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235화 목을 치다 (1)
쌍호자동차 본사.
일주일간의 인수위원회 조사 후 조용해진 그곳에 특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갑자기 회사 앞에 수십 대의 차량들이 와 서더니 이내 그 안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곧장 회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응? 뭐, 뭐야? 왜 이쪽으로 와?”
그러자 회사의 직원들, 회사의 출입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일단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들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봐! 지원 요청해! 지금 여기 큰일 났다고!”
“뭐? 몇 명 불러오냐고? 다 불러! 여기 보이는 사람만 서른이 넘어!”
“빌어먹을 막아! 일단 다들 막으라고.”
“온다! 다들 긴장해! 스크럼 짜!”
그러나 잠시 뒤.
굳은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간 직원들.
혹시 이상한 사람들이면 당장에 쫓아낼 준비를 하고 있던 그들은 얼마 뒤 기함을 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회사로 다짜고짜….”
자신들이 막아선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러서시죠. 회장님이십니다.”
그 순간, 직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네에?”
그러고 보니 한 사람, 수십 명의 외부자들 중에 유독 어려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이 있었다.
“저… 정말!”
“세상에…….”
그러자 주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던 사람들,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당황한 것이다.
그들의 회장, 그들의 고용주, 기업 권력의 가장 정점에 존재하는 이가 지금 이 자리, 이곳에 있다는 것에.
“정말이야? 저 사람이 그… 우리 회장?”
“맞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까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어.”
“그래?”
“그래. 그런데… 아니 15살, 아니 16살치곤 꽤나 키가 크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그들의 고개가 빠르게 기울었다.
인수위원회의 마지막 날 갑자기 찾아온 회장,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화, 환영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안내를 좀 부탁해도 될까요?”
“영광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그렇게 잠시 뒤.
고요한 공간.
과거 김석원 시절 아방궁이라 불리던 곳으로 안내된 김준영, 그는 얼마 뒤 그곳에서 그가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정우이라고 합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 양필모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 아직 밭은 숨이 다 가시지 않은 그들을 바라본 김준영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감돌았다.
“반갑습니다.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
잠시 뒤.
쌍호 자동차의 양대 라인 중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남자, 김정우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벌써 한 시간째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오라클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이끌고 있는 남자. 그 남자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락-
“흐음…….”
사락-
“호오…….”
사락-
“이건…….”
사락-
사락-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보는 거야!’
물론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뭔가 말을 꺼내 김준영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기는 했지만.
감정을 알 수 없는 고요한 얼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 삼매에 빠진 김준영의 모습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말마따나 이 회사, 이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게 바로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년, 아니 청년이라는 말이 어울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휴 진짜 회장만 아니었어도.’
사실 처음 그는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처음 회장이 회사에 도착했다는 정보. 그 정보를 들었을 때 일순 당황했을지언정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김준영의 나이는 올해로 16살, 남들 같으면 중학교를 졸업하니 마니 하는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말마따나 아무리 회장이니 뭐니 해도 김준영의 본질은 어린 애. 돈이야 운으로 벌 수 있지만 사람은, 경영은 그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뭐 질질 짜는 애새끼들보다는 낫다고 해도 그뿐이겠지.’
하지만.
‘앉으시죠.’
그 생각은 머지않아 수정되어야만 했다.
그들이 빠르게 회사로 돌아와 김준영이 기다리고 있다는 아방궁, 그곳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을 바라보는 김준영의 시선에 그들의 입이 꾹 다물린 것이다.
‘젠장,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불과 16살.
분명 앳된 기색이 역력한 꼬맹이에게 그가 밀린다니.
지난 20년간 쌍호자동차에서 구르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경험했다 자부하는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니.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말마따나 집에 가면 김준영보다 더 많은 나이의 아들이 있는 그였으니까.
‘후…….’
슬쩍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의 앞에 있는 그의 라이벌, 양필모 상무 또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나이 차이는 조금 나지만 그 또한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 때문에 그는 김준영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만큼 김준영의 언행을 통해 그에 맞는 대응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회장이 보고 있는 자료는 완벽하다. 분명 확실하게 두 번 세 번 검토한 자료야. 저걸 가지고는 트집을 잡지 못하겠지. 그러니까 일단은 이번 고비만 넘기자. 이번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시 한번 확실하게 단도리를 치는 거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김정우, 그가 슬그머니 허리를 폈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이상 그가 먼저 움직이려 한 것이다.
‘후… 그런데 저 꼬맹이 진짜 다 보려는 건가? 아니 저 양을 다?’
그런데 그때.
“제법 잘 정리된 자료군요.”
불현 김준영의 입이 열렸다.
순간, 장내의 사람들이 모두가 움찔거렸다.
한참 동안의 침묵, 그 이후의 소리에 일순 당황한 것이다.
“설마 그 자료들을 다 읽어 보신 겁니까?”
김정우이 의아한, 약간은 믿기지 않는 다는 낯으로 물었다.
그러자 고요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김준영, 그가 그가 자신이 읽고 있던 자료를 테이블에 내리며 입을 열었다.
“뭐 양이 얼마 안 되니까요.”
그 말에 일순 김정우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지난 일주일간 만들어 낸 자료. 두께만 해도 수십 센티는 넘어 보이는 두께의 자료가 얼마 안 되는 말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다 읽기는. 반의 반도 못 읽었을 시간인데.’
하지만.
“하하, 역시 대단하시군요.”
김정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는 생각한 것이다.
김준영, 그에게 허세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아직 어리다는 의미. 그렇다면 그를 살살 구슬러 이 상황을 넘길 수 있겠다고.
뭐 김준영이 16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까.
그러자 김정우의 맞은편에 있던 양필모 그가 퍼뜩 눈을 크게 뜨며 김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김정우와 시선을 마주친 뒤 이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아마 저희들이었다면 아마 하루가 다 가도 못 읽었을 내용들인데. 역시 비범하십니다.”
찰나간의 합의가 끝난 것이다.
일단 협의를 통해 이 상황을 넘기자고.
이 상황을 넘긴 이후에 맞대결을 시작하자고.
일단 외세의 위협은 막아야 했으니까.
그러자 그들을 바라보던 김준영, 그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감돌았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 정도의 두께라면 경력 있는 사람도 쉬이 읽기 어려운 일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양 상무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각종 수치들과 역시 사상 최연소 하버드 입학자시라 그런지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주 쿵짝들이 잘 맞았다.
그때.
탁-
김준영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자료들을 살펴보니 두 분이 그동안 쌍호차를 위해 노력하신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말에 김정우와 양필모 두 사람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일단은 수그리고 또 수그리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김준영 그가 일순 표정을 달리했다.
“그런데…….”
어두운 표정과 끊겨버린 말. 그 모습에 김정우와 양필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떤 문제라도?”
“아니요. 한 가지 고민이 있어서요.”
김정우가 빠르게 치고 나갔다.
“회장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고민이 어떤 고민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잠시 말을 멈춘 김준영이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 쌍호자동차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김정우, 양필모가 눈을 크게 떴다.
“회사에 문제점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준영의 말은 그들의 헤게모니에 위협이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꽤나 심각한 문제점들이라 묻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하지만 두 분이 도와주신다면 처리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김준영이 고요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잠시 눈을 마주친 두 사람, 그들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견마의 충성을 바칠 테니. 마소처럼 부려 주십시오.”
김준영이 인식한 문제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다면 일이 쉬워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일단 회장이 말한 부분만 처리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세상이??.’
그러자 그들의 말을 들은 김준영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감돌았다.
“정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저희가 회장님을 대신해 그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양필모 상무님?”
“물론입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준영이 손뼉을 짝- 쳤다.
“좋습니다. 두 분께서 이렇게 전향적이시라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마음 놓으시지요. 그런데 그 문제점이라는 도대체 어떤…?”
“아 그거 말입니까?”
잠시 고개를 든 김준영, 그가 가벼운 낯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당신들입니다.”
무척이나 가벼운 말, 그 말에 김정우, 양필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아무래도 아직 준영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김준영,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내 회사를 좀먹는 문제점들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탁-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순간.
벌컥-
아방궁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으로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 들어오더니 이내 김준영의 뒤에 시립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저, 저놈들은….”
“서, 설마?”
임대두를 필두로한 회사 내 소장파들.
그리고 김정우, 양필모의 의해 쫓겨난 사람들.
혹은 그의 밑에서 그들의 밑을 닦아 주다가 토사구팽 당한 자들이었다.
김준영, 그가 짙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왜? 다 아는 얼굴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