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 304화 신세계의 신 (2)
다음날.
지난 몇 달간 동고동락한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다들 백만장자가 되셨군요.”
“다 보스 덕분입니다. 세상에 몇 달 만에 백만장자라니. 누구도 믿지 않을 겁니다.”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에 저마다 다양한 색깔이 깃들어 있었다.
“믿으십시오. 그리고 자랑하세요. 당신들은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어떤 이는 아쉬움을, 또 어떤 이는 아련함을 또 어떤 이는 뿌듯함을 채운 채 나를 바라보고 나 또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 중에서 많은 이들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돈이란 그릇에 따라 한계가 있는 법, 이쯤에서 만족하고 떠나갈 사람도, 또 만족하지 못하고 독립을 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 보스 덕분입니다.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어디라도 어느 때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믿음이란, 기대란 한 번 생성된 뒤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스탠바이 하고 기다려 주세요. 곧 여러분들을 부를 일이 있을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그럼 언제쯤?”
“내년, 늦어도 내년 중반쯤에 일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보스.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뉴욕을 떠난 나는 약 10시간의 비행을 마친 뒤 코스닥 버블 붕괴의 후유증으로 휘청거리는 나라, 얼마 전 총선을 치르며 새로운 정국을 맞이한 나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탁-
비행기에서 내리자 보이는 풍경, 그것은 제법 익숙하지만 낯선 모습. 내가 태어난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떠나 있던 나라의 모습이었다.
<띵동- 오후 1시 김포발 로스엔젤레스행 대한항공 KE0025에 탑승하실 김지현 고객님, 김지현 고객님을 찾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하, 아빠! 나 지금 도착했어요! 네? 공항 입구에서 기다린다고요? 알았어요! 빨리 나갈게요! 기다려요!”
“네. 부장님. 지금 막 공항 도착했습니다. 아… 바로 본사로 들어오라고요? 네. 네네 알겠습니다. 수속 마치고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귓속으로 들려오는 한국어, 그 소리를 맞으며 크게 숨을 들이쉬자 분명 미국의 그것과는 다른 고향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실제 체취도 기온도 풍경도 모든 것이 다르지. 이곳과 미국의 차이는 꽤나 크니까.’
하지만 그 둘 사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 이 자리가 곧 나를 커다랗게 만들어 줄 자리라는 것이었다.
‘일단 자금은 완비했다. 물론 약간 부족하긴 하지만 연말까지는 계속 자금이 들어올 거다. 그러니까 일단은 한국에서의 일을 모두 마무리한 뒤 중국을 공략한다. 지금이라면 중국 대륙의 액기스를 쭉 짜낼 수 있을 테니까.’
그때.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슬쩍 돌아보자 내 옆자리에 서 있던 이어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저기 봐. 손님 왔다.”
그리고선 슬쩍 공항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을 바라보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 누가 봐도 ‘나 중요한 사람이오’ 하고 시위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플랫폼을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죠?”
“글쎄? 뭐 짐작은 가는데 확실한 건 만나봐야 알겠지.”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이어진, 그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내 앞에 다가온 사람들, 그들이 약간 멈칫하더니 이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경제부에서 나왔습니다. 김준영 회장님 맞으십니까?”
건조한 목소리, 햇빛을 본 적 없는 듯 새하얀 얼굴에 잘 관리된 피부, 자신감 있는 태도. 엘리트 과정을 밟고 올라온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경제부요? 아니 경제부에서 왜 갑자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직접 만나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슬쩍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왜 보면서 안 나와?’ 하고 말하는 듯한 시선, 나는 그의 모습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무슨 일이죠?”
그러자 일순 눈에 이채를 띈 그, 그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각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순간, 찬 바람이 우리들 사이에 지나갔다.
각하(閣下).
그리 불릴 사람은 이 나라에 한 명뿐이었다.
“청와대?”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회장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무래도 요번에 있었던 사업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번 사업이라면….”
“나스닥 시장은 저희 또한 요주의하고 있는 시장이죠.”
그가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 나스닥에서의 나의 사업이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꽤나 갑작스러운 일이군요.”
“그만큼 국내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각하께선 회장님의 고견을 필요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이들이 많을 텐데요?”
“성공을 거둔 건 회장님이 유일하시니까요.”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의 모습에선 내가 자신을 따라 나설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하긴 예전 같으면 나 또한 말이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을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말이란 그 정도의 힘이 있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글쎄요.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은 힘들 것 같군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이제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닌 그였으니까.
“네? 아니 회장님. 각하의 말씀입니다. 정말로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살짝 당황한 표정, 그는 내가 자신의 말을 거절할 것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물론입니다. 지금은 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요.”
“급한 일이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각하껜 나중에 찾아뵙겠다 말씀드려 주십시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청와대로 찾아갈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는 황당함에 굳어 있는 사람들, 나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남자들을 일별하며 공항을 떠났다.
뭐 내가 그들의 마음까지 신경써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가죠.”
그러자 곧 대한민국, 흔들거리는 땅이 내 앞에 다가왔다.
*
“괜찮을까?”
“뭐가요?”
“아니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한 꼴이잖아. 그래서.”
이어진, 그가 살짝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걱정이 된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아마 대통령도 크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아마 가볍게 올린 이야기를 밑에서 주워 키웠겠죠. 원래 공무원들이 그런 법이잖아요.”
“그런가?”
“그렇죠. 만약 아니라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을 아는 사람이 왔겠죠. 아무렴 대통령 명령인데.”
“아…….”
“게다가 사실 그게 아니라도 상관 없어요.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 아쉬운 건 그쪽이니까. 뭐 정권 초기라면 모를까 이미 중간을 넘었어요. 슬슬 힘이 떨어진다는 말이죠.”
그러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이어진,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번 총선에서도 야당이 우세를 점했으니까.”
“그렇죠.”
“그러고 보면 그 사람도 참 불쌍해. 아니 이쯤되서 좀 일이 수습됐다 했더니 또 일이 터진 격이잖아.”
그가 조금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정치인이란 그런 법 아니겠어요? 그런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거죠. 그것이 욕망이 됐던 이상이 됐든 말이에요.”
말해 놓고 후회했다.
욕망과 이상,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욕망은 말할수록 지탄 받는 것 이상은 말할수록 추앙받는 것, 액션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결말은 같은 것들이었다.
때문에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사이 업데이트된 사항 있어요?”
이 말을 빨리 지우기 위해서였다.
“큰일은 없어. 코스닥 지수야 300에서 50으로 추락한 거 그대로고 코스피도 500선을 유지하고 있어.”
“4월 전에 코스피 지수가 1000을 넘었었나요?”
“정확히는 1005선. 하지만 그것도 지난 일이지. 지금은 500도 깨질까 말까하는 판국이니까.”
그가 슬쩍 자료를 확인하며 말했다.
“시장사들 상황은요?”
“코스피 상장사야 워낙 큰 회사들이니 흔들려도 떨어지진 않아. 하지만 코스닥은 박살났어. 어제까지 80조 원이 날아가고 98개 회사가 상폐된 상태야.”
그의 말은 대한민국의 혼란, 그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혼란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뭐 뻔한 거 아니겠어? 아니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기껏해야 7조 원 남짓했던 시장이 몇 개월 사이 100조 원대 시장이 됐으니까.
작년 말 올해 초 시작된 코스닥 시장의 버블은 꽤나 급격하게 성장했다.
덕분에 7조 원대 남짓했던 코스닥 전체 파이는 불과 몇 개월 사이 100조 원대의 거대 시장이 되었다.
하지만.
뿌리가 없는 나무는 결국 바람이 무너진다고 나스닥 시장의 여파가 한반도에 다다른 순간, 폭탄이 터져 버렸다.
아무런 기술력 없이 시장성조차 생각지 않고 투자에 투자를 거듭하던 시장이 파괴되며 어마어마한 경제적 여파를 미친 것이다.
“대통령이 급하게 저를 찾을 만한대요?”
“뭐 지금으로썬 믿을 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경제관료들이야 머리가 굳었고 대기업 총수들도 경우에 따라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있는 판국이니까.”
“그래요? 아니 어디서요?”
“못 들었어? 삼성이 이번에 꼬리를 데였다던데?”
못 들었다. 나는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이거 정말 보고가 안 올라갔나 보네. 아니 이번에 그 회사 있잖아. 새롬기술. 그 회사에 삼성이 베팅했다가 데였다고 하더라고.
새롬기술. 그 회사라면 지난 6개월간 150배가량의 주가 상승을 경험하며 시가총액 2조 8700억 원, 전성기엔 약 5조 원의 시가총액을 달성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에 삼성이 데였다고?
“어떻게요?”
“유상증자. 새롬의 주식 120만 주를 주당 11만 원에 인수 삼성이 인수했다고 하더라고. 뭐 한때 30만 원까지 올라갔었으니 한때는 좋았겠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했지. 주당 5000까지 떨어졌거든.”
“아, 그래서….”
“그래. 그래서 우리를 찾았겠지. 뭐 우리가 얼마나 벌었는지는 몰라도 애플을 인수했다는 건 다 알 테니까. 뭐 코스닥 시장에서의 투자 성과도 나쁘지 않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입은 피해는 거의 전무, 아님 오히려 수익을 거뒀다. 우리 회사에 투자한 자들에는 두둑한 돈이 채워진 것이다.
다른 이들이 쪽박을 찰 때 말이다.
그런 만큼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잃는 판에서 돈을 딴 사람에게는 본디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법이니까.
“그런데 어쩔 셈이야?”
“뭐가요?”
“아니 갑자기 한국으로 왔잖아. 무슨 생각이 있는 거야?”
이어진 그가 나를 향해 의문어린 시선을 보냈다.
갑작스런 나의 한국행,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
“어.”
“전에 제가 말씀 드린 적 있죠?”
“어떤 거?”
“태평양을 제 손에 쥘 거라고요?”
순간, 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그것 때문에?”
“네. 이제 시작해 보려고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젠 욕심을 좀 부려 봐도 될 것 같거든요.”
첫 타겟은 바로 평창동.
나와 나의 할머니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