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 302화 사냥감은 스티브 잡스 (4)
“어떻게 아셨습니까?”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나를 찾아온 남자.
아침 해가 채 뜨기도 전에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찾아온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였지만 지금은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하나의 인간이었다.
“네.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겁니까? 용종이 작아서 예후는 없었을 거라고 하던데?”
그가 떨림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하게 떨리는 손, 그의 몸은 그의 긴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글쎄요? 제가 굳이 이렇게 추궁을 받으면서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침에 불쑥 찾아온 무례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죠.”
그러자 일순 고개를 든 그, 그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정신이 없어 놔서.”
그리고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과 하루, 단 하루 만에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 그 모습에선 현 상황에 대한 혼란이 묻어났다.
“사과는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니 병원에 다녀오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어제 UCSF 앳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뭐라던가요? 그쪽에선?”
“그게… 췌장 쪽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조금은 조심스러운, 하지만 떨리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표정에선 현 상황에 대한 혼란이 묻어났다.
“1기입니까?”
“…경계에 있다고 하더군요.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암으로 진전됐을 거라고….”
“다행이군요. 그래도 조기에 발견해서. 그래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치료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에선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원래 이렇게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그때.
그가 불현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강하게 말을 내뱉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정말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제는 떨림이 사라진 그의 눈, 그 눈에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글쎄요? 잡스씨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건….”
그가 말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실제 나는 그의 병명을 알고 있었으니까.
과거, 그러니까 내가 살던 시기의 스티브 잡스, 그의 죽음은 유명했다.
그것은 그라는 사람, 그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겨 낼 수 없었던 병마의 참혹함, 그리고 그 병마를 이겨 내는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 그가 선택했던 방법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 그는 췌장암이라는 병을 진단받고 온갖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몸을 회복하려 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니까.
뭐 이젠 그럴 일 없지만.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네. 당신과 인류를 위한.”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 위엔 나의 욕심 또한 깃들어 있었다.
그러자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그가 얼굴이 복잡한 기색을 띄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선 많은 말이 묻어나고 있었다.
“왜요 부족한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리고 그렇게 말이 없던 스티브 잡스, 그가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 회사를 가져가셨더군요.”
“그렇습니다. 어제부로 애플은 제 회사가 됐죠.”
“축하드린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요. 아직 원하는 것을 다 못 얻어서.”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그러자 잠시 나와 시선이 마주친 스티브 잡스, 그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
“솔직히 처음에 화가 치밀더군요. 병원에 다녀온 다음에는 두려웠고요. 하지만 이제는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젓던 스티브 잡스, 그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저에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나의 행동, 나의 언어, 나의 행보에 대한 물음이었다.
단도직입적인 그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요?”
“네. 비싼 것을 싼 값에 살 수 있다면 누구나 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제가 비싼 것이란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비싸질 사람이죠.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생각 모두.”
나는 주먹을 꽈악 쥐어 보였다.
앞으로 몇 년 뒤, 그러니까 내년 MP3플레이어가 나온 후부터 애플의 성장세는 도드라진다.
아니 도드라진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급격한 상승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상승세는 4년 뒤, 전 세계 통신 업계에 파란을 일으킨 기기가 탄생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새로운 패러다임. 그것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를 잡아야 한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 그 두 키워드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놀랍군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대상이 저라는 것이 말이죠.”
“부담스러우십니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만… 글쎄요 모르겠군요. 나쁘지는 않은 기분입니다.”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좀 전의 유약한 모습이 사라진, 결단을 내린 자의 모습이었다.
“전권이 필요합니다.”
“드리겠습니다.”
“……5년간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100억 달러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무런 수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라는 바입니다. 수익이 난다면 오히려 실망하겠죠.”
일순 그의 입이 딱 다물렸다.
“도대체 당신은….”
아무래도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하긴 투자자, 일반적인 주주들이었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스티브 잡스 씨.”
“스티브라 불러 주십시오.”
“그래요. 스티브. 당신이 원하는 모든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한도는 1,000억 달러. 그 이내에선 모든 지원을 약속하죠.”
1,000억 달러. 그 돈이라면 우리 돈 100조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 말에 스티브 잡스 그가 놀란 눈을 만들었다.
“진심이십니까?”
“저는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 당신에게 딱 한 가지만 원하도록 하죠.”
나는 긴장으로 물든 스티브 잡스,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해 주십시오.”
“네?”
“세상이 놀라 뒤집어지고 우리의 이름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그런 시대를 보여 주십시오. 그것이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겁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야만 제가 드린 선물이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잠시 뒤, 수많은 감정을 뒤로 한 채 그의 입이 열렸다.
“……알겠습니다. 보스.”
미래가 내 손에 잡히는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우리는 곧바로 애플사, 그곳으로 향했다.
“보스 이쪽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애플사를 인수한 만큼 그곳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해도 돼요?”
물론 일반적인 인수, 적대적 인수였다면 회사 안의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겠지만, 이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적대의 첨병에 서야 할 사람이 우리의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떻겠습니까. 보스께서 저희 회사의 지분 상당수를 가지고 계신 건 사실인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모든 건 제가 감수할 겁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저에겐 도움이 됩니다.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보스에게서 비롯한 거라는 말이 돌 테니까요.”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기본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큰 문제 없이 애플의 상태를 파악,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 이쪽에 있는 친구가 저희 애플의 제품 디자인을 맡고 있는 친굽니다. 이름은 조너선 아이브. 앞으로 몇 년 뒤면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게 될 친구죠. 그리고 이쪽에 있는 친구는 관리를 맡고 있는 팀 쿡, 아 저쪽에 있는 친구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크레이그 페더리깁니다. 저희 회사의 핵심 인력들이죠.”
드디어 애플, 이후 세계 통신기기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기업을 온전히 내 손에 쥔 것이다.
“다들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군요.”
“IT업계에서 1년은 다른 업종에서 10년과 같죠. 기술의 발전이란 사회의 인식을 뛰어 넘는 법이니까요. 그런 만큼 직종의 숙련도와 더불어 트렌드에 대한 적응도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기술과 감성의 조화, 그것이 저희 애플의 모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기업 인수에 대한 사항은 끝이 났지만 이곳에서의 나의 역할을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좋아요. 그럼 다음으로 프로젝트를 箕? 확인해 볼까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었으니?.
“네? 아니 프로젝트를 말씀이십니까?”
“네 한번 확曠? 보고 싶봇?. 현재의 애플의 상황을.”
“하지만 분명 전권을 주신다고….”
“물론입니다. 하지만 조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우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MP3플레이어로….”
덕분에 나는 큰 마찰 없이 상당 부분 애플의 현재 프로젝트와 미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MP3플레이어 같은 경우 바리에이션을 넓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 또한 뛰어난 제품이지만 크기가 정해져 있는 만큼 현재로선 수요의 한계가 있을 겁니다.”
“수요의 한계 말입니까?”
“네. 예를 들어 현재의 MP3플레이어의 경우 웬만한 휴대폰 사이즙니다. 이런 사이즈의 기기를 운동할 때 들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기기의 성능을 다운그레이드하되 휴대성을 확대시킨 기기를 만든다면 수요 계층의 확대를 노려 볼 수 있을 겁니다.”
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는 상당 부분 그가 만들어 낸 미래였으니까.
“아….”
그리고 그렇게 며칠 뒤, 애플에서의 일을 모두 마친 나는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애플을 떠날 수 있었다.
“휴… 드디어 끝났네요.”
“그러게 아니 하루에만 회의를 몇 번이나 한 거야?”
“제가 기억하는 것만 10번이 넘어요.”
아직 남아 있는 먹잇감들, 나스닥 붕괴로 인해 시장에 고립된 회사들. 그것들을 손에 쥐기 위해서였다.
“서두르죠. 지금부턴 타이밍 싸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