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최고(最高) (5)
“대한민국 안에서는 말이에요.”
“···대한민국 안에서라고?”
“네. 맞아요.”
내 말이 끝낸 그 순간, 김귀란이 우묵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대학교.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자리를 놓쳐 본 적이 없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교.
근 100년에 가까운 기간 우리나라의 사회, 역사, 문화적인 역사를 만들어 온 우리나라 지성의 요람.
그러니 내가 그녀의 말대로 한국대학교에 입학한다면, 근 100년에 걸쳐 만들어진 한국대학교의 인맥, 학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일반 대중의 찬탄 어린 시선 또한 내 손에 쥘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내에서의 이야기.
5천만 명이라는 한정된 인구 안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안에선 비길 대가 없는 명문대학교인 한국대학교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땐 그저 그런, 고만고만한 대학교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이때쯤 한국대학교의 세계 대학 순위가 한 40위쯤이나 되려나?’
그러니 뭐, 굳이 한국대학교에 목맬 필요가 있나.
대한민국 밖으로 슬쩍 눈을 돌리면 한국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학교들이 있는 것을.
‘아무래도 유럽 쪽보단 미국 쪽이 더 좋겠지.’
이쯤 되자 김귀란 또한 내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한 것 같다.
“설마.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네. 맞아요.”
“도대체 어딜?”
자연 내 쪽으로 몸을 숙이는 김귀란, 그녀의 모습에 나는 슬쩍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버드 대학교요.”
순간, 김귀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하버드?”
설마하니 그 이름을 들을 줄 놀랐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
“아니, 정말 그 하버드 말하는 거냐?”
“네. 맞아요. 그 하버드.”
그녀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에 있는,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학교.
<대학 논문실적 1위>, <대학 논문영향력 1위>, <대학 논문인용도 1위>, <대학 특허 3위>, <대학평가 지수 종합 1위>에 빛나는,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에서 조사한 세계 대학 순위 조사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명문대학교.
8명의 미국의 대통령과 157명의 노벨상 수상자, 62명의 억만장자와 기타 수십 명의 국제기구 수장을 배출한, 전 세계 각 국가의 정계, 법조계, 재계, 문화계, 언론계, 학계 등에 어마어마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학교.
그리고 40조 원의 달하는 대학 기금을 운영하는 큰손, 지구상에서 교황청 다음으로 돈이 많은 비영리단체로 일컬어지고 있는 대학교. 그 대학이 바로 하버드 대학교다.
뭐 조사 기관에 따라, 혹은 조사 기준에 따라 가끔 스탠퍼드 대학교나 메사추세스공과대학교(MIT)에 대학 순위가 밀릴 때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그쪽 대학들은 공대 쪽, 인문대학 쪽에서는 하버드가 독보적인 영향력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선 말이지.’
아니 오죽했으면 하버드에서 유학생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로 드라마가 다 나왔을까.
아무튼 그만큼 하버드 대학이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에 있는 대학은?’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곧바로 나올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바로 이 학교인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대학이 아니니까.’
김귀란 또한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는 않은지 내가 하버드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버드라···.”
“네. 하버드요. 이 정도면 최고의 대학 아닌가요?”
그러자 잠시 김귀란이 나를 바라본다.
“그래. 그 정도면 그런 말을 할 만하지.”
그리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하버드 정도면 한국대학교 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하긴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둘 사이에 차이는 명백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김귀란이 일순 정색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신은 있느냐?”
“자신이요?”
“그래. 분명 한국대학교보다 더 좋은 선택. 최고의 교육이라는 건 내 인정한다. 한국대학교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우리나라 안에서 하는 말이니까.”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목이 마르다는 듯 식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하지만 그건 다 네가 하버드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야. 괜히 시도만 하다가 시간을 버릴 거면 한국대학교에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찻잔을 내린 김귀란이 말했다.
어느새 고요해진 눈동자, 그 눈동자는 나에게 하버드 입학에 대한 현실성을 지적했다.
물론 그건 그랬다.
분명 하버드라는 이름, 그 이름이 가치가 어마어마한 만큼 그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 해 하버드 지원하는 학생의 수는 약 5만에서 6만 명 정도, 하지만 그 중 하버드의 높은 성벽을 넘는 사람은 전체 지원자의 4~5%인 2,000명에서 2,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김귀란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볼 수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하버드는커녕, 한국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지적, 그것은 단순한 핀잔, 혹시 모를 일에 대한 걱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치 명절 날 손자가 비싼 선물을 사 왔을 때 할머니들이 보이는 태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 말마따나 세상 어디 있는 할머니가 손자의 꿈, 그것도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매도하겠어.
물론 김귀란이 일반적인 할머니는 아니지만, 나도 일반적인 어린아이, 11살의 일반적인 꼬맹이는 아니다.
이 세상에 11살에 수능 만점을 맞은 꼬맹이가 흔한 건 아니니까.
‘사실상 전무하다 봐야지.’
그러니 그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 안 된다면 내년, 내년에 안 된다면 내후년엔 가능할 것이라고. 그래 그 정도라면 기다릴 수 있다고.
그녀의 치켜 올라간 입꼬리, 미묘하게 휘어진 눈매가 내 생각이 타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지만 말이야.’
나는 고개를 들어 김귀란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순간적으로 김귀란의 시선이 내가 꺼낸 서류로 향했다.
“···이게 무어냐?”
“증거요.”
“증거?”
“네. 자신 있냐고 물어보셨잖아요.”
대답을 마친 나는 슬쩍 웃으며 김귀란의 앞에 내가 꺼낸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THIS IS TO CERTIFY THAT.
KIM JUN YOUNG.
having qualified in all respects is hereby admitted as candidate for the degree of Bachelor of arts.
하버드 대학교의 입학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합격 통지서.
하버드의 정신을 의미하는 VE RI TAS라는 단어와 내 이름 석 자가 굵은 고딕체로 선명히 새겨져 있는, 내가 하버드 대학교의 학사 학위 후보로 인정되었음을 의미하는 서류. 그 서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귀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이건······.”
그녀 또한 이 시점에 나온 서류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것이다.
“네. 하버드 대학교 합격 통지서에요.”
“뭐···? 합격 통지서?”
일순 김귀란의 냉정이 무너졌다.
그녀가 빠르게 내 앞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서류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눈동자, 김귀란의 표정을 보니 그녀가 지금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탁-
김귀란이 서류를 내려놓은 김귀란, 그녀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
드넓은 호텔 방을 가로지르는 목소리. 진한 격정이 묻어있는 웃음소리에 나는 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더욱더 허리를 곳곳이 펴고 오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웃음이 나를 향한 것. 나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 동안 파안대소를 내뱉던 김귀란. 그녀가 우뚝-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준영아.”
고개를 들자, 기대와 열망, 환희와 대견, 흐뭇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섞여 있는, 아니 휘몰아치고 있는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에 보였다.
“네. 할머니.”
“그래. 이 할미가 오늘 꽤나 놀랬다. 이 녀석. 언제 이런 걸 다 준비 한 거야?”
그녀의 말에서 약간에 온기가 묻어났다.
그녀에게서 보일 것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기에 일순 움찔했다.
사실 하버드에 대해 생각한 것은 제법 오래전 일이었다.
하버드 대학이 가지는 가치, 그것들을 내 손에 쥘 수만 있다면 내 이름을 내 능력을 보다 더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들.
SAT(고등학교 쓰기, 읽기, 수학시험).
SATII(고등학교 과목시험).
AP(대학교 선행학습).
EC(봉사활동, 클럽활동, 운동).
Essay(자기소개서)가 같은.
일반적으로 하버드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자격요건들이 내 앞을 가로막긴 했지만, 다행히 위 자격요건은 하버드 입학에 필요할 뿐, 그것이 곧 하버드 입학의 등락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5문장의 에세이로 하버드에 입학한 소년 이야기’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Black Lives Matter를 100번 적어 하버드에 합격한 방글라데시 출신 무슬림 학생의 이야기’
다양성을 중시하는 하버드 이념상 수치화된 점수 이외의 것, 그러니까 학생의 재능이나 학생? 미래 가치 같은 것들에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생각한 지는 제법 오래 됐어요.”
“그래?”
“네. 결과가 나온 건 얼마 전이었지만요.”
“그런데 왜 이 할미한테도 비밀로 한 게냐? 미리 말해 줬으면 좀 도와줬을 거 아니냐.”
“선물은 모르고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법 아니겠어요?”
나는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김귀란이 어이가 없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뭐어? 허허 이 녀석.”
아무래도 내가 준 선물이 나름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김귀란, 그녀가 이내 웃음을 멈춘 채 말했다.
“좋다.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선물을 주마.”
응? 선물?
의아한 마음에 김귀란을 바라보자 그녀가 천천히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준영아.”
“네. 할머니.”
“하버드. 가거라. 가서 졸업을 해. 만약 그렇게만 하면··· 내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일순 의아한 표정으로 김귀란을 바라보았다.
“···제 소원이요?”
그러자 김귀란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는 씨익- 어울리지 않게 짙은 웃음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한성의 이름을 네 손에 쥐어 줄 수도 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