, 그럼 되겠네.”
에릭 슈미트, 그가 손뼉을 치며 내게 말했다.
“뭔데요?”
“생각해 보니 얼마 뒤 트럼프 그 사람 회사의 주주총회가 있어. 어때 한번 같이 가 볼래?”
주주총회?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에릭 슈미트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게 나을 거 아니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안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 상황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트럼프 기업(The Trump Organization)의 주주총회장, 그곳에서 본 트럼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닙니까!”
“뭐라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 보십시오!”
“빌어먹을 덩치만 산만 해 가지고 쯧쯧.”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질책.
그 질책을 묵묵히 받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
그 사람의 모습은, 과거 내가 보았던, 자신감을 빼면 시체였던 남자, 트럼프, 그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