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폭풍이 불어오다 (2)
뉴올리언스(New Orleans)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나의 말, 재즈의 고장으로 유명한 이 도시가 물 밑으로 잠길 것이라는 정보는 사람들에게 꽤나 큰 충격을 주었다.
“정말입니까? 정말 뉴올리언스가 물에 잠길 거라는 말입니까?”
그만큼 의외였던 것이다.
뉴올리언스라면 남부에서도 꽤나 큰 도시. 이름값이 있는 도시였으니까.
“가능성이 높은 추측입니다. 이번 허리케인, 그러니까 카트리나의 위력을 생각해 봤을 때 미시시피강 쪽 제방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뉴올리언스 정도라면 방재시설을 정비하기에 충분한 도시 규모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긴 전쟁이 이 나라 구석구석을 좀 먹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개발로 인해 뉴올리언스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줄 주변 습지들이 꽤 사라진 상태죠. 이런 상황에 카트리나 정도의 허리케인이 불어 닥친다면 아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버티지 못한다면?”
“벽이 무너지겠죠.”
그러자 데이비스를 포함한 사람들 모두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제방이 무너진다는 말입니까?”
그만큼 큰 사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런….”
“아마 먼저 무너지는 건 도시 북쪽 폰차트레인 호수 쪽의 제방일 겁니다. 그쪽으로 유입된 토사가 제법 많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리고요?”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확언했다.
“도시의 저지대. 도시의 80% 이상이 물에 잠기겠죠.”
일순, 사람들 사이로 경악, 놀람이 퍼져나갔다.
“80%나 말입니까?”
도시의 80%. 그 말은 곧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의 80%. 그 정도의 사람들이 수해를 입는다는 말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아마 그와 비슷한 수의 시민들이 집을 잃을 겁니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아뇨. 거의 확실합니다. 이미 오라클의 파견 직원들이 도시 제방 전반에 달하는 문제점들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도시는 아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카트리나가 완전히 상륙한 이후라면 말이죠.”
“…….”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질 겁니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단 말입니까?”
데이빗,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더 큰 문제는 물이 들어찬 후에 일어날 겁니다. 뉴올리언스의 저지대와 고지대. 그곳은 꽤나 간단한 기준으로 나눠져 있죠. 바로 돈의 유무로 말입니다.”
“…계층 간 갈등.”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사회 서비스와 서비스망을 초과하는 사회의 요구, 그 요구 하에 정부는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정부란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하기 마련이죠.”
과거 뉴올리언스 사태를 맞닥뜨린 주 정부,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꽤나 손쉬운 선택을 해 버렸다. 그들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에 걸맞게 빈민가의 구호요청을 후순위로 밀어 버린 채 다른 지역을 먼저 구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이뤄지는 구호정책이었던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솔직히 그건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그 정도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과 삶이 망가져 버렸다.
이후 뉴올리언스의 인가 40%가 외부로 빠져나가 버릴 정도로.
“이건….”
그러자 잠시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이제 그들 또한 깨달은 것이다.
그들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이번 사건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것을.
일반적인 수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때.
“보스.”
앤드류 데이비스,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네. 말씀하시죠, 데이빗.”
“분명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그가 진지한 얼굴, 무거운 눈으로 나를 향했다.
“당신입니다.”
“저요?”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이 정보를 저희에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 이 정보라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단순히 주식에 투자를 하기만 해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건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이 정보를 이용하려 하지 않느냐는 듯한 생각이 그의 눈에서 묻어났다.
“글쎄요. 데이빗은 제가 돈을 더 벌길 바랍니까?”
“…모두가 그렇게 할 겁니다. 솔직히 이 나라에서 제1 가치는 바로 그것이니까요.”
“제1 가치라… 과연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제 곧 물속에 고립되게 될 50만 명의 시민들.”
“아….”
나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짓는 데이빗,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돈을 좋아합니다. 돈이라는 건 많은 것을 가능케 만드는 절대제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나는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저는 괴물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그러자 일순 데이빗의 눈이 흔들린다.
“괴물이라….”
“네. 물론 데이빗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돈처럼 눈에 딱 띄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지.”
“따로 원하는 게 있으시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죠.”
나는 사람들을 직시하며 말했다.
“사람들의 미래.”
“미래요?”
“네. 그것을 온당히 제 것으로 만든다면 그 정도의 가치가 되지 않겠습니까?”
순간,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마 그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인 재벌인 내가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이번 사건에 접근하고 있다고. 그러니 나의 순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 이외의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죄송합니다. 그동안 보스를 조금은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오해일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는 것이고 위기가 있으면 극복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나를 향해 호의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시가 침몰한다면 다시 건져 올리면 그만이겠죠.”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나는 하나하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러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일순, 그들의 눈빛이 결연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
사람들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정부 측에 연락을 취했다.
“아저씨.”
“어 왜?”
“정부 쪽에 연락을 좀 해주세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 쪽에 연락?”
“네. 긴하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얼마나 빠르게?”
“기왕이면 지금 당장.”
그리고 그 결과, 의외로 쉽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준영아.”
“네.”
“정부 쪽에서 답신이 도착했어.”
“…이렇게나 빨리요?”
연락을 한 사람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꽤나 특이한 경우였다.
뭐 그만큼 나의 위치가 올라갔다는 거겠지.
“네 연락이니까. 저쪽에서도 나름 기다리던 투던데?”
“그래요?”
“그렇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워싱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미스터 김?”
“미스터 리토프?”
나를 향해 악수를 건네는 장년의 백인 남성.
제법 완고한 표정을 하고 있는, 볼에 있는 기다란 흉터가 인상적인 사내.
그가 바로 마이클 리토프(Michael Litov).
테러와 자연 재해로부터 미국 국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02년 설치된 기구, 미합중국의 국토안보부(國土安保部)의 장관이었다.
“드디어 결단을 내리신 겁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여는 리토프, 그의 표정은 제법 밝아 보였다.
“결단이라고요?”
“종전에 있었던 대통령의 제안, 그것을 수락하시기 위해 오신 것 아닙니까?”
아, 아무래도 그는 착각을 한 것 같았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긴 했으니까.
“뭔가 착각을 하셨군요.”
“착각이요?”
“네. 미스터 리토프.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미국인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을 구하기 위해서지.”
의아한 듯 찡그려지는 마이클 리토프의 얼굴. 그의 검푸른 눈이 나를 향했다.
“미국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요?”
“그렇습니다. 마이클 리토프 국토안보부 장관님. 제가 미국인이 되고 싶다면 안보부를 찾아오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어 이곳을 찾으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표정을 지운 리토프,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테러입니까?”
“아뇨. 재해입니다.”
“재해?”
일순 고개를 갸웃하던 그, 그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허리케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카트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너털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 이거 괜한 걱정을 하시고 계시군요. 허리케인 카트리나라면 저희도 요주시하고 있는 타겟입니다. 그러니 굳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나는 살짝,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50만. 최소 수치입니다.”
그러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스터 김 말에는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만약 그 50만이라는 수치가 미국인들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라면 저는 꽤나 불쾌할 것 같군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벌어질 일이니까요.”
그가 상어처럼 이를 드러냈다.
“저희는 한국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허리케인 정도로는 저희의 안전망을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그랬었죠.”
나는 말을 덧붙였다.
“과거에는.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러자 그의 시선이 차갑게 굳는다.
불쾌함.
그의 얼굴에선 그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 저희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아뇨. 모욕이라뇨.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건 그저 간단한 통봅니다.”
“통보?”
“네.”
나는 천천히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 13시 30분. 이제 5분 뒤면 루이지애나를 비롯한 50여개 주의 뉴스에서 한 가지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올 겁니다.”
“시뮬레이션?”
“그렇습니다. 제12호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 초속 80m/s의 강풍이 만들어 낸 8.5m짜리 폭풍해일이 뉴올리언스 제방을 무너뜨리고 뉴올리언스가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이죠.”
일순, 공기가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
“자 마이클 리토프 씨, 저는 카드를 던졌습니다. 판돈은 오라클. 저는 뉴올리언스가 침몰한다는 데 제 손모가지를 걸 겁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부는 무엇을 걸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