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 301화 사냥감은 스티브 잡스 (3)
“뭐? 빌어먹을, 병원에 다녀오라고?”
운전대를 잡은 중년의 남자. 스티브 잡스. 그가 거친 숨을 내쉬더니 이내 운전대를 내려쳤다.
쾅-
차에 탄 순간 방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 김준영과의 만남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녀석.”
사실, 그는 오늘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오라클.
몇 년 전 실리콘밸리에 나타나 귀신같은 투자로 실리콘밸리의 블루칩이 되는 회사들을 골라낸 기업.
야후, 아마존, 이베이 등 지난 몇 년 사이 수백억 달러의 자산 가치를 지닌 회사들로 탈바꿈한 기업들의 후원자.
그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현재 같은 상황, 나스닥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과를 거둔 회사의 오너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에 일종의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아 제리 오랜만이군. 그런데 무슨 일이지?’
그 나름대로 숨기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애적 성격 장애, 흔히 나르시시즘이라 불리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꼭 만나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그래. 아마 자네도 아는 사람일 거야. 오라클 인베스트먼트의 김준영 회장이라고….’
하지만.
제법 기대했었던 오늘의 만남. 소문 속 오라클의 오너와의 만남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방금 전 있었던 김준영과의 만남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하, 애플을 인수하겠다니. 그것도 내 앞에서 말이야.”
순간, 그가 또다시 운전대를 내려쳤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자신의 절반이나 살았을까 모르는 어린 녀석이 애플을, 시가 총액 50억 불에 육박하는 거대 기업을 꿀꺽하려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목에 목줄을 옭아매려 한다는 것이.
물론 그 또한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애플을 창업,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억만장자가 되긴 했지만 이건 궤가 다른 일이었다.
말마따나 애플 시총의 20%면 10억 달러. 억만장자를 10명이나 만들어 낼 돈이었으니까.
‘제리 양이 아니었다면 사기꾼이라 치부했겠지. 그 나이에 10억 달러라는 돈을 움직인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니까.’
때문에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대로 치욕을 감수하고 남을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의 스타일대로 떠날 것인가.
물론 평소의 그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겠지만 문제는 그가 떠나야 할 것이 바로 그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애플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젊음이 자리한 기업, 14년간의 백의종군 끝에 다시 돌아온 곳,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곧 그에게도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괜찮다. 하지만 두 번은 무리지. 두 번이나 비슷한 모습으로 애플을 떠난다면 내 이미지는 박살 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김준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스타일은 회사 전체를 지배,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사람들을 컨트롤해 최대한의 역량을 이끌어 내는 스타일인 만큼 완벽한 주도권은 필수였다.
허나 이렇듯 지배적인 지분을 가진 주주가 나타난 이상 완벽한 주도권을 쥐는 일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주들이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자들이었으니까.
‘아무리 유능한 주주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충돌은 필연적, 그렇다면 차라리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지금이라면 물러난다 하더라도 이미지에 타격이 크지 않을 테니.’
때문에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잃을 것은 확실했다.
두 가지 선택 모두 약점이 확실히 눈에 보였으니까.
‘빌어먹을 어떻게….’
그때.
불현듯 한 가지 말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왜 병원에 가 보라고 한 거야?”
그것은 김준영의 마지막 말, 바로 병원에 한번 가 보라는 말이었다.
순간, 스티브 잡스. 그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강력한 채식 식단으로 관리한 몸, 미국인 평균보다 훨씬 마른 그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외견으로 봤을 땐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몸. 비만율이 높은 미국에서 건강한 축에 속하는 체형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구만.”
김준영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그의 몸에 피로가 급격하게 쌓이긴 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동안 건강에 소홀하긴 했다. 요즘 들어 가끔씩 가슴 아래쪽이 아프기도 하고….’
그러자 불현 그의 머릿속에 불쑥 불안이 대가리를 내밀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
자신의 몸에 대한 애정을 과할 정도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만큼, 김준영의 예언과 같은 말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한때 히피 문화 그리고 일본식 선불교인 ‘젠(Zen 禪)’ 철학에 심취했었던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빌어먹을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서….’
결국, 한참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스티브 잡스, 그가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가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래 이건 그 녀석 때문이 아니야. 이건 비즈니스다. 그동안 건강검진을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하는 거야.”
그 건물의 이름은 UCSF 앳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UCSF at San Francisco General Hospital).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종합병원이었다.
*
“지분 20% 매집 성공했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러자 내 옆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던 이어진 그가 상쾌한 얼굴로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래. 모두 다. 오늘부로… 애플은 네 회사야.”
그에게서 받아 든 휴대폰, 그 안에는 내가, 아니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애플의 주식 20%를 매집했다는 내용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순간, 손끝이 찌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지금 이 순간, 애플, 과거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던 거대한 기업, 그 기업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의 현재 시가 총액은 5조 원 정도. 하지만 10년 뒤 애플의 시가 총액은 1500조가 넘는다. 천조국 미국의 국방 예산보다 2020년도쯤의 중국 국방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라는 이야기지. 거기다 그 문화적 파급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애플이 만들어 낸 세계는 그만큼 거대하니까.’
일순 세상이 내 손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다 직원들이 한 일이지. 그런데… 이대로 괜찮겠어?”
내가 내민 휴대폰을 갈무리한 이어진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방금 전 꽤나 중요하고 거대한 일이 끝난 만큼 그의 말을 일순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다니요? 뭐가요?”
“아니 이대로 가면 애플 인수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스티브 잡스 그 사람 말이야. 그 사람 데려오지 않아도 되겠어? 꽤나 기대했었잖아.”
아,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 그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하긴 예전부터 몇 번이나 그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했었으니까.
“아 그 사람이요?”
“그래. 정 못하면 내가 한번 찾아가 볼까?”
“찾아가 본다고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이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약간 경직된 모습, 굳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나에 대한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긴 얼마 전 있었던 나와 스티브 잡스의 만남, 그것이 그리 수월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됐어요.”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아니 왜? 솔직한 말로 그 사람 인성은 별로지만 능력은 확실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가서 한번 말을 잘 해 보면….”
“아저씨.”
“왜?”
나는 천천히 나를 향해 열변을 토하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었죠? 저의 와룡이 되어 달라고?”
그러자 일순 멈칫-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어진,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그의 눈이 깊어진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과거, 서울의 한 작은 커피숍에서 나와 그가 처음 만났을 때를 반추하는 것 같았다.
“기억나세요?”
“기억나고말고 그때 꽤나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었었지. 너.”
“하하, 뭐 그때는 제법 급했거든요. 하지만 그때의 그 생각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말을 마친 나는 기에게 말했다.
“세상에 어느 와룡이 다른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요.”
일순 이어진 그의 눈이 깊어졌다.
지난 5년간 나와 함께 수많은 일을 겪어 온 남자, 그리고 겪을 남자 그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미끼는 뿌려 뒀으니까.”
그러자 잠시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돌아온다.
“미끼?”
“네.”
그런 다음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버린 부모보다 어린 나이에 생긴 자식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죠.”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에게는 친구도 애인도 그저 이용할 대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에게는 모든 것들이 컨트롤 가능한 것들로 보이거든요.”
말을 마친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내 말에 이어진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답을 이미 이야기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이겠지.”
나는 손가락을 딱- 치며 말했다.
“맞아요. 정확하게는 그의 자아, 그의 생명이겠죠.”
그런 다음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생명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더군다나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보물. 그것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말이에요.”
그러자 일순 뭔가를 생각하는 이어진, 그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살짝 이마를 찌푸리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뜬다.
“……너 설마?”
아무래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것 같았다.
“네. 맞아요.”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스티브 잡스. 그는 돌아올 겁니다. 그것도 제 발로 말이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성격,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자아와 생명에 집착한다. 세상 다른 것들에 대한 애착이 덜한 만큼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는 돌아올 것이다.
자신의 생명에 더해 그가 목숨 다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 그가 애착을 가지고 평생에 걸쳐 만들어 온 대상, 애플이 내 손에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냥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때는 꽤나 빠르게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해가 채 밝기도 전에 스티브 잡스, 그가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