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 293화 붕괴 (3)
100조 원.
그리고 태평양을 먹는다는 선언, 그것에 이어진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100조 원?”
“네. 1,000억 달러. 그 돈 정도는 먹어야죠.”
“아니 준영아 우리가 들고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물론 알고 있죠. 살려야 할 기업의 주식을 제외한 주식의 가치가… 한 15조 정도 될까요?”
그러자 그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대략 17조 정도. 그것도 요 근래 주가가 무지막지하게 오른 탓이지. 어디 계신 누구누구께서 집 늘린다고 흥청망청 돈을 쓰셨거든.”
“덕분에 꽤나 큰 집을 지었으니 남는 장사죠.”
“그렇긴 하지만 100조 원은 무리야. 아니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이 얼마인지 아는 거야?”
“올해 기준으로 92조 원 정도죠. 하지만 아저씨. 나스닥에 몰린 돈이 얼마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건…”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즈, 제너럴일렉트릭, 인텔, 엑손모빌, 비단 AOL이 아니더라도 시가총액 100조를 넘는 회사가 산재한 게 바로 현재의 나스닥 시장이에요. 우리는 그 풍선 한가운데 있고요. 그러니까 가능해요. 아니 불가능하더라도 만들어 내야죠.”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럴 만한 기회니까.”
그러자 잠시 말이 없는 이어진, 그가 많은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방법은?”
“거품, 하락장, 확실한 타겟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어요?”
“공매? 아니면 스왑? 아니 스왑은 아닐 것 같고 그러면… 설마 풋?”
“확실한 정보가 있으니 가격제한이 필요할까요? 당연히 풋으로 가야죠.”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전혀요. 앞으로 한 달 뒤, 나스닥 주가지수는 지금의 반토막이 나고 말 겁니다. 지금의 5,000선을 회복하는 데 10년은 족히 걸리겠죠.”
말을 마친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의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 그리고 시장의 크기에 걱정이 앞선 것 같았다.
“버블이 무르익었어. 풋을 파는 곳이 얼마나 될지가 문제인데?”
“낙관주의란 꽤나 무서운 말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치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죠.”
나는 입을 열며 나스닥 시장에 자리한 거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렇죠. 말마따나 우리는 돈을 갈퀴로 끌어 모으게 될 거에요. 뭐 모든 게 전산이라 예전처럼 돈 세는 재미는 없겠네요.”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 돈을 다 세려면 공장을 세워야 할걸. 그나저나 그걸 나스닥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다 한다는 거지?”
“그렇죠. 다다익선이니까요. 아마 코스닥도 니케이도 비슷하겠죠.”
이쯤 되자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준영아 너는 진짜… 아니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아무래도 나의 말, 그것들을 소화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의 시선이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까.
“저희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돈 귀신이 붙어 있다고요. 그러니까 이번에 확실히 확인해 보려고요.”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귀신이 얼마나 큰가.”
“……그리고 그 돈으로 태평양을 사겠다?”
“아마 마중물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마중물 치곤 좀 과하게 많지. 100조 원이라니 그 정도면 나라를 살 수도 있어.”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나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제 목표는 보다 더 큰 거거든요.”
그러자 이어진, 그가 혀를 차며 나를 향했다.
“욕심쟁이 녀석.”
“하하, 맞아요. 저는 욕심쟁이죠. 그러니까 아저씨. 준비하세요.”
“설마 벌써 움직이려고?”
“네. 저 말고도 욕심 많은 어린이들이 꽤나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후려쳐야죠.”
천천히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곳에는 월스트리트 세계경제의 중심이 자리해 있었다.
“그래야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깨달을 테니까.”
* * *
골드만삭스(GS), 도이체방크(DB), 모건스탠리(MS), 바클리스 캐피털(BarCap), 뱅크 오브 아메리카(BAML), 씨티(Citi), 크레디트스위스(CS), JP모건(JPM), UBS.
소위 벌지 브래킷이라 불리는 은행들.
전 세계에 고객을 두고 유가증권 인수, 자금 조달 주선, 인수합병 자문 등 투자은행 분야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월가 내 채권 발행이나 기업공개 시 투자자들에 발송되는 제안서의 표지에 대표 주관사들의 이름이 맨 윗줄에 기입되어 온 주요 투자사들.
그들의 이름은 무겁다.
그만큼 그들이 전세계 경제 금융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들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하루를 겪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고개를 들자 보이는 풍경, 그것은 거대한 마천루.
수천만의 피와 땀, 눈물과 역사로 쌓아 올린 거대한 탑.
지난 세기부터 수십 년간 벌지브래킷의 리더로 군림해 온 회사이자 ‘하느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라는 광고로 유명한 회사.
하루에만 수십, 수백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움직이는, 전세계 21개국 35개소 총 6만 명의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
‘모건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탑, 이 회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곳에 묻혔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탑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들에게 흔들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의 무게가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 이번 일을 분기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그래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 그때부터 세상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게 될 거다.
팍스아메리카나가 흔들리고 새로운 경제가 도래하는 것은 물론, 전세계의 사회, 정치, 문화는 그전 세기와는 다른 것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야만 한다. 이용하지 못한다면 그 기회, 그 흐름들을 놓치게 될 테니까.’
그때.
툭-
누군가 나를 건드렸다.
슬쩍 돌아보자 전화기를 든 채 고요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 이어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연락 끝났어.”
“아. 벌써요?”
아무래도 사전에 약속을 잡았던 이들과의 연락이 끝난 것 같았다.
“준비는?”
“모두 끝내 놨지.”
“철저하게 해야만 할 거에요. 뒤는 없을 테니까요.”
“물론이야.”
좋아 그렇다면…
“가죠.”
나는 짤막한 말, 그 말을 끝으로 모건 스탠리. 그 건물의 거체 안으로 발을 옮겨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들의 앞에는…
“처음 뵙겠습니다. 모건스탠리의 데이비드 창이라고 합니다.”
모건스탠리, 그 이름을 명함에 선명히 새긴 남자들, 그들이 자리해 있었다.
*
고요한 공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이런 방법은…”
“허용…”
우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작아지더니 이내 그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귀측의 제안이 제안인지라 조금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데이비드 창, 동양계로 선명한 눈썹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사전 조율이 없었으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측 제안을 수락하시는 겁니까?”
“그 전에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데이비드 창, 그가 이내 나를 직시하며 묻는다.
“10억 달러라는 거금. 풋옵션. 귀측에서는, 그러니까 오라클에서는 나스닥 시장의 상승폭이 꺾일 것이라 예상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은 꽤나 단도직입적이었다.
하지만 뭐 생각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제안한 거래, 풋옵션 거래는 나스닥 시장의 하락, 현재의 상승의 꺾임에 베팅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떨 것 같습니까?”
뭐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나도 그도 그저 단순한 확인일 테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죠.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제안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생각하시는 바대로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아무래도 위험성이 큰 상품이라…”
그가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험성.
그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 바닥, 이 시장에 위험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
허나, 이번 사건 이 사건에서 위험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이들이지.
“모건 스탠리의 발표는 잘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현재의 상승폭은 계속될 것이며 신경제하에서의 경제구조는 기존의 경제체계와 다른 패러다임을 갖는다’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 대부분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0에서 70배를 넘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낙관적 전망이죠.”
그러자 일순 눈썹을 꿈틀거린 데이비드 창, 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소규모 부실 또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김. 소수 기업의 부실이 곧 시장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즈, 제너럴일렉트릭 등 S&P500 시총의 18%를 차지하는 기업들의 상승이 계속되는 한 귀측에서 예상하는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은 부풀린 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조차 완전히 믿지 않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잘됐군요. 그렇다면 귀측에선 상품을 팔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요.”
그리고는 손가락을 살짝 들어 말을 맺었다.
“제가 지면 귀측은 이길 테니까.”
그러자 일순 흔들리는 사람들의 눈, 데이비드 창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모험을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허클베리핀, 톰 소여의 모험, 제가 책장에는 마크트웨인의 작품이 꽤나 훌?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미스터 김의 나이가 이제 18살밖에 안 됐다 알고 있는데요.”
“명작을 향유하는 것엔 나이가 중요하지 않죠.”
“……생각보? 더 중후한 취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군요.”
그가 조금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향했다.
“좋습니다. 이미 귀측과 비슷한 상품을 구매한 분들이 제법 많은 만큼 귀측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아니죠. 이 나라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니까요.”
“이미 비슷한 상품을 구매한 분들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물론입니다. 역사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 모습에는 모건스탠리. 그 거대한 기업에 오른 자의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자 그럼 말씀해 보시죠. 도대체 얼마를 목표로 하십니까?”
자동차 운전자는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운전자는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부터 자동차가 완파되는 큰 사고까지 모든 사고에 대해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자동차 가치에 대하여 풋옵션을 매수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어 천만 원을 주고 새로 산 자동차의 보험료가 12개월 동안 백만 원이라고 하면, 이 자동차 보험은 만기가 12개월, 행사가격이 천만 원, 프리미엄이 백만 원인 풋옵션에 해당한다.
옵션시장에서 주가지수 옵션을 매수하는 것도 이와 동일하다.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옵션을 매수하면 주가지수가 변하는 방향에 따라 옵션 매도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급받게 된다.
하지만.
옵션 매수자는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는 운전자와는 서로 상이한 심리를 갖는다.
주가지수 폿옵션 매수자는 주가 하락이라는 사고에, 자동차 운전자는 교통사고에 대비하기 위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점이 동일하지만, 자동차 운전자는 사고가 나기를 바라지 않는 반면 폿옵션 매수자는 피하고자 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사고가 클수록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제가 바라는 목표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나스닥 지수 1300입니다.”